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천리는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에 속하는 지역으로서, 내가 비껴 흐르므로 비끼내, 또는 빗내라고도 하고, 이를 한자로 사천(斜川)으로 표기한 것이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사상리와 사하리, 논수동을 합쳐 지금의 사천리가 되었다. 진도읍에서 군도9호를 따라 왕무덤재를 넘어서, 논수동에서 좌측으로 군도15호를 따라가면 나오는 사천리는, 진도읍 남동방향으로 직선...
-
...
-
사상리(斜上里)는 현재 행정구역상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에 속해 있는 마을이다. 사상마을의 법정리인 사천리(斜川里)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기왕의 사상리와 사하리, 영산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명명된 마을로, 이때 의신면에 편입되었다. 사상마을은 사천마을에서 분화되었다. 현재 사천마을은 ‘빗끼내, 빗내’로도 불린다. 『호구총수』(1789)에 보면 사천마을은 의신면(義新...
-
지명에 관련된 기술 내용은 『지명총람』(진도군)과 『사상마을지』를 기본 자료로 하여 작성하였고, 이희춘(남, 사상마을 새마을지도자) 씨의 도움을 받았다. (골 / 굴) 개락굴 사하리에서 사상리로 가는 중간쯤의 우측 산이다. 옛날에 어린이가 죽으면 이곳에 돌(독)담 장사를 지냈다. 거친들고랑 봉화골 입구 산길 북측 주변을 일컫는다. 굴등 사구지재 올라...
-
① 당산제에 얽힌 이야기 빗기내 당산제를 모시던 당산목은 수백 년 된 팽나무로 100여 년 전에 고목 밑부분이 썩어 바람에 쓰러져 고사되었다. 썩어 있던 팽나무에서 버섯이 나와서 최석 씨의 할아버지인 최광윤(당시 30세) 씨가 그 버섯을 따먹고 정신이 이상해져 ‘버섯 버섯’하고 다니다가 세상을 떴다고 한다. 그 자리에 다시 팽나무가 자라나 그 당산목에 해마다 제를 모신다. 그후 1...
-
...
-
가구수와 인구수는 (표 1)과 같이, 감소하기는 했으나 농촌의 일반적 추이에 비하면 완만한 감소라고 할 수 있다. 가구수는 1968년 조사에서는 79가구였는데, 2005년 현재에는 63가구(주민등록상)로 조사되어, 크게 줄어든 것은 아니다. 최근 10년 사이에는 거의 변화가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인구는 크게 줄었다. 1968년에는 463명이었으나, 313명이 줄어들어 200...
-
(1) 마을 총회(대동계) 대동계는 진도의 최고 의결기구이다. 대동계 의장은 마을 이장이 겸직한다. 회의는 매년 12월 22일 동짓날 개최되며, 1년 동안의 마을 수입금과 지출금을 결산 보고하는 것이 주요 안건이다. 또한 이 모임에서 새로운 이장을 선출한다. 2001년 이전에는 이장의 임기가 1년이었으나, 이후에는 2년으로 늘어났다. 이장세는 춘곡과 추곡 때 일정량의 보리와 벼를...
-
2005년 7월 현재 총 15개 성씨 59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주요 성씨로는 무안 박씨(8가구), 신안 주씨(8가구), 김해 김씨(6가구), 진주 강씨(5가구), 원주 이씨(4가구), 밀양 박씨(3가구), 연안 차씨(2가구), 유씨(3가구), 동복 오씨(2가구), 기타 성씨가 18가구 이다. 과거에는 박씨와 주씨가 매우 많았으나, 점차 다성촌으로 바뀌었다. 성씨를 넘어 친한 사람...
-
형제가 거주하고 있는 가구는 10가구로 오씨, 진씨, 박씨, 유씨, 이씨이고, 사촌간에 거주하는 가구는 7가구로 박씨, 강씨, 이씨이다. 5촌간에 거주하는 가구는 8가구로, 이씨와 차씨, 박씨이며 6촌간에 거주하는 가구는 2가구로 강씨이다....
-
통혼권은 특별하게 지역적 선택이나 차별이 없었다. 육지 사람들과 결혼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고, 대부분 관내에서 이루어졌다. 같은 마을 내에서의 혼인관계를 맺고 사는 가구는 총 5가구이다. 이 마을로 시집을 많이 온 마을은 의신면 초사리, 망길리 등이다....
-
(1) 운림산방과 남종화풍 화맥 진도에 있는 운림산방(雲林山房)은 소치(小痴) 허련(許練)[1808~1893]이 설치한 화실이다. 허련은 조선 말기 조희룡(趙熙龍), 전기(田琦) 등과 더불어 김정희(金正喜)의 문하에서 서화를 공부했다. 이를 통해 남종문인화의 필법과 정신을 읽혀 남종화풍을 토착화시킨 화가이다. 그는 1856년 운림산방을 개설하고, 제작활동에 몰두했다. 그...
-
* 상도계: 진도에는 계(契)가 마을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계는 크게 ‘큰 상도계’와 ‘작은 상도계’로 나뉘어져 있었다. ‘큰 상도계’는 1931년에 처음 조직되었으며, 조직 당시 참여자는 김준홍 외 21명이었다. 한편 ‘작은 상도계’는 1972년 12월에 조직되었다. 참여자는 박두주 외 27명이었다. 1985년에는 김영봉과 박종두가 전입하여 가입하였다...
