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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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구자도리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1800년경 한씨와 석씨(石氏)가 처음 입도하였다고 한다. 본래 진도군 명금면의 지역으로서 모양이 개처럼 생겼으므로 개섬, 또는 구자도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소구자도, 갈명도, 밀매도를 병합한 후 구자도리라 하여 의신면에 편입하였고, 1982년 1월 1일에는 구자도리(拘子島里)를 구자도리(九子島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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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굴포리에서 매년 모시는 동제의 제당.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굴포리는 매년 정월 보름이면 마을 제사인 당제를 모셔왔다. 그러나 2005년부터는 모시지 않는다. 당제를 모실 때 사용하는 제당을 이곳에서는 당집이라고 부르는데, 당집은 본래 두 곳이었으나 현재는 하나만 남아 있다. 당집 앞에 세워진 굴포신당유적비(掘浦神堂遺蹟碑)에서는 당을 짓고 당제를 지내게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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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본래 진도군 임이면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굴개 또는 굴포라 하였다. 1896년 굴포에서 남선리가 분리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다시 남선리를 병합하여 굴포리라 해서 임회면에 편입되었다. 굴포리는 연대산[148.8m]과 소산[154m] 사이의 만입된 곳에 위치한 천연의 요새이자 양항이다. 굴포리는 임회면 남쪽 해안가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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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 진도 입향조. 본관은 경주. 경주김씨 두계공파 5세손이다. 아버지는 김종(琮)이다. 아들은 김의춘(金義春)이다. 김익문은 1583년 장흥군 장동면에서 진도군 임회면 상만리에 들어와 정착했다. 경주김씨 백촌공파 9세손 김상혁(金尙赫)[1630~?]은 진도군 군내면 분토리에 정착했다. 김익문의 후손 중에서 김병삼(金炳三)이 체신부장관을 지냈다. 김상혁의 후손 중에서 김옥진(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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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생활을 영위하는 인간의 조직화된 집단. 진도는 섬이면서 섬이 아닌 독특한 곳이다. 하지만 진도 문화의 형성 기저는 ‘바다’이다. 진도에 독특한 노래와 춤, 그리고 민속 문화가 형성되고 전승된 것은 섬이기에 가능했고, 지금 현재화되는 것도 섬때문에 가능하다. 전자의 섬이 육지로 가고 싶었던 섬이라면, 후자의 섬은 육지 사람들이 찾는 섬이라는 차이가 있다. 진도가 섬스럽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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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있는 산. 여귀산은 전라남도 진도군 남동부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산세의 규모도 커서 임회면 동북부를 거의 덮고 있다. 임회천의 발원지이며, 18번 국도가 남쪽 산록을 지난다. 진도군 임회면 용산리 용호마을에서 보면 산의 모습이 단정하게 차려입은 선녀처럼 보인다고 한다. 여귀산은 그저 평범하게 보이지만 오르면 산록은 후박나무, 동백나무 등 식생이 무척 우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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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죽림리의 여귀산에 있는 봉수대의 터. 봉수(烽燧)는 횃불과 연기로 변방의 정세를 중앙에 알리던 제도였다. 조선시대 봉수는 전라도에 43개가 있었는데 진도에만 여귀산, 굴포, 삼당산, 첨찰산 등 다섯 곳이 있었다. 이를 통해 정부에서 진도의 경계에 얼마나 신경을 썼던지 알 수 있다. 삼당산봉수와 굴포봉수는 여귀산의 보조봉수로서 여귀산봉수에 연락했고, 여귀산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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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상만리에 있는 행정리. 1200년경 백씨가 시거하였으며, 고려시대, 조선시대에는 군사훈련장으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전해지나 자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1540년경 진주강씨가 입촌하여 현재 11대에 이르고 있으며, 1630년경 동복오씨가 입촌하였다. 본래 중만리가 속하 상만리는 진도군 임이면의 지역으로서 만흥 위가 되므로 웃만흥 또는 상만흥, 상만이라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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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붙여진 이름. 우리 조상은 우리 땅에 정착하여 생활하면서 어디에나 알맞은 지명을 정하고 이를 일상생활에 써왔으며, 그러는 동안에 오늘날과 같이 많은 지명이 축적되었다. 그러므로 지명 속에는 우리 조상의 사고와 의지가 담겨진 것도 있고, 생활 모습을 나타내는 지명도 있어서, 우리 문화 발전의 역사와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는 귀중한 문화재가 된다. 역사 기록이 적은 향토사에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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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관광을 위한 계절별, 주제별, 권역별 경로. 진도는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섬으로 조도면 일대 해역의 서남해 해상국립공원, 울돌목, 진도 용장성, 백조 도래지, 진도 첨찰산의 상록수림 등과 많은 민속무형문화재, 국립남도국악원, 향토문화회관, 기념관, 미술관 등과 아울러 진도개, 구기자, 대파, 검정 쌀, 진도 미역, ‘신비의 바닷길’ 까지 다양한 자연 관광자원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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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식을 시조로 하고 강위망을 입향조로 하는 진도 세거성씨의 하나. 진주강씨는 고구려 때 강이식(姜以式)을 시조로 하지만 기일세조(起一世祖)는 고려 중엽 사람 강계용(姜啓庸)이다. 그의 10세손이 사평공(司評公) 강학손(姜鶴孫)[1455~1523]으로 무오사화 때 전라남도 영광에 정착해 전라도 일대의 중조(中祖)가 되었다. 강학손의 아버지는 세조 때 형조판서를 지냈고 익대공신에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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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오행설을 바탕삼아 땅에 관한 이치를 설명하는 이론. 진도는 울돌목이라고 불리는 명량해협을 사이에 두고 육지부와 떨어진 섬이다. 이런 섬의 원격성이 진도의 고유한 문화적 속성을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한때 진도는 10만이 넘는 인구를 부양할 정도로 농업 생산성이 높았으며, 섬이면서도 유난히 농경문화의 요소가 강하게 지배하고 있었다. 풍수지리 역시 농경문화의 한 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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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속에 들어가 해삼, 전복, 미역 등 해조류와 패류를 채취하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여자. 한국과 일본에서는 바다에서 자맥질하여 해산물을 캐는 여성을 흔히 ‘해녀, 아마(海女, あま)’라고 한다. 제주 사람들은 ‘바다에서 무자맥질하는 아주머니(여자)’라는 의미의 잠수(潛嫂), 잠녀(潛女) 등을 혼용한다. 전라남도 진도에 해녀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초반이다. 접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