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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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지역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무덤. 고인돌은 거대한 돌을 괴어 만든 선사 시대의 거석(巨石) 건조물이다. 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무덤으로, 한반도 전역에서 발견된다. 고인돌은 형태에 따라 탁자식(卓子識)·기반식(基盤式)·개석식(蓋石式)으로 구분하곤 한다. 탁자식은 무덤방을 지상에 조성하는 방식이다. 네 개의 굄돌[고임돌] 위에 커다란 덮개돌을 얹은 형태로, 주로 한반도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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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기산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기산리 고인돌이 있는 마을의 지명이 괸돌 마을인 점으로 보아 고인돌과 관련이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포천시 일동면 소재지에서 화현면 방면으로 이어지는 지방도 368호선을 따라 직진하면 LPG 충전소가 나온다. 기산리 고인돌은 충전소를 지나 도로변 우측에 ‘고인돌’이라는 표지석이 있는 ‘고인돌 돼지갈비’ 앞에 위치한다. 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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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만세교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포천시에서 영중면 양문리로 가는 국도 43호선에서 만세교를 건너기 직전 좌회전하여 약 300m 되는 지점에 양돈장이 있는데, 그 남쪽 끝 부분의 논둑에 위치하고 있다. 주소지는 포천시 신북면 만세교리 251-2번지이다. 만세교리 고인돌은 현재 파괴된 상태이기 때문에 원래 형태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남아 있는 덮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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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사직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1942년 조선 총독부가 발간한 『조선 보물 고적 조사 자료』에는 “일동면에서 영평으로 통하는 도로 옆 오른쪽에 자리하며, 장병형을 이루고 가로가 2간(間) 세로 1간 반, 높이 3척 5촌이다. 두 개가 있다. 형상은 대체로 완전하다”라고 하여 사직리 고인돌과 수입리 지석묘가 하나로 묶여서 기록되어 있다. 수입리 지석묘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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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수입 2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수입리 지석묘(水入里支石墓)에서 남쪽으로 50m 거리에 있는 마을 창고 주변에[포천시 일동면 수입 2리 6-4번지] 고인돌 1기가 더 있었는데 마을 진입로를 포장하면서 파괴되어 흩어지고, 일부는 마을에 묻혀 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문화재 관리국에서 1977년에 제작한 『문화 유적 총람』에 현재 남아 있는 1기만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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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자작동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의정부에서 포천읍으로 가는 국도 43호선에 있는 군 헬기장 정문에서 도로 건너편 쪽으로 30~40m 떨어진 지점에 자작동 지석묘(自作洞支石墓)가 있다. 행정 구역으로 포천시 자작동 251-2번지에 속한다. 1996년 9월~1998년 4월 단국 대학교 사학과에서 지표 조사를 하였다. 보석[지석을 보조하기 위하여 지석 외측 주위에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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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추동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추동리 고인돌은 조선 개국 공신 이지란(李之蘭)의 사당인 청해사(淸海祠)에서 서쪽으로 약 10m 떨어진 곳에 있다. 주변 지역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고인돌은 낮은 구릉 끝에 위치한다. 주소지는 포천시 창수면 추동리 434번지이다. 현재 이곳에는 고인돌과 관련된 것으로 보고된 3기의 판석이 있다. 그 가운데 2기의 크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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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금현 5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경기 문화재 대관』-경기도 지정편에는 받침돌이 4개인 것으로 서술되어 있다. 포천시 가산면 금현리 주민들에 의하면, 1970년대 초에 이곳을 지나던 사람이 “돌 하나가 트여 있으니 사람들이 말이 많겠다” 하여 마을 사람들이 남쪽으로 난 입구를 막아 버렸다고 한다. 그 뒤 1997년 8월에 지석묘의 원형을 되찾기 위하여...
유적·유물 산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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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군내면 구읍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유물 산포지. 구읍리 유물 산포지(舊邑里遺物散布址)는 포천시 군내면 구읍리 지방도 325호선과 128호선이 접하는 청성산 아래 경작지에 있다. 경작지는 남향의 완만한 비탈을 이루고 있다. 구읍리 유물 산포지에서는 다수의 기와 및 백자 조각이 수습되고 있다. 구읍리 유물 산포지의 규모는 55×25m이고, 현재는 경작지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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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금주 4리에 있는 구석기 시대의 유물 산포지. 포천 읍내에서 철원 쪽으로 국도 43호선을 따라 올라가면 만세교가 나온다. 이곳에서 일동으로 가는 국도 37호선을 따라 좌회전하여 약 700m 가면 좌측에 야트막한 언덕이 있다. 이 일대를 닭밭이라 하는데, 금주리 유적(金珠里遺蹟)은 이곳에 있다. 금주리 유적에서는 몸돌[99×107×㎝, 1260g]과 격지가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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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길명리에 있는 삼국 시대 집터와 조선 시대의 유물 산포지. 길명리 유적(吉明里遺蹟)은 서고동저(西高東低)의 비교적 편평한 평지에 위치하며, 북쪽에 자리한 금주산의 남쪽 능선 끝부분에 있다. 포천을 지나 신철원으로 가는 국도 43호선을 따라 북쪽으로 가면 만세교가 있다. 이 만세교에서 동쪽으로 연결되어 일동면으로 이어지는 국도 37호선을 따라가면 왼쪽에 길명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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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노곡리에 있는 선사 시대 유적. 노곡리 유적(盧谷里遺蹟)은 포천시 이동면 노곡리에 있는 선사 시대 유적으로, 영평천에 있는 노곡교에서 남동쪽으로 700m 떨어져 있다. 밭을 경작하기 위해 흙을 깎아 낸 과정에서 선사 시대 주거지가 발견되었으며, 선사 시대 토기 조각 등 유물이 채집되었다. 노곡리 유적은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노곡리 1432-1번지에 자리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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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군내면 구읍리 반월산성에서 발견된 청동기 시대로 추정되는 유적. 반월산성(半月山城)은 해발 284.5m의 청성산(靑城山)에 축조된 반월형의 테뫼식 산성으로 전체 둘레는 1,080m이다. 전체적인 형상이 반달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어서 반월산성이라고 불리는데, 포천 지역은 물론 인근 지역에 있는 산성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이다. 1995년 단국 대학교 사학과에서 반월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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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사직리에 있는 구석기 시대 유적. 일동면사무소에서 국도 47호선을 따라 포천시 이동면 방향으로 이동하면 오른쪽으로 사직 주유소가 나온다. 사직 주유소를 지나면 나지막한 언덕을 지나는데, 이 언덕 정상부에 이르면 왼쪽으로 일동 하와이 온천장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온다. 사직리 새터 구석기 유적은 일동 하와이 온천장 입구 일대의 언덕 전체이며, 유물이 발견된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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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성동 5리에 있는 삼국 시대 백제와 신라의 생활 유적지. 성동리 마을 유적은 발굴 결과 주거지 9기, 소형 유구(遺構) 45기, 구상 유구(溝狀遺構) 1기 등이 확인 조사되었다. 출토 유물과 유구의 중복 관계를 바탕으로 신석기 시대 단계, 원삼국 시대 단계, 한성 백제 시대 단계, 신라 시대 단계, 조선 시대 단계 등 대체로 5단계의 유구 점유(占有)가 있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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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성동 3리에 있는 구석기 시대의 유물 산포지. 포천시 영중면 양문 2리에서 동쪽으로 1㎞ 정도 떨어진 곳에 영중면 성동 3리가 있다. 이 마을은 관모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곳을 심산이라고 한다. 성동리 유적1은 마을에서 영평천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성동리 유적1에서는 격지[구석기 시대 석기를 제작하기 위해 역석(礫石) 또는 판석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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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성동 1리에 있는 선사 시대 유물 산포지. 