-
(친구) 인접한 이웃끼리 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놀이) 젊은 사람들이 많은 관계로 나이를 떠나 마을 사람들끼리 장기와 바둑을 즐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종교) 마을 사람들의 대부분은 무신론자이고, 쌍계사가 있기 때문에 불교 신자가 약간 있다. 기독교 신자는 2가구이다. 예전에는 단골이 있었으나, 요즘은 무속신앙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
(1) 서당 마을 단위의 대표적인 교육기관이었던 서당은 조선 말기 3대 한학자이자 진도의 최후 유배자인 무정 정만조(鄭萬朝)[1858~1936]가 소치 선생의 아들인 미산 선생의 청에 의해 훈장으로 부임하면서 개설되었다. 이 서당의 명칭은 관란제(觀瀾齊)라고 칭했는데, 이는 흐르는 물의 순리를 깨우친다는 뜻이었다. 관란제는 현재의 서당골에 위치해 있었다. 지금은 터만 남아 있으며,...
-
저수지가 건립되기 전 한해가 빈번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사건은 없었다. 한국전쟁 전후 시기에는 첨철산에서 빨치산이 활동했다. 부역혐의로 경찰과 청년단에 의해 마을 사람이 몇 명이 죽었고, 공무원을 한 사람이 좌익에 의해 죽기도 했다....
-
...
-
1968년에 실시한 마을조사에서 의하면, 취업자 산업활동 인구를 대상으로 할 때 농업,임업,수렵업 종사자는 남자가 122명, 여자가 123명으로 총 245명이었다. 서비스업 종사자가 남자 2명이었고, 거의 대부분 농업에 종사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2006년 2월 현재는 농가가 30가구, 비농가가 29가구로 크게 바뀌었다. 그리고 농업인은 82명이고, 비농업인은 36명이다. 비...
-
전체 면적은 575.5㏊이다. 논은 21.3㏊, 밭은 28.2㏊, 그리고 임야는 526㏊를 차지하고 있다.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해마다 바뀌기 마련인데, 2002년 7월에 조사된 결과를 통해 토지 소유형태를 살펴보면, 28농가가 밭 21.3㏊, 논 28.2㏊ 등 총 49.5㏊의 농경지를 경작하고 있다. 호당 경지면적은 1.77㏊(5,310평)으로 진도군의 호당 경지면적 1.55...
-
(1) 작목반 현재 표고버섯을 재배하는 가구는 7가구이다. 작목반은 구성되지 않았고, 재배를 많이 한 사람이 수합하여 출하하는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구기자 재배 농가는 현재 12가구로 점차 감소하고 있다. 운림천 작목반을 구성하여 운영하고 있다. 1990년대 초부터 구기자 병충해(탄저병)가 돌기 시작하면서 수확량이 감소하고, 일손이 많이 필요해서 점차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작...
-
@ 저수지 : 1968~1969년경 한해가 들자 국비로 ‘사천제’라는 명칭으로 완공했다. 완공 이후 마을에서 운영했으나, 몇 해 되지 않아 홍수로 저수지가 훼손되었다. 저수지를 보수하기 위해서는 백 몇십만 원의 보수비가 필요했으나, 이를 부담하기 어려워 관리 및 운영권을 농조로 넘겼다. 사천제는 몽리면적이 31㏊이고, 92,228t을 저장할 수 있는데, 사천 제1저수지라고도 한다....
-
1960년대까지 사천리는 자급자족의 생산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은 농업을 주업으로 했으나, 사람별로 특화된 생산을 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강월인은 기름 짜는 일을, 허문찬, 허수찬 형제는 솥을 수리하는 일을, 박두주는 방아를 찧는 일을, 박두주와 진만수는 리어커를 끄는 일을, 박남조는 비석 등 석물 제작을, 김태중의 모친은 두부 제작을, 유복산의 부친은 지게 제...
-
마을 사람들은 진도읍 장날인 2일과 7일에 생산품을 판매하고, 소비품을 구입하고 있다. 의신면에도 1일과 6일에 장이 서기는 하지만 잘 이용하지 않는다. 도로가 놓이기 전에는 절재를 넘어 진도읍으로 갔으나, 경운기의 보급 이후 왕무덤재를 넘어 이동했다. 마을까지의 길이 포장되고 버스가 개통되면서 버스가 주요 이동수단이 되었다. 필요한 물품은 진도읍에 있는 농협연쇄점이나 대형 마트에...
-
@ 도로 : 진도는 진도군의 초고봉인 첨찰산 기슭 서남쪽의 의신천 상류 하천을 따라 형성되어 있어서 비가 조금만 많이 와도 교통이 쉽게 차단되곤 했다. 교통난을 해결하기 위해 도로 개설과 관련된 부역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주요 도로는 ‘사천선(斜川線)’이다. 이 도로는 1940년에 개통되었는데, 논수동(論水洞)을 기점으로 하여 쌍계사(雙溪寺)를 종점으로 했다. 1982년 새마을...
