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내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900740
한자 李來漢
영어공식명칭 Lee Naehan
이칭/별칭 이내안(李內安)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기도 남양주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도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3년 8월 24일연표보기 - 이내한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4일~1919년 3월 15일 - 이내한 경기도 양주군 와부면 3·1운동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25일 - 이내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 선고
몰년 시기/일시 1954년 2월 23일연표보기 - 이내한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03년연표보기 - 이내한 건국포장 추서
출생지 송촌리 -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 지도보기
활동지 송촌리 -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
활동지 덕소리 -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리 지도보기
활동지 조안리 -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조안리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남성
대표 경력 3·1운동

[정의]

경기도 남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이내한(李來漢)[1893~1954]은 1893년 8월 24일 현재의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에 해당하는 경기도 양주군 와부면 송촌리에서 태어났으며, 다른 이름은 이내안(李內安)이다.

[활동 사항]

1919년 3월 1일 민족 대표 33인의 명의로 서울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가 낭독된 후 전국적으로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를 포함하는 경기도 양주군에서는 1919년 3월 13일부터 만세 시위가 시작되었는데, 와부면 송촌리의 경우 1919년 3월 14일 이정성(李正成)·김춘경(金春經)·김현모(金顯模) 등이 와부면 일대를 순회하는 대규모 만세 시위를 계획하였다. 다음 날인 1919년 3월 15일 이른 아침부터 경 송촌리 및 인근 지역의 주민 100여 명이 모여 태극기를 앞세우고 만세 시위를 벌였고, 면사무소가 있는 양주군 와부면 덕소리[현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리]로 행진을 하였다.

이내한김덕여(金德汝)·정일성(鄭一成)·오성준(吳成俊)·김덕오(金德五)·이정운(李正雲)·김윤경(金允京)·이갑동(李甲同)·이건흥(李建興) 등과 함께 만세 시위에 동참하였다. 시위대가 경기도 양주군 와부면 조안리[현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조안리] 일대를 지나면서 인원이 500여 명으로 늘었다. 와부면 덕소리까지 진출하였을 때 일제 헌병들이 시위대를 해산하고 주도자 3명을 체포하자, 이에 시위에 참여한 군중들은 일제 헌병들에게 검거된 인사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일본 수비대를 상대로 곤봉을 휘두르며 쇄도하여 헌병주재소까지 갔다. 일제 헌병들은 시위대를 제압하기 위하여 공포를 발사하였으며 40여 명의 시위대원을 체포하였는데, 이내한도 만세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이내한은 1919년 4월 2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고, 이에 공소하였으나 1919년 5월 3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으며, 다시 상고하였지만 1919년 7월 5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약 11개월간 옥고를 치러야 하였다.

이내한은 1954년 2월 23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이내한에게 2003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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