신장리 유적은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성동 1리에 자리하고 있다. 포천시 영중면에서 국도 43호선을 따라 북쪽으로 가다 보면, 영중면 양문리를 관통하고 영중교를 지나 영평천을 건너게 된다. 영중교를 지나면 곧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이 중 북쪽은 영북면 방향, 서남쪽은 연천군 전곡읍 전곡리 방향으로 가는 길이다. 이 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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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양문 2리에 있는 선사 시대의 유물 산포지. 양문리 유적(梁文里遺蹟)은 포천시 영중면 양문 2리에 자리하고 있다. 포천시 영중면에서 국도 43호선을 따라 북쪽으로 가다 보면, 영평천을 가로지르는 영중교에 이르게 된다. 영중교를 건너지 않은 상태에서 오른쪽이 포천시 영중면 양문 2리이다. 양문 2리 마을 회관을 지나 동북쪽으로 약간 오르면 영평천이 잘 내려다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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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연곡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유물 산포지. 연곡리 만가대 유적은 노곡리 유적에서 이동 유원지 방향으로 지방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도로 우측에 비교적 높은 봉우리가 우뚝 서 있다. 이 봉우리를 매바위라 부르는데, 연곡리 만가대 유적은 매바위의 남쪽 400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일명 ‘만가대’라고 불리는 마을 앞에는 영평천에 인접하여 경작지가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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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오가리에 있는 석기 시대의 유물 산포지. 오가리 유적1은 포천시 창수면 오가리에 있는 금수정 터 뒤편 900~1,320㎡ 밭에 분포한다. 주소지는 포천시 창수면 오가리 555번지이다. 주변에 갱신세 퇴적층이 발달하였다. 서너 점의 격지를 찾았다. 이우형에 의하여 석기가 채집된 바 있으나, 실물은 확인하지 못하였다. 1996년 9월~1998년 4월 단국 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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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자일리에 있는 신석기 시대의 유물 산포지. 자일리 신촌 유적은 자일리 팔호 유적에서 동남쪽으로 600~700m 떨어진 포천시 영북면 자일리 신촌 마을에 있으며, 중근봉의 서남 자락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자일리 신촌 유적에서 찍개와 격지를 찾았다. 찍개[11.9×11.4×6m, 1,020g]는 마줏날 찍개로 몸체의 양쪽 끝부분에 날을 마련하였다. 한쪽은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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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자일리에 있는 석기 시대의 유물 산포지. 자일리 팔호 유적은 포천시 영북면 자일리 127번지에 위치한다. 근흥교를 건너기 전에 있는 포천시 영북면 자일리 팔호 마을에 있다. 팔호 마을에 팔호 상회라는 상가가 있으며, 상가를 중심으로 뒤쪽과 도로 건너편에서 유물을 발견하였다. 자일리 팔호 유적에서 찍개, 몸돌, 격지 등을 찾았다. 찍개[13.3×16×9.8㎝]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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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주원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와 삼국 시대의 유물 산포지. 연천군 전곡읍에서 국도 37호선을 따라 포천시 영중면 쪽으로 7.5㎞가량 이동하면 운남교에 이르는데, 주원리 유물 산포지(注院里遺物散布址)는 운남교 동쪽 긴 충적지에 위치한다. 유물이 산포하고 있는 지역은 영평천 남쪽에 해당하며, 바로 옆에 영평천이 흐르고 있어 하천을 끼고 형성된 유적지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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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관인면 중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유적. 포천시 관인면 중리에 있는 할미각담이라 불리는 낮은 언덕에서 민무늬 토기 조각과 반달칼이 보고된 바 있는데, 중리 마산 유적은 이곳에서 약 500m 떨어진 마산이라고 불리는 낮은 산에 있다. 2001년 7월 한탄강 홍수 조절 댐 건립에 따른 문화재 지표 조사에 의해 조사되었으며, 마산이라고 불리는 낮은 산을 개간하면서 확인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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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관인면 중리에 있는 철기 시대의 유적. 중리 용수재울 유적은 2001년 7월 한탄강 홍수 조절 댐 건립에 따른 문화재 지표 조사에 의해 밝혀졌다. 조사는 서울대학교 박물관과 한양대학교 박물관에서 하였다. 유적지가 위치한 곳은 건지천이 한탄강과 합류되기 전에 한 번 돌아나간다고 하여 용수재울이라 불린다. 중리 용수재울 유적은 구석기 유물이 나온 중리 아랫심재 유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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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관인면 중리에 있는 신석기 시대의 유적. 2001년 7월 한탄강 홍수 조절 댐 건립에 따른 문화재 지표 조사에 의해 조사되었으며, 서울 대학교 박물관과 한양 대학교 박물관에서 조사하였다. 포천에서 연천군 전곡읍으로 가는 길에 오거리가 있는데, 이곳에서 포천시 관인면 방향으로 가다 보면 중리 마을이 나온다. 중리 유적(中里遺蹟)은 중리 초등학교 앞으로 할미각담이라고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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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자작동에 있는 백제의 생활 유적지. 포천 자작리 유적지(抱川自作里遺蹟地)는 자작동 고인돌이 있는 곳에서 남쪽으로 150m 정도 떨어져 위치한다. 포천시 자작동 250-3[전], 250-4, 250-6, 250-7, 250-8, 251-2, 377-2 등 7개 필지 1만 5830㎡[4,788평]에 있다. 구덩이의 단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움집 자리 유구(遺構)를 확인할...
능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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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내리에 있는 조선 전기 광원군 이구수의 묘. 광원군(廣原君) 이구수(李耈壽)[1514~1567]는 세종의 다섯째 아들인 밀성군(密城君) 이침(李琛)의 증손이자, 광성정(匡城正) 이전(李銓)의 둘째 아들이다. 어머니는 강릉 김씨(江陵金氏)이며, 부인 동래 정씨(東萊鄭氏)와의 사이에 4남 4녀를 두었다. 종친부 정5품인 광원수(廣原守)로 본인은 벼슬을 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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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고모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권종의 묘와 묘갈. 권종(權悰)[1554~1592]은 임진왜란 당시 금산 군수로 있으면서, 왜적을 만나 접전하던 끝에 중과부적으로 패하고 말았다. 이때 권종은 왕이 계신 북쪽을 향해 크게 절하고 “내 조국은, 내 조국은……” 하고 부르짖으며 죽어 갔다고 한다. 후에 이 소식을 전해들은 선조는 탄식과 애도를 표하였고, 충신 정려(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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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김성대의 묘와 묘비. 김성대(金聲大)[1622~1695]의 자는 이원(而遠)이고, 호는 율강(栗崗)·촌로(村老)이며, 본관은 안산(安山)이다. 고려 시대에 좌복야(左僕射)를 지낸 김긍필(金肯弼)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좌승지(左承旨)로 증직된 김찬(金讚)이고, 어머니는 김정삼(金鼎三)의 딸로 안동 김씨(安東金氏)이다. 부인은 부사(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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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주원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김중행의 묘. 김중행(金仲行)[1397~1453]은 본관이 언양(彦陽)이고, 호는 여계이다. 고려 시대 고종 때 장군인 김취려(金就礪)의 7세손이고, 황해도 관찰사(黃海道觀察使) 김소(金素)의 둘째 아들이다. 1453년(단종 1)에 숭의랑(崇議朗) 군자 주부(軍資主簿)에 이르렀지만, 이후 모든 관직을 버리고 은둔 생활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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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읍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김창흡의 묘와 묘비. 김창흡(金昌翕)[1653~1722]의 자는 자익(子益)이고, 호는 삼연(三淵)이며,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좌의정 김상헌(金尙憲)의 증손이고, 동중추(同中樞) 김광찬(金光燦)의 손자이며,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의 셋째 아들이다. 어머니는 안정 나씨(安定 羅氏)로 해주 목사 나성두(羅星斗)의 딸이다. 형은 영의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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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기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김흥근의 묘. 김흥근(金興根)[1796~1870]의 자는 기경(起卿)이고, 호는 유관(遊觀)이며,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이조 참판 김명순(金明淳)의 아들이고, 형은 좌의정 김홍근(金弘根)이다. 시호는 충문(忠文)이고, 노년에는 포천군 일동면 수입리 웃갈기에서 살았다. 