-
사천리 사상마을은 여느 마을에 비해 마을행사가 많은 편이다. 1월 1일 새해 해맞이 행사를 시작으로 음력 1월 15일에 열리는 정월대보름 세시풍속 놀이, 5월의 경로잔치, 추석날의 한가위 노래자랑, 12월의 동계와 김장 나누기 등 다채로운 행사들이 열리고 있다. 이러한 행사들이 활발하게 전개되는 데에는 사상마을 청년회와 새마을봉사대의 역할이 큰 것으로 보인다. 마을행사와...
-
(1) 주요 행사 -새해 해맞이 ▷일시 : 1월 1일 해 오르는 시각 ▷장소 : 첨찰산 정상 사천리에 위치한 첨찰산은 진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매년 1월 1일,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새해 첫날의 해돋이를 구경하며 한해의 소원을 기원한다. 2005년 1월부터 사상마을 새마을봉사대원을 중심으로 이곳을 찾는 관광객에게 구기자차, 떡국, 돼지고기를 대접하는 행사를 진행...
-
(1) 주요 행사 -정월대보름 세시풍속 놀이 ▷일시 : 음력 정월대보름(음력 1월 14일~1월 15일) ▷장소 : 운림산방과 사상마을 일원 정월대보름인 음력 1월 14일부터 15일 양일간 치러지는 마을행사로 사상마을 새마을봉사대에서 주관한다. 행해지는 행사로는 당산제, 달맞이, 답교놀이, 쥐불놀이, 농악놀이, 용줄다리기, 전통혼례, 달집 태우기 등이 있다. 전통혼례, 용줄다리기와...
-
(1) 주요 행사 - 없음 (2) 세시풍속 -하루달날 음력 2월 1일에 예전에는 선영께 밥을 올렸으나 지금 그렇게 하는 집은 없다. 이 날은 산에 가서 칡을 캐다 먹는다. 그리고 또 콩을 볶아 먹는다. 전에는 정월보름에 세워두었던 유지지를 이때 철거하여 이것으로 콩을 볶기도 하였다. 콩을 볶을 때 “손 꺼시럼 지지자, 손 꺼시럼 지지자.”하며 콩을 볶는다. 만약 정월에 마을에 유고...
-
(1) 주요 행사 - 없음 (2) 세시풍속 -삼질날 삼질날은 제비새끼가 돌아오는 날로 인식되고 있다. 특별하게 행하는 의례는 없다. -청명, 한식 이 때 산일을 하면 탈이 없다하여 이장을 하거나 묘를 손질하고 개사토를 한다. (3) 생업력 이 달에 못자리를 한다. 볍씨를 담아 논에다 갖다 두고 비닐하우스를 씌운다. 그리고 모가 잘 자라도록 물을 준다. 이 달에 고추와 옥수수를 심는...
-
(1) 주요 행사 -경로잔치 ▷일시 : 5월 초 ▷장소 : 마을 복지회관 매년 5월 초에 마을 청년회와 부녀회에서 주관하여 경로잔치를 하고 있다. 돼지고기 등 음식을 장만하여 대접하고 합동배례를 하며, 국악인을 초청하여 공연을 하는 등 노인들을 위한 행사이다. (2) 세시풍속 -4월초파일 사상마을에는 쌍계사라는 절이 있어 매년 4월 초파일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 마을을 찾...
-
(1) 주요 행사 - 없음 (2) 세시풍속 - 없음 (3) 생업력 이 달에는 주로 밭작물을 수확한다. 보리, 감자, 마늘, 양파를 수확한다. 이 달에 고구마를 심고 조를 파종한다. 모내기를 한 논에 돋은 풀을 제거하기 위해 제초제를 한다....
-
(1) 주요 행사 - 없음 (2) 세시풍속 -충제 지금은 중단되었으나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음력 6월 1일에 동네 앞산에 있는 바위에 음식을 차려놓고 충제를 지냈다. 농사지을 때 병충해가 없기를 기원하는 의례이다. -유두 유두에는 동쪽에서 흐르는 맑은 개울에 가서 머리 감고 목욕하면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전한다. 이날 유두국수를 먹고 햇감자도 먹는다. 예전에는 각 가정에서...
-
(1) 주요 행사 -없음 (2) 세시풍속 -백중 음력 7월 15일은 백중이다. 이날은 명절로 여겨졌으며 간단히 제물을 갖추어 조상께 차례를 모셨다. 또한 이 날은 집안일을 돕는 일꾼들에게 하루를 쉬게 한다 하여 ‘머슴날’이라 하였다. 백중날을 전후하여 농사일이 거의 끝나므로 호미를 씻어둔다고 하여 ‘호미씻이’한다고도 한다. 1960년대까지는 보릿가루를 반죽해 소다와 당분을 친 보리...
-
(1) 주요 행사 -한가위노래자랑 ▷일시 : 음력 8월 15일 ▷장소 : 사천리 광장 및 운림산방 주차장 한가위 노래자랑은 매년 추석날 저녁에 행해지는 마을축제이다. 1989년에 제1회 한가위 노래자랑이 개최된 이후로 한 번도 빠짐없이 지속되고 있다. 명절을 맞아 고향을 찾은 친지들과 주민들이 함께 어울려 노래와 장기자랑으로 즐겁고 흐뭇한 시간을 보낸다. 행운권 추첨을 하기도 한다...
