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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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에서 행해지는 진도씻김굿 중 제석굿 대목의 하나. 성국터잡기는 죽은 사람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행하는 진도씻김굿 중에서 제석굿 대목의 하나로, 명당터 잡기와 지경 다지기 중간에 노래가 아닌 말로 연행이 이루어진다. 명당을 잡었으니 성국토를 한번 바래 봅시다. 동은 갑을목인데 목성이요, 남은 병진화터 화성이요, 서는 경진김인데 금성이요, 북은 임계순데 수성이라, 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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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에 속하는 행정리. 주산인 가인봉(佳人峰)[291m]의 ‘가’자를 따고 지경(地境) 계자를 붙여서 가계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가계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금계리에 병합되어 고군면으로 편입되었다. 1980년 가계리 동쪽에 있던 용호리가 가계리에서 분리되었다. 첨찰산에서 남서쪽으로 뻗은 가인봉과 죽제산에서 남서쪽으로 뻗은 미봉(米峰)[24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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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정을 시조로 하고 가흥을 관향으로 하는 진도 세거성씨의 하나. 가흥(嘉興)은 고려 때 진도군 서북쪽에 있던 고을 이름으로 백제 때에는 도산(徒山) 혹은 원산(猿山)으로 불렸다. 신라 때 와서 뇌산현(牢山縣)으로 고쳤으며, 고려 때 가흥(嘉興)이 되어 진도에 속하게 되었다. 가흥을 본관으로 하는 김씨가 『증보문헌비고』에 소개되어 있다. 가흥김씨(嘉興金氏)의 선계(先系)는 신라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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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에 속하는 행정리. 1600년 경 임회배씨가 입향하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보상리·보하리와 함께 보전리에 병합되었다. 서쪽·북쪽·남쪽은 구릉성 산지로 둘러싸여 있다. 갈두리 남쪽에는 선동산(銑銅山)[206m]이 위치한다. 서쪽과 북쪽 산지는 황해와 맞닿아 있다. 동쪽과 동남쪽으로는 넓은 논이 펼쳐져 있다. 동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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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강개머리라고 불렀으나 그 유래는 알 수 없고, 음과 뜻에 맞추어서 강계(江界)로 바꾸었다고 한다. 1720년 경 최초로 신안주씨가 정착하였고, 그 후 밀양박씨·김해김씨·청주한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쪽에 여귀산(女貴山)[458.7m], 북쪽에 봉호산(峰虎山)[191.1m]이 있으며, 동쪽과 동남쪽으로는 남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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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마을의 형세가 대덕산 사잣골의 기세에 대적할 만한 큰 용과 같다하여 거룡리라 부르게 되었다. 동복오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진도군 명금면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사잣골 또는 거룡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명금면 신정리·노상리·사정리·원두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거룡리라 하여 의신면에 편입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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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고방리는 사방이 산지로 둘러싸여 있어 방어에 유리했기 때문에 삼별초군이 피신했던 곳이기도 하다. 예전의 지명은 고방(古方)이었다고 하나, 석교리(石橋里) 동쪽 높은 곳에 위치하기 때문에 고방(高方)이었다고 하는 설도 있다. 창녕조씨가 처음으로 들어왔으며, 이후 1895년 석교리에서 밀양박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1914년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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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1554년경 김씨, 박씨, 곽씨가 입향하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래 진도군 지산면의 지역으로서, 지력산의 목장을 관리하는 관마청이 있으므로 관마청 또는 관마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수장리를 병합하여 관마리가 되었다. 마을위의 낮은 산과 동쪽의 부용산(芙容山)[221m]에서 흘러내린 물줄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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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이후 진도에 세거해 온 성씨. 신라 종성(宗姓)인 김씨(金氏)의 후예로, 송악(松嶽)에서 태봉국(泰封國)을 세웠던 궁예(弓裔)의 6세손 이종금(李宗金)을 시조(始祖)로 하고 있다. 이종금은 1010년(고려 현종 원년) 거란의 40만 대군이 침략하였을 때 강감찬(姜邯贊)의 휘하로 들어가 여러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으며, 1018년(현종 9) 3차로 재침해 온 거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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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상만리에 속하는 행정리. 마을 앞 바다에서 고기가 많이 잡히고 해산물이 풍부하여 ‘황금리’라고 불리었으나 그 후 귀한 땅이라 귀(貴)자를 따고 길성(吉星)에서 성을 따서 귀성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1600년경 밀양박씨가 해남군에서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4년 12월 31일 현재 귀성리에는 총 59세대에 129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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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금갑리는 1431년(세종 13) 수군진이 설치되어 수군만호가 주둔했던 군사 요충지였다. 