포천시 일동면 기산리에 있는 일동 초등학교에서 오른쪽 지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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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양문리에 있는 조선 후기 종실이자 서화가 낭선군 이우의 묘와 신도비. 낭선군(朗善君) 이우(李俁)[1637~1693]의 자는 석경(碩卿)이고, 호는 관란정(觀瀾亭)이며,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아버지는 선조의 12남인 인흥군(仁興君) 이영(李瑛)이고, 어머니는 중종의 부마 여성위(礪城尉) 송인(宋寅)의 현손녀이자 군수(郡守) 송희업(宋熙業)의 딸인 여산 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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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이곡리에 있는 조선 전기 종실 덕림군 이자의 묘. 덕림군(德林君) 이자(李孜)[1482~1541]의 자는 근보(勤甫)이고, 정양군(定陽君) 이순(李淳)의 넷째 아들이다. 부인은 장례원 사평(掌隷院 司評) 강학손(姜鶴孫)의 딸 진산 현부인(晉山縣夫人) 진주 강씨(晋州 姜氏)이다. 아들은 진천군(晋川君) 이옥정(李玉貞)과 부림부정(富林副正) 이옥곤(李玉崑)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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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무봉리에 있는 조선 후기 왕족 밀산군 이찬의 묘와 신도비. 밀산군(密山君) 이찬(李澯)[1585~1658]의 할아버지는 선조의 백형(伯兄)인 하원군(河源君) 이정(李鋥)이고, 아버지는 당은군(唐恩君) 이인령(李引㱓)이며, 어머니는 판서 박계현(朴啓賢)의 딸이다. 처음에는 밀산부정(密山副正)에 제수되었고, 정의(正義)의 품계에 올라 군의 봉호를 받았다. 관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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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이곡리에 있는 조선 전기 왕족 봉산군 이돈의 묘. 봉산군(鳳山君) 이돈(李敦)[1469~1519]의 자는 자후(子厚)이고, 정양군(定陽君) 이순(李淳)의 첫째 아들이다. 부인은 호군(護軍) 윤주(尹柱)의 딸인 군부인(郡夫人) 윤씨(尹氏)와 증 참판 심원(沈湲)의 딸인 청송 심씨(靑松 沈氏)이다. 봉산군은 성품이 맑고 깨끗하며 꽃과 대를 좋아하였고, 활쏘기를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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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송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서경수의 묘. 서경수(徐景需)[1575~1646]의 자는 시중(施中)이고, 본관은 대구(大丘)이다. 할아버지는 서해(徐嶰)이고, 아버지는 판중추부사 서성(徐渻)이며, 어머니는 목사 송영(宋寧)의 딸인 여산 송씨(礪山宋氏)이다. 부인은 광주 김씨(光州金氏)이다. 1625년(인조 3) 양천현감이 되었고, 공조정랑, 종친부 전첨 및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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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설운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서성의 묘. 서성(徐渻)[1558~1631]의 자는 현기(玄紀)이고, 호는 약봉(藥峯)이며, 본관은 달성(達城)이다. 대제학 서거정(徐居正)의 현손으로 아버지는 서해(徐嶰)이고, 어머니는 고성 이씨(固城李氏)이며, 부인은 여산 송씨(礪山宋氏)이다. 아버지 서해가 22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는 맹인(盲人)이었기에 숙부인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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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무봉 2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서효수의 묘와 신도비. 서효수(徐孝修)[1716~1753]의 자는 여원(汝源)이고, 본관은 달성(達城)이다. 할아버지는 서종적(徐宗積)이고, 아버지는 서명형(徐命珩)이며, 어머니는 한선명(韓善鳴)의 딸이다. 대사헌 서명구(徐命九)에게 입양되었다. 부인은 연안 이씨(延安 李氏)이다. 1738년(영조 14)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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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고일 2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성석린의 묘. 성석린(成石璘)[1338~1423]은 고려 후기 및 조선 초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창녕(昌寧)이고, 자는 자수(自修)이며, 호는 독곡(獨谷)이다. 할아버지는 판도총랑(版圖摠郞) 성군미(成君美)이고, 아버지는 창녕 부원군(昌寧府院君) 성여완(成汝完)이며, 어머니는 밀직사 지신사(密直司知申事) 나천부(羅天富)의 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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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고일 2리에 있는 고려 후기 및 조선 전기의 문신 성여완의 묘. 성여완(成汝完)[1309~1397]은 고려 후기 및 조선 초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창녕(昌寧)이고, 초명은 성한생(成漢生), 일명 광자(匡自)이며, 호는 이헌(怡軒)이다. 창녕 성씨(昌寧成氏)의 시조인 성인보(成仁補)의 현손으로 할아버지는 전객서 부령 성공필(成公弼)이고, 아버지는 판도총랑(版圖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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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무림 2리에 있는 조선 전기 종친 수도군 이덕생의 묘와 신도비. 수도군(守道君) 이덕생(李德生)[?~1449]은 정종(定宗)의 일곱째 아들로, 어머니는 숙의 부인(淑儀夫人) 해평 윤씨(海平尹氏)이다. 종친으로서 명선대부(明善大夫) 수도정(守道正)에 봉해졌다. 1449년(세종 31) 소와 말을 무단으로 도축한 일로 직첩을 몰수당했으며, 담양(潭陽), 강진(康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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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주원 1리에 있는 태종의 아홉 번째 딸인 숙혜 옹주의 묘. 숙혜 옹주(淑惠翁主)[?~1464]는 태종의 아홉 번째 옹주로, 어머니는 소빈 노씨(昭嬪盧氏)이다. 성원위(星原尉) 이정녕(李正寧)에게 출가하여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두었다. 숙혜 옹주와 관련한 기록은 『단종실록(端宗實錄)』에 두 차례, 『세조실록(世祖實錄)』에 한 차례 등장한다. 『단종실록』에 실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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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이곡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심통원의 묘. 심통원(沈通源)[1499~?]은 본관이 청송(靑松)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요직을 거쳤으며, 최후에는 벼슬이 좌의정에까지 이르렀다. 세상을 떠난 뒤 현재 위치에 묻혔고, 현 묘소는 부인인 완산 이씨(完山李氏)와의 합장묘이다. 심통원 선생 묘(沈通源先生墓)는 포천시 소흘읍 이곡리 이곡 초등학교 인근에 있는 낮은 야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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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길명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양사언의 묘. 양사언(楊士彦)[1517~1584]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서예가로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호는 봉래(蓬萊)이다. 시와 글씨에 모두 능하였고, 특히 초서와 큰 글씨에 뛰어나서 조선 전기의 4대 서예가라고 불린다. 전하는 이야기로는 양사언이 세상을 떠날 때 ‘飛(비)’ 자 한 자를 크게 써 놓고 우화등선하였고,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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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직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여성군 이즙의 묘. 여성군(礪城君) 이즙(李楫)[1668~1731]은 인조(仁祖)의 고손(高孫)으로, 생부는 영창군(瀛昌君) 이심(李沈)이고 화천군(花川君) 이비(李淝)에게 입양되었다. 왕희지(王羲之)와 왕헌지(王獻之)의 필법을 터득하여 서예에 뛰어나고 효행으로 이름이 높았다. 영조 대에는 청에 주청사(奏請使)로 가서 왕세자의 책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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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선단동에 있는 조선 후기 영평군 이경응 부부의 합장묘. 영평군(永平君) 이경응(李景應)[1828~1901]은 고종 연간의 문신으로 전계 대원군(全溪大院君)의 둘째 아들이자 철종(哲宗)의 형이다. 주요 벼슬은 1882년 판돈령부사를 역임하였고, 1895년 영돈령원사(領敦寧院事)를 지냈다. 시호는 효정(孝貞)이다. 의정부에서 포천으로 가는 국도 43호선 포천시 선단 4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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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포천동에 있는 조선 후기 오백주 부부의 묘와 묘비. 오백주(吳伯周)[1643~1719]는 본관이 보성(寶城)이며, 자는 국경(國卿)이다. 23세에 무과에 합격하고 어영군교(御營軍校)에 보임되었다. 뛰어난 무예로 왕의 사랑을 받아 절충(折衝)·첨지(僉知) 등을 거쳐 가의대부(嘉義大夫)에 올랐다. 개천 군수(价川郡守)·노강 첨사(老江僉使) 등을 역임하였고, 마지막에 자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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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금현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무신 유경선 부부의 합장묘. 유경선(柳敬先)[1519~1575]의 자는 흠중(欽仲)이고, 본관은 문화(文化)이다. 1553년 관사 별시(觀射別試) 병과(丙科)에서 1등으로 합격하였다. 