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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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마루바닥을 지면에서 한층 높게 지은 다락식의 집. 누정은 누각과 정자를 함께 이르는 말이다. 누각(樓閣)은 성문 위에 지은 집이나 전망이 좋은 곳에 2층 형으로 지은 전망대를 이른다. 정자(亭子)는 휴게를 위해 지은 집이다. 누정 중에는 숙소인 원(院)의 기능을 겸하는 경우도 있다. 진도지역의 경우 1923년에 나온 『중증진도읍지』에 보면 11개의 누정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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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 진도군 설치에 공을 세운 인물. 본관은 창녕. 진도 입도조 조희직(曺希直)의 10세손으로 진도군 진도읍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조계남(曺繼男)이다. 아들은 조백령(曺百齡), 조억령(曺億齡)이다. 조맹문은 동생 조중문(曺仲文), 그리고 집안 할아버지 되는 조복명(曺復明)과 함께 1437년 (세종 19) 진도 설군과 향교 창건에 공을 세웠다. 향현사(鄕賢祠)에는 조복명·박연·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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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향리. 본관은 창녕. 창녕조씨 입도조인 조희직(曺希直)의 17세손으로 향동파이다. 아버지는 조원성(曺元成)이고 어머니는 진주하씨이다. 아들은 조용운(曺龍雲)이다. 1851년 진도향교 명륜당 중수기에 색향리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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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무신. 본관은 창녕. 호는 호정(湖亭)이다. 진도 입도조(入島祖) 조희직(曺希直)의 23세손이다. 아버지는 조준승(曺準承)이고 어머니는 박혜숙이다. 부인은 밀양박씨이다. 아들 조인환(曺寅煥)이 있다. 1863년 진도군 고군면 오산리에서 태어났다. 어모장군(禦侮將軍) 전라도 우수영우후를 지냈다. 1916년 4월 26일에 향년 54세로 타계하였다. 진도군 고군면 지수리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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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 창녕조씨 인물. 본관은 창녕. 창녕조씨 입도조인 조희직의 8세손이다. 아버지는 조한진(曺漢晋)이다. 동생은 조복리(曺復理)이고, 아들은 조섭주(曺燮周)이다. 후손들 중에서 많은 향리가 배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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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창녕. 창녕조씨 진도 입도조 조희직의 8세손이다. 아버지는 조한진(曺漢晋)이다. 1437년(세종 19) 진도 설군 때 4촌 조복명과 함께 공을 세웠다. 조복리의 조카 조섭주(曺燮周)는 당시 두기관(頭記官)이었다. 1933년 향현사를 재건하였을 때 박근무(朴根茂)·하극창(河克昌)·임은·박의경(朴義敬)·최민명(崔閔命)·김백균(金百鈞) 등 6명과 함께 추배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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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창녕. 고려 후기 정언(正言)으로 신돈의 비행을 탄핵하다가 진도 가흥현 호장(戶長)으로 좌천되었고, 조선왕조 개창 후에는 이군불사(二君不事)를 고수하여 창녕조씨의 진도 입도조가 된 조희직(曺希直)의 후손이다. 무과(武科)에 합격하여 관직이 참군(參軍, 정7품)에 이르렀다. 1437년(세종 19) 해진군에 속해있던 진도를 군(郡)으로 분리·독립했을 때,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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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진도 지역의 좌수. 본관은 창녕. 창녕조씨 진도 입도조 조희직의 21세손이다. 초명은 방서(邦瑞)이다. 아버지는 조남철(曺南哲)이고 어머니는 진주하씨이다. 아들이 조영승(曺英承)이며 침계 창녕조씨의 종가이다. 손자 조병운(曺秉雲)은 문장이 뛰어나 학계비가 있다. 1796년 진도군 의신면 침계리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55세가 되던 1850년(철종 1) 좌수(座首, 향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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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 임진왜란 시 순절한 무신. 본관은 창녕. 창녕조씨 진도 입도조 조희직(曺希直)의 12세손이고 진도 창군에 공이 컸던 조복명(曺復明)의 현손이다. 아버지는 조상겸(曺尙謙)이고 어머니는 남양이씨로 셋째 아들이다. 아들은 조유남(曺裕男)이다. 무과에 급제한 뒤 선전관으로 있던 중 임진왜란에 참전하여 순절하였다. 