조선시대 금갑진(金甲鎭)이 있었으므로 금갑진 또는 금갑이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전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1895년 수군진이 폐지되면서 진도군 명금면으로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갑도리와 활곡리 일부를 병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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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에 속하는 법정리. 금계리는 진도군 고군면에 있는 법정리로서, 행정리로는 가계리, 회동리, 용호리, 금호리를 포함하고 있다. 금호리는 섬이며, 다른 마을들도 해안과 인접하고 있다. ‘신비의 바닷길’이 열리는 장소가 바로 이곳이다. 금호리와 가계리의 마을 이름에서 각각 한 자(字)씩을 따서 금계리라 하였다. 본래 진도군 고일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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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둔전리에 속하는 행정리. 마을에 특별히 전하는 입향조는 없으며, 일제강점기 때 신동마을 등성이에 주변의 영세민이 들어오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남쪽의 금골산(金骨山), 서쪽의 도암산, 북쪽의 망금산(望金山)[111m] 사이 낮은 구릉지에 있다. 면의 중부에 있으며, 동쪽은 바다, 서쪽은 고지리, 남쪽은 안농리, 북쪽은 녹진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교통은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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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금계리에 속하는 행정리. 금호리란 명칭은 마을이 위치한 금호도에서 유래되었다. 금호도는 금(金)섬이라고 불리다가 섬과 섬 사이의 바다가 호수처럼 잔잔하다고 하여 금호도로 바뀌었다는 설이 있다. 섬에 보물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고, 삼별초 항쟁 당시 정4품 벼슬을 한 김시랑이 들어와 살았다고 해서 그의 성(姓)을 따서 김(金)씨섬이라고도 불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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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의 전통 세습무계. 진도의 무계 간 혼인관계를 보면 다른 무계집안과 마찬가지로 김씨 또한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는 진도의 대표적인 무계집안이다. 과거에 이 집안에 어떤 예술인들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현대로 들어오면 김득수[1916~1990, 진도북놀이 기·예능보유자], 김대례[1935~ , 진도씻김굿 기·예능보유자], 김귀봉[1935~ , 진도다시래기 기·예능보유자] 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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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무신. 강화도에서는 김통정이 강화 교동면 출신으로 구전되어 오고 있다. 김통정에 관해서는 구전설화가 여럿 전해지고 있는데, 그 중에서 탄생설화로는 과부 어머니가 지렁이와 희롱하여 태어났다고 하여 원래 성은 지렁이 ‘진’씨였으나 나중에 김씨로 고쳐 김통정이 되었다고 한다. 김통정은 배중손(裵仲孫) 등과 함께 개경 환도를 반대하여 삼별초를 거느리고 대몽항전을 하였다. 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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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의 세거성씨 중 하나. 김해김씨(金海金氏)의 시조는 수로왕(首露王)이며, 수로왕의 제12대손 김유신(金庾信)을 중시조(中始祖)로 하여 대소 98파로 나뉜다. 그 가운데 김유신의 직계종파(直系宗派)는 고려의 김목경(金牧卿)을 중시조로 하는 경파(京派)와 김익경(金益卿)을 중시조로 하는 사군파(四君派), 김관(金管)을 중시조로 하는 삼현파(三賢派)이다. 1530년에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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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남쪽에 위치하는 남밖다리에 있는 동네라 하여 남동이라 하였다. 또 다른 유래로 조선 시대 남도포영이 있었으므로 남도개·남도포·남도·남동이라 하였다고 한다. 850년 경 평산신씨가 처음으로 들어왔다고 하나 자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이후 김해김씨가 옮겨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진도군 임이면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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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에 속하는 법정리. 내산리는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에 속한 법정리로서 행정리로는 내동리, 마산리, 황조리를 포함하고 있다. 내동리의 ‘내’자(字)와 마산리의 ‘산’자(字)를 따서 내산리라 하였다. 본래 진도군 고이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내동리, 마산리, 황조리 일부와 고일면의 오상리, 원포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내산리라 하고 고군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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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산월리에 속하는 행정리. 산월리(山月里)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하였다. 1424년경에 마씨가 처음으로 들어왔으며 밀양박씨, 전주이씨 등이 들어와 살았다. 그러나 1600년 초에 해적들의 노략질이 심하여 주민들은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으로 옮겨 갔다. 1700년경 황산에 옮겨가 살던 밀양박씨 박권무의 3대손 박성립(朴成岦) 일가가 다시 현재 전라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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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를 짓는 데 사용되는 도구나 기구. 농기구는 농기계가 나오기 전까지 농사가 유일한 생존 수단이었던 전통 농업사회에서 매우 중요하게 사용되었다. 