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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붙여진 이름. 우리 조상은 우리 땅에 정착하여 생활하면서 어디에나 알맞은 지명을 정하고 이를 일상생활에 써왔으며, 그러는 동안에 오늘날과 같이 많은 지명이 축적되었다. 그러므로 지명 속에는 우리 조상의 사고와 의지가 담겨진 것도 있고, 생활 모습을 나타내는 지명도 있어서, 우리 문화 발전의 역사와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는 귀중한 문화재가 된다. 역사 기록이 적은 향토사에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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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에 있었던 특수 촌락 집단. 신분 사회였던 조선시대에는 거주 이동에 제약을 받았고 신분도 세습되어 자연스럽게 같은 업종이나 같은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특수촌락이 형성되었다. 진도군에는 군내면 벽파진, 임회면, 오일시, 십일시, 진도읍 성내리 등지에 특수촌락이 형성되어 있었다. 벽파진 근처에는 사공들이 모여 살던 진부리(津夫里)가 있었다. 임회면에는 어부촌(漁夫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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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에 속하는 행정리. 주산인 가인봉(佳人峰)[291m]의 ‘가’자를 따고 지경(地境) 계자를 붙여서 가계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가계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금계리에 병합되어 고군면으로 편입되었다. 1980년 가계리 동쪽에 있던 용호리가 가계리에서 분리되었다. 첨찰산에서 남서쪽으로 뻗은 가인봉과 죽제산에서 남서쪽으로 뻗은 미봉(米峰)[24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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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창포리에 속하는 행정리. 본래 진도군 명금면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창포리라 하여 의신면에 편입되었다. 동쪽을 제외하고 남쪽·북쪽·서쪽은 낮은 구릉으로 둘러싸여 있다. 남북 방향으로 길게 형성되었고, 구릉 아래로 논과 밭이 이어져 있다. 남쪽으로 가단제(加丹堤)라는 저수지가 있다. 서쪽은 철전리, 북쪽은 침계리, 동쪽은 창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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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에 속하는 행정리. 1600년 경 임회배씨가 입향하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보상리·보하리와 함께 보전리에 병합되었다. 서쪽·북쪽·남쪽은 구릉성 산지로 둘러싸여 있다. 갈두리 남쪽에는 선동산(銑銅山)[206m]이 위치한다. 서쪽과 북쪽 산지는 황해와 맞닿아 있다. 동쪽과 동남쪽으로는 넓은 논이 펼쳐져 있다. 동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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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강개머리라고 불렀으나 그 유래는 알 수 없고, 음과 뜻에 맞추어서 강계(江界)로 바꾸었다고 한다. 1720년 경 최초로 신안주씨가 정착하였고, 그 후 밀양박씨·김해김씨·청주한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쪽에 여귀산(女貴山)[458.7m], 북쪽에 봉호산(峰虎山)[191.1m]이 있으며, 동쪽과 동남쪽으로는 남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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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길은리에 속하는 행정리. 본래 진도군 지산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길은리에 병합되었다. 남동쪽과 북서쪽에는 구릉성 산지가 있다. 고길리의 동쪽에는 석교천이 남쪽에서 북쪽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북동쪽과 남서쪽에는 넓은 논이 바둑판 모양으로 펼쳐져 있다. 남쪽은 용동리, 동북쪽은 소포리, 서쪽은 길은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고길리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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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고방리는 사방이 산지로 둘러싸여 있어 방어에 유리했기 때문에 삼별초군이 피신했던 곳이기도 하다. 예전의 지명은 고방(古方)이었다고 하나, 석교리(石橋里) 동쪽 높은 곳에 위치하기 때문에 고방(高方)이었다고 하는 설도 있다. 창녕조씨가 처음으로 들어왔으며, 이후 1895년 석교리에서 밀양박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1914년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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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원래 고산리의 명칭은 고산(鼓山)이었다고 한다. 고산은 옥녀가 가야금을 타기 위한 북을 의미하였으나 조선 시대부터 미화하여 고산(高山)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1500년 경 전라남도 장성군 삼계면에 살던 경주이씨 10대손 이현민의 아들이 고산리에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길우리·매정리와 함께 고정리로 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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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교동리에 속하는 행정리. 본래 진도군의 해창(海倉)이 있던 곳으로, 큰 선창인 해창과 구분하여 작은 선창을 고작(庫作)이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1910년 경 진주강씨 강도민이 처음으로 마을에 들어왔다. 1913년 고작리에 방조제가 완공된 후 목포까지 왕래하는 선착장이 세워졌다. 이후 밀양박씨, 광산김씨 등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북쪽은 낮은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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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군 조도면 창유리에 속하는 행정리. 원래 본 마을은 ‘곤투머리’라고 불리어 오다가 음의 변화로 ‘곤우’, ‘곤티미’ 라 마을 이름을 칭하였다. 하조도 서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향을 하고 있다. 면적은 0.73㎢이며, 2014년 12월 31일 현재 총 22세대, 46명이 살고 있다. 마을 시설물로는 회관 및 경로당 1동, 정자 1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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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관사도리에 속하는 행정리. 관작리가 속한 관사도는 섬의 모양이 황새처럼 생겼으므로 관새섬 또는 관사도라고 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대마도와 소마도에서 군마를 길렀는데 이 말을 관리하던 관청이 관사도에 있었기 때문에 1789년에 실시한 인구조사 기록에는 관청도(官廳島)로 표기하고 있다. 군마를 키우던 막사의 흔적과 목장성이 남아있다. 1700년경에 연안차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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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관매도리에 속하는 행정리. 관호리가 속한 섬인 관매도는 해안의 경치가 아름답고 자연굴이 신비로워 볼만하다하여 관매라 하였다고 한다. 약 1700년경에 조씨 성을 가진 선비가 제주도로 귀양 가던 중에 약 2㎞에 달하는 해변에 매화가 무성하게 핀 것을 보고 매화꽃을 볼 수 있는 곳이라는 뜻에서 관매도라고 했다는 설도 있다. 한편, 1789년 『호구총수』에는 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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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장구포리와 고산리 사이에 제방을 축조함으로써 넓은 옥토가 형성되어 광전(光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1700년 경 함양박씨 박대승이 하미리에서 처음으로 들어왔고, 1730년경 전주이씨·진주하씨 등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선항리·장구포리·하미리와 함께 삼막리로 병합하여 임회면에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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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구불구불한 고랑동네라는 의미에서 굽은실이라 하였으며, 구분실(九分實)은 굽은실을 한자로 옮긴 것이라 한다. 1550년경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에 살던 신안주씨 22세 주번(朱藩)이 옮겨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임회면 석교리에 속해 있다가 1986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석교리에서 분리되었다. 구분실리는 희여산[296m]에서 부용산[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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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가사도리에 속하는 행정리. 2014년 12월 31일 현재 총 53세대, 86명이 살고 있다. 주민들의 주 소득원은 톳과 미역, 전복이다. 마을 시설물로는 회관 및 경로당 1동이 있다. 해수욕장과 맥반석 암괴가 유명하다. 조도면의 섬들은 모두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나 궁항리가 속해 있는 가사도만 제외되어 있으며, 해역이 외국 선박의 불계항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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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상만리에 속하는 행정리. 마을 앞 바다에서 고기가 많이 잡히고 해산물이 풍부하여 ‘황금리’라고 불리었으나 그 후 귀한 땅이라 귀(貴)자를 따고 길성(吉星)에서 성을 따서 귀성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1600년경 밀양박씨가 해남군에서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4년 12월 31일 현재 귀성리에는 총 59세대에 129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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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둔전리에 속하는 행정리. 금골산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이다. 1878년경 이천서씨가 처음 거주하였다고 전한다. 북쪽에 금골산의 줄기가 남쪽으로 뻗어 있으나 대부분 지역은 낮은 구릉지로 되어 있다. 면의 중앙에 있으며, 동쪽은 둔전들, 서쪽은 군내호, 남쪽은 고두산, 북쪽은 금골산과 각각 접하고 있으며, 안농리와도 가까이 있다. 교통은 마을의 동쪽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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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와우리에 속하는 행정리. 1600년 경 전주최씨가 입향하여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쪽에 있는 지력산(智力山)[328m]의 줄기가 남북으로 걸쳐 있어 200~300m의 산지를 이루며, 북쪽으로는 해산봉(海山峰)[251m] 등의 산이 있다. 그 사이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면의 서쪽 끝에 있어 바다와 가까이 있으며, 동쪽은 고야리, 서쪽은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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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둔전리에 속하는 행정리. 마을에 특별히 전하는 입향조는 없으며, 일제강점기 때 신동마을 등성이에 주변의 영세민이 들어오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남쪽의 금골산(金骨山), 서쪽의 도암산, 북쪽의 망금산(望金山)[111m] 사이 낮은 구릉지에 있다. 면의 중부에 있으며, 동쪽은 바다, 서쪽은 고지리, 남쪽은 안농리, 북쪽은 녹진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교통은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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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금계리에 속하는 행정리. 금호리란 명칭은 마을이 위치한 금호도에서 유래되었다. 금호도는 금(金)섬이라고 불리다가 섬과 섬 사이의 바다가 호수처럼 잔잔하다고 하여 금호도로 바뀌었다는 설이 있다. 섬에 보물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고, 삼별초 항쟁 당시 정4품 벼슬을 한 김시랑이 들어와 살았다고 해서 그의 성(姓)을 따서 김(金)씨섬이라고도 불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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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마을이 높다 하여 깃우(깃대)라고 불리다 길우가 되었다고 한다. 1538년 제주도에서 진도군 군내면 용장리로 들어온 남양홍씨 홍태원의 아들 홍귀연이 길우리로 옮겨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고산리·매정리와 함께 고정리로 병합하여 임회면에 편입되었다. 