항목 ID | GC012024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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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住生活 |
영어의미역 | Housing Life |
이칭/별칭 | 주거생활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
집필자 | 이영진 |
[정의]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건축되는 집과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가족들의 생활.
[개설]
주생활은 어떤 집을 짓고 사는가와 집안에서 어떻게 생활하는가의 두 부문을 포함한다. 전근대 사회에서는 전통 주택을 짓고 살았으며, 근대화되면서 전통 주택은 물론 이른바 양옥과 공동 주택을 짓고 살게 되었다. 전통 주택은 집의 형태와 공간 구성이 가족 구조를 포함하는 사회 구조와 종교, 세계관, 생업 방식, 건축 기술 등의 문화 요소와 기후, 건축 재료 등의 자연 환경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를테면 사회 구조는 우리의 전통 주택을 사랑채와 안채로 배치시키고, 그 안에서 안채를 격리시키도록 작용하였으며, 조상 숭배 사상은 사당과 벽감 등을 집안에 배치시켰다. 기후와 건축 재료는 기와집, 초가집, 너와집, 굴피집, 까치구멍집 등과 같은 상이한 지붕 형태를 파생시키기도 하였다. 전통 주택은 자연 환경과 신분 및 경제 계층, 지역적 전통에 따라 一자형, ㄱ자형, ㄴ자형, ㄷ자형, ㅁ자형의 주택이 건축되기도 하였다.
전근대 사회에서는 집을 짓는 건축 전통이 공유되었기 때문에 집의 형태와 공간 구성이 어느 정도 통일되었다. 그래서 우리의 전통 주택을 한옥이라는 통일된 이름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근대에 와서는 건축 설계 전문가들에 의해 집이 지어지기 때문에 다양한 집의 모습들이 창출되고 있다. 현대 주택이 전통 주택을 포함해서 공동 주택, 아파트, 양옥 등으로 다양하게 설계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양옥과 아파트는 설계 전문가의 설계 의도가 반영되기 때문에 집의 형태와 공간 구성이 전통 주택과 큰 차이를 보인다. 가장 큰 차이는 전통 주택은 공간이 칸과 채로 분화되는데 반해 양옥과 아파트는 칸의 분화만 있을 뿐 채의 분화가 없다는 점이다.
집의 형태에 따라 집안에서의 생활에 차이가 있다. 전통 주택은 내외법과 조상 숭배 관념, 직계 가족 구조, 성별 역할 분담, 방물림 등이 잘 구현되고 있으나 양옥과 아파트는 거실 집중형 동선 구조 때문에 핵가족이나 부부가족 구조가 잘 구현되고 있을 뿐이다. 오늘날 구미 지역의 주생활은 전통 주생활과 양옥과 아파트 주생활이 혼재하고 있다.
[변천 및 현황]
구미 지역에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전통 주택이 즐비하였다. 구미 지역의 전통 주택은 지붕 형태로 보면 초가와 와가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기와집은 조선시대 신분구조상 신분이 높으면서 경제적으로 부유한 계층이 소유하고 있었다. 구미의 선산과 해평, 인동 일대는 비교적 들이 넓어 경제적으로 부유하였으며, 조선시대 사대부 계급이 많이 살았기 때문에 규모 있는 기와집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서민들은 초가집을 짓고 살았다. 구미가 낙동강을 끼고 있는 중부 내륙의 산간 평야지대이고 벼농사가 가능하여 초가지붕 재료인 볏짚을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미 지역의 전통 주택은 대부분 측면의 칸이 단열인 홑집이다. 해평면 해평리 북애 고택처럼 규모가 큰 와가의 경우 측면이 2칸 내지는 3칸까지의 겹집이 보이기는 하지만 그리 흔치 않다. 홑집이 많은 이유는 구미 지역이 기후가 비교적 온난하기 때문이다. 배치를 통해 본 구미 지역 전통 주택은 一자형 안채를 중심으로 헛간과 외양간, 도장간 등의 부속 건물이 마당 가장자리에 배치되어 있는 경우가 가장 많다. 이것은 남부 지방 서민 주택의 특징이다. 이러한 기본형이 발달하여 안채 앞에 一자형 사랑채가 배치되어 있는 경우도 남부 지방 주택의 특징이다. 소위 二자형 주택이다.
중류층에서는 도개면 신곡리 김태동 가옥처럼 안채 앞 측면에 사랑채를 배치시킨 튼 ㄱ자형 주택과 도개면 도개리 이광호 가옥처럼 一자형 안채에 날개채를 달아 낸 ㄱ자형 주택도 보인다. 이밖에도 중류층에서는 고아읍 원호리 김사순 가옥처럼 ㄱ자형 안채 앞에 一자형 사랑채를 배치시킨 형태의 주택에서도 살았다. 상류층에서는 도개면 신곡리 금릉댁과 궁기리 김인교 가옥처럼 ㄷ자형 안채 앞에 一자형 사랑채를 배치시켜 튼ㅁ자를 이룬 형태, 해평면 해평리 쌍암 고택처럼 ㄷ자형 안채 앞에 一자형 중문간채를 배치시켜 튼ㅁ자형을 이루게 한 뒤 중문간채 앞에 향을 달리하여 별당형의 사랑채를 배치시킨 형태의 주택을 짓고 살았다.
1970년대에 들어와 구미 지역의 전통 주택은 초가가 슬레이트나 시멘트 기와로 바뀌면서 평면 구성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그러나 새로 건축되는 주택은 농촌의 경우 대부분 정부가 권장하는 슬라브식 반양옥인 소위 농촌 개량주택 내지는 국민주택으로 바뀌었다. 이 시기에 구미시 소재지와 읍면의 상공업 지역에도 국민주택과 공동주택이 들어서기 시작하였다.
1974년에 조성된 구미국가산업단지에 편입된 이주민들의 이주 단지의 주택이 구미 지역 최초의 국민주택이다. 당시에는 구미 지역에서 가장 쾌적한 주택으로 소문날 정도였다. 거의 같은 시기에 구미국가산업단지에 입주한 기업체의 임원들을 위한 아파트가 건축되었다. 지금은 서민 아파트로 전락한 구미시 신평2동의 장한아파트와 우석아파트이다. 이후 구미 지역의 농촌에는 보다 규모가 크고 발달한 농촌개량형 주택이 들어섰고, 상공업 지역에는 슬라브식 양옥과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서 전통 주택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근대화와 주택의 변화는 집안에서의 가족생활에도 변화를 일으켰다. 본래 전통 주택은 우리의 전통 가족 유형인 직계 가족을 수용할 수 있도록 지어졌으나 근대화되면서 자녀들의 이농과 핵가족화로 전통 주택의 기능이 축소되거나 소멸되고 말았다. 그 결과 규모 큰 전통 주택은 물리적으로도 허물어지기 시작하였다. 농촌개량형 주택과 상공업 지대의 양옥 및 공동 주택은 핵가족을 수용하기에는 적합하다. 그러나 3세대 이상이 동거하는 직계 가족의 생활공간으로는 불편한 점이 많아, 오히려 가족 구조를 해체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였다.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구미 지역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