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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500270
한자 金通精
영어음역 Kim Tongjeong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라남도 진도군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김병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무신
출신지 강화 교동면 출신으로 구전됨
몰년 1273년연표보기

[정의]

고려 후기의 무신.

[개설]

강화도에서는 김통정이 강화 교동면 출신으로 구전되어 오고 있다. 김통정에 관해서는 구전설화가 여럿 전해지고 있는데, 그 중에서 탄생설화로는 과부 어머니가 지렁이와 희롱하여 태어났다고 하여 원래 성은 지렁이 ‘진’씨였으나 나중에 김씨로 고쳐 김통정이 되었다고 한다.

김통정배중손(裵仲孫) 등과 함께 개경 환도를 반대하여 삼별초를 거느리고 대몽항전을 하였다. 배중손이 진도에서 여몽연합군에 의해 죽고 삼별초가 제주도로 옮긴 후 마지막까지 대몽항전을 이끈 장수였다.

[활동사항]

삼별초는 1270년(원종 11) 6월 반란을 일으켜 원종을 폐위하고 승화후 왕온을 왕으로 옹립하였다. 반란 3일 뒤 삼별초는 강화도에 남아 있는 귀족·고관의 가족들을 인질로 삼아 배를 태워 진도로 보내고 진도를 근거지로 항전하였다.

그러나 1271년(원종 12) 5월 김방경(金方慶)·홍다구(洪茶丘)와 몽고장군 흔도(忻都) 등이 이끄는 여몽연합군에 의해 진도는 함락되었다. 이때 국왕으로 옹립한 왕온홍다구의 손에 죽고 배중손도 전사한 것으로 보인다.

궤멸적 타격을 입은 삼별초김통정을 중심으로 전열을 재정비하여 본거지를 제주도로 옮겼다. 원의 세조는 일본 정벌의 기지로 탐라를 중시해 1272년 8월 사신을 보내 탐라 공략을 적극적으로 할 것을 촉구하였다. 이에 홍다구는 조카 낭장 김찬(金贊)이소(李邵) 등을 보내어 김통정을 회유하였다. 그러나 김통정김찬을 억류하고 나머지는 다 죽이는 등 완강하게 저항하였다.

1273년(원종 14) 2월, 김방경·흔도·홍다구의 연합군이 병선 160척, 수륙군 1만 명을 동원하여 탐라를 공격해 삼별초를 평정하였다. 1273년 4월 김통정은 끝까지 항복하지 않고 산으로 들어가 목매달아 죽었고, 남은 무리 1,300여 명은 포로가 되었다.

[관련유적]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돈지리 들판을 흐르는 우황천에 김통정과 관련 있는 유적지로 여기급창 둠벙(女妓及唱 둠벙)이 있다. 잔여 삼별초를 이끌고 제주도로 퇴각하는 김통정을 따라가다가 뒤쳐진 여기(女妓)와 급창(及唱) 등 부녀자들과 시종들이 목숨을 끊었다는 못이다. 지금은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전설은 남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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