길우리는 배후에 발달한 저산성 산지의 북쪽 완경사면에 입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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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남동리에 속하는 행정리. 남산(南山) 아래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남산리(南山里)라 부른다. 1824년 경 이천서씨인 서성화가 처음으로 들어왔으며, 그 후 밀양박씨와 김해김씨 등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남산리의 일부가 남동리와 포산리에 각각 병합되었다. 문마산[109m]과 남산(南山)[243m] 사이의 산록 완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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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1896년 굴포리에서 분리되면서, 임회면의 남단에 있으며 산수가 아름다우므로 남선리(南仙里)라 하였다. 또한 도를 닦는 절이 있어 절골이라 부르다 쩍골로 불리기도 한다. 1800년 경 밀양박씨가 처음으로 들어왔으며, 1850년 경 김해김씨가 옮겨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1896년 굴포리에서 분리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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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내산리에 속하는 행정리. 이 마을의 주민은 본래 죽리(竹里)라는 마을에서 거주하였는데, 인근 밤나무골이란 곳에 하율리가 있어서 두 마을의 세력다툼으로 죽리마을은 현 내동으로 자리를 잡고, 밤나무골의 하율리는 과거 바다 만 건너편인 현 하율리로 이사했다고 한다. 이 마을은 진도 용장성 산릉과 연결되는 제봉[150m] 남쪽 산록에 배산임수형으로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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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분토리에 속하는 행정리. 마을 입향조는 창녕조씨 조중문(曺仲文), 밀양박씨 박대린(朴大麟)으로 임진왜란 전후시기라고 한다. 서쪽에 철마산(鐵馬山)[304m], 망적산[266m]이 남북으로 걸쳐 있고, 북쪽에는 고두산(高頭山)[252m]이 있다. 마을의 주변은 대체로 낮은 지형으로 되어 있고, 군내천의 지류가 있어서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면의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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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산월리에 속하는 행정리. 산월리(山月里)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하였다. 1424년경에 마씨가 처음으로 들어왔으며 밀양박씨, 전주이씨 등이 들어와 살았다. 그러나 1600년 초에 해적들의 노략질이 심하여 주민들은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으로 옮겨 갔다. 1700년경 황산에 옮겨가 살던 밀양박씨 박권무의 3대손 박성립(朴成岦) 일가가 다시 현재 전라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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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삼당리에 속하는 행정리. 1624년 곽씨가 입향하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쪽에는 삼당산(三堂山)[272m]의 줄기가 남북으로 형성되어 있어 100~200m 내외 산지를 이루고 있다. 비교적 농경지가 적은 편이며, 마을 앞에는 석교천의 지류가 있다. 면의 중앙 동부에 있으며, 동쪽은 석교천을 건너 임회면 고성리, 서쪽은 인지리, 남쪽은 부용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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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산의 형세를 연(蓮)으로 보아 연동(蓮洞)이라 하였다. 연동 안에는 외연동과 내연동의 두 마을이 있었는데, 내연동은 연동의 안쪽에 자리한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하였다. 1520년경 김해김씨가 처음 들어왔다고 하나 자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그 후 1880년경 밀양박씨가 전라남도 보성군에서 내연리로 옮겨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제등[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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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맹성리에 속하는 행정리. 당도리는 상조도에 있는 마을로, 마을의 동쪽에 당이 있어 ‘당길’이라고 하던 것을 음역하여 당도리로 부르게 되었다. 2014년 12월 31일 현재 면적 0.87㎢, 총 22세대, 41명이 살고 있다. 마을 남쪽에 하조도와 연결하는 선착장이 있다가 조도대교라는 연도교가 가설되면서 차량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마을 시설물로는 회관 및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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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동외리에 속하는 행정리. 당동리 마을에 원당이 있어서 당골, 당동, 원당으로 부른 데서 당동리라는 명칭이 유래하였다. 1490년 경 밀양박씨가 처음 들어온 후, 무안박씨와 김해김씨 등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1602년 진도읍성 북쪽에 있던 서원이 당동리 북쪽으로 옮겨지고, 1778년에 양사재(養士齋)가 세워지면서 번창하게 되었다. 1914년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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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대마도리에 속하는 행정리. 대막리가 속해있는 대마도는 지형이 큰 말처럼 생겼다하여 대마도라는 명칭이 붙었다. 지질은 대부분이 산성 화산암류로 되어 있으며, 뒤쪽 해안은 돌출되어 있다. 하조도의 남서쪽 바다에 접하고 있다. 임회면의 서망항에서 관매도행 배를 타고 가다 대마도에서 내리면 된다. 선편으로는 목포항으로 신해고속페리호가 12시 30분에 출항하여 3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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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에 속하는 행정리. 1670년경 이씨가 처음 거주하였다고 한다. 마을 뒤 도암산[122m]이 있을 뿐 비교적 낮은 지형을 이루고 있다. 면의 중북부에 있으며, 동쪽은 금성리, 서쪽은 고지리, 남쪽은 도암산, 북쪽은 대야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교통은 마을 앞으로 잘 발달된 도로가 있어 북쪽으로는 대야리를 지나 진도대교, 남쪽으로는 용인리를 거쳐 송산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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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앵무리에 속하는 행정리. 남쪽의 삼당산(三堂山)[272m]의 줄기가 남북으로 뻗어 200m 내외의 지형을 이루고 있다. 면의 중북부에 있으며, 동쪽은 석교천을 건너 임회면, 서쪽은 고야리, 남쪽은 삼당리, 북쪽은 길은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교통은 마을 앞에 있는 도로가 남북으로 뻗어 있다. 사거리길인 소앵무리에서 동쪽의 앵무교를 지나 임회면이나 또는 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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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에 속한 행정리. 1950년 군내북초등학교가 36년 신동에 개설했던 둔전간이학교를 녹진, 죽전, 대사지구의 중심거리이자 삼거리인 현 위치로 이전하면서, 이곳을 대사(大沙)와 구별해 대야(大野)라 하고 학교 건설에 따라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면서 취락이 형성되었다. 동쪽에 망금산(望金山)[111m]이 있을 뿐 구릉지에 속하고 있어 지형은 낮은 지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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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오류리에 속하는 행정리. 본래 진도군 지산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월촌리, 대판리, 사천리를 병합하여 법정리인 오류리가 되었다. 대천리는 대판리와 사천리를 합하여 오류리에 속하는 행정리를 만들면서 생긴 이름이다.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이 대부분 100m 정도의 낮은 산으로 되어 있으며, 마을 앞에 있는 농경지의 농업용수는 오봉저수지의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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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도평리에 속하는 행정리. 길옆에 논이라는 의미가 한자화하여 도론으로 변한 것이다. 진도 용장성으로 넘어가는 고갯길 바로 밑에 있는 마을로 경주이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어, 최초로 경주이씨가 입촌한 것으로 보인다. 본래 진도군 고이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도론리와 평산리 일부를 병합하여 도평리가 되면서 고군면에 편입되었다. 계안산암질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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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만길리에 속한 행정리. 본래 명칭은 ‘섬발구미’ 였으나 ‘섬볼구미’, ‘선볼기미’ 등으로 와전되어 왔으며 섬을 밝힌다는 뜻으로 의역하여 도명(島明)이라고 했다 한다. ‘도목기미’라고 불렀다는 설도 있다. 마을의 입향조는 김씨이다. 처음에는 의신면 도목리에 속한 마을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의거하여 원두리에 속하였다. 1970년 경에 도명리로 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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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만길리에 속하는 행정리. 1790년대 기록에는 도목구미로 되어 있다. 도목구미의 도목은 도목(盜目)과 두목(杜目)의 두 가지로 추정할 수 있다. 도목(盜目)은 조선시대 노략질을 일삼던 왜구를 지키는 목이라는 뜻이며, 두목(杜目) 또한 눈 여겨 보아 막는다는 뜻이다. 이후 도목(盜目)이나 두목(杜目)이 미화되어 도목(桃木)이 된 것으로 보인다. 1914년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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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만길리에 속하는 행정리. 도항리는 도목리라는 큰 부락에 속했던 마을이 작은 도목으로 분구(分區)되면서 붙은 명칭이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원두리, 도명리, 도목리, 거룡리의 각 일부를 합하여 만길리라고 칭하여 의신면에 편입되었다. 1992년에는 의신면 도목리가 도목리, 도항리로 분리되었다. 현재의 주요 성씨는 이씨이며 주민들의 주요소득원은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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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인지리에 속하는 행정리. 마을의 지명은 민둥재라는 지명에서 비롯되었다 한다. 마을의 입향조는 광산이씨로 1400년 경에 정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래 진도군 지산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인천리와 독치리를 병합하여 인지리가 되었다. 서쪽에 부흥산(富興山)[171m] 등 높은 산은 없으나 대부분이 낮은 산으로 되어 있다. 인천제(仁川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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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가사리에 속하는 행정리. 돌목리가 속해있는 가사도는 섬전체가 100m~200m 내외의 산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수목은 곰솔이 자생하고 있다. 그리고 지질은 사암, 이암으로 되어 있다. 면의 최북단 사면이 바다에 면해 있다. 교통은 큰길이 없고, 가사출장소 앞에만 도로가 있을 뿐 불편한 편이다. 선편은 목포항으로 신해고속페리가 12시 30분 출항하여 시간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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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입향조인 선씨가 바다 건너에서 보니 거북이가 물 위에서 노는 것 같다 하여 동구지(動龜地)라 했으며, 동구지의 안쪽을 안동구지라 했다고 한다. 동구리(洞口里)는 동구지에서 유래하였다. 1820년 경 선씨가 전라북도 진안에서 완도로 가던 도중 풍랑을 만나 동구리에 정착하였다. 처음에는 안동구지의 돌샘 근처로 들어왔는데 꿈에 산신령이 나와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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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여미리에 속하는 행정리. 옛날부터 동구지라고도 부르는 마을 이름의 연유는 읍구나 나리구지처럼 마을 앞까지 바닷물이 드나들었기 때문이라고 잘못 전해지고 있다. 실제 마을의 입구는 짐승의 주둥이와 같이 섬의 돌출부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나 현재는 간척되어 옛 형상을 찾아보기 힘들다. 