주요 벼슬은 도총부 도사(都摠府都事)[1559]·제주 판관(濟州判官)[1562]·양산 군수(梁山郡守)[1564] 등을 역임하였고, 1569년 한성부 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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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기지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유명뢰 부부의 합장묘와 묘비. 유명뢰(兪命賚)[1652~1712]는 본관이 기계(杞溪)이고, 자는 필경(弼卿)이며, 호는 자교당(慈敎堂)이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어 어머니 은진 송씨(恩津宋氏)에게 학문을 배웠는데 ‘자교당’이란 당호는 스승 송시열이 지어 준 것이다. 1689년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송시열이 세상을 뜨자 벼슬길을 포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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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북면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유지선 부부의 묘와 묘갈. 유지선(柳智善)[1498~1577]의 자는 명중(明仲)이고, 본관은 문화(文化)이다. 유연(柳演)의 아들이자 효자 유인선(柳仁善)의 아우이다. 1522년(중종 17)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531년 식년 문과(式年文科)의 병과(丙科)에 급제하였다. 이후 한성부 좌윤(漢城府左尹)·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등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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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음현 3리에 있는 조선 전기 의성군 이채 부부의 합장묘. 의성군(誼城君) 이채(李寀)[1411~1493]는 조선 전기의 왕족이자 학자로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효령 대군(孝寧大君) 이보(李𥙷)의 맏아들로 1424년(세종 6) 의성군(誼城君)에 봉해졌다. 왕족이면서도 학문에 밝아 경사(經史)에 능통하였고, 1489년(성종 20) 최고 관등인 현록대부(顯祿大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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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음현리에 있는 조선 후기 영의정 이경여의 묘와 신도비. 이경여(李敬輿)[1585~1657]는 본관이 전주(全州)이며, 자는 직부(直夫)이고, 호는 백강(白江)·봉암(鳳巖)이다. 아버지는 목사 이수록(李綏祿)[1564~1620]이며, 어머니는 송제신(宋濟臣)의 딸이다. 1601년[선조 34] 사마시를 거쳐 1609년[광해군 1] 증광 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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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화현면 지현리에 있는 조선 전기 이국주 부부의 합장묘. 이국주(李國柱)[1487~1556]는 1525년(중종 20) 사마시에 합격한 뒤 의장고(儀仗庫) 낭청(郞廳), 제용감(濟用監) 주부(主簿) 등을 역임하였다. 70세에 강원도 이천 현감(伊川縣監)으로 재직 중 사망하였다. 사후에 아들 이호민(李好閔)[1553~1634]이 크게 현달하여 연선 부원군(延善府院君)에 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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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금현리에 있는 조선 전기 시림 부원군 이몽량의 묘와 신도비. 이몽량(李夢亮)[1499~1564]은 본관이 경주(慶州)이며, 자는 응명(應明)이다. 1522년(중종 17) 생원·진사시에 급제하였고, 1528년 명경시(明經試)에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에 제수되었다. 그 후 동지중추부사·한성부 판윤을 거쳐 우참찬에 이르렀다. 부인이 둘인데 첫째 부인 함평 이씨(咸平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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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음현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이민장 부부의 묘와 묘비. 이민장(李敏章)[1620~1694]은 효종 때 영의정(領議政)을 지낸 이경여(李敬輿)의 큰아들이다. 벼슬은 음보(蔭補)로 1651년 전설사 별검(典設司別檢)에 임명된 후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의 위솔(衛率)과 익찬(翊贊),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 사직서령(社稷署令) 등을 역임하였다. 또 연안(延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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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가양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무신 이사검 부부의 합장묘. 이사검(李思儉)[1381~1446]은 세종 대 무신으로 본관이 양성(陽城)이며, 개성 유후 이옥(李沃)의 아들이다. 1405년 무과에 급제해 사직(司直)을 시작으로 황해도 첨절사·경상 좌도 처치사·공조 참판 등의 벼슬을 하다가 1435년 동지중추부사를 마지막으로 역임하였다. 시호는 공소(恭昭)이고, 배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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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정교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이시백 부부의 묘와 묘비. 이시백(李時白)[1571~1649]의 자는 군실(君實)이고, 호는 수우당(守愚堂)이다. 1609년(광해군 1) 사마시에 합격하고 벼슬길에 나가갔다가 인목 대비(仁穆大妃) 폐위 사건으로 사직하였다. 병자호란 중에는 감찰로 왕을 강화도로 모셨다. 1630년(인조 8) 충청도 영동 현감(永同縣監)으로 나갔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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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오가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택 부부의 묘와 묘비. 이택(李䕪)[1574~1644]은 본관이 전주(全州)이고, 자는 무중(茂仲)이다. 아버지는 군수 이희간(李希榦)이고, 어머니는 선조(宣祖) 때 영의정을 지낸 사암(思庵) 박순(朴淳)[1523~1589]의 외동딸이다. 박순이 말년 포천에 배견와(拜鵑窩)를 짓고 살다가 세상을 떠나자 이택이 시묘하였다. 이택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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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금현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이항복의 묘. 이항복(李恒福)[1556~1618]은 본관이 경주(慶州)이고, 자는 자상(子常)이며, 호는 필운(弼雲)·백사(白沙)·동강(東岡) 등이다. 1580년(선조 13) 알성 문과에 급제하여 1589년 예조 정랑으로 정여립(鄭汝立) 모반을 처리하였다. 임진왜란 때는 병조를 맡아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우의정·좌의정을 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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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신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인평 대군 이요의 묘와 신도비. 인평 대군(麟坪大君) 이요(李㴭)[1622~1658]는 본관이 전주(全州)이고, 자는 용함(用涵)이며, 호는 송계(松溪)이다. 인조의 셋째 아들이자 효종의 동생으로 1630년 인평 대군에 봉해졌다. 1640년 볼모로 청나라에 갔고, 1650년부터 네 차례나 사은사로 청나라에 다녀온 외교관이었다. 저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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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양문리에 있는 조선 후기 종실 인흥군 이영의 묘와 신도비. 인흥군(仁興君) 이영(李瑛)[1604~1651]은 조선 후기의 왕족으로 자는 가온(可韞)이고, 호는 취은(醉隱)·월창(月窓)이다. 선조와 정빈 민씨(靜嬪閔氏) 사이에 태어나 7세 때인 1610년(광해군 2) 인흥군에 봉해졌다. 1645년 종부시·사옹원 도제조가 되었고, 1649년(효종 즉위년) 사은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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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선단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전계 대원군 이광 부부의 합장묘. 전계 대원군(全溪大院君) 이광(李㼅)[1785~1841]은 조선 후기 왕족으로 그의 가계는 영조(英祖)[증조할아버지]→사도 세자[할아버지]→은언군(恩彦君)[아버지]→전계 대원군→철종[아들]으로 이어진다. 이광은 부모와 형 상계군(常溪君) 부부의 죄에 연좌되어 강화도 교동으로 쫓겨나 빈농으로 살았다. 사후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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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양문리에 있는 조선 후기 종실 전평군 이곽의 묘. 전평군(全坪君) 이곽(李漷)[1659~1698]은 본관이 전주(全州)이고, 자는 노백(魯伯)이며, 호는 노주(鷺洲)이다. 선조의 증손자이며, 인흥군(仁興君) 이영(李瑛)의 손자이다. 낭원군(朗原君) 이간(李侃)의 아들이며, 낭선군(朗善君) 이우(李俁)에게 입양되었다. 전평군 묘(全坪君墓)는 포천시 영중면 양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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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가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정기안의 묘. 정기안(鄭基安)[1695~1767]의 자는 안세(安世)이고, 호는 만모(晩慕)이며, 시호는 효헌(孝憲)이다. 본관은 온양(溫陽)이다. 좌의정을 지낸 정순붕(鄭順朋)의 후손으로, 정유신(鄭維新)의 아들이다. 정기안 선생 묘(鄭基安先生墓)는 포천시 가산면 가산리 41번지에 있다. 