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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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을 본관으로 하고 김여용(金汝龍)을 입향조로 하는 진도의 세거 성씨. 전라남도 광주 출신 김흥광을 시조로 하는 광산김씨(光山金氏)는 한국의 대표적인 가문의 하나로서 ‘광김’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광산(光山)은 현 광주(光洲)이다. 광산김씨가 조선조에 접어들어 명문이 된 것은 김주정과 같은 항렬의 김연(金璉) 집안이 충청남도 연산을 중심으로 사계 김장생(金長生)[1548~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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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이후 진도에 세거해 온 성씨. 신라 종성(宗姓)인 김씨(金氏)의 후예로, 송악(松嶽)에서 태봉국(泰封國)을 세웠던 궁예(弓裔)의 6세손 이종금(李宗金)을 시조(始祖)로 하고 있다. 이종금은 1010년(고려 현종 원년) 거란의 40만 대군이 침략하였을 때 강감찬(姜邯贊)의 휘하로 들어가 여러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으며, 1018년(현종 9) 3차로 재침해 온 거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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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활약한 의병장. 1437년(세종 19) 진도 설군 이래 제90대 진도군수로 1593~1594년까지 재임하였다.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덕로(德老). 아버지는 훈련원판관 김대유(金大有)이며, 어머니는 감찰 오세훈(吳世勳)의 딸이다. 아들은 김광협이다. 아우로는 김천수(金千壽)·김백수(金百壽)·김구수(金九壽)가 있다. 1553년(명종 8)에 태어나 158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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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무숙(茂叔), 호는 광남(光南). 할아버지는 김장생(金長生)이고, 아버지는 참판을 지낸 김반(金槃)이며, 어머니는 첨추(僉樞) 김진려(金進礪)의 딸이다. 김익훈은 1619년(광해군 11)에 태어났다. 음직으로 등용되어 의금부도사·남원부사·사복시첨정 등을 지냈다. 조카인 김만기(金萬基)의 딸이 숙종의 비로, 숙종이 즉위한 뒤 군권의 요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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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 진도에 정착한 입도조. 본관은 광산. 문숙공파 26세이다. 아버지는 김광선(金光善)[1560~?]이다. 형은 김제흥이다. 아들 김여만(金汝萬)이 있다. 형 김제흥과 더불어 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에서 살다가 진도군 의신면으로 들어와 정착하였다. 그의 아들 김여만(金汝萬)이 광산김씨 의신파의 파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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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진도 입향조. 본관은 광산. 광산김씨 시조 김흥광으로부터 26세손이다. 아버지는 김광선(金光善)이다. 부인은 장흥마(馬)씨이다. 동생은 김제성이다. 아들은 김여용(金汝龍)이다. 1624년에 태어났으며 해남군에서 진도군 군내면으로 들어와 정착하였고, 그의 증손 김덕기(金德起)[1701~?] 때 지산면 관마리에 옮겨 정착했다. 그의 동생 김제성은 진도군 의신면에 정착했다.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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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 진도에 정착한 입도조. 1543년(중종 38)에 태어나 1605년(선조 38)에 죽었다. 본관은 광산. 광산김씨 문숙공파의 22세손이다. 아버지는 김귀문(金貴文)이며 부인은 장흥 (任)씨이다. 아들은 김모길(金謀吉)이며 며느리는 현풍곽씨이다. 후손들이 주로 진도읍과 의신면 명금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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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와 현대에 진도 출신의 공무원. 본관은 광산. 1905년 진도읍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이차문(李次文), 어머니는 광산김씨이다. 부인은 의령남(南)씨이다. 아들로 이준배(李俊培), 이경배(李慶培)가 있다. 일본 메이지[明治] 대학을 나왔다. 일제강점기에는 전라남도청 농정계장, 목포시장 등을 역임하였다. 1953년 이후에는 진도군수, 영암군수, 영광군수, 구례군수 등을 지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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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진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광산. 이진휴(李眞休)의 둘째 아들로 1894년 진도군 진도읍 성내리에서 태어났고 1954년 11월 24일 향년 61세로 타계하였다. 훈도를 거쳐 영광보통학교 선생으로 있을 때, 1919년 3.1운동에 재학생 120여 명으로 하여금 만세를 부르게 하는 등 독립만세시위를 주동하였다. 일제 경찰에게 체포, 투옥되어 징역 2년형을 받았고 석방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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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진도 입도조. 본관은 광산. 광산이씨 11세손이다. 기축옥사로 삼족이 멸문을 당한 이발(李潑)[1544~1589]의 조카이다. 아버지 이길도 이때 죽었다. 아들은 이준기(李俊基)이다. 기축옥사로 온 집안에 참화가 미치자 동생 이원준과 같이 제주도로 도망가던 중 진도군 고군면 원포에 내렸다. 무안박씨들의 도움으로 의신면 거룡에 정착했다. 후손으로 독립운동가 이병영(李炳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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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진도 입도조. 기축옥사는 동인과 서인의 당쟁으로 정여립(鄭汝立)[1544~1589]의 모반을 조작해 동인(東人)들을 숙청했던 사건이다. 이때 동인계의 실권 배후 인물이 광산이씨 이발(李潑)[1544~1589]이었기때문에 그의 형제와 어머니와 아들 등 삼족이 죽임을 당하는 참화를 입었다. 본관은 광산. 아버지는 이길(李洁)이다. 이길은 1589년의 기축옥사로 형인 이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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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진도 입도조. 본관은 광산. 기축옥사를 피하여 전라남도 진도에 자리잡은 광산이씨 입도조이다. 할아버지는 기축옥사로 멸문을 당한 이발(李潑)[1544~1589]의 조카인 이길(李洁)이다. 아버지는 당시 진도군 고군면 원포로 피신해 정착한 이원섭(李元燮)이다. 주로 조도와 성남도(城南島)에 후손들이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