서쪽의 돈대산[205m]과 도리산이 있으나 대체로 100m 내외의 산들로 이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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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동거차도리에 속한 행정리. 동막리 마을이 있는 동거차도는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거차군도 가운데 동쪽에 있다하여 동거차도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 다른 설로는 우리나라의 해상교통의 요지로 이 곳 해상을 지나는 선박들이 거쳐 가는 곳 또는 ‘거친 바다’라 하여 ‘거차’로 표기했다고 한다. 과거 일본 승려 엔닌의 일기에 ‘구초도(丘草島)’란 기록이 나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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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동거차도리에 속한 행정리. 마을이 있는 동거차도는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거차군도 가운데 동쪽에 있다하여 동거차도로 부르게 되었다. 또 다른 설로는 우리나라의 해상교통의 요지로 이 곳 해상을 지나는 선박들이 거쳐가는 곳, 또는 ‘거친 바다’라 하여 거차로 표기했다고 한다. 과거 일본 승려 엔닌의 일기에 ‘구초도(丘草島)’란 기록이 나온다.『동국여지승람』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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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1992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임회면 죽림리에서 동헌리가 분리되었다. 대학봉[190m]에서 봉호산[191.1m]으로 이어지는 산릉과 여귀산[458.7m]에서 봉호산[191.1m]으로 이어지는 산릉으로 둘러싸여 있는 바닷가 마을이다. 완경사면은 밭으로 개간하였다. 동헌리는 임회면 동쪽에 위치한다. 서남쪽으로는 강계리와 접하고 있다. 18번 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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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쌍정리에 속하는 행정리. 논 가운데 말샘이 있었기 때문에 두정(斗井)이라는 지명을 갖게 되었다. 의신면에서 남문거리로 가는 길과 군내면, 고군면에서 남문거리로 들어오는 삼거리 길로 삼거리로 불리었고 돌벅수가 있어서 벅수거리라고도 불리었으며 장사 들독이 있었다. 1470년 경 양천허씨와 청주양씨가 처음으로 들어왔으며, 1700년경에 다른 성씨들이 들어와 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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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심동리에 속한 행정리. 제주에서 관마리로 이송되던 말이 내렸던 장소라 하여 마사라는 지명을 갖게 되었다. 본래 진도군 지산면의 지역으로서 깊은 골짜기가 되므로 지픈골 또는 심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수양리, 마사리를 병합하여 심동리가 되었다. 북쪽에 급치산(急峙山)[223m]과 웅봉[139m]이 있다. 바다에 접하고 있으며, 마을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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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내산리에 속한 행정리. 고려조에 현재 향동 일대에 목장이 있었는데 역에서 사육하는 말을 마산리 해안에서 육지로 반출하였기로 거기를 ‘마재보(馬載步)’라 했다는 연유로 마산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마을의 형성은 백제 말부터로 알려져 있다. 본래 진도군 고이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내동리, 마산리, 황조리 일부와 고일면의 오상리, 원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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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에 속한 행정리. 망금산 아래가 되므로 만금리가 되었으며, 또는 명량을 망보는 망터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의이씨가 진도군 고군면에서 살다가 만금리로 입주하면서 형성되었다고 전한다. 본래 진도군 군일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죽전리, 대사리, 신동리 일부를 병합하여 녹진리라 해서 군내면에 편입되었다. 1960년대에 마을이 본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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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고정리에 속하는 행정리. 마을 앞에 매화나무가 많았으며 바닷물이 매화나무 있는 곳까지 닿는다 하여 매착개[梅着浦]로 불리다 매차개로 변했다. 그 후 매화나무 옆에 정자를 지었다 하여 매정리(梅亭里)라 부르게 되었다. 1500년 경 경주이씨 이제현의 10대손인 이순의 셋째 아들이 전라남도 장성군 삼계면에서 매정리로 옮겨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19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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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수역리에 속한 행정리. 1739년 경 창녕조씨인 조직승이 처음 들어온 후, 밀양박씨, 전주이씨 등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철마산과 망적산으로 이어진 산록 완경사면에 위치하고 있다. 산록 완경사면은 밭으로 개간되어 있다. 밭 아래쪽 평지에는 논이 위치하고 있다. 매향리의 남동쪽으로 수성저수지(壽城貯水池)가 있다. 북쪽은 수역리, 북서쪽은 신흥리·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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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창유리에 속한 행정리. 명지리는 간척 전에 만조 되었을 때 달빛이 아름답고 찬란하게 비춰 가경(佳景)을 이룬다고 하여 ‘명지리’라 불렀다고 한다. 1650년 김해김씨 김욱태가 마을에 들어왔으며 김해김씨가 300년 이상 거주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창리, 유토리, 산행리, 명지리를 병합하여 창리와 유토리의 이름을 따서 창유리라 하였다. 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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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향동리에 속한 행정리. 모사는 모세미를 음역하여 모사라 한 것인데, 실제로 띠풀이[茅]는 차음한 것에 불과하며 모세미의 뜻은 조개껍질 부서진 모래가 많이 모여 있다는 뜻이다. 본래 진도군 고일면의 지역으로서 지형이 목처럼 되었으므로 상목골 또는 향막동, 향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향동리라 하여 고군면에 편입되었다. 해안에 발달한 사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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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앵무리에 속하는 행정리. 창녕조씨가 들어와 마을이 형성되었다. 1975년 소포방조제 건설 후, 새로 생긴 농경지에 농사를 짓기 위해 주민들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커졌다. 1992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소앵무리에서 백연동이 분리되었다. 삼당산(三堂山)[272.4m]에서 이어진 산록 완경사면에 입지하고 있다. 백연동 앞으로는 넓은 간척지가 펼쳐져 있다. 석교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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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지막리에 속한 행정리. 본래 진도군 고일면의 지역으로서, 제막이 있었으므로 지막골, 제막, 지막 또는 금학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벌포리와 하율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지막리라 해서 고군면에 편입되었다. 주봉재 동편 산록에 자리하고 있으며, 해안에 경사가 급한 앞산(104m)이 있어 수심이 매우 깊다. 면의 동쪽 중앙의 해안가에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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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교동리에 속하는 행정리. 진도읍성의 북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북상리(北上里)라 하였다. 조선 초기 경주박씨 35대손 박근무(朴根茂)[1405~1467]가 입향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북상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교동리에 병합되었다. 처음에는 박씨 집성촌이었으나 1970년대 이후 김해김씨·전주이씨 등 다른 성씨가 진도군청을 중심으로 들어와 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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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수역리에 속하는 행정리. 수역리 북쪽 고갯길에 위치한 동네라 하여 북치리(北峙里)라 하였다. 1770년에 경주정씨 정세백(鄭世伯)이 처음 들어온 후, 김해김씨·경주박씨 등이 농사를 짓기 위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군내면에 속해 있었으나 1973년 진도읍으로 편입되었다. 수유방조제가 건설되기 전에는 바다와 닿아 있어 요망바위라는 곳에 포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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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에 속한 행정리. 고인돌이 있는 것으로 보아 청동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보나 조선 초기에 거주하기 시작 하였을 것이다. 본래 진도군 의신면의 지역으로서 내가 비껴 흐르므로 비끼내, 빗내 또는 사천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사상리, 사하리, 영산리의 각 일부를 합하여 사천리라 하여 의신면에 편입되었다. 첨찰산[485m]이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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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거룡리에 속하는 행정리. 옛날 마을의 장정들이 큰 팽나무 아래 정자를 과녁 삼아 활쏘기를 하였으므로 사정리(射亭里)라 하였다. 창원황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진도군 명금면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의신면 거룡리에 편입되었다. 대학봉(大鶴峰)에서 이어진 산릉 완경사면에 입지하고 있다. 북쪽으로는 농경지가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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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교동리에 속하는 행정리. 마을에 활터가 있어 사정리(射亭里)라 하였다. 1450년 경 창녕조씨가 처음 들어온 후, 마을 안에 있는 은천(隱泉)이라는 돌샘을 중심으로 김해김씨·전주이씨 등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사정리는 교동리에 통합되었으며, 1986년에는 사정리를 사정1리와 사정2리로 분리하였다. 철마산에서 내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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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에 속한 행정리. 마을의 입향조는 민씨와 박씨이다. 본래는 진도군 의신면의 지역으로서 내가 비껴 흐르므로 비끼내, 빗내 또는 사천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사상리와 사하리, 영산리, 논수동 등의 일부를 병합하여 사천리라 하여 의신면에 편입되었다. 사천리 마을이 커짐에 따라 사상리와 사하리로 구분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다.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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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하조도에 있는 행정리. 조도면 소재지가 위치하고 있는 법정동 창유리에 소속된 마을로 조도면에서는 인구가 세 번째로 많은 마을이다. 창유리와 명지리 들녘을 내려다보는 높은 곳에 있다 하여 산행리라 부르게 되었다. 하조도 돈대산의 돈대봉[230.8m] 아래 중턱에 위치하여 서북방을 향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임회면 팽목항에서 하조도 어류포를 오가는 여객선이 운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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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송산리에 속한 행정리. 1789년 호구총수기록에는 상가흥(上嘉興)으로 나오는 것으로 보아 고려 때 가흥현의 위쪽 마을 이란 뜻이다. 상가마을은 1437년 양경군수가 진도군수가 되어 설군 작업을 할 때 따라온 조카 양진회(梁進淮)가 설촌했다고 전해온다. 본래 진도군 군일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가리를 병합하여 송산리라 하여 군내면에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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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고야리에 속한 행정리. 본래 진도군 지산면의 지역으로서 지형이 괴처럼 생겼으므로 괴돌 또는 고야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고야, 하고야, 새탓몰을 병합하여 고야리가 되었다. 