-
(1) 주요 행사 - 없음 (2) 세시풍속 -중구날 사상마을에서는 중구날에도 산일을 한다. 이날 산일을 하면 탈이 없다고 전하기 때문이다. -이엉 얹기 지금은 초가집이 없지만 1960대까지만 해도 초가집이 많았다. 그래서 이달에는 이엉 얹기가 중요한 세시행사였다. 볏짚을 엮어서 마람을 엮어 새로 지붕을 얹는 것이다. (3) 생업력 이달에는 전달에 이어서 구기자를 수확하고...
-
(1) 주요 행사 -효도관광 2004년부터 11월에 사상새마을봉사대에서 행사를 주관하여 사상리 경로당 회원을 대상으로 효도관광을 다녀오고 있다. 2004년에는 대전, 온양, 양산, 사천시 등을 관광하였다. 이 행사는 진도군의 시책인 ‘노인공경군’ 방침에 따라 진도군에서 일부 지원금을 받기도 했으며 독지가의 후원을 받기도 했다. (2) 세시풍속 -시제 모시기 10월 상달이 되면 시제...
-
(1) 주요 행사 -총회(대동계) 매년 12월 22일 총회(대동계)를 개최한다. 대동계는 마을의 최고 의결기관으로서 이장이 의장이 되어 회의를 진행한다. 1년간의 마을의 수입금과 지출금을 보고 결산하고 새로운 이장을 선출한다. -김장 나누기 사상마을 새마을봉사대와 부녀회에서 주관하며, 연말을 맞이하여 독거노인 가구 및 진도 기상대에 김장김치를 전달하는 행사이다. 2004...
-
...
-
...
-
컴퓨터 시대인 오늘날 우리 삶에 있어 그림과 글씨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중국 춘추시대 대사상가로 유교의 개조인 공자(기원전 551~479)는 종이가 발명되기 훨씬 이전『논어』에서 ‘흰 바탕을 칠한 뒤 그림을 그리는 것[繪事後素]’을 이야기했고 『주례(周禮)』에서도 ‘무릇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을 칠한 뒤에 한다[凡畵繪之事後素功]’는 언급이 보인다. 새하얀 종이와 검은 먹,...
-
우리 인류의 오랜 역사가 증거하듯 영원한 승자는 없다. 그것은 마치 유아기에서 노년에 이르는 인체의 변화와도 다를 바 없다. 어느 시대나 그러하듯 번성이 있으면 절정에 이어 쇠락이 따른다. 조선왕조의 끝자락인 19세기 후반부터 1910년까지 60년 남짓한 시기를 미술사학자들에 따라서는, 3분법에서는 18세기와 함께 후기에 포함시키거나, 세분한 4분법에서는 조선 말기 화단으로 분류한...
-
기존에 확인되거나 알려져 있던 화단에서의 명성과는 별개로 조선 말기 화단에 있어 새롭게 조명된 매우 긍정적이며 값진 연구 성과와 업적의 예로 김수철과 홍세섭의 발굴을 들 수 있다. 이들에 대해선 일찍이 해방 후 한국미술사 연구의 일세대로 한국미술사 특히 회화사에 있어 전통적인 감식안(鑑識眼)을 바탕으로 초석을 세운 최순우(崔淳雨)[1916~1984], 이동주(李東洲)[1917~19...
-
허련의 한 세대 후배이면서 상반된 성격이지만, 조선 말기 화단에서 중앙에서 활동이 두드러진 장승업은 조선왕조 전체를 통해 뽑힌 3대 화가 중의 한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에 큰 반대가 없긴 하지만, 이와 같은 오원 신화에 대해 이견이 없는 바는 아니다. 불과 백 여 년 전에 활동한 화가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그리 자세한 편은 아니며, 꽤나 신비화된 감...
-
“내 집은 깊은 산중에 있어 매번 봄이 가고 여름이 다가올 무렵이면 푸른 이끼는 들에 깔리고 떨어진 꽃은 길바닥에 가득하다. 사립문에는 사람 발자국 소리가 없고 소나무 그림자는 길고 짧으며 새 소리는 오르내려 낮잠도 만족한다. 이윽고 샘물 길어와 솔가지 주어다 차를 다려 마신다. 생각나는 대로 주역, 국풍, 좌씨전, 이소, 태사공서와 도연명과 두자미의 시, 한유와 소식의 글 수 편...
-
...
-
허련의 긴 화맥은 제자와 집안의 대물림으로 오늘에 이른다. 이런 점에서 다른 지역과 구별된다. 남도라는 지역과 조선 말기라는 지리적,시간적 범위를 넘어 20세기 근,현대로 이어진다. 대원군에게서 미방(米舫)이라는 호를 하사받은 김익로(金益魯)[1845~1915]는 소치와 초의에게 그림을 배웠다. 소치의 넷째 아들 허형은 일찍 타계한 형의 호인 미산(米山)을 물려받았다....
-
우리의 전통회화의 바른 이해에 있어 넘어야 할 산과 선결되어야 할 어려운 점은 한 둘이 아니다. 이 중에서도 힘든 난제의 하나는 우리의 단절되고 달라진 미감에 대한 인식이다. 문인화 이해의 코드이기도 한 격조와 기량의 상관관계를 들 수 있다. 시차에 따른 사고와 심미안의 차이는 잠시 논외로 하더라도 격조라 하는 것은 기실 가시적으로 표현되어 드러나는 것이 아니기에, 화가의 내면과...
