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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501361
한자 曺希直
영어음역 Jo Huijik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라남도 진도군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김정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아버지 조경숙(曺景淑)
아내 강윤충(康允忠)의 딸
출신지 개성
성별
본관 창녕(昌寧)
제향 효충사(孝忠祠)
대표관직 정언|가흥현 호장
주요활동/연도 1357년 진도에 유배됨연표보기

[정의]

고려 말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창녕(昌寧). 시조 조계룡의 28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조정통(曺精通), 할아버지는 조한용(曺漢龍), 아버지는 조경숙(曺景淑)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와는 사촌 동서 간이다. 부인은 강윤충(康允忠)의 딸이며, 아들 조근(曺謹)과 조심(曺諶)을 두었다.

[활동사항]

조희직은 1366년(공민왕 15) 정언(正言, 종6품) 재임 중 정추(鄭樞)·이존오(李存吾)와 함께 신돈(辛旽)의 비행을 탄핵하다 진도로 쫓겨나, 가흥현(嘉興縣)[진도 읍내 북쪽 4㎞ 정도 떨어진 지점에 있었던 고려시대의 현]의 호장(戶長)을 역임하였다.

조선 건국 뒤 중앙정부에서 여러 번 벼슬길에 나오기를 요청하였으나, “어찌 불사이군(不事二君)을 할 것이며, 고려왕조에서 고관을 배출한 집안으로 국은에 보답하지도 못했는데 무슨 면목으로 새 조정에 나갈 것인가?” 하며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진도군 군내면 정자리 해안에 압구정(狎鷗亭)이라는 정자를 짓고 낚시를 하며 살다가 일생을 마쳤다. 그리하여 조희직의 후손들이 대대로 진도에 살게 되었다고 한다.

[작품]

진도의 정경을 읊은 오언율시가 있다. 조희직이 가흥현 호장으로서 해남에서 진도로 가던 중 남긴 시로 벽파정(碧波亭)에 걸려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옥주지(沃州誌)』에 실려 있다.

[묘소]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분토리에 위치한 가흥산에 있다.

[상훈과 추모]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분토리에 있는 효충사(孝忠祠)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0.04.03 내용 수정 [활동사항] 조희직은 1356년(공민완 15) → 조희직은 1366년(공민완 15)
이용자 의견
조** 고려 공민왕 15년은 병오년(丙午年)으로 1366년 아니가요?
위의 활동사항에 1356년이라는 표기는 잘못 된 것으로 보입니다. 고쳐주세요!
  • 답변
  • 디지털진도문화대전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청한 내용 결과, 오류가 있어 수정하였습니다. 의견 개진에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0.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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