동쪽의 삼당산(三堂山)[272m], 서쪽의 지력산(智力山)[328m] 등의 줄기가 뻗어 남북으로 100~200m로 형성되어 있다. 이곳에서 흘러온 물은 고야저수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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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예전에 명슬리는 매시리·매스레로 불렀다. 후에 매가 미로 변하였고, 미시리의 위쪽에 위치한다 하여 상미리(上彌里)라 부르게 되었다. 1400년경 방씨가 처음 들어왔다고 하나 자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그 후 1705년경 김해김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중미리와 함께 명슬리로 병합되어 임회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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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에 속한 행정리. 320년 전에 김시흡 3형제가 영암에서 진도로 이사 오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래 진도군 지산면의 지역으로서 보전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보상리, 보하리, 갈두리를 병합하여 보전리가 되었다. 서쪽의 해산봉(海山峰)[251m], 선동산(銑銅山)[206m]과 남쪽의 지력산(智力山)[328m] 등 여러 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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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가치리에 속한 행정리. 200년 전 장씨가 처음 입향하였고, 이후에 달성서씨와 장흥임씨가 들어와 정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가치리에 속한 봉암마을이었으나 1980년 상봉암리와 하봉암리로 분리되었다. 2014년 12월 31일 현재 총 22세대에 40명이 살고 있다. 주요 성씨는 달성서씨와 장흥임씨이며,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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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심동리에 속하는 행정리.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의 법정리인 심동리에 속한 행정리이다. 마을이 깊은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다 하여 ‘지푼골’ 또는 ‘심동’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수양리, 마사리와 함께 병합하여 심동리라고 하였다. 해남에서 진도대교를 건너 18번 국도를 타고 진도읍을 지나 801번 지방도를 가다 803번 지방도와 만나는 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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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산의 형세를 연꽃으로 보아 연동(蓮洞)이라 하였다. 연동 내에 외연동과 내연동의 두 마을이 있었는데 그 중 외연동(外蓮洞)이 상연리(上蓮里)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1670년경 평산신씨가 처음 들어왔다고 하나 자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1850년경 도강김씨가 전라북도 무안군에서 제주도로 향하던 중 폭풍우를 만나 상연리에 정착하면서 마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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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원래 명칭은 서망(鼠望)으로, 쥐가 앞의 쌀섬[白米島]을 바라보며 어떻게 건너갈지를 생각하는 형세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그러나 후에 마을 이름에 쥐를 의미하는 서(鼠)자를 쓰는 것은 좋지 않으며, 마을의 위치가 서쪽이니 발음이 같은 서(西)로 바꾸어 서망(西望)이 되었다 한다. 1750년경 평산신씨가 처음 들어왔다고 하나 자세한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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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교동리에 속하는 행정리. 진도읍성의 서문 밖이라 하여 ‘섬밖에’로 부르다가 서외리(西外里)로 바뀌었다. 1460년경 창령조씨 윤문(胤文)이 오산에서 이주한 것을 시작으로 전주이씨, 김해김씨 등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2014년 12월 31일 현재 총 348세대 808명이 살고 있으며 주요 성씨는 박씨와 김씨이다. 주요 농작물은 벼, 구기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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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학이 사는 곳이라 하여 선학(仙鶴)이라 하였는데,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이곳 지형이 마늘 목처럼 생겼다 하여 산항(蒜項)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1400년경 김해김씨가 선항리의 비옥한 토지와 학이 사는 것을 보고 처음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그 후 제주양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광전리·하미리·장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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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에 속하는 행정리. 조선시대 진도군의 관아가 있던 성안을 법적으로 성내리라 하며, 성안을 동·서로 나누어 그 동쪽을 성동리(城東里)라 하였다. 1792년경 청주한씨의 입향 후 김해김씨·밀양박씨·전주이씨 등이 들어와 살면서 진도읍성 안의 중심지로 형성되었다. 성동리는 1980년대까지 진도읍의 중심지였으나 남동리가 신흥시가지로 개발되면서 활기를 많이 잃었다. 옛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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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성내리에 속하는 행정리. 성내리를 이분하여 성동리(城東里)와 성서리(城西里)라 하였을 때, 성내리 서쪽에 있다 하여 성서리라 하였다. 옛날에는 성안의 관아 땅으로만 활용하였다고 전해지는데, 1792년경에 전라남도 진도읍성 안의 서쪽으로 청주한씨가 입거한 이후 차츰 밀양박씨 등 다른 성씨가 입거하면서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북쪽에 철마산[304m]이 자리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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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가학리에 있는 행정리. 1600년경 동복오씨가 입향하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방리는 본래 진도군 지산면에 속한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세방리와 세포리를 병합하여 가학리에 속하게 되었다. 동쪽의 석적막산의 줄기가 남북으로 걸쳐져 있는데, 여기서 여러 개의 산줄기를 형성하고 있다. 지산면의 서쪽 바다와 접하며, 동쪽은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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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가학리에 있는 행정리. 1760년 김해김씨가 입향하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포리는 본래 진도군 지산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세방리와 세포리를 병합하여 가학리에 속하게 되었다. 동쪽의 석적막산, 동석산, 성재, 급치산(急峙山)[223m] 등의 산이 남북으로 길게 형성되어 있다. 이곳에서 흘러내린 물로 작은 농경지에 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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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앵무리에 있는 행정리. 산의 모양이 앵무새처럼 생겼다 하여 지어졌다. 언제인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마을의 입향조는 창녕조씨로 알려져 있다. 본래 진도군 지산면의 지역으로서, 뒷산의 지형이 앵무새처럼 생겼다 하여 앵무, 앵무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앵무리가 되었다. 남쪽의 삼당산(三堂山)[272m]의 줄기가 남북으로 뻗어 200m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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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산월리에 속하는 행정리. 1643년대 경주최씨 최석후(崔碩厚)가 처음 입거한 뒤 밀양박씨, 김해김씨 등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전해온다.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에 속해 있다가 1973년 진도읍에 편입되었다. 2014년 12월 31일 현재 소포리 지역에는 총 49세대에 8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주요 성씨는 김씨와 박씨이다. 주로 벼, 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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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초사리에 속하는 행정리. 송천구미와 군포마을을 합하여 송군리라 하였다. 인동장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군포(軍浦)마을은 조선시대 군선(軍船)이 주둔했던 포구로 송천구미와 합하여 송군포(松軍浦)라 하였으며, 현재는 군포(群浦)로 바꾸었다. 송군리는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의신면 초사리로 병합되었다. 의신면의 남쪽 반도에 위치하여 삼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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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송정리와 함께 병합하여 봉상리라 해서 임회면에 편입되었다. 희여산[269m] 질매봉[258m]-연대봉[148.8m]-여귀산[458.7m]으로 이어지는 산릉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에 입지한다. 취락은 이들 산지의 남서쪽 완경사면에 위치한다. 송월리 남쪽으로는 농경지가 펼쳐져 있다. 송곡제(松谷堤)는 송월리 동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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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봉상리에 속하는 행정리. 마을의 오른쪽에 노송이 울창한데서 송정리(松亭里)가 유래되었다 한다. 1500년대에 김해김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희여산[269m]-월출산[110m]-질매봉[258m]-연대봉[148.8m]-여귀산[458.7m]으로 이어지는 산릉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에 입지한다. 취락은 이들 산지의 동쪽 완경사면에 위치한다. 송강제(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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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교동리에 속하는 행정리. 1564년 경 창령조씨가 처음 들어온 후, 밀양박씨 등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송현리는 구한말 때 솔개재 서쪽 동네에서 독립하였으며, 그 후 공동묘지로 쓰였다. 그리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교동리에 통합되었다. 송현리는 대부분 평지이다. 동쪽에는 송현제라는 저수지가 있다. 남쪽에는 동서 방향으로 넓은 논이 펼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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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심동리에 있는 행정리. 수양리가 있는 심동리는 깊은 골짜기라는 뜻에서 지푼골 또는 심동이라 하였다. 수양리가 있는 심동리는 본래 진도군 지산면의 지역으로서, 깊은 골짜기가 되므로 지푼골 또는 심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수양리와 마사리를 병합하여 심동리가 되었다. 북쪽에 급치산(急峙山)[223m]과 남쪽에 웅봉이 있다. 마을 앞에는 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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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금갑리에 있는 행정리. 수품구미와 새막터를 합하여 수품리(水品里)가 되었다. 수품구미, 수품기미 라고도 불린다. 마을의 유래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으나 수품리 마을에는 해안을 따라서 옛날에 금갑수군 만호가 심었다는 팽나무 숲이 거목이 되어(높이 15m, 둘레 3m 정도였다고 『진도군지』 기록) 경관을 이루고, 마을을 감싸고 있는 목섬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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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의 법정리인 나리에 속한 행정리. 마을의 입향조는 하동정씨로 이들이 조도면에서 살다가 나리 3반으로 편입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군일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범바우, 신기를 병합하여 나리라 하여 군내면에 편입되었다. 동쪽에 건배산[118m]이 있을 뿐 낮은 산으로 형성되어 있다. 