전라남도 진도지역에서 과거에 사용했던 재래 농기구는 인접 지역과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지는 않으며, 주로 농민들이 직접 만들어 쓰거나 대장간을 이용하여 제작하였다.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전라남도 진도지역에서 사용하던 재래 농기구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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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지역에서 혈통에 따라 세습되는 무당인 단골이 독자적으로 소유·관장하는 종교적 영역. 전라남도 진도의 단골판은 여러 단골이 마을별과 씨족별로 모든 단골댁들을 나누어 소유하면서 굿, 맥이, 비손, 명다리, 택일 등의 모든 종교적 의식과 인생상담을 관장하는 독점적인 영역이다. 단골은 자기의 단골댁에서 씻김, 성주굿, 혼사굿 등은 ‘마령’이라 하는 굿대금을 받고, 간단한 환자가 생기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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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동외리에 속하는 행정리. 당동리 마을에 원당이 있어서 당골, 당동, 원당으로 부른 데서 당동리라는 명칭이 유래하였다. 1490년 경 밀양박씨가 처음 들어온 후, 무안박씨와 김해김씨 등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1602년 진도읍성 북쪽에 있던 서원이 당동리 북쪽으로 옮겨지고, 1778년에 양사재(養士齋)가 세워지면서 번창하게 되었다. 1914년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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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만길리에 속한 행정리. 본래 명칭은 ‘섬발구미’ 였으나 ‘섬볼구미’, ‘선볼기미’ 등으로 와전되어 왔으며 섬을 밝힌다는 뜻으로 의역하여 도명(島明)이라고 했다 한다. ‘도목기미’라고 불렀다는 설도 있다. 마을의 입향조는 김씨이다. 처음에는 의신면 도목리에 속한 마을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의거하여 원두리에 속하였다. 1970년 경에 도명리로 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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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만길리에 속하는 행정리. 1790년대 기록에는 도목구미로 되어 있다. 도목구미의 도목은 도목(盜目)과 두목(杜目)의 두 가지로 추정할 수 있다. 도목(盜目)은 조선시대 노략질을 일삼던 왜구를 지키는 목이라는 뜻이며, 두목(杜目) 또한 눈 여겨 보아 막는다는 뜻이다. 이후 도목(盜目)이나 두목(杜目)이 미화되어 도목(桃木)이 된 것으로 보인다. 1914년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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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입향조인 선씨가 바다 건너에서 보니 거북이가 물 위에서 노는 것 같다 하여 동구지(動龜地)라 했으며, 동구지의 안쪽을 안동구지라 했다고 한다. 동구리(洞口里)는 동구지에서 유래하였다. 1820년 경 선씨가 전라북도 진안에서 완도로 가던 도중 풍랑을 만나 동구리에 정착하였다. 처음에는 안동구지의 돌샘 근처로 들어왔는데 꿈에 산신령이 나와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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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에 속한 행정리. 망금산 아래가 되므로 만금리가 되었으며, 또는 명량을 망보는 망터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의이씨가 진도군 고군면에서 살다가 만금리로 입주하면서 형성되었다고 전한다. 본래 진도군 군일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죽전리, 대사리, 신동리 일부를 병합하여 녹진리라 해서 군내면에 편입되었다. 1960년대에 마을이 본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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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1600년대 무안박씨와 목천마씨가 처음으로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진도군 명금면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도명리, 도목리, 도동리, 원두리, 거룡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만길리라 해서 의신면에 편입되었다. 만길리는 낮은 구릉 사이의 깊숙한 계곡에 입지하고 있다. 계곡 사이 북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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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에 속해있는 섬. 모도는 나무가 별로 자라지 않고 띠풀(茅)이 무성해 띠섬(모도)이라고 했다. 섬의 모양은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긴 타원형이다. 섬의 최고점은 48m로 민둥산이 특징이며, 경사가 완만한 구릉지로 이루어져 있고 큰 나무가 없다. 해안은 대부분 사질해안이나 남쪽에는 암석해안이 발달하였다. 약 200m의 백사장이 있다. 해마다 음력 3월 보름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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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출신의 민속예술인. 박종기는 대금산조의 시조로 거론되는 진도의 대표적인 전통악기 연주가이다. 1879년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에서 태어난 뒤 진도읍에서 살다가 20세를 전후로 삼막리로 이사하였다. 어려서부터 대금과 통소를 배웠고, 공력을 쌓아 삼현육각과 산조에 능하였는데, 대금산조의 경우 천하 명인으로 이름을 떨쳤다. 박종기의 아버지 박덕인(朴德寅)[일명 朴基順]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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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백야동과 신동리의 이름을 따서 백동리라 하였다. 1450년 경 인천채씨가 처음으로 들어왔고, 1700년 경 청주한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진도군 임이면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백야동·만세동·신동리를 백동리로 병합하여 임회면에 편입시켰다. 