정기안의 묘역은 동서 28m, 남북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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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가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정만석의 묘. 정만석(鄭晩錫)[1758~1834]의 자는 성보(成甫)이고, 호는 과재(過齋)이며, 시호는 숙헌(肅獻)이다. 본관은 온양(溫陽)이다. 지중추부사 정기안(鄭基安)의 아들이다. 정만석 선생 묘(鄭晩錫先生墓)는 포천시 가산면 가산리 42-1번지 시우동(時雨洞)길 북편 야산에 있다. 묘역은 동서 24.6m, 남북 18.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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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이곡리에 있는 조선 전기 종실 정양군 이순의 묘. 정양군(定陽君) 이순(李淳)[1453~1492]은 본관이 전주(全州)이고, 자는 비원(卑源)이며, 시호는 정도(丁悼)이다. 세종의 넷째 아들인 임영 대군(臨瀛大君) 이구(李璆)의 셋째 아들이다. 정양군 묘(定陽君墓)는 포천시 소흘읍 이곡리에 위치한다. 묘역은 부인 진주 강씨(晉州姜氏)와의 원형 합장묘의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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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기지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정희등의 묘. 정희등(鄭希登)[1506~1545]의 자는 원룡(元龍)이고, 본관은 동래(東萊)이다. 종부시 첨정(宗簿寺僉正) 정구(鄭球)의 아들로 승지 정원(鄭源)의 종질(從姪)이다. 시호는 의민(毅愍)이다. 정희등 묘 및 묘비는 포천시 신북면 기지리 두문동(杜門洞)에 있다. 묘는 정부인 예안 이씨(禮安李氏)와의 합장묘이다. 봉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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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만세교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조경의 묘. 조경(趙絅)[1586~1669]의 자는 일장(日章)이고, 호는 용주(龍洲)·주봉(柱峰)이며,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본관은 한양(漢陽)이다. 아버지는 봉사(奉事) 조익남(趙翼男)이며, 어머니는 증 좌승지 유개(柳愷)의 딸이다. 조경 선생 묘(趙絅先生墓)는 포천시 신북면 만세교리 새터에서 한바위교를 지나면 한바위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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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만세교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조위봉의 묘. 조위봉(趙威鳳)[1621~1675]의 자는 자우(子雨)이고, 호는 녹문(鹿門)이며, 본관은 한양(漢陽)이다. 우참찬을 지낸 조경(趙絅)의 아들이다. 조위봉 묘 및 묘비는 포천시 신북면 만세교리 새터에서 만세다리를 지나 함바위 선산에 위치한다. 묘역은 부인 초계 정씨(草溪鄭氏)와의 합장묘 형태이다. 원형의 봉분 앞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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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가채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조익남의 묘. 조익남(趙翼男)[1564~1613]의 자는 경소(敬所)이고, 본관은 한양(漢陽)이다. 아버지는 좌랑(佐郞) 조현(趙玹)이고, 어머니는 성균관 생원(成均館生員) 이극함(李克諴)의 딸로 전주 이씨(全州李氏)이다. 두 명의 부인을 두었는데, 첫째 부인은 좌승지(左承旨) 유개(柳愷)의 딸로 문화 유씨(文化柳氏)이고, 둘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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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기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조진관의 묘와 신도비. 조진관(趙鎭寬)[1739~1808]의 자는 유숙(裕叔)이고, 호는 가정(柯汀)이며, 시호는 효문(孝文)이다. 본관은 풍양(豊壤)이다. 이조 판서 조엄(趙曮)의 아들이다. 조진관 묘 및 신도비는 포천시 일동면 기산리에 있는 군부대에서 일동면 길명리 방향으로 약 100m 지점의 도로 오른쪽에 위치한다. 묘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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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선단동에 있는 개항기 종실 청안군 이재순의 묘. 청안군(淸安君) 이재순(李載純)[1851~1904]은 본관이 전주(全州)이고, 자는 덕일(德一)이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은언군(恩彦君) 이인(李䄄)이며, 할아버지는 전계 대원군(全溪大院君) 이광(李㼅)이고, 외할아버지는 안동 김씨(安東金氏)인 김재협(金在協)이다. 종실 이휘응(李徽應)의 아들로 영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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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선단동에 있는 개항기 종실 청풍군 이해승의 묘. 청풍군(淸豊君) 이해승(李海昇)[1890~?]은 본관이 전주(全州)이고, 아호는 이송석(李松石)이다. 전계 대원군(全溪大院君) 이광(李㼅)의 사손(嗣孫)으로 풍선군(豊善君) 이한용(李漢鎔)에게 입양되었으며, 생부는 덕흥 대원군 13세손 군수(郡守) 이건용(李建鎔)이다. 청풍군 묘(淸豊君墓)는 포천시 선단동 선단 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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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선단동에 있는 개항기 종실 풍선군 이한용의 묘. 풍선군(豊善君) 이한용(李漢鎔)[1875~1890]은 본관이 전주(全州)이다. 은언군(恩彦君) 이인(李䄄)의 현손이며, 전계 대원군(全溪大院君) 이광(李㼅)의 증손이다. 청안군(淸安君) 이재순(李載純)에게 입양되었으며, 생부는 소현 세자(昭顯世子) 8세손 이재철(李載徹)이다. 아들 없이 세상을 뜨자 덕흥 대원군 13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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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정교리에 있는 조선 전기 종실 한음군 이현의 묘. 한음군(漢陰君) 이현(李俔)[1530~1562]은 본관이 전주(全州)이며, 자는 경연(磬然)이고, 호는 교취당(交翠堂)이다. 세종의 넷째 아들인 임영 대군(臨瀛大君) 이구(李璆)의 증손으로 청화군(淸化君)의 셋째 아들이다. 한음군 묘(漢陰君墓)는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정교리에 위치한다. 한음군의 묘소는 원래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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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선단동에 있는 조선 후기 종실 회평군 이명의 묘. 회평군(懷平君) 이명(李明)[1827~1844]은 본관이 전주(全州)이고, 초명은 이원경(李元慶)이며, 시호는 효민(孝愍)이다. 할아버지는 은언군(恩彦君) 이인(李䄄)이며, 아버지는 전계 대원군(全溪大院君) 이광(李㼅)이고, 어머니는 완양 부대부인(完陽府大夫人) 전주 최씨(全州崔氏)이다. 철종(哲宗)의 이복형이다.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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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금주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암각문. 백로주(白鷺洲)는 영평 8경 중 하나로 알려진 유명한 경승지이다. 만세교와 금주산(金珠山)에서 흐르는 물이 합쳐지면서 수량이 풍부하고, 현재도 포천의 대표적인 휴양지로 손꼽히고 있다. 이곳 가운데에 우뚝 솟은 바위산이 있는데, 백로주는 중국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 이백(李白)의 시 구절인 ‘이수중분백로주(二水中分白鷺洲)’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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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암각문. 영평 8경(永平八景) 가운데 하나인 선유담(仙遊潭)은 이름 그대로 신선이 노닐던 자리라고 한다. 선유담은 조선 후기 김창협(金昌協), 김창흡(金昌翕), 김창업(金昌業), 이현익(李顯益), 성해응(成海應), 이항로(李恒老) 등 여러 학자들의 시, 기행문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특히 김창협, 김창흡, 김창업은 조선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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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주원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암각문. 창옥병(蒼玉屛)은 포천시 창수면에 있는 영평 8경의 하나이며, 글씨를 쓴 사람은 당시 대명필가인 석봉(石峯) 한호(韓濩)[1543~1605], 바위에 새긴 이는 신이(辛夷)라는 사람이다. 창옥병은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박순(朴淳)[1523~1589]이 즐겨 찾던 경승지이다. 15년간 영의정에 재직하던 그가 영평으로 거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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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추동 2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암각문. 추동리 암각문(楸洞里巖刻文)은 이항로(李恒老)[1792~1868]가 제자 최익현(崔益鉉), 유기일(柳基一), 아들 이승응(李承膺)과 연명하여 새겨 놓은 것으로 보인다. 추동리 암각문은 포천시 창수면 추동 2리에 있는 추동 2교를 지나 도로가에 위치한다. 암각문은 원래 개울가에 있었는데, 도로가 확장되면서 현재와 같이 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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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암각문. 화봉산 암각문(花峰山巖刻文)에는 “평양은 요의 도읍지이고, 화표는 요가 위정자에 대하여 민원을 표시하도록 길가에 세웠던 표목의 명칭이다. 여기에서 평양은 포천을, 화표는 표지를 뜻한다. 요와 순의 도를 이어받아 서술하여 밝히고 공자의 학문과 도를 배우노니 공격은 모든 사악을 이기노라. 계사년[1893, 고종 30] 봄에 최익...