군내면의 북서부에 있으며, 동쪽은 나리, 서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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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의 법정리인 둔전리에 속한 행정리. 1960년대 둔전간척사업 후 새로 생긴 마을이라는 의미이다. 1909년에 밀양박씨 박일흥이 입향한 것으로 전한다. 본래 진도군 군일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연산리와 신덕리, 덕병리를 병합하여 둔전리라 하여 군내면에 편입되었다. 북쪽에 망금산과 남쪽에 금골산이 있을 뿐 낮은 구릉지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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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신동리(新洞里)라 하였다. 1700년경 황씨가 의신면 금갑리에서 임회면 신동리로 들어왔으며, 1750년경 진주강씨 등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백야동·만세동과 함께 백동리로 병합하여 임회면에 편입되었다. 연대산[148.8m] 남서쪽 완경사면에 입지한다. 신동리 배후의 완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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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고성리에 있는 행정리. 당사골로 부르다가 한자명으로 표기하면서 고성보다 나중에 설립되었기에 신리라 하였다. 마을의 입향조는 현풍곽씨가 처음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신리가 있는 고군면 고성리는 본래 진도군 고이면의 지역으로서 옛 진도읍성이 있어서 고성이라고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리와 모산리, 평산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고성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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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칠전리에 있는 행정리. 옷나무 밭이 많아 옷 밭 또는 칠전이라 하였다. 마을의 입향조는 전주이씨이며, 칠전리 10반 "장태"와 인접한 곳에 8·15 해방 후 일본, 만주 등 외국에 흩어진 동포들이 돌아와 정부에서 임시로 주택을 지어 이주한 마을로서 신생리(신생동)라 부르게 된 것이다. 본래 진도군 명금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명금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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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신육리에 있는 행정리. 신전리가 있는 신육리는 본래 진도군 조도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전리, 육동리, 읍구리를 병합하여 신전과 육동의 이름을 따서 신육리가 되었다. 북쪽의 신금산[232m]에서 뻗어져 내려온 산줄기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남쪽으로는 남해가 펼쳐져 있어 배산임수 취락입지의 전형을 보여준다. 일사량이 높고 북서풍 차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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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거룡리에 속하는 행정리. 연안차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진도군 명금면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의신면 거룡리에 편입되었다. 신정리는 구릉성 산지로 둘러싸여 있으며, 남서쪽으로 신정제(新亭堤)가 위치하고 있다. 남쪽은 사정리, 동쪽은 만길리, 북동쪽은 거룡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18번 국도에서 갈라진 2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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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에 속하는 행정리. 1770년경 전주이씨 이계도가 처음으로 들어왔으며, 그 후 창녕조씨·김해김씨 등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기대봉(起大峰)[192m], 춘산봉(春山峰)[220.8m], 부주산(浮舟山)[149m]으로 이어진 산릉의 동쪽 완경사면에 입지한다. 신흥리 서쪽의 완경사면은 밭이며 남쪽과 북쪽은 농경지이다. 남동쪽은 매향리, 북동쪽은 수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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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안 관광 벨트사업의 하나로,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귀성리 일대에 추진하고 있는 진도 전통 민속마을 사업. 정부와 진도군은 2000년부터 7년간 약 262억 원을 투입해 전라남도 진도군 오봉산 기슭 7만 여 평에 민속 관광촌인 아리랑마을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처음에는 진도군 임회면 서망지구에 계획했다가,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으로 묶여 사업지구를 진도군 임회면 상만리 귀성마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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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의 법정리인 둔전리에 속한 행정리. 1920년에 현풍곽씨가 입향하였다고 전한다. 이후 1958년에 신동리와 고군면 오류리에 방조제를 막아서 농토가 간척되자 한국동란 때 황해도 이주민을 정착시키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진도군 군일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연산리와 신덕리, 덕병리를 병합하여 둔전리라 하여 군내면에 편입되었다. 서쪽에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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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에 있는 행정리. 조선 명종 때 영의정을 지낸 노수신이 1547년 순천을 거쳐 안치리로 유배되어 기거하였으며, 1750년 경 그 후손이 이곳에 정착하였다. 그 뒤 1900년대 현풍곽씨와 김해김씨가 신안에서 살다가 안치리에 정착하였다고 전한다. 본래 진도군 지산면의 지역으로서 소개 또는 소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안치리는 전라남도 진도군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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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창유리에 있는 행정리. 어류포가 속한 창유리는 본래 진도군 조도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창리, 유토리, 산행리, 명지리와 함께 어류포리를 병합하여 창유리에 속하게 되었다. 동쪽은 신금산(神禽山)[232m], 남쪽은 돈대봉(墩大峰)[271m]의 배후 산지로 북부에 입지해 있다. 하조도의 북부에 있으며, 사면이 바다와 접해있다. 교통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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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벽파리에 있는 행정리. 마을의 확실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1574년에 형성된 마을에 대한 내려오는 이야기를 보면 검산곶에서 유래한 ‘검사골’이 고유 명칭이라는 설이 있다. 한편, 예전에 마을 남쪽에 있는 연동저수지에 연꽃이 많아서 연동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1574년에 형성된 것으로 보며, 마을의 입향조는 밀약박씨이다. 본래 진도군 고일면의 지역으로서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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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의 법정리인 둔전리에 속한 행정리. 1800년경 서씨가 처음 시거하였다고 전한다. 본래 진도군 군일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연산리와 신덕리, 덕병리를 병합하여 둔전리라 하여 군내면에 편입되었다. 북쪽에는 금골산, 남쪽에는 고두산(高頭山)[252m]의 줄기가 동서로 뻗어 있다. 마을은 서쪽 사면 아래에 있다. 마을 앞에 있는 농경지는 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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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침계리에 속한 행정리. 마을의 입향조는 송씨라고 하나, 1500년 장성군 삼계면에서 경주이씨 익재공 제현의 10대손 이순의 아들 세 명이 진도에 정착할 때, 둘째 아들이 이곳 의신면 영산리에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4년 12월 31일 현재 총 27세대, 43명이 살고 있으며 주요 성씨는 경주이씨이다. 주민들의 주 소득원은 벼농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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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오산리에 있는 행정리. 오하리가 있는 오산리의 오산이라는 말이 오산(烏山)하는데서 동음으로 썼을 것이고 까마귀를 흉조라 하여 다섯 오자로 바꾸어 쓰게 되었다고 한다. 오상리의 위 상(上)자는 마을이 커서 오상리와 오하리 둘로 나뉘면서 윗마을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이다. 고인돌로 보아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1400년쯤에 창녕조씨인 충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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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오산리에 있는 행정리. 오하리가 있는 오산리의 오산이라는 말이 오산(烏山)하는데서 동음으로 썼을 것이고 까마귀를 흉조라 하여 다섯 오자로 바꾸어 쓰게 되었다고 한다. 오하리의 아래 하(下)자는 마을이 커서 오상리와 오하리 둘로 나뉘면서 아랫마을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이다. 1400년쯤에 창녕조씨의 충신이 있었는데, 반정으로 왕이 바뀌면서 새로운 왕을 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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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의 법정리인 분토리에 속한 행정리. 본래 진도군 군일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한사리, 동산리, 일부와 군이면의 월가리 일부를 병합하여 분토리라 하여 군내면에 편입되었다. 서쪽에 철마산(鐵馬山)[304m], 망적산[266m]이 남북으로 걸쳐 있으며, 북쪽에는 고두산(高頭山)[252m]이 있다. 마을 주변은 대체로 낮은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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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삼당리에 속한 행정리. 마을이 삼당산 밑에 자리하고 있어 삼당 또는 삼댕이라 하였다. 외삼당리는 1784년 이씨가 입향하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내삼당, 외삼당, 마상동을 병합하여 삼당리라고 하였다. 해남에서 진도대교를 건너 18번 국도를 타고 진도읍을 지나 801번 지방도를 가다 지산면 소재지에 도달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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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길은리에 있는 행정리. 용동리는 본래 진도군 지산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물은리, 고길리, 들문거리와 함께 용동리가 고길과 물은의 이름을 딴 길은리에 병합되었다. 200m 내외의 산이 마을을 감싸고 있으며, 길은저수지에서 흘러온 물과 석교천의 지류가 있어 주변의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제공하여 농업에 이용되고 있다. 지산면의 북부에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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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동외리에 속하는 행정리. 읍성을 축조할 때 성내에 살던 장흥임씨가 성 밖 동쪽 용두리에 이주했다고 전한다. 이후 밀양박씨, 김해김씨, 전주이씨 등이 입거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4년 12월 31일 현재 용두리에는 총 348세대에 879명(남 424명, 여 455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주요 성씨는 박씨와 김씨이다. 주요 농작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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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1800년 경 광산이씨 이종달과 진주강씨 강극세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진도군 임일면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호구리·도장리와 함께 용호리로 병합하여 임회면에 편입되었다. 여귀산[458.7m]에서 분기한 산릉으로 둘러싸인 분지에 입지한다. 산록 완경사면은 밭으로 개간되었다. 용산제(龍山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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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의 법정리인 덕병리에 속한 행정리. 제주양씨인 양강암이 제주에서 이거하면서부터라고 전하며, 마을 앞에 한의간척사업이 시작되면서 각처에서 사람들이 모이면서 마을이 되었다. 