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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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지방이나 다른 나라의 풍속(風俗)·풍광(風光)·사적(史蹟) 등을 유람하는 것. 관광이라는 말의 어원은 주나라 때의 『역경(易經)』에 나오는 “관국지광이용빈우왕(觀國之光利用賓于王)”이라는 구절에서 비롯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한 나라의 사절이 다른 나라를 방문하여 왕을 알현하고 자기 나라의 훌륭한 문물을 소개하는 동시에, 그 나라의 우수한 문물을 관찰함이 왕의 빈객으로 대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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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종화에 대비되는 동양화 양대 분파의 하나. 남종화는 남종화가로 분류되는 여러 화가들이 구사했던 수묵산수화의 복합적 양식을 일컫는다. 남종화라는 용어는 중국 명나라 만력연간에 막시룡(莫是龍)[1537~1587], 진계유(陳繼儒)[1588~1639], 동기창(董其昌)[1555~1636] 등 문인 서화가에 의해 주창된 남북종론에서 나온 것이다. 남·북종화파의 분류는 여러 학자들 사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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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미술, 서예, 음악, 무용 등 각기 독특한 표현양식에 의하여 아름다움을 창작하여 표현하는 활동 또는 그 작품. 전라남도 진도군의 문화예술은 진도군민들 각각의 삶의 가치를 높이고, 바쁜 현대생활의 속에서도 정서적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총체적 개념을 모두 포함하는 활동을 의미한다. 진도의 문화예술의 중심은 시·서·화·창이다. 시(詩)는 유배인들을 중심으로 많이 창작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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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허련이 그림을 그리던 화실. 소치 허련이 49세 때부터 84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작품 활동을 하였던 곳으로, 남종문인화를 대표하는 호남화단의 산실이다. 운림산방은 운림각(雲林閣) 또는 소허암(小許庵) 이라고도 한다. 허련의 호 소치는 중국 원나라 말기 사대가(四大家)의 한 사람인 대치(大癡) 황공망(黃公望)[1269~1358]에서 왔듯이, 운림산방의 운림 또한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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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출신의 한국화가. 의재 허백련(許百鍊)[1896~1977]의 손자이자 제자인 직헌(直軒) 허달재(許達哉)는 그림 및 차밭 등 가업을 전수한 화가이며 현재 의재문화재단 이사장이다. 허련(許鍊)[1808~1893]과 그의 손자인 남농(南農) 허건(許楗)[1907~1987], 그리고 한 집안인 허백련으로 이어지는 허씨 가문은 남종화(南宗畵)의 맥을 이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허달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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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문관이며 서화가.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마힐(摩詰), 호는 소치(小痴). 관지(款識)에는 수치(叟痴), 노치(老癡), 칠십노치(七十老癡), 팔질노치(八耋老癡), 석치(石癡), 연옹(蓮翁) 등을 사용했다. 중국 당나라 남종화와 수묵산수화(水墨山水畵)의 효시인 왕유(王維)의 이름을 따라서 ‘허유(許維)’로 개명(改名)하였다. 마힐은 왕유의 자를 따른 것이다. 허균(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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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에서 태어난 남종화의 대가. 본관은 양천(陽川)이며 호는 의재(毅齋)로 허련(許鍊)의 방계(傍系)로 태어났다. 8세 때 한학을 배웠으며 허련의 넷째 아들 허형(許瀅)에게서 묵화의 기본화법을 익혔다. 서울 출신인 무정(茂亭) 정만조는 허백련에게 한학(漢學)을 가르친 스승이며 그에게 의재란 호를 지어 주었다. 무정은 39세 때인 1896년 무고(誣告)로 진도에 유배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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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 출신의 한국화가. 본관은 양천(陽川). 호는 치련(穉蓮). 부친 허행돈(許行惇)과 모친 박천심(朴天心) 사이의 2남 3녀 중 장남이다. 전라남도 진도에서 출생하였으며, 의재(毅齋) 허백련(許百鍊)의 조카이다. 부인 문영자와의 사이에 2남 3녀를 두었다. 진도에서 성장하다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전라남도 광주에 사는 백부 의재 허백련과 함께 생활하며 허백련이 세운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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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출신의 한국화가. 본관은 양천. 호는 목재(木齋)이다. 의재 허백련의 넷째 동생으로 1905년 진도읍내 동외리에서 출생하였다. 1966년 향년 62세로 타계하였다. 아들이 화맥을 이은 연사(蓮史) 허대득(大得)이다. 광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진도군청과 전남도청에 근무하였고, 전남도전 심사위원을 역임하였다. 1938년 연진회(鍊眞會) 창립 때 정회원으로 참가했고 이듬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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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에서 활동한 한국화가. 본관은 양천(陽川). 호는 미산(米山). 19세기 남종문인화의 대가 소치(小癡) 허련(許鍊)의 아들이다. 허련의 나이 44세에 넷째아들로 태어났고, 초명은 허결(許潔)이었으나 후에 허형(許瀅)으로, 만년에는 다시 허준(許準)으로 개명하였다. 허형은 어렸을 때 아버지 허련의 주목을 받지 못하였으나 화업을 이어갈 큰아들 허은(許溵)이 일찍 세상을 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