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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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에서 역사시대에 이르기까지 특정 시기에 유행한 무덤양식의 총칭. 넓은 의미에서 고분이란 과거 사회에서 죽은 이를 위해 수행한 매장의례 행위가 물질적인 증거로 남은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시대나 지역에 따라 고분의 형태가 다르게 나타난다. 고분의 명칭은 몰무덤(말무덤), 똥뫼, 조산(造山), 장고분 등으로 불리고, 고분의 피장자의 신분이나 규모에 따라 묘(墓), 분(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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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고성리 64번지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성곽. 고군면 고성리 고군성지 주변의 지형을 보면, 남쪽은 첨찰산, 죽찰산 등 진도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북쪽으로는 진도 용장성이 있다. 동쪽과 서쪽에는 좁다란 농경지가 형성되어 있다. 특히 동쪽에는 해남 쪽으로 돌출한 원포리를 중심으로 내만된 해안이 형성되어 있는데, 현재 원포리와 내산리 사이에는 방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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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둔전리에 있는 산. 금골산은 해발 193m에 불과하지만, 산 전체가 거대한 바위로 우뚝 솟은 기이한 산이다. 정면에서 바라보면 마치 조각가가 일일이 예술작품을 조각해 놓은 것처럼 보인다. 수십 길 절벽에는 층층바위를 이룬 곳 구멍이 숭숭 뚫린 곳이 있는가 하면 보는 방향에 따라 사람 또는 짐승으로 연상케 하는 기암괴석들이 산 전체를 수놓고 있다. 14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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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나 냇가 또는 좁은 바닷목에서 배가 건너다니는 곳. 어원은 밝히기 어려우나, 백제의 두 번째 도읍이었던 웅진(熊津)[지금의 공주]을 곰나루라고 한 것이 가장 이른 시기의 나루에 관한 용례이다. 나루는 나라와 어원이 비슷하여 고대 원시적 형태의 국가가 강가 등지에 위치하여 인근 부족의 교역을 중개하고, 한편으로 무력으로 상업적 질서를 유지한 데서 기인하였던 것과 관련이 있을 것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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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분토리의 통일신라시대 이름. 뇌산군(牢山郡)은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분토리의 통일신라시대 지방행정구역의 한 군명이다 통일신라 때인 757년(경덕왕 16) 도산현은 뇌산군으로 승격되었다. 『대동지지(大東地志)』에 의하면 당나라가 백제를 멸망시킨 뒤 도산현(徒山縣)[또는 추산현·원산현]으로 고쳐 대방주의 영현(領縣)으로 삼았다. 뇌산군은 무주(武州)[지금의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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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지역에 있던 통일신라시대 때의 고을 이름. 본래 도산현은 백제 때 원산현(猿山縣)이라고 했으나 당나라가 백제를 멸하자 나주 다시면(多侍面)에 대방주(帶方州)를 개설하여 군대를 주둔시키고 통치하면서 도산현(徒山縣)으로 명칭을 바꾸고 서남해안의 방위에 임했다고 한다. 671년 김유신 등 신라군이 이들 당나라 군사들을 몰아내고 추산현(抽山縣)으로 개칭했다. 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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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에 있는 산. 망금산은 망금 뒤에 있는 산으로 진도의 관문산이다. 산의 높이는 115m이다. 산정부에 가로 30m, 세로 20m의 토성이 축성된 흔적이 있다. 백제 이후 바다 물목을 지키는 군대 주둔지였다. 충무공 이순신이 진도를 남도(南道)의 요충(要衝)이라 하였고 조선 선조 때 판중추부사 윤두수가 진도를 "가장 중요한 관방지역(最爲緊關之地)"이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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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사, 형사 및 행정 사건의 재판권 행사에 관한 모든 제도. 3세기경의 고대사회는 부족이 국가를 형성하는 부족국가였다. 고대 부족국가의 족장은 부족의 질서위반에 대해 제재를 가했다. 부족국가에서는 연 2회 봄과 가을마다 국중대회를 열었는데, 여기에서 단죄와 형옥을 행하고 죄인을 방면하였다. 여기에서 고대사회의 사법조직은 소박한 민중재판으로 족장이 행하였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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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습격에 대비하여 흙·돌로 구축한 방어시설의 총칭. 성(城)과 성곽(城郭)은 엄밀하게는 다르다. 성(城)은 내성(內城)만을 의미하고 성곽(城郭)은 내·외성을 통칭한다. 성곽은 거주 주체에 의해 도성(都城)과 읍성(邑城)으로 나누어진다. 지형에 의해서는 평지성(平地城), 평산성(平山城), 산성(山城)으로 나누어진다. 지리적 위치에 따라서는 국경성(國境城), 해안성(海岸城), 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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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전라남도 진도군의 역사. 진도는 반도의 서남쪽 모서리에 위치하여 작게는 서남해 섬 지역과 섬 지역, 그리고 크게는 서해와 남해를 연결하는 중간다리 역할을 한다. 지도를 펴놓고 고대 한·중·일 삼국을 연결했던 바닷길이 지나는 중요한 길목들을 살펴보면, 서해로는 흑산도가 먼저 상기되고 영산강과 연결하여서는 목포와 영산포가 돋보인다. 그리고는 해남의 화원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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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관 시장은 물자의 교환이 이루어지는 영역(market), 또는 그러한 상호작용이 행해지는 장소(marketplace)를 말한다. 