본래 진도군 군일면 지역으로서 덕저리, 떡저리 또는 덕병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용인리, 한의리를 병합하여 덕병리라 해서 군내면에 편입되었다. 동쪽에는 금골산(金骨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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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금계리에 있는 행정리. 마을 모양이 용의 머리처럼 생겼다는 용산과 호수의 입구라는 호구가 합쳐져 용호리라고 하였다. 호구는 사실 가계해수욕장의 사빈이 형성한 과거의 석호지역으로 호수 호(湖)가 붙은 것으로 보인다. 본래 진도군 고일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호구리, 용산리, 도장리를 병합하여 용산과 호구의 이름을 따서 용호리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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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금갑리에 있는 행정리. 본래 원다리는 진도군 명금면의 지역으로서 조선시대 때 금갑진(金甲鎭)이 있어서 금갑진, 금갑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갑도리, 활곡리 일부를 원다리와 병합하여 금갑리라 하여 의신면에 편입되었다. 동쪽의 남망산[164m]이 있으나 대체로 100m 정도의 산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서쪽 해안은 암석해안으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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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만길리에 속하는 행정리. 원머리·원뚝머리에서 언두리라 부르다가 1945년 원두리로 바뀌었다. 나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의신면 만길리로 편입되었다. 북서쪽은 낮은 구릉지이며 남동쪽은 평지이다. 원두리는 남해와 접한 해안가 마을이었으나 방조제 축조 이후 마을 앞으로 넓은 농경지가 조성되었다. 동쪽은 독점리, 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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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오류리에 있는 행정리. 마을에 도강김씨가 처음 입향하여 자리를 잡았다. 본래 진도군 지산면의 지역으로서, 월촌리가 있는 오류리는 오릿골 또는 오류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월촌리, 대판리, 사천리를 병합하여 오류리가 되었다. 부흥산(富興山)[171m]의 줄기가 남쪽으로 뻗어 마을 뒤로 약 100m 정도의 지형을 형성하고 있다. 마을 서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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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에 속하는 행정리. 1500년대부터 마을이 있었다고 하나 자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1900년대에 내산월리에서 광산김씨 김재근이 옮겨 왔고, 그 후 이천서씨·밀양박씨 등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1973년 군내면에서 진도읍으로 관할이 바뀌었다. 봉둘산[109.3m], 연대산(蓮大山)[255m], 부주산(浮舟山)[149]으로 둘러싸인 남쪽 완경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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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오류리에 있는 행정리. 버드나무 다리를 한자화하여 유교(柳橋)라 했다. 과거 마을 앞에 버드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었다. 통일신라 흥덕왕 때 장보고가 청해진에 근거하였을 때 마을 동쪽 소바우에 갈영월이라는 사람이 장보고의 명을 받아 최초로 입주하였다는 오류마을의 설에 의해 이 마을도 그 때나 그 이후에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유교리가 속한 오류리는 본래 진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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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송호리에 있는 행정리. 유목리가 속한 송호리는 본래 진도군 지산면의 지역으로서 송호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유목리를 병합하여 송호리가 되었다. 주변의 산은 그리 높지 않아 대부분 100m내외의 산지를 이루고 있다. 마을 앞은 팽목방조제로 만든 넓은 농경지가 있어 지역 주민소득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지산면의 남단에 있으며, 동쪽은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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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창유리에 있는 행정리. 본래 진도군 조도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창유, 산행리, 명지리와 함께 창유리에 병합되었는데, 창유리는 창유와 유토리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것이다. 손가락산[231m]과 돈대봉(敦大峰)[271m]을 배후산지로 서쪽 사면에 입지하고 있는데, 기반암은 화산쇄설성 역암과 사암, 응회암, 유문암, 백악기 경상계 퇴적암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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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신육리에 있는 행정리. 본래 진도군 조도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전리, 육동리, 읍구리를 병합하여 신전과 육동의 이름을 따서 신육리가 되었다. 신금산[232m]에서 남서쪽과 남동쪽으로 분기하는 산릉선을 배후산지로, 그 곡저에 위치한다. 배후산지로부터 용수공급이 원활하며 저수지를 축조함으로써 수리 안정을 이루고 있다. 비교적 넓은 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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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여미리에 있는 행정리. 율목리가 있는 여미리는 본래 진도군 조도면의 지역으로서 예미 또는 여미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구리, 율목리가 여미리에 병합되었다. 돈대산[205m]을 배후산지로 삼고 있으며 작은 만 안쪽의 산록완경사면과 해안이 접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 남쪽에 위치한 나병도를 바라보고 있으며, 마을 전면에 발달한 갯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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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신육리에 있는 행정리. 하조도의 법정리인 신육리에 소속된 마을로 인구가 조도면에서 두 번째로 많다. 조도면에 마을이 위치하고 있어 고을, 고을기미(움푹 들어간 곳에 있는 마을), 꼴끼미, 꼴구미, 꼴가미라고 하였다. 옛날에는 관청이 있었다고 한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부터 고을 읍(邑), 입 구(口)를 써서 읍구리라 부른다. 임회면 팽목항에서 하조도 어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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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연주리에 속하는 행정리. 밀양박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진도군 의신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의신면 연주리로 편입되었다. 첨찰산(尖察山)과 덕신산(德神山)으로 이어진 산록 완경사면에 입지하고 있다. 본래 남쪽은 남해와 접하고 있었으나 방조제 축조로 농경지가 조성되어 있다. 남동쪽으로 연주리와 접하고 있다. 18번 국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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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마산리의 동쪽 바닷가 골짜기 이름. 고군면 마산리 선착장에서 홍다구가 용장성에 있는 삼별초를 치기 위해 상륙했다는 다래(茶來)불치에서 벽파 쪽 군직기미와의 사이에 있다. 1894년 이 동네 출신의 동학군 손행권이 동학 의병들을 훈련시킨 곳으로 구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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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돈지리에 있는 정기시장. 의신장은 진도군 의신면 돈지리에 위치하고 있어 돈지리장터라고도 한다. 부지면적 5,178㎡, 매장면적 456㎡, 점포수 14개로 1·6일로 끝나는 날에 장이 선다. 의신장에서는 김과 미역을 생산자로부터 직접 살 수 있다. 평소에는 상설 상점들만 문을 열어 한산하지만, 장날이면 장옥을 중심으로 옷가지류, 과일류, 채소류, 생선류는 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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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인지리에 있는 행정리. 1370년경 밀양박씨가 정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래 진도군 지산면의 지역으로서, 인천리가 있는 인지리는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인천리와 독치리를 병합하여 인지리가 되었다. 지산면 내에서 인천리는 비교적 낮은 산지로 이루어져 있는데, 서쪽의 부흥산(富興山)[171m]정도가 있을 뿐이다. 북쪽에 있는 인천제는 이 지역의 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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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삼막리에 있는 행정리. 장구포를 처음에는 ‘새터’라고 하다가 그 뒤에 하늘의 덕이 있다는 의미로 ‘천덕리’라고 하였으며, 소포만을 막기 전 긴 포구를 이루었다 하여 ‘장구포’라 하였다는 설과, 마을 뒷산이 장고와 같이 생겼다고 하여 ‘장고포’라 불리다가 와전되어 ‘장구포’라고도 한다. 1850년경 진도군 군내면에서 김해김씨가 이주하여 정착하였고, 그 뒤 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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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의 법정리인 세등리에 속한 행정리. 장언리 마을은 밀양박씨와 김해김씨가 둔전 간척답 경작으로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하며, 1952년에 김대영이 둔전 간척사업장 인부로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고도 한다. 본래 진도군 군일면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고이면의 유교리 일부를 병합하여 세등리라 하여 군내면에 편입되었다. 동쪽에는 선황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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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수유리에 속하는 행정리. 전두리는 살머리 또는 바꿈섬이라 불린다. 바꿈섬이란 명칭은 부지산 목장을 둔전(屯田)으로 바꾼 역사에서 유래되었다. 1887년 우수영 영장을 지낸 장국철(張國哲)이 조씨 3명과 함께 이곳에 정착했다고 전해진다. 1973년 군내면에서 진도읍으로 관할이 바뀌었다. 이웃 마을인 수유리의 간척 사업이 진행되면서 각처에서 이주자가 몰려 큰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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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금갑리에 속하는 행정리. 전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의신면 금갑리에 편입되었다. 대부분 낮은 구릉지이며 남서쪽으로 남망산[163.8m]이 위치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남해와 접하고 있다. 접도리는 접도의 북동쪽 깊은 만입지에 위치하고 있다. 북서쪽으로 원다리와 접하고 있다. 1987년 접도 연도교가 완공되었고, 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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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월가리에 속하는 행정리. 정거리는 월가리 10반으로 편입되어 있다가 2005년 진도군 조례 제18125호에 의거하여 월가리에서 독립되었다. 철마산(鐵馬山)에서 이어진 구릉성 산지로 둘러싸여 있으며 정거치의 산록 완경사면에 입지하고 있다. 북서쪽으로는 월가제(月加堤)가 위치한다. 북동쪽은 고군면 석현리, 북서쪽은 군내면 월가리, 남서쪽은 정거름재를 경계로 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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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옥대리에 속하는 행정리. 본래 해안가 마을로 정지머리, 정주두(亭舟頭)라고 하다가 후에 정지리가 되었다고 한다. 김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북동쪽으로 큰봉우리가 위치하고 있다. 도목방조제가 축조된 후 마을 앞으로 농경지가 조성되었고, 농경지 사이로는 의신천(義新川)이 흐르고 있다. 북동쪽은 청룡리, 북쪽은 중리·옥대리, 북서쪽은 돈지리, 서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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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남동리에 속하는 행정리. 조수가 가장 낮은 때인 음력 8일과 24일을 ‘조금’이라 일컫는다. 조금리는 욕실 고막매의 건널목이었는데 바닷물이 드나들어 조금에는 건널 수 있지만 다른 물때는 나룻배로 건너다녔다 하는 데서 유래하였다. 