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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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남동리에 설치한 조선 전기의 수군진. 전라수영(全羅水營)은 영산강 하류에 설치되었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왜구를 방어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이에 따라 조정에서는 1423년(세종 14) 전라수영을 목포(木浦)로 옮겼다. 그리고 목포의 병선은 황원(黃原)의 남면 주량(周梁)[해남군 문내면 우수영]으로, 수영의 병선 3,4척을 매달 윤번으로 진도의 서쪽 소가포(所可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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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남쪽에 위치하는 남밖다리에 있는 동네라 하여 남동이라 하였다. 또 다른 유래로 조선 시대 남도포영이 있었으므로 남도개·남도포·남도·남동이라 하였다고 한다. 850년 경 평산신씨가 처음으로 들어왔다고 하나 자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이후 김해김씨가 옮겨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진도군 임이면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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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축을 방목하기 위해 만들어진 목초지, 건물, 목책 등을 설치해 놓은 지역. 조선시대의 목마는 교통·군사·농경, 외교상의 교역품, 식용, 그리고 말가죽·말꼬리·말갈기 등의 일용품 등으로 이용되었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마정(馬政)은 국가의 중요한 정책 가운데 하나였다.『예기(禮記)』에서 ‘나라의 부를 물으면 목마의 수효로 대답한다.’라고 할 만큼, 전통시대 목마는 국가의 부강을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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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후기 삼별초를 이끌었던 장군. 배중손이 역사에 뚜렷이 부각되는 것은 삼별초의 대몽항전 이후부터이며, 그 이전의 경력은 자세하지 않다. 왕정복고파와는 달리 대몽항전의 지속을 주장하였던 임연(林衍) 부자 계열에 속하는 무인으로, 임연 부자의 몰락 후에 대몽 강경파의 선봉에 서서 비타협적 항전을 계속한 인물이다. 배중손은 서반의 장군인 동시에 가장 유력한 삼별초의 지휘관이었던 까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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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습격에 대비하여 흙·돌로 구축한 방어시설의 총칭. 성(城)과 성곽(城郭)은 엄밀하게는 다르다. 성(城)은 내성(內城)만을 의미하고 성곽(城郭)은 내·외성을 통칭한다. 성곽은 거주 주체에 의해 도성(都城)과 읍성(邑城)으로 나누어진다. 지형에 의해서는 평지성(平地城), 평산성(平山城), 산성(山城)으로 나누어진다. 지리적 위치에 따라서는 국경성(國境城), 해안성(海岸城), 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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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소포리에 설치된 조선 전기의 수군시설. 현재 진도군 지산면 소포리의 이름이 조선 전기에는 소가포(蘇可浦) 또는 소가포(所可浦)였던 데서 유래하였다. 1432년(세종 14) 10월 20일에 진도 서면 소가포(蘇可浦)에 수영의 병선 3~4척을 윤번으로 배치시켰다. 이곳의 군 주둔은 25년 만인 1457년(세조 3) 1월 남도포(현재 임회면 남동리) 만호진으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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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전라남도 진도군의 역사. 진도는 반도의 서남쪽 모서리에 위치하여 작게는 서남해 섬 지역과 섬 지역, 그리고 크게는 서해와 남해를 연결하는 중간다리 역할을 한다. 지도를 펴놓고 고대 한·중·일 삼국을 연결했던 바닷길이 지나는 중요한 길목들을 살펴보면, 서해로는 흑산도가 먼저 상기되고 영산강과 연결하여서는 목포와 영산포가 돋보인다. 그리고는 해남의 화원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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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의 삼별초정권이 조운로(漕運路)를 장악하자 개경정부의 재정상태는 곤핍을 극하게 되었다. 당장 시급한 군량(軍糧)조차 제대로 맞춰서 대줄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하루 빨리 진도 를 되찾는 것이 개경정부 존립의 관건이었던 셈이다. 원나라의 입장에서도 삼별초와 남송의 동맹을 방지하고 또한 일본을 정복하려는 야욕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진도 를 점령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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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권력을 획득·유지하고 국민들의 풍요로운 삶을 보장하고 이해갈등을 조정하는 모든 활동. 진도지방에서는 신석기 때의 유적이 발견된 적은 없지만 인근의 서남해 도서지방인 신안군의 대흑산도, 소흑산도, 우이도, 하태도, 완도군의 고금도, 여천군의 돌산도 등과 내륙에 가까운 지역인 해남군 현산면 백포리 두모마을 등에서 발견된 조개더미(패총)로 보아 진도지방에서도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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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붙여진 이름. 우리 조상은 우리 땅에 정착하여 생활하면서 어디에나 알맞은 지명을 정하고 이를 일상생활에 써왔으며, 그러는 동안에 오늘날과 같이 많은 지명이 축적되었다. 그러므로 지명 속에는 우리 조상의 사고와 의지가 담겨진 것도 있고, 생활 모습을 나타내는 지명도 있어서, 우리 문화 발전의 역사와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는 귀중한 문화재가 된다. 역사 기록이 적은 향토사에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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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남동리에 있는 석성. 진도 남도진성 자리는 배중손이 이끄는 삼별초가 진도를 떠나 제주도로 향하기 직전까지 마지막 항전을 벌였던 유적지로서 진도 남도진성은 삼국시대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며, 현재의 진도 남도진성은 조선시대에 재축성한 것으로 짐작된다. 1964년 6월 10일에 사적 제127호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바다를 앞에 두고 있는 남동리를 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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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표류하여 어떤 곳에 닿는 것. 여기서의 표착은 외국인이 국내에 표류된 경우를 일컫는다. 외국인의 국내 표착 신고와 관리는 어느 때나 연안 고을과 수군의 주요 임무였다. 특히 진도 해역은 중국~일본 간 해로 상 중간 지점에 있어 비교적 표착 기록이 많다. 그 처리를 잘못해 진도군수가 징계를 받은 일도 있었다. 진도에 표착한 외국인은 주로 중국인, 일본인, 유구인 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