구체적인 장소를 지칭하는 공간적인 측면에서의 시장은 저자, 장시, 장문, 장터, 장, 시라고도 한다. 조선시대에는 정기시장을 장시라고 지칭한 경우가 많았으며, 지방에 있는 시장은 향시라고 하였다. 장시란 시장 중에서 일주일이나 순(旬, 열흘)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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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일대의 고려·조선시대 행정구역. 백제 때는 매구리현(買仇里縣)이었다가 신라의 삼국통일 후 지방행정제도 개편으로 757년(경덕왕 16)에 첨탐현(瞻耽縣)으로 개칭되면서 뇌산군(牢山郡)[嘉興縣]의 영현이 되었다. 첨탐현(瞻耽縣)은 고려 전기인 940년(태조 23)에 임회현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1018년(현종 9) 임회현은 폐현되어 진도현에 합해졌다. 『삼국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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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붙여진 이름. 우리 조상은 우리 땅에 정착하여 생활하면서 어디에나 알맞은 지명을 정하고 이를 일상생활에 써왔으며, 그러는 동안에 오늘날과 같이 많은 지명이 축적되었다. 그러므로 지명 속에는 우리 조상의 사고와 의지가 담겨진 것도 있고, 생활 모습을 나타내는 지명도 있어서, 우리 문화 발전의 역사와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는 귀중한 문화재가 된다. 역사 기록이 적은 향토사에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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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떡잎식물 통화식물목 지치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식물. 한자어로는 지초(芝草)·자초(紫草), 자근(紫根)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여러해살이식물로 뿌리는 자줏빛을 띠며, 예전부터 천연염료를 얻거나 민간요법에서 약재로 많이 사용했다. 진도에서는 홍주(紅酒)의 원료로 사용한다. 삼국시대 때부터 고구려·백제·신라 모두 품위(品位)를 색으로 제도화하였는데 지치로 염색한 자색이 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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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금골산 어귀에 있는 고려시대 오층석탑. 현재 금골산의 어귀에 금성초등학교가 있는데, 원래 이곳에는 고려시대 때 지어진 해원사(海院寺)가 있었다고 전한다. 진도 금골산 오층석탑은 금성초등학교 교정 가에 위치해 있다. 진도 금골산 오층석탑은 단층의 기단에 오층의 석탑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특히 1층 탑신의 폭이 좁으면서 매우 높은 것이 특징이다. 지대석은 4장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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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에 속하는 17개 군(郡) 중의 한 군. 진도군은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이다. 면적은 430.6㎢로 전라남도 면적의 3.6%를 차지한다. 진도·상조도·하조도·가사도 등 231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섬의 대부분은 진도군의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진도군에는 진도읍·군내면·고군면·의신면·임회면·지산면·조도면, 가사출장소·거차출장소 등 1개 읍, 6개 면, 2개 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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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관광을 위한 계절별, 주제별, 권역별 경로. 진도는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섬으로 조도면 일대 해역의 서남해 해상국립공원, 울돌목, 진도 용장성, 백조 도래지, 진도 첨찰산의 상록수림 등과 많은 민속무형문화재, 국립남도국악원, 향토문화회관, 기념관, 미술관 등과 아울러 진도개, 구기자, 대파, 검정 쌀, 진도 미역, ‘신비의 바닷길’ 까지 다양한 자연 관광자원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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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있었던 통일신라시대의 지명. 첨탐(瞻眈)이라는 뜻은 제주도가 바라보이는 땅이란 뜻으로 추측된다. 강진군의 마량 일대에 있던 고을 이름 중 탐진(耽津)이라는 곳이 있었다. 이는 탐라국(제주도)을 건너다니던 나루터라 하여 붙여진 명칭이었다. 삼국시대 백제의 매구리현(買仇里縣)인데, 신라의 삼국 통일 후 지방 관제 개편으로 757년(경덕왕 16) 첨탐현(瞻耽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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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시대 마한의 54소국(小國) 중 한 나라. 『삼국지(三國志)』「위서」 동이전 한조(韓條)에는 우리나라 고대 삼한의 여러 소국 이름이 열거되어 있다. 이들 나라 이름은 당시의 중국 상고음(上古音)에 따라 한자로 표기되어 있는데, 중국 고대의 북방음은 현행 우리 한자음에 가까우므로 이들 나라의 위치 비정에 많은 도움이 된다. 초산도비리국의 ‘초(楚)’는 중국 고대음이 ‘tsi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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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흙(점토)을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 구석기시대에는 주로 석기만 사용하고 토기는 아직 출현하지 않았다. 토기의 출현은 신석기시대부터이다. 이는 구석기시대의 수렵, 채집생활이 신석기시대에 와서 농경을 바탕으로 하는 정착생활로 전환되면서 식량을 저장하고, 음식을 끓이고, 식수를 담아두는 용기가 필요하게 되면서 출현하였다. 처음에는 자연적인 구덩이나 풀로 만든 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