1400년경 김해김씨가 입향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전해온다. 일제강점기 진도군 진도읍 성내리의 정기시장이 이곳으로 이주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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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에 속하는 행정리. 1950년경 김해김씨가 처음 입거하였다. 1975년 소포방조제 완성 후, 간척사업으로 조성된 농경지에 농사를 짓기 위해 전주이씨, 경주정씨 등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문마산과 남산(南山)으로 이어진 산록 완경사면에 입지한다. 북쪽 문마산을 밭으로 개간하였으며, 서쪽으로는 농경지가 펼쳐져 있다. 북동쪽은 남산리, 북서쪽은 포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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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의 법정리인 녹진리에 속한 행정리. 1400년 말 능성구씨가 입향하였다고 전해지나 사실적 근거는 찾기 어렵다. 해남에서 처음 진도로 건너온 원주이씨, 남평문씨 등의 첫 정착지이다. 본래 진도군 군일면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죽전리, 대사리, 신동리 일부를 병합하여 녹진리라 해서 군내면에 편입되었다. 마을의 서쪽에는 건배산[118m]이 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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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송정리에 속하는 행정리. 마을에 대나무가 많아 죽골이라 하다가 죽청(竹靑)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송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의신면 송정리에 편입되었다. 대학봉(大鶴峰)과 봉호산(峰虎山)으로 이어진 산릉 완경사면에 입지하고 있다. 죽청리의 오른쪽에는 성주봉이 솟아 있고, 왼쪽에는 용수봉(龍首峯)이 뻗어내려 자연경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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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칠전리에 속한 행정리. 마을의 입향조는 임씨이다. 중굴리는 과거에 서쪽 임회면으로 통하는 길목마을이었다. 1914년에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명금면의 중굴리, 하굴리와 의신면의 침계리 일부를 병합하여 칠전리라 하여 의신면에 편입되었다. 중굴리 동쪽으로 가단가는 옛길이 있다. 서쪽으로는 임회면으로 다니던 꿀재가 있으며 정상 아래에 당터가 있다. 서북쪽으로는 하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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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옥대리에 속하는 행정리. 옛날에는 의신(義新)이라 불렀는데, 왕봉산 밑에 상리(上里)가 있었고, 그 아래 있는 마을이라 하여 중리(中里)가 되었다. 이씨들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중리의 일부가 옥대리에 병합되었다. 옛날 중리에 있던 의신면사무소는 돈지리로 옮겨졌다. 첨찰산과 덕신산(德神山)[389m]으로 이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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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상만리에 있는 행정리. 1200년경 백씨가 시거하였으며, 고려시대, 조선시대에는 군사훈련장으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전해지나 자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1540년경 진주강씨가 입촌하여 현재 11대에 이르고 있으며, 1630년경 동복오씨가 입촌하였다. 본래 중만리가 속하 상만리는 진도군 임이면의 지역으로서 만흥 위가 되므로 웃만흥 또는 상만흥, 상만이라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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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고정리에 있는 행정리. 중매라는 지명은 쟁매[錚山]가 징매로 변하고 징매가 중매로 고정된 것이라는 설이 있는데, 이웃마을 고산에서 북[鼓]을 치면 이 마을에서는 징[錚]으로 응하였다고 한다. 1600년경 진주하씨 하천경이 임회면 삼막리에서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매리가 속한 고정리는 본래 진도군 임일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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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명슬리에 있는 행정리. 마을에서 위치가 중간에 있어 중미라고 부르게 되었다. 1400년경 김해김씨와 창녕조씨가 입향하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래 진도군 임일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미리, 중미리를 병합하고 명슬리라 하여 임회면에 편입되었다. 대곡산[236m], 삼막봉[258m], 대학봉[190m], 봉호산[191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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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에 속하는 행정리. 1744년 경 능주구씨가 처음으로 들어왔으며, 이후 연안차씨·밀양박씨·김해김씨 등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포산리로 병합되었다. 1973년 진도읍 서부의 소포만이 간척되어 염전이 사라지고 건내양섬과 딴양섬 주변은 농경지가 되었다. 큰공지(149m)의 서쪽 완경사면에 입지한다. 지도리 북쪽으로는 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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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오산리에 있는 행정리. 지수리의 확실한 명칭유래는 알 수 없으나, 한자어로 진도의 명주인 홍주를 만드는 지초 지(芝)와 물 수(水)를 의미한다. 본래 지수리가 속한 오산리는 진도군 고일면의 지역으로서 외딴 산이 있으므로 ‘오미’ 또는 ‘오산’이라고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지수리, 오상리, 오하리의 각 일부와 고이면의 고성리, 황조리의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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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에 있었던 사공들이 모여 살던 특수 집단촌. 진부(津夫)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관아에 속해 있던 나룻배의 사공을 말한다. 신분은 평민이면서 천역에 종사하는 신량역천(身良役賤)의 계층으로 관선(官船)에 딸려 있었다. 이 진부들에게는 급료 대신 논밭을 지급하였으며, 이들이 모여 살면서 이룬 마을은 진부촌(津夫村)이라 하였다. 고려시대에 진부들은 반역 등의 형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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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침계리에 속한 행정리. 삼별초의 난 때 진설 터로 쓰인데서 진설리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황해도 송화군 지역의 피난민들이 거주하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대부분 구릉성 산지로 둘러싸여 있으며, 구릉 사이 평지에 논과 밭이 개간되어 있다. 남동쪽에 사천저수지가 위치한다. 남산(南山)과 왕무덤재로 이어진 능선을 경계로 진도읍과 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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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창유리에 있는 행정리. 본래 진도군 조도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창유, 유토리, 산행리, 명지리를 병합하여 창유와 유토리의 이름을 따서 창유리가 되었다. 손가락산[231m], 돈대봉(墩大峰)[271m], 신금산(神禽山)[232m]으로 이어지는 산릉선을 배후산지로 북쪽 사면에 입지하고 있다. 기반암은 화산쇄설성 역암과 사암, 응회암,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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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수유리에 속하는 행정리. 청룡은 사신(四神) 또는 사수(四獸)의 하나로 동서남북 중 동쪽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알려져 있다. 위치가 진도군 의신면 옥대리의 청룡(왼쪽 즉 동쪽)이 되므로 청룡리라고 했다는 설과 마을의 주산이 청룡 모양이라 하여 청룡리라고 했다는 두 설이 전해진다. 마을의 입향조는 청주한씨로 알려져 있다. 또한 1887년경 김해김씨 11대 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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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초사리에 속하는 행정리. 풀이 무성하여 ‘초전마을’로 부르다가 초사리의 가장 위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데서 ‘초상리’라 하였다. 여산송씨가 처음으로 들어왔으나 송무의 후손은 제주도로 옮겨 갔다. 이후 1700년대 초반에 양천허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초상리는 본래 진도군 의신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초사리로 편입되었다. 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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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초사리에 속한 행정리. 초사리의 행정리인 초상리와 초하리의 중간에 위치하는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하였다. 마씨와 오씨가 초전마을의 농경지를 따라 옮겨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초중리는 본래 진도군 의신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초사리로 편입되었다. 덕신산(德神山) 계곡의 아래쪽에 입지하고 있다. 소하천인 초상천(草上川)이 북쪽에서 남쪽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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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초사리에 속한 행정리. 전주이씨 이재방의 선조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초평리는 본래 진도군 의신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초사리로 편입되었다. 초평리는 덕신산(德神山) 자락의 끝에 입지하고 있으며, 동남쪽으로 남해와 접하고 있다. 소하천인 초상천(草上川)이 흘러와 남해로 유입된다. 북서쪽으로 초하리와 접하고 있다. 18번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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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초사리에 속하는 행정리. 풀이 무성하여 초전마을로 부르다가 초사리의 가장 아래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데서 초하리라 하였다. 나씨와 마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초하리 본래 진도군 의신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초사리로 편입되었다. 덕신산(德神山) 계곡의 아래쪽에 입지하고 있다. 소하천인 초상천(草上川)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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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죽림리에 있는 행정리. 여귀산(女貴山)을 중심으로 좌우에 두 개의 돌탑이 있었는데 상만리로 옮겼다는 설이 있으며, 예전에 탑이 있어서 ‘탑립’으로 불렸다고 한다. 1600년경 해남군에 살던 김해김씨가 이곳을 지나다가 산의 형세가 좋아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탑립리가 속한 죽림리는 본래 진도군 임일면의 지역으로서 대숲이 많으므로 죽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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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에 속하는 행정리. 진도읍성이 축조되면서 성 밖의 통샘이라는 샘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었다는데서 유래되었다. 1450년경 전주이씨 일가가 입거하였고 1700년까지 타 성씨들이 입거하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통정리는 본래 진도군 부내면에 속해 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두정리·원동리·동현리·남편리·통정리를 병합하여 ‘두정’과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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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연동리에 있는 행정리. 예전에는 ‘팽목구미’라 하여 나무가 울창한 바닷가 마을이었다고 한다. 그 뒤 구미라는 말이 탈락되고 ‘팽목’으로 정착되었다. 일설에는 팽목리에 속한 도리섬에 오래 전에 팽나무가 많이 있어서 팽목이라 불렸다고도 한다. 1600년경 김해김씨가 시거하였고, 이후에 전주이씨가 입촌하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래 진도군 임이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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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도평리에 있는 행정리. 