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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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마루바닥을 지면에서 한층 높게 지은 다락식의 집. 누정은 누각과 정자를 함께 이르는 말이다. 누각(樓閣)은 성문 위에 지은 집이나 전망이 좋은 곳에 2층 형으로 지은 전망대를 이른다. 정자(亭子)는 휴게를 위해 지은 집이다. 누정 중에는 숙소인 원(院)의 기능을 겸하는 경우도 있다. 진도지역의 경우 1923년에 나온 『중증진도읍지』에 보면 11개의 누정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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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1464년(세조 10)~1467년(세조 13)까지 제13대 진도군수로 재임하였다. 박후생은 진도군수로 부임한 후, 1207년(고려 희종 3년)에 창건되었으나 잦은 왜구 침입과 여말선초의 어수선한 상황 때문에 버려져 있던 벽파정(碧波亭)을 1465년(세조 11)에 중건하였다. 벽파정 준공 직후 그의 친구였던 이숙감(李淑瑊)이 진도에 와서 진도의 풍광과 벽파진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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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에 있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벽파정(碧波亭)이 있었으므로 벽파정 또는 벽정(碧亭), 벽동(碧洞)이라 하였다. 벽파적이 벽파장으로 와전되었으며, 뱀파장, 별파장 등도 모두 벽파정의 와전이다. 벽파는 해변의 벽도를 미화해서 붙인 이름이고, 벽파항이라고도 한다. 1500년경 형성되어 마을의 입향조는 이천서씨이다. 본래 진도군 고일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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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군 고군면 벽파리 벽파마을에서 매년 설날, 정월 대보름, 추석에 당집의 당할아버지께 올리는 마을제사. 벽파리는 본래 전라남도 진도군 고일면 지역으로서, 벽파정이 있어서 벽파정, 또는 벽정이라 불렸다. 그러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연동리, 벽동리와 군일면의 용장리를 병합하여 벽파리가 되면서 고군면에 편입되었다. 마을의 입향조는 이천서씨이고, 1500년경 마을이 형성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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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부터 민간에서 구비전승되어 오는 이야기. 서사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는 설화는 신화와 전설, 민담으로 세분할 수 있다. 설화는 오래전부터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어 오기 때문에 전승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그 속에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전라남도 진도군에서 구비전승되어 오는 설화 역시 진도사람들의 경험과 의식이 투영되어 있을 것이다. 신화와 전설, 민담으로 나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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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기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시조 조계룡의 28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조정통(曺精通), 할아버지는 조한용(曺漢龍), 아버지는 조경숙(曺景淑)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와는 사촌 동서 간이다. 부인은 강윤충(康允忠)의 딸이며, 아들 조근(曺謹)과 조심(曺諶)을 두었다. 조희직은 1366년(공민왕 15) 정언(正言, 종6품) 재임 중 정추(鄭樞)·이존오(李存吾)와 함께 신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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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붙여진 이름. 우리 조상은 우리 땅에 정착하여 생활하면서 어디에나 알맞은 지명을 정하고 이를 일상생활에 써왔으며, 그러는 동안에 오늘날과 같이 많은 지명이 축적되었다. 그러므로 지명 속에는 우리 조상의 사고와 의지가 담겨진 것도 있고, 생활 모습을 나타내는 지명도 있어서, 우리 문화 발전의 역사와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는 귀중한 문화재가 된다. 역사 기록이 적은 향토사에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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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문화권에서 한자(漢字)로 창작된 시. 전라남도 진도군은 여러 전란을 겪었던 불운의 섬이기도 했으나 서해와 남해가 만나는 곳에 위치하여 지리적으로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수많은 문화유적이 남아 있어 섬 자체가 문화유적지라고도 할 수 있다. 지리적 위치상 서울과 멀리 떨어져 있어 조선시대까지 유배지로서의 역할을 했던 섬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로, 진도 사람들의 문집과 한시작품은 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