백동리는 희여산[269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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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지막리에 속한 행정리. 본래 진도군 고일면의 지역으로서, 제막이 있었으므로 지막골, 제막, 지막 또는 금학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벌포리와 하율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지막리라 해서 고군면에 편입되었다. 주봉재 동편 산록에 자리하고 있으며, 해안에 경사가 급한 앞산(104m)이 있어 수심이 매우 깊다. 면의 동쪽 중앙의 해안가에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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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수역리에 속하는 행정리. 수역리 북쪽 고갯길에 위치한 동네라 하여 북치리(北峙里)라 하였다. 1770년에 경주정씨 정세백(鄭世伯)이 처음 들어온 후, 김해김씨·경주박씨 등이 농사를 짓기 위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군내면에 속해 있었으나 1973년 진도읍으로 편입되었다. 수유방조제가 건설되기 전에는 바다와 닿아 있어 요망바위라는 곳에 포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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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에 속한 행정리. 마을의 입향조는 민씨와 박씨이다. 본래는 진도군 의신면의 지역으로서 내가 비껴 흐르므로 비끼내, 빗내 또는 사천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사상리와 사하리, 영산리, 논수동 등의 일부를 병합하여 사천리라 하여 의신면에 편입되었다. 사천리 마을이 커짐에 따라 사상리와 사하리로 구분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다.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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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에 자리 잡은 마을. 원래 군내면 산너메 동네로 소포동에서 잔등재를 넘어가기 때문에 한문으로 산월(山越)이라 했으나 구한말에 산월(山月)로 바뀌었다. 김해김씨 사군파 임진왜란 공신 김완(金完) 장군의 종손 김세훈(金世勳)이 들어와 자리를 잡아 김씨 사당 광덕사(廣德祠)가 있다. 또 다른 설에 의하면 1424년경 김해김씨 김여숙(金汝淑)의 후손 김상태, 김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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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산의 형세를 연꽃으로 보아 연동(蓮洞)이라 하였다. 연동 내에 외연동과 내연동의 두 마을이 있었는데 그 중 외연동(外蓮洞)이 상연리(上蓮里)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1670년경 평산신씨가 처음 들어왔다고 하나 자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1850년경 도강김씨가 전라북도 무안군에서 제주도로 향하던 중 폭풍우를 만나 상연리에 정착하면서 마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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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원래 명칭은 서망(鼠望)으로, 쥐가 앞의 쌀섬[白米島]을 바라보며 어떻게 건너갈지를 생각하는 형세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그러나 후에 마을 이름에 쥐를 의미하는 서(鼠)자를 쓰는 것은 좋지 않으며, 마을의 위치가 서쪽이니 발음이 같은 서(西)로 바꾸어 서망(西望)이 되었다 한다. 1750년경 평산신씨가 처음 들어왔다고 하나 자세한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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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교동리에 속하는 행정리. 진도읍성의 서문 밖이라 하여 ‘섬밖에’로 부르다가 서외리(西外里)로 바뀌었다. 1460년경 창령조씨 윤문(胤文)이 오산에서 이주한 것을 시작으로 전주이씨, 김해김씨 등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2014년 12월 31일 현재 총 348세대 808명이 살고 있으며 주요 성씨는 박씨와 김씨이다. 주요 농작물은 벼, 구기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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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학이 사는 곳이라 하여 선학(仙鶴)이라 하였는데,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이곳 지형이 마늘 목처럼 생겼다 하여 산항(蒜項)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1400년경 김해김씨가 선항리의 비옥한 토지와 학이 사는 것을 보고 처음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그 후 제주양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광전리·하미리·장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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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를 본관으로 하거나 진도에 세거해 온 성씨. 조선 초기에 편찬된『세종실록 지리지(世宗實錄 地理志)』 ‘진도군조’는 진도 토박이 성씨를 살필 수 있는 자료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세종실록 지리지』 ‘진도군조’에는 조선 개국 후 없어진 고을 이름과 토성(土姓)이 나오는데, 이 토성들이 고려 때 진도 토박이 성씨로 추정된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나타난 진도 성씨는 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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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지역에서 성씨가 대대로 세거한 지역. 고려조는 940년(태조 23)에 지방 구역과 명칭을 새로 정하고 그 지역 공무를 맡을 토성(土姓)을 정했다. 당시 정부는 지방 토호 중에서 가장 세력이 있는 토호를 호장(戶長) 또는 상대등(上大等)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지방 업무를 관할하게 했다. 이들은 그 지역의 토박이 성인 토성을 썼다. 