-
우리의 전통회화의 바른 이해에 있어 넘어야 할 산과 선결되어야 할 어려운 점은 한 둘이 아니다. 이 중에서도 힘든 난제의 하나는 우리의 단절되고 달라진 미감에 대한 인식이다. 문인화 이해의 코드이기도 한 격조와 기량의 상관관계를 들 수 있다. 시차에 따른 사고와 심미안의 차이는 잠시 논외로 하더라도 격조라 하는 것은 기실 가시적으로 표현되어 드러나는 것이 아니기에, 화가의 내면과...
-
...
-
사천리는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에 속하는 지역으로서, 내가 비껴 흐르므로 비끼내, 또는 빗내라고도 하고, 이를 한자로 사천(斜川)으로 표기한 것이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사상리와 사하리, 논수동을 합쳐 지금의 사천리가 되었다. 진도읍에서 군도9호를 따라 왕무덤재를 넘어서, 논수동에서 좌측으로 군도15호를 따라가면 나오는 사천리는, 진도읍 남동방향으로 직선...
-
“내 집은 깊은 산중에 있어 매번 봄이 가고 여름이 다가올 무렵이면 푸른 이끼는 들에 깔리고 떨어진 꽃은 길바닥에 가득하다. 사립문에는 사람 발자국 소리가 없고 소나무 그림자는 길고 짧으며 새 소리는 오르내려 낮잠도 만족한다. 이윽고 샘물 길어와 솔가지 주어다 차를 다려 마신다. 생각나는 대로 주역, 국풍, 좌씨전, 이소, 태사공서와 도연명과 두자미의 시, 한유와 소식의 글 수 편...
-
허련의 긴 화맥은 제자와 집안의 대물림으로 오늘에 이른다. 이런 점에서 다른 지역과 구별된다. 남도라는 지역과 조선 말기라는 지리적,시간적 범위를 넘어 20세기 근,현대로 이어진다. 대원군에게서 미방(米舫)이라는 호를 하사받은 김익로(金益魯)[1845~1915]는 소치와 초의에게 그림을 배웠다. 소치의 넷째 아들 허형은 일찍 타계한 형의 호인 미산(米山)을 물려받았다....
-
기존에 확인되거나 알려져 있던 화단에서의 명성과는 별개로 조선 말기 화단에 있어 새롭게 조명된 매우 긍정적이며 값진 연구 성과와 업적의 예로 김수철과 홍세섭의 발굴을 들 수 있다. 이들에 대해선 일찍이 해방 후 한국미술사 연구의 일세대로 한국미술사 특히 회화사에 있어 전통적인 감식안(鑑識眼)을 바탕으로 초석을 세운 최순우(崔淳雨)[1916~1984], 이동주(李東洲)[1917~19...
-
허련의 한 세대 후배이면서 상반된 성격이지만, 조선 말기 화단에서 중앙에서 활동이 두드러진 장승업은 조선왕조 전체를 통해 뽑힌 3대 화가 중의 한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에 큰 반대가 없긴 하지만, 이와 같은 오원 신화에 대해 이견이 없는 바는 아니다. 불과 백 여 년 전에 활동한 화가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그리 자세한 편은 아니며, 꽤나 신비화된 감...
-
컴퓨터 시대인 오늘날 우리 삶에 있어 그림과 글씨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중국 춘추시대 대사상가로 유교의 개조인 공자(기원전 551~479)는 종이가 발명되기 훨씬 이전『논어』에서 ‘흰 바탕을 칠한 뒤 그림을 그리는 것[繪事後素]’을 이야기했고 『주례(周禮)』에서도 ‘무릇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을 칠한 뒤에 한다[凡畵繪之事後素功]’는 언급이 보인다. 새하얀 종이와 검은 먹,...
-
우리 인류의 오랜 역사가 증거하듯 영원한 승자는 없다. 그것은 마치 유아기에서 노년에 이르는 인체의 변화와도 다를 바 없다. 어느 시대나 그러하듯 번성이 있으면 절정에 이어 쇠락이 따른다. 조선왕조의 끝자락인 19세기 후반부터 1910년까지 60년 남짓한 시기를 미술사학자들에 따라서는, 3분법에서는 18세기와 함께 후기에 포함시키거나, 세분한 4분법에서는 조선 말기 화단으로 분류한...
-
...
-
...
-
(1) 주요 행사 -효도관광 2004년부터 11월에 사상새마을봉사대에서 행사를 주관하여 사상리 경로당 회원을 대상으로 효도관광을 다녀오고 있다. 2004년에는 대전, 온양, 양산, 사천시 등을 관광하였다. 이 행사는 진도군의 시책인 ‘노인공경군’ 방침에 따라 진도군에서 일부 지원금을 받기도 했으며 독지가의 후원을 받기도 했다. (2) 세시풍속 -시제 모시기 10월 상달이 되면 시제...
-
(1) 주요 행사 -총회(대동계) 매년 12월 22일 총회(대동계)를 개최한다. 대동계는 마을의 최고 의결기관으로서 이장이 의장이 되어 회의를 진행한다. 1년간의 마을의 수입금과 지출금을 보고 결산하고 새로운 이장을 선출한다. -김장 나누기 사상마을 새마을봉사대와 부녀회에서 주관하며, 연말을 맞이하여 독거노인 가구 및 진도 기상대에 김장김치를 전달하는 행사이다. 2004...