처음 입향한 곽평산의 이름을 따서 평산이라고 불리웠다고 한다. 첨찰산의 정기를 받은 출석봉 아래에서 살던 현풍곽씨의 평산이라는 사람이 처음에 주거를 정했고 그 뒤 최씨, 이씨, 한씨, 조씨 등 5성이 모여서 촌락이 형성되었다. 본래 진도군 고이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도론리와 평산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도평리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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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에 속하는 행정리. 고작방조제가 축조되기 전에는 진도읍의 포구마을이었으므로 포구리라 하였다. 1910년경 김해김씨가 처음으로 포구리로 들어왔다. 1926년경 밀양박씨 등이 간척지에 농사를 짓기 위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1926년 일본 기업인 진도식산주식회사에서 포구리에 고작방조제를 축조하기 시작하면서 포구였던 마을 주변이 간척지가 되었다. 문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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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에 속하는 행정리. 포구 서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포서리(浦西里)라 하였다. 1943년경 파평윤씨 윤계노가 입거한 것을 시작으로 염장 방조제를 막으면서 농사를 짓기 위하여 밀양박씨, 김해김씨 등이 입주하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안과 하천 평야가 발달했다. 주요 농산물은 쌀이고, 해안에서는 김과 미역 양식이 이루어지고 있다. 북쪽으로는 진도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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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고야리에 있는 행정리. 언제인지는 알 수 없으나 김해김씨가 처음 입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고야리가 속한 고야리는 본래 진도군 지산면의 지역으로서, 지형이 괴처럼 생겼으므로 괴돌 또는 고야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고야, 하고야, 새텃몰을 병합하여 고야리가 되었다. 동쪽의 삼당산(三堂山)[272m], 서쪽의 지력산(智力山)[328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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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칠전리에 속하는 행정리. 인근에 상굴, 중굴이라는 마을이 있으며, 아랫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하여 하굴이라 한다. 칠전리와 함께 명금면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명금면의 중굴리, 하굴리와 의신면의 침계리 일부를 병합하여 칠전리라 하여 의신면에 편입되었다. 마을 위치는 동향을 하고, 교통로는 과거 칠전리 쪽 외야골을 경유하는 통로였으나 염장개를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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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삼막리에 있는 행정리. 명슬의 아랫부분에 있어 하미라고 부르게 되었다. 1400년경 진양하씨가 진도읍에서 이주하여 시거한 뒤 경주이씨, 함양박씨가 입주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하미리가 속한 하미리는 본래 진도군 임일면의 지역으로서 삼막봉 밑이 되므로 삼막골 또는 삼막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선항리, 하미리를 병합하여 삼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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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보전리에 있는 행정리. 언제 인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이천서씨가 처음 입향하였고, 이후에 해남윤씨, 청주한씨, 김해김씨, 원주이씨, 밀양박씨, 청송심씨가 정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래 진도군 지산면의 지역으로서 보전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보상리, 보하리, 갈두리를 병합하여 보전리가 되었다. 서쪽의 해산봉(海山峰)[251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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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가치리에 있는 행정리. 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경주김씨가 처음 입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봉암리가 속한 가치리는 본래 진도군 지산면의 지역으로서 가학재 아래가 되므로 가치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가치리가 되었다. 북쪽의 부흥산(富興山)[171m]을 비롯하여 200m 내외 산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마을 뒤로는 대부분이 산지여서 농경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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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심동리에 있는 행정리. 언제 인지는 모르나 양천허씨가 입향하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래 진도군 지산면의 지역으로서, 깊은 골짜기가 되므로 지푼골 또는 심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수양리, 마사리를 병합하여 심동리가 되었다. 북쪽의 석적막산, 동석산, 성재 등이 있다. 이곳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봉암저수지와 심동저수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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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원포리에 있는 행정리. 마을에 처음 들어온 성씨는 무안박씨로서 입도조 박희정은 1505년 영암군수로 재직 중이던 그의 형 박종정(朴從貞) 군수를 따라갔다가 진도가 살기 좋다는 얘기를 듣고 고군면 하율(下栗)로 들어와 터를 잡았다고 전해온다. 본래 진도군 고일면의 지역으로서, 외딴 산이 있으므로 오미 또는 오산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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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의 법정리인 분토리에 속한 행정리. 본래 진도군 군일면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한사리, 동산리 일부와 군이면의 월가리 일부를 병합하여 분토리라 하여 군내면에 편입되었다. 북쪽에는 고두산(高頭山)[252m]의 줄기가 동서로 걸쳐 있는데, 그 중간 아래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군내면의 남부에 있으며, 동쪽은 송산리, 서쪽은 정자리, 남쪽은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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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의 법정리인 덕병리에 속한 행정리. 원래는 섬이었으나 1970년대 간척사업으로 연륙되었다. 정자리 북쪽 섬이라 옛말에 따라 ‘하늬섬’이라 했던 것이 한문으로 한의(寒衣)가 되었다. 마을의 입향조는 현풍곽씨와 경주김씨로 1815년경에 입촌한 것으로 전해온다. 본래 진도군 군일면 지역으로서 덕저리, 떡저리 또는 덕병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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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돈지리에 속한 행정리. 향교리의 옛 지명은 ‘생기동(生起洞)’이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왜구들의 노략질로 인해 진도를 떠났다가 향(鄕)이 설치되면서 다시 돌아온 주민들이 생기(生氣)를 찾으라는 뜻에서 생기동으로 불렸다는 설이 전한다. 1789년 기록에 의하면 ‘향교동리’로 되어 있어 마을에 향교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지금의 ‘향교리’는 ‘향교동리’에서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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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용호리에 있는 행정리. 1350년 경 길우마을 뒤 웡꿀(원동)에 진주하씨가 입촌하였으나 터가 협소하여 1400년경에 진주하씨 21대손 하윤상이 시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호구리가 속한 용호리는 본래 진도군 임일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용산리, 도장리와 함께 호구리를 병합하여 용산과 호구의 이름을 따서 용호리라 하여 임회면에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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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에 속하는 행정리. 마을의 형상이 활모양으로 생겨서 붙여진 지명으로 별칭으로는 활목 또는 궁항리(弓項里)라고도 하였다. 본래 진도군 명금면 지역으로 소나무 정자가 있으므로 소정이 또는 송정이라 하였는데, 명금면의 죽청리, 송정리, 활곡리 일부를 병합하여 송정리라 하여 의신면에 편입되었다. 마을 앞에는 큰봉산[123m]과 뒤에는 봉호산(峰虎山)[191m]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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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내산리에 있는 행정리. 마을명이 특이하게 황조(皇朝)여서 유래가 많다. 일설에 황혼락조(黃昏落照)가 아름다워서 황조(黃照)라고 했다는 설도 있지만 신빙성이 낮다고 한다. 마을을 성립한 성씨가 황성(皇城)김씨여서 동명에 ‘황(皇)’자를 따고 ‘조(朝)’자를 붙여서 미화시킨 이름이라고 알려져 있다. 18세기 이전에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보이며, 화순 동복오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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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금계리에 있는 행정리. 박일웅(朴一雄)이 동리를 창립하고 간 뒤에 마을을 ‘다시 되돌아본다’는 뜻에서 회동(回洞)이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회동리가 속한 금계리는 본래 진도군 고일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가계리, 회동리, 금호리 일부를 병합하여 금호와 가계의 이름을 따서 금계리라 하여 고군면에 편입되었다. 첨찰산의 맥이 남서 방향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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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 서는 곳에 위치한 마을. 장이 서는 곳은 생활의 중심지로서 자연스럽게 장터가 생기고 이로 인해 시장 터임을 나타내는 동네 이름이 생긴다. 전라남도 진도군에는 장터이면서 동네 이름 자체에 장터 동네임을 나타내는 시(市)자가 붙은 마을이 있는데, 오일시와 십일시가 바로 그것이다. 오일시는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과 군내면의 경계에 있지만, 옛날에는 석현(石峴) 동네에 속했던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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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십일시리(十日市里)는 십일 간격으로 시장이 서는 장터에서 유래하였다. 1890년 경 밀양손씨 손화삼이 임회면 연동리에서 십일시리로 옮겨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임회면 석교리에 속해 있다가 1943년 십일시리로 분리되었다. 십일시리는, 임회면과 지산면 주민들이 물자와 정보를 교류할 수 있는 장이 서는 곳이다. 처음에는 10일에만 시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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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고성리에 있는 행정리. 1437년(세종 19)에 왜적의 침입을 피하여 남해현으로 옮겼던 진도 고을을 이곳으로 옮기고 새성[新城]이라 하였다. 그 뒤 ‘무냄기’, ‘무넘기’, ‘무내기’로 변천되어오다가 오일시장이 열리면서 무내미는 사라지고 ‘닷새장터’로 불리다가 ‘오일시리’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437년에 왜적의 침입을 피하여 남해현으로 옮겼던 진도 고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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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선 이북에 고향을 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집단 거주지역. 한국전쟁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황해도 장연, 송화, 옹진 사람들을 수용하면서 생긴 집단 거주지역이다. 2005년 현재 진도에는 실향민 350가구가 여러 곳에 흩어져 살고 있으며 실향민회(회장 전송권)가 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 낙동강변까지 밀렸던 한국군은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뒤집혔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