조선조 초엽까지도 고을마다 토박이 성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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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산월리에 속하는 행정리. 1643년대 경주최씨 최석후(崔碩厚)가 처음 입거한 뒤 밀양박씨, 김해김씨 등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전해온다.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에 속해 있다가 1973년 진도읍에 편입되었다. 2014년 12월 31일 현재 소포리 지역에는 총 49세대에 8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주요 성씨는 김씨와 박씨이다. 주로 벼, 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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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초사리에 속하는 행정리. 송천구미와 군포마을을 합하여 송군리라 하였다. 인동장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군포(軍浦)마을은 조선시대 군선(軍船)이 주둔했던 포구로 송천구미와 합하여 송군포(松軍浦)라 하였으며, 현재는 군포(群浦)로 바꾸었다. 송군리는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의신면 초사리로 병합되었다. 의신면의 남쪽 반도에 위치하여 삼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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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마을의 옛 이름이 소제(素堤)였다는 설과 마을에 소나무 정자가 있어서 송정(松亭)이라고 했다는 설이 전한다. 밀양박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진도군 명금면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의해 죽청리, 송정리, 활곡리 일부를 병합하여 송정리라 하였으며 의신면에 편입되었다. 태학봉(太鶴峰)과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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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에 있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밀양박씨가 처음 입향하여 마을을 형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래 진도군 지산면의 지역으로서 송호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유목리를 병합하여 송호리가 되었다. 동쪽에 철마산을 비롯하여 대부분이 100m 내외의 산자락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높은 산이 없어 동쪽의 송호리에서 모인 물로 인근의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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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수유리에 속하는 행정리. 1500년 경부터 경주이씨 이태훈이 어업에 종사하기 위하여 처음 입거한 후 김해김씨, 밀양박씨 등이 입주하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유리는 바굼섬이라고도 불리다가 1789년에는 수유미(水流尾)라 했으며 천유리(川游里), 지소동(紙所洞) 등의 동네가 있었다. 1895년 진도군 군이면에 속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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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신동리(新洞里)라 하였다. 1700년경 황씨가 의신면 금갑리에서 임회면 신동리로 들어왔으며, 1750년경 진주강씨 등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백야동·만세동과 함께 백동리로 병합하여 임회면에 편입되었다. 연대산[148.8m] 남서쪽 완경사면에 입지한다. 신동리 배후의 완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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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거룡리에 속하는 행정리. 연안차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진도군 명금면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의신면 거룡리에 편입되었다. 신정리는 구릉성 산지로 둘러싸여 있으며, 남서쪽으로 신정제(新亭堤)가 위치하고 있다. 남쪽은 사정리, 동쪽은 만길리, 북동쪽은 거룡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18번 국도에서 갈라진 2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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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의 세거성씨 중 하나. 양천허씨의 연원은 가락국(駕洛國) 김수로왕(金首露王)[김해김씨의 시조]의 비(妃) 허황옥(許黃玉)에게 둔다. 허황후(許皇后)는 본래 인도의 아유타국(阿踰陀國)의 공주로서 김수로왕의 비가 되어 아들 10명을 낳았다. 이 중 맏아들 등(登)은 김씨(金氏)로 정통을 잇게 하였고, 두 아들은 황후의 뜻을 살려 허씨를 사성(賜姓)하였다. 허씨의 각 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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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가 무대 위에서 대본에 따라 동작과 대사를 통하여 표현하는 예술 형태인 연극과 스크린 상에 움직이는 영상(映像)을 이르는 영화를 총괄적으로 아우르는 말. 연극은 삶의 근원적·총체적 경험에 기원을 두고 있어서 다른 어떤 문화적 산물에 못지않게 역사적·지역적·민족적 소산인데 반하여, 영화는 제작과정에 창조적 요소와 기계·기술적 요소, 그리고 경제적 요소가 합쳐져서 만들어진다.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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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의 법정리인 둔전리에 속한 행정리. 1800년경 서씨가 처음 시거하였다고 전한다. 본래 진도군 군일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연산리와 신덕리, 덕병리를 병합하여 둔전리라 하여 군내면에 편입되었다. 북쪽에는 금골산, 남쪽에는 고두산(高頭山)[252m]의 줄기가 동서로 뻗어 있다. 마을은 서쪽 사면 아래에 있다. 마을 앞에 있는 농경지는 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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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앞산이 구슬처럼 생겼다 하여 연주(連珠) 또는 연지동이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밀양박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진도군 의신면에 속한 지역이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가향리와 응덕리를 병합하여 연주리라 하였다. 