성곽·성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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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에 위치한 적을 막기 위하여 목책·흙·돌 등으로 높이 쌓아 만든 담, 또는 그런 담으로 둘러싼 일정한 구역. 1. 성곽의 개념 성(城)이란 보통 성벽(城壁)을 두른 주거지를 말하는 것으로 처음에는 흙을 파서 도랑[環壕]을 만들거나 흙으로 담을 쌓았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무로 만든 울짱[木柵]과 돌로 쌓은 석축(石築), 벽돌로 쌓은 전축(塼築) 등이 나타났다. 성보다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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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고소성리에 있는 삼국 시대의 산성. 성의 규모가 비교적 작아서 유물이 많이 채집되지 않았기에 고소산성(姑蘇山城)의 축성 연대를 밝히기는 매우 어렵다. 성의 돌 모양이나 붕괴된 모습으로 보아 삼국 초기에 쌓았으나 개수한 흔적도 없고 문헌에서도 일찍이 폐성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대체로 서고동저형(西高東低形)이면서 남북으로 긴 성이다. 고소산성은 고려 시대에 부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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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화현면 화현리에 있는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는 산성. 운악산성(雲岳山城)에 대해서는 조선 후기에 쓰인 『견성지(堅城誌)』에서 “현의 동쪽 25리에 있다. 가평 현등산 서악이다. 봉우리 꼭대기에 옛 대궐 터가 있다”라고 하는 것 이외에 이렇다 할 기록이 없다. 따라서 축조 양식이나 수습된 유물을 통하여 추정할 수밖에 없다. 우선 축조 방식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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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고모리에 있는 삼국 시대에 축조된 산성. 포천 고모리 산성(抱川古毛里山城)이 있는 노고산[386m] 일대는 예로부터 서울에서 관북 지방으로 연결되는 교통의 요지에 해당된다. 즉 의정부에서 축석령(祝石嶺)을 넘으면 동쪽과 서쪽으로 산맥이 연결되어 있고, 그 가운데 남북으로 길게 포천 평야가 자리 잡고 있는데, 노고산은 남쪽에서 포천 평야로 들어가는 입구 길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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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군내면 구읍리에 있는 삼국 시대 백제가 축조한 성. 포천 반월성(抱川半月城)은 일반적으로 반월산성(半月山城)이라고 하는데, 해발 284.5m의 청성산(靑城山)에 축조된 반월형의 테뫼식 산성으로 전체 둘레는 1,080m이다. 전체적인 형상이 반달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어서 반월산성이라고 불리는데, 포천 지역은 물론 인근 지역에 있는 산성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포천...
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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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금주리에 있는 조선 시대 태봉 터. 태봉(胎封)은 태실(胎室)·태봉(胎峰)·태봉(台峰)·태묘(胎墓)·태장봉(胎藏峰)·태산(胎山)·태뫼 등으로 불리는데, 산모가 태아를 출산한 후 나오는 태반(胎盤)을 묻는 장소를 의미한다. 왕실의 태봉은 왕자·왕녀의 태반을 매장하는 장소를 말하며, 태반을 항아리에 보관한 후 미리 정해진 태봉에 태실(胎室)을 조성하고 태 항아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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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만세교리에 있는 조선 후기 옹주의 태실. 만세교리 태봉(萬歳橋里胎封)은 1738년(영조 14)에 태어난 영조의 후궁 소생의 옹주 아기씨(翁主阿只氏)의 태실(胎室)이다. 금표(禁標)에 의하여 엄격하게 보호를 받고 있던 이 태실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에 의해서 문화재 조사라는 명목 아래 옹주의 태를 담았던 태 항아리와 지석(誌石)이 도굴되었고, 현재는 표석과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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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무봉 2리에 있는 조선 후기 옹주의 태실. 무봉리 태봉(茂峯里胎封)은 1735년(영조 11)에 태어난 영조의 후궁 소생의 옹주 아기씨(翁主阿只氏)의 태실(胎室)이다. 금표(禁標)에 의하여 엄격하게 보호를 받고 있던 이 태실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에 의해서 문화재 조사라는 명목 아래 옹주의 태를 담았던 태 항아리가 도굴되었다.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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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송우리에 있는 고려 시대 정희 왕녀의 태봉. 태봉(胎封)은 왕실에서 태어난 아이의 태를 묻은 것을 말한다. 송우리 태봉(松隅里胎封)은 고려 태조인 왕건의 소생 정희 왕녀(貞喜王女) 아지(阿只)의 태를 태워서 그 재를 이곳에 묻었다고 전한다. 송우리 태봉은 포천시 소흘읍 송우리 산28-3번지에 자리하고 있다. 포천시 소흘읍 송우리에 소재한 송우 초등학교 뒷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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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성동 2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조성된 익종의 태봉. 태봉(胎封)은 왕자·왕녀의 태반을 매장하는 장소를 말하며, 태반을 항아리에 보관한 후 미리 정해진 태봉에 태실(胎室)을 조성하고 태 항아리와 지석을 묻는 절차를 장태(藏胎) 혹은 안태(安胎)라고 한다. 익종(翼宗)[1809~1830]은 조선 제23대 순조의 세자이며, 제24대 헌종의 아버지이다. 이름은 영[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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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군내면 구읍리에 있는, 조선 후기 포천 지역 현감과 군수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군내면 선정비군(郡內面善政碑群)은 19세기 초에서 19세기 말까지 포천에 부임해 선정을 베풀었던 역대 현감과 군수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공덕비로서 포천 지역의 지방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비는 모두 9기로 되어 있다. 각 비는 1759년(영조 35), 1706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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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기지 2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독곡 성석린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견성지(堅城志)』의 명승(名勝)조에 독곡 폭포(獨谷瀑布)에 관한 기록이 있다. “현(縣)의 북쪽 10리 천주산(天柱山) 아래 독곡촌(獨谷村)에 있다. 좌우에 폭포가 있는데 수십 길이나 된다. 기암이 벌려져 솟아 있다. 독곡(獨谷) 성석린(成石璘)이 만년에 벼슬에서 물러나 이곳에 정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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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노곡 2리에 있는 현대 6·25 전쟁 당시 독수리 유격대의 활동을 기념하여 세운 비. 포천은 6·25 전쟁 당시 북한 공산군 남침의 주요 길목이었다. 이곳의 현충 시설 중 독수리 유격대 전적비가 있다. 1950년 11월 30일 대한 청년단 간부인 최종성·최종철 형제를 주축으로 포천군 신읍에서 나라와 고향을 지키려는 포천 지역 젊은이 63명이 독수리 유격대를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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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내리에 있는, 조선 전기 열녀 안동 김씨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열녀(烈女) 안동 김씨(安東金氏)는 세조 때 성균관 사성(成均館司成)을 지낸 홍의달(洪義達)의 처이다. 그녀의 행적에 대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상낙백(上洛伯) 김사형(金士衡)의 손녀로 사성(司成) 홍의달에게 시집갔다. 홍이 죽고 자식이 없었으나, 상사(喪事)에 조금도 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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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영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 포천에 파견된 관리들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영평리 선정비(永平里善政碑)는 모두 5기로 포천시 영중면 영평리 주변에 산재하던 비와 그린피아 모텔 공사 중 발견된 비를 모아 영평 초등학교 앞으로 옮겨 다시 세운 것이다. 이 부근은 본래 영평현의 관아 터로 추정된다. 영평리 선정비는 포천에서 연천군 전곡으로 가는 국도 37호선 옆 영중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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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자작동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유인선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유인선(柳仁善)[1492~?]의 자는 공숙(公叔)이고, 본관은 문화(文化)이다. 1540년 김안국(金安國)[1478~1543] 등의 천거로 잠시 사산감역(四山監役)을 맡았다.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효도하고, 아우 유은선(柳恩善)·유예선(柳禮善)·유지선(柳智善)·유정선(柳貞善) 등과 우애 좋게 함께 살아 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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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우금리에 있는 1979년 육사 생도들의 6·25 전쟁 참전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 공산군의 불법 남침으로 6·25 전쟁이 발발하였다.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고자 당시 육군 사관 학교에 다니던 생도 1기[현 육군 사관 학교 10기] 312명과 2기 330명은 육사 장교 및 교관들의 지휘 아래 6월 26일 새벽 포천으로 출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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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방축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이규채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이규채(李圭彩)[1888~1948]는 경기도 포천군 가산면 방축리 군자정에서 태어났다. 호는 우정(宇精)·동아(東啞)·경산(庚山)이고,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이규보(李圭輔)라고도 불렸다. 이규채 선생 행적비(李圭彩先生行蹟碑)는 선생의 조국 광복에 바친 공로와 독립 투쟁 정신을 기리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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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방축리에 있는, 독립지사 이범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이범영(李範英)[1890~1955]은 포천 출신의 독립지사이자 교육자로서 호는 동석(東石),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이범영 선생 공적비(李範英先生功績碑)는 이범영의 항일 독립운동과 민족 교육 사업에 바친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하여 1982년 포천 출신 독립 유공자 공적비 건립 위원회가 주최가 되어 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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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추동 2리에 있는 1943년 조선 후기 무신 이중로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이중로(李重老)[1577~1624]는 본관이 청해(靑海)로 자는 진지(鎭之),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1605년(선조 38) 무과에 합격한 뒤 선전관(宣傳官)을 시작으로 내외직을 두루 지내다가 인조반정에 참여하여 정사공신(靖社功臣) 2등에 책록되고 청흥군(靑興君)에 봉해졌다.