-
(1) 주요 행사 -한가위노래자랑 ▷일시 : 음력 8월 15일 ▷장소 : 사천리 광장 및 운림산방 주차장 한가위 노래자랑은 매년 추석날 저녁에 행해지는 마을축제이다. 1989년에 제1회 한가위 노래자랑이 개최된 이후로 한 번도 빠짐없이 지속되고 있다. 명절을 맞아 고향을 찾은 친지들과 주민들이 함께 어울려 노래와 장기자랑으로 즐겁고 흐뭇한 시간을 보낸다. 행운권 추첨을 하기도 한다...
-
(1) 주요 행사 - 없음 (2) 세시풍속 -중구날 사상마을에서는 중구날에도 산일을 한다. 이날 산일을 하면 탈이 없다고 전하기 때문이다. -이엉 얹기 지금은 초가집이 없지만 1960대까지만 해도 초가집이 많았다. 그래서 이달에는 이엉 얹기가 중요한 세시행사였다. 볏짚을 엮어서 마람을 엮어 새로 지붕을 얹는 것이다. (3) 생업력 이달에는 전달에 이어서 구기자를 수확하고...
-
(1) 주요 행사 - 없음 (2) 세시풍속 -충제 지금은 중단되었으나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음력 6월 1일에 동네 앞산에 있는 바위에 음식을 차려놓고 충제를 지냈다. 농사지을 때 병충해가 없기를 기원하는 의례이다. -유두 유두에는 동쪽에서 흐르는 맑은 개울에 가서 머리 감고 목욕하면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전한다. 이날 유두국수를 먹고 햇감자도 먹는다. 예전에는 각 가정에서...
-
(1) 주요 행사 -없음 (2) 세시풍속 -백중 음력 7월 15일은 백중이다. 이날은 명절로 여겨졌으며 간단히 제물을 갖추어 조상께 차례를 모셨다. 또한 이 날은 집안일을 돕는 일꾼들에게 하루를 쉬게 한다 하여 ‘머슴날’이라 하였다. 백중날을 전후하여 농사일이 거의 끝나므로 호미를 씻어둔다고 하여 ‘호미씻이’한다고도 한다. 1960년대까지는 보릿가루를 반죽해 소다와 당분을 친 보리...
-
(1) 주요 행사 -경로잔치 ▷일시 : 5월 초 ▷장소 : 마을 복지회관 매년 5월 초에 마을 청년회와 부녀회에서 주관하여 경로잔치를 하고 있다. 돼지고기 등 음식을 장만하여 대접하고 합동배례를 하며, 국악인을 초청하여 공연을 하는 등 노인들을 위한 행사이다. (2) 세시풍속 -4월초파일 사상마을에는 쌍계사라는 절이 있어 매년 4월 초파일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 마을을 찾...
-
(1) 주요 행사 - 없음 (2) 세시풍속 - 없음 (3) 생업력 이 달에는 주로 밭작물을 수확한다. 보리, 감자, 마늘, 양파를 수확한다. 이 달에 고구마를 심고 조를 파종한다. 모내기를 한 논에 돋은 풀을 제거하기 위해 제초제를 한다....
-
(1) 주요 행사 - 없음 (2) 세시풍속 -하루달날 음력 2월 1일에 예전에는 선영께 밥을 올렸으나 지금 그렇게 하는 집은 없다. 이 날은 산에 가서 칡을 캐다 먹는다. 그리고 또 콩을 볶아 먹는다. 전에는 정월보름에 세워두었던 유지지를 이때 철거하여 이것으로 콩을 볶기도 하였다. 콩을 볶을 때 “손 꺼시럼 지지자, 손 꺼시럼 지지자.”하며 콩을 볶는다. 만약 정월에 마을에 유고...
-
(1) 주요 행사 - 없음 (2) 세시풍속 -삼질날 삼질날은 제비새끼가 돌아오는 날로 인식되고 있다. 특별하게 행하는 의례는 없다. -청명, 한식 이 때 산일을 하면 탈이 없다하여 이장을 하거나 묘를 손질하고 개사토를 한다. (3) 생업력 이 달에 못자리를 한다. 볍씨를 담아 논에다 갖다 두고 비닐하우스를 씌운다. 그리고 모가 잘 자라도록 물을 준다. 이 달에 고추와 옥수수를 심는...
-
(1) 주요 행사 -새해 해맞이 ▷일시 : 1월 1일 해 오르는 시각 ▷장소 : 첨찰산 정상 사천리에 위치한 첨찰산은 진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매년 1월 1일,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새해 첫날의 해돋이를 구경하며 한해의 소원을 기원한다. 2005년 1월부터 사상마을 새마을봉사대원을 중심으로 이곳을 찾는 관광객에게 구기자차, 떡국, 돼지고기를 대접하는 행사를 진행...
-
(1) 주요 행사 -정월대보름 세시풍속 놀이 ▷일시 : 음력 정월대보름(음력 1월 14일~1월 15일) ▷장소 : 운림산방과 사상마을 일원 정월대보름인 음력 1월 14일부터 15일 양일간 치러지는 마을행사로 사상마을 새마을봉사대에서 주관한다. 행해지는 행사로는 당산제, 달맞이, 답교놀이, 쥐불놀이, 농악놀이, 용줄다리기, 전통혼례, 달집 태우기 등이 있다. 전통혼례, 용줄다리기와...