첨찰산(尖察山)과 덕신산(德神山)으로 이어진 산릉의 끝자락에 입지하고 있다. 남쪽으로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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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에 있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망바우 쪽 마을 앞에 수백그루의 버드나무가 심어져 있어 오류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통일신라 흥덕왕 때 장보고가 청해진에 근거하였을 때 마을 동쪽 소바우에 갈영월이라는 사람이 장보고 명을 받아 최초로 입주하였다는 것과 삼별초가 제주도로 쫓겨 간 뒤 진부리의 8세대는 수산물의 소득으로는 생활이 곤란하다 하여 고래나 동아새 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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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의신향의 옥터가 되므로 옥대라고 하였다는 설과 왕자가 귀양을 와서 왕대(王垈)라 하다가 왕자가 돌아간 뒤에 옥대로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전한다. 김해김씨와 밀양박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진도군 의신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중리 일부를 병합하여 옥대리라 하였다. 북쪽 덕신산(德神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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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동외리에 속하는 행정리. 읍성을 축조할 때 성내에 살던 장흥임씨가 성 밖 동쪽 용두리에 이주했다고 전한다. 이후 밀양박씨, 김해김씨, 전주이씨 등이 입거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4년 12월 31일 현재 용두리에는 총 348세대에 879명(남 424명, 여 455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주요 성씨는 박씨와 김씨이다. 주요 농작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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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읍 동외리 용두마을에서 매년 음력 2월 1일에 올리는 마을제사. 본래 진도군 부내면에 속했는데, 진도읍성의 동문 밖이 되므로 동문밖, 또는 동문외라 하였다. 그러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용상리, 용하리, 당동리 일부를 병합하여 동외리라고 불리게 되었다. 읍성 축조 이후 장흥임씨가 입향한 후 밀양박씨, 김해김씨, 전주이씨 등이 입거하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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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2년 당시의 동안(洞案)으로 보면, 박씨 36가구, 곽씨 20가구, 홍씨 16가구, 김씨 10가구, 조씨 6가구, 양씨 6가구, 하씨 5가구, 이씨 2가구 등 총 101가구였다. 2005년 12월 현재 행정상의 기준인 75세대를 대상으로 성별 세대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장 많은 성씨 순으로 정리하면, 박씨 29세대, 곽씨 21세대, 조씨 8세대, 김씨 6세대, 고씨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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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는 밀양박씨와 무안박씨로 나누어져 있는데, 무안박씨는 4가구이고, 나머지는 밀양박씨이다. 그러므로 박씨는 거의 대부분 혈연관계라고 할 수 있다. 곽씨는 장파와 중파로 나누어지는데, 거의 절반 정도 된다. 조씨는 창녕조씨이고, 김씨는 김해김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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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금계리에 있는 행정리. 마을 모양이 용의 머리처럼 생겼다는 용산과 호수의 입구라는 호구가 합쳐져 용호리라고 하였다. 호구는 사실 가계해수욕장의 사빈이 형성한 과거의 석호지역으로 호수 호(湖)가 붙은 것으로 보인다. 본래 진도군 고일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호구리, 용산리, 도장리를 병합하여 용산과 호구의 이름을 따서 용호리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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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오류리에 있는 행정리. 버드나무 다리를 한자화하여 유교(柳橋)라 했다. 과거 마을 앞에 버드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었다. 통일신라 흥덕왕 때 장보고가 청해진에 근거하였을 때 마을 동쪽 소바우에 갈영월이라는 사람이 장보고의 명을 받아 최초로 입주하였다는 오류마을의 설에 의해 이 마을도 그 때나 그 이후에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유교리가 속한 오류리는 본래 진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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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연주리에 속하는 행정리. 밀양박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진도군 의신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의신면 연주리로 편입되었다. 첨찰산(尖察山)과 덕신산(德神山)으로 이어진 산록 완경사면에 입지하고 있다. 본래 남쪽은 남해와 접하고 있었으나 방조제 축조로 농경지가 조성되어 있다. 남동쪽으로 연주리와 접하고 있다. 18번 국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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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옥대리에 속하는 행정리. 본래 해안가 마을로 정지머리, 정주두(亭舟頭)라고 하다가 후에 정지리가 되었다고 한다. 김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북동쪽으로 큰봉우리가 위치하고 있다. 