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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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신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인평 대군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인평 대군(麟坪大君) 이요(李㴭)[1622~1658]는 조선 후기 왕족으로 자는 용함(用涵), 호는 송계(松溪)이다. 인조의 셋째 아들이자 효종의 동생으로 1630년 인평 대군에 봉해졌다. 저서로 『송계집(松溪集)』·『연행록(燕行錄)』·『산행록(山行錄)』 등이 있고, 사후 효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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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양문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인흥군의 묘계 비. 인흥군(仁興君) 이영(李瑛)[1604~1651]은 조선 후기 왕족으로 자는 가온(可韞)이고, 호는 취은(醉隱)·월창(月窓)이다. 선조와 정빈 민씨(靜嬪閔氏) 사이에 태어나 7세 때인 1610년(광해군 2년) 인흥군에 봉해졌다. 1645년 종부시·사옹원 도제조가 되었고, 1649년(효종 즉위년) 사은사로 청나라에 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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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추동리에 있는 1982년 포천 출신의 독립지사 조영원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조영원(趙永元)[1892~1974]은 호는 각산(覺山)이고, 본관은 한양(漢陽)이다. 유신 학교를 졸업한 뒤 1920년 상해로 망명하여 상해 임시 정부 의정원 의원, 임정 국무원 비서장 서리 등을 지냈고, 1926년 촉성회 대표로 만주에 파견되어 김좌진 장군이 영도하던 신민부(新民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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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가채리에 있는, 포천 출신의 독립지사 최면식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최면식(崔勉植)[1891~1941]은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의 둘째 아들 위당(緯堂) 최영학(崔永學)의 장남으로, 자는 경소(敬紹), 호는 염재(念齋)이다. 최면식 선생 공적비(崔勉植先生功績碑)는 포천시 신북면 가채리에 있다. 최면식 선생 공적비는 독립운동가 최면식의 항일 민족 독립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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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군내면 상성북 2리에 있는 조선 후기 포천 출신 효자 이명의 비. 이명(李蓂)은 효행이 뛰어나 향리에서 칭송이 자자하였다. 부친상을 당하여 여막(廬幕)을 짓고 삼년간 아침저녁으로 묘에 올라 곡을 하였고, 묽은 죽 한 그릇만 먹으며 지냈다. 어느 날 흰 까치가 그가 지내는 여막의 처마에 둥지를 틀자, 사람들이 이명의 효성이 하늘에 닿았다고 칭송하였다. 순조 대 나라에서...
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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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지역에 있는 사찰 또는 폐사지에 전해 내려오는 입적 승려를 추모하는 묘탑 형태의 조형물. 부도(浮屠)는 고승(高僧)이 입적한 후 유체를 풍장(風葬) 또는 다비하고 나온 유골이나 사리(舍利)를 수습하여 봉안하기 위한 기념적인 묘탑(妙塔) 형태의 조형물이다. 이를 부도(浮圖), 부두(浮頭), 불도(佛圖), 포도(蒲圖) 등이라고도 한다. 원래 불타(佛陀) 또는 솔도파(率堵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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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음현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석조 부도. 음현리 절터 석조 부도는 포천시 내촌면 음현리 산22번지에 있는 이경여(李敬輿) 신도비(神道碑) 앞 약수터에 있다. 그러나 음현리 절터 석조 부도의 근처에 안양사(安養寺) 터가 있는 점으로 보아 본래 안양사에 소속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기단부는 하단의 지대석(址臺石)과 상단의 하대석(下臺石) 모두 2단으로 평면 8각을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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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 흥룡사 대웅전 옆에 있는 조선 후기 부도. 흥룡사는 문화재 관리국에서 편찬한 『문화 유적 총람』에 “고려 태조 때 도선 국사가 창건한 절이라 하나 지금의 대웅전은 6·25 전쟁 이후에 건립하였다고 한다. 절 내에는 청암 스님의 부도가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부도에 대해서는 “1922년 설하 스님이 중수한 후 흥룡사라 하였는데 청암 스님의 사리를 모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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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 흥룡사 대웅전 옆에 있는 조선 후기 부도. 흥룡사는 문화재 관리국에서 편찬한 『문화 유적 총람』에 “고려 태조 때 도선 국사가 창건한 절이라 하나 지금의 대웅전은 6·25 전쟁 이후에 건립하였다고 한다. 절 내에는 청암 스님의 부도가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부도에 대해서는 “1922년 설하 스님이 중수한 후 흥룡사라 하였는데 청암 스님의 사리를 모신...
서원·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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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군 창수면 주원리에 있는, 박순(朴淳)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창건한 조선 후기 서원. 박순의 자는 화숙, 호는 사암, 본관은 충주이다. 1553년(명종 8) 정시 문과에 급제하여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대사헌, 대사간,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에 올랐다. 선조가 ‘송균절조수월정신(松筠節操水月精神)’이라고 극찬할 정도로 청렴하고도 강직하였다. 나주의 월정 서원,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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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군 신북면 신평리에 있는 이덕형(李德馨)과 조경(趙絅)을 기리기 위해 창건한 조선 후기 서원. 1691년(숙종 17)에 이사상(李師相) 등의 남인계 유생들이 중심이 되어, 포천에 은거하며 만년을 보낸 이덕형과 조경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남인 집권기인 1692년에 ‘용연(龍淵)’이라는 사액을 받았으며, 경기도 내 남인 세력의 유력한 근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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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방축리에 있는 이항복(李恒福)의 영정과 위패가 모셔진 서원. 화산 서원은 처음 백사 서원으로 불릴 때는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옥금동에 위치하였으나, 이후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방축리 산16-1로 이전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화산 서원은 화산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데, 뒤쪽에는 산을 등지고 앞쪽으로는 시야가 트이면서 들이 바라다 보이는 산기슭에 터를 잡았다.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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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군내면 구읍리에 있는 고려 후기에 창건된 향교. 포천 향교는 포천시 군내면 구읍리 반월산[청성산]의 남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포천 향교는 고려 후기인 1173년(명종 3)에 창건되어 1591년(선조 24)까지 약 419년간 유지해 오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2년 뒤인 1594년에 중건하여 계속 보존 관리되어 왔다. 이후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면...
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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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고모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권종(權悰)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정려. 권종[1554~1592]은 포천 출신의 문신으로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해에 금산 군수로 부임하여 광주 목사로 있던 사촌 동생 권율과 국난에 대처할 것을 기약하였다. 권종이 먼저 군사를 이끌고 전주에 도착하였으나, 당시 전라도 관찰사가 그의 나이가 많다는 것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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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금동리에 있는 효자 김기병(金基炳)의 정려. 김기병의 본관은 안산이다. 1879년(고종 16)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금동리에서 김흥섭(金興燮)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천성이 온후하고 효심이 지극하여 부모님과 웃어른을 지성으로 봉양하였다. 17세 되던 해 모친이 병석에 눕게 되자 온갖 정성으로 봉향하여 출천지효(出天之孝)라고 칭찬이 자자하였다. 김기병 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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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마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장군 조득남(趙得男)의 정려비. 조득남의 본관은 한양으로, 아버지는 조정제이며, 포천의 화현면 운악산 아래에서 성장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왕을 모시고 남한산성에 들어가 이시백(李時白)의 휘하에서 북문을 지키며 결사 항쟁하면서 수차례 승리를 거두었으나 수적인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전사하였다. 조득남 장군의 정려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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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음현리에 있는 조선 중기 신급(申礏)의 정려문. 신급[1543~1592]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노모를 모시고 강원도의 이천(伊川)에 피신하여 산 위에 올라가 적정을 살피고 내려온 사이 노모와 가족이 적에게 화를 당했다는 잘못된 소식을 듣고 멀리 떨어져 있던 맏형과 전사한 두 동생을 생각하고 불효를 자책하며 절벽에 투신하여 목숨을 끊었다. 1703년(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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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어룡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자 오백주(吳伯周)의 정려. 오백주는 포천시 어룡동 태생이다. 1659년(효종 10) 23세 때 무과에 급제하여 후에 귀성 도호부사(龜城都護府使)와 귀성진 병마첨절제사에 올랐다. 공직 생활이 청렴결백했고 당시 사람들의 사표가 되었다. 특히 아버지의 병환을 구하기 위해 지성으로 기도하였고 마침내 산삼과 석밀(石密)을 구해 부친의 병을 고치므...