-
@ 도로 : 진도는 진도군의 초고봉인 첨찰산 기슭 서남쪽의 의신천 상류 하천을 따라 형성되어 있어서 비가 조금만 많이 와도 교통이 쉽게 차단되곤 했다. 교통난을 해결하기 위해 도로 개설과 관련된 부역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주요 도로는 ‘사천선(斜川線)’이다. 이 도로는 1940년에 개통되었는데, 논수동(論水洞)을 기점으로 하여 쌍계사(雙溪寺)를 종점으로 했다. 1982년 새마을...
-
사천리 사상마을은 여느 마을에 비해 마을행사가 많은 편이다. 1월 1일 새해 해맞이 행사를 시작으로 음력 1월 15일에 열리는 정월대보름 세시풍속 놀이, 5월의 경로잔치, 추석날의 한가위 노래자랑, 12월의 동계와 김장 나누기 등 다채로운 행사들이 열리고 있다. 이러한 행사들이 활발하게 전개되는 데에는 사상마을 청년회와 새마을봉사대의 역할이 큰 것으로 보인다. 마을행사와...
-
1960년대까지 사천리는 자급자족의 생산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은 농업을 주업으로 했으나, 사람별로 특화된 생산을 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강월인은 기름 짜는 일을, 허문찬, 허수찬 형제는 솥을 수리하는 일을, 박두주는 방아를 찧는 일을, 박두주와 진만수는 리어커를 끄는 일을, 박남조는 비석 등 석물 제작을, 김태중의 모친은 두부 제작을, 유복산의 부친은 지게 제...
-
마을 사람들은 진도읍 장날인 2일과 7일에 생산품을 판매하고, 소비품을 구입하고 있다. 의신면에도 1일과 6일에 장이 서기는 하지만 잘 이용하지 않는다. 도로가 놓이기 전에는 절재를 넘어 진도읍으로 갔으나, 경운기의 보급 이후 왕무덤재를 넘어 이동했다. 마을까지의 길이 포장되고 버스가 개통되면서 버스가 주요 이동수단이 되었다. 필요한 물품은 진도읍에 있는 농협연쇄점이나 대형 마트에...
-
(1) 작목반 현재 표고버섯을 재배하는 가구는 7가구이다. 작목반은 구성되지 않았고, 재배를 많이 한 사람이 수합하여 출하하는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구기자 재배 농가는 현재 12가구로 점차 감소하고 있다. 운림천 작목반을 구성하여 운영하고 있다. 1990년대 초부터 구기자 병충해(탄저병)가 돌기 시작하면서 수확량이 감소하고, 일손이 많이 필요해서 점차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작...
-
@ 저수지 : 1968~1969년경 한해가 들자 국비로 ‘사천제’라는 명칭으로 완공했다. 완공 이후 마을에서 운영했으나, 몇 해 되지 않아 홍수로 저수지가 훼손되었다. 저수지를 보수하기 위해서는 백 몇십만 원의 보수비가 필요했으나, 이를 부담하기 어려워 관리 및 운영권을 농조로 넘겼다. 사천제는 몽리면적이 31㏊이고, 92,228t을 저장할 수 있는데, 사천 제1저수지라고도 한다....
-
1968년에 실시한 마을조사에서 의하면, 취업자 산업활동 인구를 대상으로 할 때 농업,임업,수렵업 종사자는 남자가 122명, 여자가 123명으로 총 245명이었다. 서비스업 종사자가 남자 2명이었고, 거의 대부분 농업에 종사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2006년 2월 현재는 농가가 30가구, 비농가가 29가구로 크게 바뀌었다. 그리고 농업인은 82명이고, 비농업인은 36명이다. 비...
-
전체 면적은 575.5㏊이다. 논은 21.3㏊, 밭은 28.2㏊, 그리고 임야는 526㏊를 차지하고 있다.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해마다 바뀌기 마련인데, 2002년 7월에 조사된 결과를 통해 토지 소유형태를 살펴보면, 28농가가 밭 21.3㏊, 논 28.2㏊ 등 총 49.5㏊의 농경지를 경작하고 있다. 호당 경지면적은 1.77㏊(5,310평)으로 진도군의 호당 경지면적 1.55...
-
저수지가 건립되기 전 한해가 빈번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사건은 없었다. 한국전쟁 전후 시기에는 첨철산에서 빨치산이 활동했다. 부역혐의로 경찰과 청년단에 의해 마을 사람이 몇 명이 죽었고, 공무원을 한 사람이 좌익에 의해 죽기도 했다....
-
...
-
(친구) 인접한 이웃끼리 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놀이) 젊은 사람들이 많은 관계로 나이를 떠나 마을 사람들끼리 장기와 바둑을 즐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종교) 마을 사람들의 대부분은 무신론자이고, 쌍계사가 있기 때문에 불교 신자가 약간 있다. 기독교 신자는 2가구이다. 예전에는 단골이 있었으나, 요즘은 무속신앙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
(1) 서당 마을 단위의 대표적인 교육기관이었던 서당은 조선 말기 3대 한학자이자 진도의 최후 유배자인 무정 정만조(鄭萬朝)[1858~1936]가 소치 선생의 아들인 미산 선생의 청에 의해 훈장으로 부임하면서 개설되었다. 이 서당의 명칭은 관란제(觀瀾齊)라고 칭했는데, 이는 흐르는 물의 순리를 깨우친다는 뜻이었다. 관란제는 현재의 서당골에 위치해 있었다. 지금은 터만 남아 있으며,...