도목방조제가 축조된 후 마을 앞으로 농경지가 조성되었고, 농경지 사이로는 의신천(義新川)이 흐르고 있다. 북동쪽은 청룡리, 북쪽은 중리·옥대리, 북서쪽은 돈지리, 서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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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남동리에 속하는 행정리. 조수가 가장 낮은 때인 음력 8일과 24일을 ‘조금’이라 일컫는다. 조금리는 욕실 고막매의 건널목이었는데 바닷물이 드나들어 조금에는 건널 수 있지만 다른 물때는 나룻배로 건너다녔다 하는 데서 유래하였다. 1400년경 김해김씨가 입향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전해온다. 일제강점기 진도군 진도읍 성내리의 정기시장이 이곳으로 이주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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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있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예전에는 죽림리 지역이 속에 깊숙이 있다하여 ‘속동’이라 칭하였는데 ‘죽림’으로 변하였다고 한다. 이는 비봉귀소(飛鳳歸巢)라는 명당에서 연유하였다고 하는데, 예부터로 봉은 죽실(竹實)을 먹는다는 이유로 붙여진 것이며, 봉치라는 재의 이름도 있다. 1350년경 나주임씨가 정착한 것이 시초라 전해지며, 이후 김해김씨와 전주이씨 등이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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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에 속하는 행정리. 1950년경 김해김씨가 처음 입거하였다. 1975년 소포방조제 완성 후, 간척사업으로 조성된 농경지에 농사를 짓기 위해 전주이씨, 경주정씨 등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문마산과 남산(南山)으로 이어진 산록 완경사면에 입지한다. 북쪽 문마산을 밭으로 개간하였으며, 서쪽으로는 농경지가 펼쳐져 있다. 북동쪽은 남산리, 북서쪽은 포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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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송정리에 속하는 행정리. 마을에 대나무가 많아 죽골이라 하다가 죽청(竹靑)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송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의신면 송정리에 편입되었다. 대학봉(大鶴峰)과 봉호산(峰虎山)으로 이어진 산릉 완경사면에 입지하고 있다. 죽청리의 오른쪽에는 성주봉이 솟아 있고, 왼쪽에는 용수봉(龍首峯)이 뻗어내려 자연경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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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옥대리에 속하는 행정리. 옛날에는 의신(義新)이라 불렀는데, 왕봉산 밑에 상리(上里)가 있었고, 그 아래 있는 마을이라 하여 중리(中里)가 되었다. 이씨들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중리의 일부가 옥대리에 병합되었다. 옛날 중리에 있던 의신면사무소는 돈지리로 옮겨졌다. 첨찰산과 덕신산(德神山)[389m]으로 이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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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오산리에 있는 행정리. 지수리의 확실한 명칭유래는 알 수 없으나, 한자어로 진도의 명주인 홍주를 만드는 지초 지(芝)와 물 수(水)를 의미한다. 본래 지수리가 속한 오산리는 진도군 고일면의 지역으로서 외딴 산이 있으므로 ‘오미’ 또는 ‘오산’이라고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지수리, 오상리, 오하리의 각 일부와 고이면의 고성리, 황조리의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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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에 속하는 행정리. 청룡은 사신(四神) 또는 사수(四獸)의 하나로 동서남북 중 동쪽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알려져 있다. 위치가 진도군 의신면 옥대리의 청룡(왼쪽 즉, 동쪽)이 되므로 청룡리라고 했다는 설과 마을의 주산이 청룡 모양이라 하여 청룡리라고 했다는 두 설이 전해진다. 마을의 입향조는 청주한씨로 알려져 있다. 또한 1887년경 김해김씨 11대 김용(金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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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수유리에 속하는 행정리. 청룡은 사신(四神) 또는 사수(四獸)의 하나로 동서남북 중 동쪽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알려져 있다. 위치가 진도군 의신면 옥대리의 청룡(왼쪽 즉 동쪽)이 되므로 청룡리라고 했다는 설과 마을의 주산이 청룡 모양이라 하여 청룡리라고 했다는 두 설이 전해진다. 마을의 입향조는 청주한씨로 알려져 있다. 또한 1887년경 김해김씨 11대 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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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초사리에 속한 행정리. 초사리의 행정리인 초상리와 초하리의 중간에 위치하는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하였다. 마씨와 오씨가 초전마을의 농경지를 따라 옮겨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초중리는 본래 진도군 의신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초사리로 편입되었다. 덕신산(德神山) 계곡의 아래쪽에 입지하고 있다. 소하천인 초상천(草上川)이 북쪽에서 남쪽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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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초사리에 속한 행정리. 전주이씨 이재방의 선조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초평리는 본래 진도군 의신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초사리로 편입되었다. 초평리는 덕신산(德神山) 자락의 끝에 입지하고 있으며, 동남쪽으로 남해와 접하고 있다. 소하천인 초상천(草上川)이 흘러와 남해로 유입된다. 