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
-
조선 후기에 간행된 『여지도서』의 진도군에 관한 항목. 1757년(영조 33) 홍양한(洪良漢)이 제안하여 왕명에 따라 홍문관에서 팔도 감사에게 명을 내려 각 읍에서 읍지를 올려 보내도록 하여 1765년(영조 41)까지 편찬을 완료하였다. 대부분 읍지의 호구조의 기준 연도가 1759년인 점으로 볼 때, 1760년 이후에 수집된 읍지들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여지도서』의 편찬...
-
전라도와 경상도 남서부, 충청남도 일부 지역에서 전승되어오는 잡가. 이병기는 처음에 사설시조를 잡가로 지칭하였다가, 후에는 민요·속요·타령 등을 통칭하는 명칭으로 잡가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또 김사엽은 잡가는 항간에서 잡되게 부르는 소리로 광대라는 직업적 가수에 의하여 창작되고 성행한 것이 일반에게 전창되어 내려온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어떤 규정이든 장단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
-
민중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져 전승되어 온 노래. 민속음악에서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는 민요는 일반적으로는 예술음악과 대립되는 말이지만, 예술음악의 모체가 되기도 한다. 대개 농업과 어업 등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집단으로 제례(祭禮)나 노동을 할 때 부르기 시작한 노래로서 특정한 창작자가 없이 자연적으로 발생하여 민중의 생활감정을 소박하게 반영하고, 때로는 국민성·민족성을 나타내기도...
-
조선중기 진도에 유배된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익지(翼之), 호는 휴옹(休翁)·휴헌(休軒)·휴암(休菴)이다. 한성참군(漢城參軍) 정수후(鄭守厚)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린수(鄭麟壽)이고, 아버지는 시정(寺正) 정사신(鄭思愼)이며, 어머니는 순흥안씨(順興安氏)로 사직 안혼(安混)의 딸이다. 아내는 이혼(李渾)의 딸이다. 1571년(선조 4)에 태어났다. 문과 급제 후 예...
-
진도읍성은 1440년(세종22) 진도고읍성에서 현재의 진도읍으로 진도군의 터전을 옮기면서 축조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진도고읍성에서 현재의 진도읍성으로 치소를 옮기게 된 이유는 세종 때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등 하 삼도를 비롯한 함경도, 평안도의 읍성축조를 관장한 최윤덕의 건의에 따른 것이다(『진도군지』(미간행) 참고). 진도읍 성내리에 있는 산성으로 통일...
-
진도읍성은 1987년 1월 15일에 전라남도 지정 문화재 자료 143호로 지정되었다. 이 성은 1440년(세종 22)에 축조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본래의 진도읍성은 성내리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고군면 고성리에 있었다. 고성리에 있던 진도읍성은 백제시대에 처음 축조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새로운 읍성이 조성되기 전까지 오랫동안 이곳은 진도의 치소(治所)로서 기능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