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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훈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500259
한자 金益勳
영어음역 Kim Ikhun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라남도 진도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정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무신
아버지 김반(金槃)
어머니 김진려(金進礪)의 딸
성별
생년 1619년연표보기
몰년 1689년연표보기
본관 광산(光山)
무숙(茂叔)
광남(光南)
시호 충헌(忠獻)
추증 이조판서
상훈 보사공신(保社功臣) 2등
대표관직 광주부윤|좌윤|형조참판|어영대장

[정의]

조선 중기의 무신.

[가계]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무숙(茂叔), 호는 광남(光南). 할아버지는 김장생(金長生)이고, 아버지는 참판을 지낸 김반(金槃)이며, 어머니는 첨추(僉樞) 김진려(金進礪)의 딸이다.

[생애]

김익훈은 1619년(광해군 11)에 태어났다. 음직으로 등용되어 의금부도사·남원부사·사복시첨정 등을 지냈다. 조카인 김만기(金萬基)의 딸이 숙종의 비로, 숙종이 즉위한 뒤 군권의 요직을 두루 지냈다.

1689년(숙종 15) 어영대장 재직 중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정권을 잡자 공신(功臣)의 호를 빼앗기고 강계에 유배되었다. 그 후 무고한 사람들을 많이 죽였다는 죄목으로 고문을 받아 감옥에서 세상을 떠났다.

[활동사항]

김익훈은 1680년(숙종 6) 김석주(金錫冑)가 남인들을 숙청하기 위해 주도한 경신대출척 때 적극 참여하였고, 그 공으로 광남군(光南君)에 봉해졌다. 이후 숙종의 신임에 힘입어 광주부윤·좌윤·형조참판·어영대장 등을 역임했다. 김석주 등과 함께 서인에 속한 인물로 송시열(宋時烈)의 후원 아래 병권을 장악하고 정국을 주도하였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충헌(忠獻)이며,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의의와 평가]

김익훈은 성품과 행실이 오만하며 부정축재를 많이 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특히 1682년 남인 허새(許璽)의 모역사건 당시 떳떳하지 못한 그의 행동은 서인 내부의 소장파의 반감을 부채질하였고, 이는 서인을 노론과 소론으로 갈리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김익훈에 의해 분열된 노론과 소론은 극심한 당쟁으로 치달았고, 이로 인해 경종 때 많은 노론계 인물이 진도에 귀양오게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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