북서쪽으로 초하리와 접하고 있다. 18번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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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초사리에 속하는 행정리. 풀이 무성하여 초전마을로 부르다가 초사리의 가장 아래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데서 초하리라 하였다. 나씨와 마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초하리 본래 진도군 의신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초사리로 편입되었다. 덕신산(德神山) 계곡의 아래쪽에 입지하고 있다. 소하천인 초상천(草上川)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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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죽림리에 있는 행정리. 여귀산(女貴山)을 중심으로 좌우에 두 개의 돌탑이 있었는데 상만리로 옮겼다는 설이 있으며, 예전에 탑이 있어서 ‘탑립’으로 불렸다고 한다. 1600년경 해남군에 살던 김해김씨가 이곳을 지나다가 산의 형세가 좋아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탑립리가 속한 죽림리는 본래 진도군 임일면의 지역으로서 대숲이 많으므로 죽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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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에 속하는 행정리. 진도읍성이 축조되면서 성 밖의 통샘이라는 샘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었다는데서 유래되었다. 1450년경 전주이씨 일가가 입거하였고 1700년까지 타 성씨들이 입거하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통정리는 본래 진도군 부내면에 속해 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두정리·원동리·동현리·남편리·통정리를 병합하여 ‘두정’과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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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연동리에 있는 행정리. 예전에는 ‘팽목구미’라 하여 나무가 울창한 바닷가 마을이었다고 한다. 그 뒤 구미라는 말이 탈락되고 ‘팽목’으로 정착되었다. 일설에는 팽목리에 속한 도리섬에 오래 전에 팽나무가 많이 있어서 팽목이라 불렸다고도 한다. 1600년경 김해김씨가 시거하였고, 이후에 전주이씨가 입촌하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래 진도군 임이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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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도평리에 있는 행정리. 처음 입향한 곽평산의 이름을 따서 평산이라고 불리웠다고 한다. 첨찰산의 정기를 받은 출석봉 아래에서 살던 현풍곽씨의 평산이라는 사람이 처음에 주거를 정했고 그 뒤 최씨, 이씨, 한씨, 조씨 등 5성이 모여서 촌락이 형성되었다. 본래 진도군 고이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도론리와 평산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도평리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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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에 속하는 행정리. 고작방조제가 축조되기 전에는 진도읍의 포구마을이었으므로 포구리라 하였다. 1910년경 김해김씨가 처음으로 포구리로 들어왔다. 1926년경 밀양박씨 등이 간척지에 농사를 짓기 위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1926년 일본 기업인 진도식산주식회사에서 포구리에 고작방조제를 축조하기 시작하면서 포구였던 마을 주변이 간척지가 되었다. 문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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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돈지리에 속한 행정리. 향교리의 옛 지명은 ‘생기동(生起洞)’이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왜구들의 노략질로 인해 진도를 떠났다가 향(鄕)이 설치되면서 다시 돌아온 주민들이 생기(生氣)를 찾으라는 뜻에서 생기동으로 불렸다는 설이 전한다. 1789년 기록에 의하면 ‘향교동리’로 되어 있어 마을에 향교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지금의 ‘향교리’는 ‘향교동리’에서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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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용호리에 있는 행정리. 1350년 경 길우마을 뒤 웡꿀(원동)에 진주하씨가 입촌하였으나 터가 협소하여 1400년경에 진주하씨 21대손 하윤상이 시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호구리가 속한 용호리는 본래 진도군 임일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용산리, 도장리와 함께 호구리를 병합하여 용산과 호구의 이름을 따서 용호리라 하여 임회면에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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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내산리에 있는 행정리. 마을명이 특이하게 황조(皇朝)여서 유래가 많다. 일설에 황혼락조(黃昏落照)가 아름다워서 황조(黃照)라고 했다는 설도 있지만 신빙성이 낮다고 한다. 마을을 성립한 성씨가 황성(皇城)김씨여서 동명에 ‘황(皇)’자를 따고 ‘조(朝)’자를 붙여서 미화시킨 이름이라고 알려져 있다. 18세기 이전에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보이며, 화순 동복오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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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금계리에 있는 행정리. 박일웅(朴一雄)이 동리를 창립하고 간 뒤에 마을을 ‘다시 되돌아본다’는 뜻에서 회동(回洞)이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회동리가 속한 금계리는 본래 진도군 고일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가계리, 회동리, 금호리 일부를 병합하여 금호와 가계의 이름을 따서 금계리라 하여 고군면에 편입되었다. 첨찰산의 맥이 남서 방향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