-
(1) 운림산방과 남종화풍 화맥 진도에 있는 운림산방(雲林山房)은 소치(小痴) 허련(許練)[1808~1893]이 설치한 화실이다. 허련은 조선 말기 조희룡(趙熙龍), 전기(田琦) 등과 더불어 김정희(金正喜)의 문하에서 서화를 공부했다. 이를 통해 남종문인화의 필법과 정신을 읽혀 남종화풍을 토착화시킨 화가이다. 그는 1856년 운림산방을 개설하고, 제작활동에 몰두했다. 그...
-
* 상도계: 진도에는 계(契)가 마을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계는 크게 ‘큰 상도계’와 ‘작은 상도계’로 나뉘어져 있었다. ‘큰 상도계’는 1931년에 처음 조직되었으며, 조직 당시 참여자는 김준홍 외 21명이었다. 한편 ‘작은 상도계’는 1972년 12월에 조직되었다. 참여자는 박두주 외 27명이었다. 1985년에는 김영봉과 박종두가 전입하여 가입하였다...
-
형제가 거주하고 있는 가구는 10가구로 오씨, 진씨, 박씨, 유씨, 이씨이고, 사촌간에 거주하는 가구는 7가구로 박씨, 강씨, 이씨이다. 5촌간에 거주하는 가구는 8가구로, 이씨와 차씨, 박씨이며 6촌간에 거주하는 가구는 2가구로 강씨이다....
-
통혼권은 특별하게 지역적 선택이나 차별이 없었다. 육지 사람들과 결혼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고, 대부분 관내에서 이루어졌다. 같은 마을 내에서의 혼인관계를 맺고 사는 가구는 총 5가구이다. 이 마을로 시집을 많이 온 마을은 의신면 초사리, 망길리 등이다....
-
(1) 마을 총회(대동계) 대동계는 진도의 최고 의결기구이다. 대동계 의장은 마을 이장이 겸직한다. 회의는 매년 12월 22일 동짓날 개최되며, 1년 동안의 마을 수입금과 지출금을 결산 보고하는 것이 주요 안건이다. 또한 이 모임에서 새로운 이장을 선출한다. 2001년 이전에는 이장의 임기가 1년이었으나, 이후에는 2년으로 늘어났다. 이장세는 춘곡과 추곡 때 일정량의 보리와 벼를...
-
2005년 7월 현재 총 15개 성씨 59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주요 성씨로는 무안 박씨(8가구), 신안 주씨(8가구), 김해 김씨(6가구), 진주 강씨(5가구), 원주 이씨(4가구), 밀양 박씨(3가구), 연안 차씨(2가구), 유씨(3가구), 동복 오씨(2가구), 기타 성씨가 18가구 이다. 과거에는 박씨와 주씨가 매우 많았으나, 점차 다성촌으로 바뀌었다. 성씨를 넘어 친한 사람...
-
...
-
가구수와 인구수는 (표 1)과 같이, 감소하기는 했으나 농촌의 일반적 추이에 비하면 완만한 감소라고 할 수 있다. 가구수는 1968년 조사에서는 79가구였는데, 2005년 현재에는 63가구(주민등록상)로 조사되어, 크게 줄어든 것은 아니다. 최근 10년 사이에는 거의 변화가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인구는 크게 줄었다. 1968년에는 463명이었으나, 313명이 줄어들어 200...
-
지명에 관련된 기술 내용은 『지명총람』(진도군)과 『사상마을지』를 기본 자료로 하여 작성하였고, 이희춘(남, 사상마을 새마을지도자) 씨의 도움을 받았다. (골 / 굴) 개락굴 사하리에서 사상리로 가는 중간쯤의 우측 산이다. 옛날에 어린이가 죽으면 이곳에 돌(독)담 장사를 지냈다. 거친들고랑 봉화골 입구 산길 북측 주변을 일컫는다. 굴등 사구지재 올라...
-
① 당산제에 얽힌 이야기 빗기내 당산제를 모시던 당산목은 수백 년 된 팽나무로 100여 년 전에 고목 밑부분이 썩어 바람에 쓰러져 고사되었다. 썩어 있던 팽나무에서 버섯이 나와서 최석 씨의 할아버지인 최광윤(당시 30세) 씨가 그 버섯을 따먹고 정신이 이상해져 ‘버섯 버섯’하고 다니다가 세상을 떴다고 한다. 그 자리에 다시 팽나무가 자라나 그 당산목에 해마다 제를 모신다. 그후 1...
-
...
-
사상리(斜上里)는 현재 행정구역상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에 속해 있는 마을이다. 사상마을의 법정리인 사천리(斜川里)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기왕의 사상리와 사하리, 영산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명명된 마을로, 이때 의신면에 편입되었다. 사상마을은 사천마을에서 분화되었다. 현재 사천마을은 ‘빗끼내, 빗내’로도 불린다. 『호구총수』(1789)에 보면 사천마을은 의신면(義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