진도군 진도읍 성죽동(城竹洞)에 있는 조수의의 부친 조상겸의 묘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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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 정유재란 때에 공을 세운 무신. 조응량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임진왜란 와중에서 이순신을 돕다가 명량해전에서 부자가 함께 순절한 선무원종공신이다. 본관은 창녕. 진도 입도조 조희직(曺希直)의 13세손이다. 아버지는 조찬상(曺纘商), 어머니는 경주이씨이다. 임진왜란 순절자 조수의(曺守義)의 종질이다. 5남 중 넷째이다. 부인은 김해김씨이며 아들은 조명신(曺命新)이다. 진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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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무신. 본관은 창녕. 창녕조씨 진도 입도조 조희직의 20세손으로, 오산파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조몽천(曺夢天)이고 어머니는 밀양박씨이다. 1808년(순조 8)에 태어나 조의천(曺義天)의 양자가 되었다. 밀양박씨와의 사이에 조석닐(曺錫暱) 등 두 아들을 두었고, 경주이씨와의 사이에 세 아들을 두었다. 호남 토포대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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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바둑에 뛰어난 재주가 있었으며 다섯 아들이 모두 문과에 급제해 오룡(五龍) 집안이라 불렸다. 그의 아들 5형제 집안은 전라남도의 명문가를 이루었다. 본관은 창녕. 창녕조씨 시조 조계룡(繼龍)의 25세손이며 진도 입도조 조희직의 증조부이다. 고려 후기에 시중을 지냈다.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공민왕[재위 1351~1374] 때 전라남도 나주군 남평면 오룡동으로 내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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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유생. 본관은 창녕. 창녕조씨 입도조인 조희직의 10세손이다. 아버지가 조계남(曺繼男)의 둘째 아들이다. 아들은 조이걸(曺以傑)이다. 후손들이 동산파(東山派)이다. 진도향교 연원기에 유생으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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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무신. 고려말 진도 입도조 조희직(曺希直)의 13세손이다. 아버지는 조계상(曺繼商)이고 어머니는 밀양박씨이다. 3남 중 장남으로 진도군 군내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김해김씨이며 아들은 네 명이다. 임진왜란 때에 왜적을 많이 참획하였다. 그 공을 높이 평가한 이순신이 건의하여 사헌부 장령(掌令)이라는 관직이 특별히 내려졌다. 정유재란이 발발한 후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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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기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시조 조계룡의 28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조정통(曺精通), 할아버지는 조한용(曺漢龍), 아버지는 조경숙(曺景淑)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와는 사촌 동서 간이다. 부인은 강윤충(康允忠)의 딸이며, 아들 조근(曺謹)과 조심(曺諶)을 두었다. 조희직은 1366년(공민왕 15) 정언(正言, 종6품) 재임 중 정추(鄭樞)·이존오(李存吾)와 함께 신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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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의 세거성씨 중 하나. 창녕조씨 시조는 경상남도 창녕의 옥암동에서 태어나 진평왕(眞平王, 579~632 재위)의 사위가 된 조계룡이다. 조계룡(曺繼龍)은 벼슬이 보국대장군(輔國大將軍) 상주국(上柱國) 대도독(大都督) 태자태사(太子太師)에 올라 창성부원군(昌成府院君)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그의 후손들이 창녕(昌寧)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시조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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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문화권에서 한자(漢字)로 창작된 시. 전라남도 진도군은 여러 전란을 겪었던 불운의 섬이기도 했으나 서해와 남해가 만나는 곳에 위치하여 지리적으로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수많은 문화유적이 남아 있어 섬 자체가 문화유적지라고도 할 수 있다. 지리적 위치상 서울과 멀리 떨어져 있어 조선시대까지 유배지로서의 역할을 했던 섬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로, 진도 사람들의 문집과 한시작품은 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