사당·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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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길명리에 있는 양사언을 배향한 사당. 길명사는 조선 전기 4대 문장가 중 한 사람인 봉래 양사언(楊士彦)[1517~1584]을 봉향하는 사당으로, 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길명리 산175-1번지에 있다. 평지에 자리 잡고 있으며 뒤로는 산을 등지고 앞으로 시야가 트인 들이 위치해 있다. 1988년 사당 건립 추진 위원회를 구성하여 건립 발기를 하였고, 청주 양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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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연곡리에 있는 김성대(金聲大) 등을 배향한 사당. 동음사는 안산 김씨 선조인 촌로(村老) 김성대와 그의 동생 반성재(反省齎) 김성발(金聲發), 동구(東丘) 김성옥(金聲玉) 및 청풍 김씨 중암(重菴) 김평묵(金平默) 등 네 명을 봉향한 사당이다. 김성대의 자는 이원, 호는 율강·촌로이다. 부모에게 극진히 효도하였으며 72세 때 진사시에 응시하였을 때 숙종이 제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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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금현리에 있는 개항기의 제단. 산앙단은 졸탄(拙灘) 김권(金權), 중암(重庵) 김평묵(金平默), 용서(龍西) 유기일(柳基一)을 제향(祭享)하기 위해 설치한 제단이다. 졸탄단(拙灘壇)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배향 인물인 김권은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출생으로 본관은 청풍이며, 대사성을 지낸 김식(金植)의 손자이다.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의 문하이며, 임진왜란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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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읍동에 있는, 김창흡(金昌翕)을 향사하는 조선 후기의 제단. 삼연(三淵) 김창흡은 본관이 안동으로 좌의정 김상헌(金尙憲)의 증손이며,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의 아들이다. 조선 헌종 때 신읍리 요골 뒷산에 사당을 창건하여, 1850년(철종 1)에 ‘요산 영당(堯山影堂)’이라는 사액(賜額)을 받았다. 이 영당은 요산사(堯山祠)로도 불려졌다. 『삼연 선생 연보(三淵先生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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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가채리에 있는, 조경(趙絅)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사당. 조경[1586~1669]은 본관이 한양(漢陽), 호가 용주(龍洲)이다. 1612년(광해군 4)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했으나 광해군의 난정(亂政)으로 대과를 단념, 거창에 은거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 후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고창 현감, 경상 도사에 계속하여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양하다가 이듬해 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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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화대리에 있는, 주자(朱子)와 송시열(宋時烈)·이항로(李恒老)·김평묵(金平默) 등을 제향하기 위해 건립한 일제 강점기의 사당. 영당은 영정을 봉안하는 사당을 말한다. 운담 영당은 운담 정사에서 출발하였다. 운담 정사는 김평묵이 만년에 강학했던 곳으로, 김평묵이 나이 68세 때에 연천에서 포천군 일동면 운담으로 이사 오면서 그의 제자들이 마련해 두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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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삼성당리에 있는, 주공(周公)·공자(孔子)와 송시열(宋時烈)·이항로(李恒老) 등을 배향하기 위해 설치한 제단. 일치단은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삼성당리에 위치하고 있다. 평지에 자리하고 있으며 뒤쪽으로는 산을 등지고 앞쪽으로는 시야가 트이면서 들이 펼쳐져 있다. 일치단은 1899년(광무 3) 포천 출신의 학자이자 위정척사 운동가인 유기일(柳基一)이 경기도 포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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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가채리에 있는, 최익현(崔益鉉)을 모신 사당. 채산사는 한말의 대유학자이자 의병장으로 활동한 최익현[1833~1906]과 우국지사 최면식(崔勉植)[1891~1941]을 봉향한 사당이다. 채산사는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가채리에 위치한다. 평지에 자리 잡고 있으며, 앞뒤로 시야가 트이면서 들이 펼쳐져 있다. 뒤쪽 좌측 산기슭에 청성사가 있다. 채산사는 19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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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가채리에 있는, 최치원(崔致遠)을 봉향하는 사당. 청성사는 최치원을 제향하는 사당으로, 원래는 1768년(영조 44) 모사한 영정을 봉안하기 위한 고운 영당으로 설립되었다. 1935년 지금의 위치로 옮기면서 청성사로 개칭하였다.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가채리에 위치한다. 원래는 포천시 영중면 금주리에 설립한 고운 영당으로, 1935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 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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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추동리에 있는, 이지란(李之蘭)과 그의 후손 이중노(李重老)를 제향하는 사당. 청해사는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추동2리에 위치한 사당으로, 평지에 자리 잡고 있다. 앞뒤로 시야가 트이면서 들이 펼쳐져 있다. 주변의 경관이 산만한 것을 보충하고자 담장 주위에 은행나무와 전나무 등을 심어 외부에 그대로 노출됨을 막았다. 청해사는 조선 개국 공신이며 청해 이씨의 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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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무봉리에 있는 유응부(兪應孚)와 이어(李王+於), 양치(楊治)를 배향하기 위해 설치한 조선 후기 제단. 1746년(영조 22) 사육신 중의 한 명인 유응부의 제단을 설치하면서 충목단으로 불렸다. 흥선 대원군에 의해서 훼철되었으며, 훼철된 뒤에는 당시의 오위장 손형수(孫瀅洙)가 이 자리에 자신의 선대 묘역을 조성하였다. 이에 포천 유림들이 분격하여 1873년(고...
민간 신앙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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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군내면 상성북리에서 마을을 지켜 주는 서낭신[성황신]을 모셔 놓은 신당. 군내면 성황당은 군내면 상성북 2리의 주민들이 믿음의 대상으로 삼았던 민간 신앙 유적이다. 본래 성황당은 토지와 마을을 지켜 준다는 서낭신이 깃들어 사는 안식처로서 예부터 성스러운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다. 성황당은 서낭신이 길에서 떠도는 악령으로부터 비롯된 질병과 재해, 호환을 막아 준다고 믿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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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금주리 금룡사(金龍寺)에 딸린 산신각. 금룡사는 대한 불교 태고종 사찰로 1865년[고종 2] 이순신(李舜臣)의 후손인 지담(智潭) 대사가 창건하였다. 당시 안팎으로 위기에 처한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면서 홀로 묵묵히 수행하려는 목적에서였다. 오랫동안 암자 형태로 명맥을 유지하던 금룡사는 1970년대 들어 승려 지해(智海)에 의해 중창되었다. 지해는 1974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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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이곡 1리에서 미륵 부처를 모시고 있는 마을 제당. 이곡 1리 미륵당은 도솔천에 살며 56억 7000만 년 뒤에 미륵불로 나타나 중생을 제도한다는 장래의 미륵 부처를 모시고 있는 민간 신앙 유적이다. 이곡 1리 미륵당은 포천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무속 신앙 형태 중의 하나이다.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이곡1리에 위치하고 있다. 이곡 1리 미륵당은 중앙에 단군(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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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오가리에서 신령이 강림하여 머물러 있다고 믿는 나무. 창수면 오가리 신목은 신령이 나무를 통로로 하여 강림하거나 그곳에 머물러 있다고 믿는 수목 신앙(樹木信仰)에서 비롯된 민간 신앙 유적이다. 무속에서 신목(神木)은 하늘과 땅, 신과 인간이 만나는 곳이다 포천에서 연천으로 가는 지방도의 오른쪽에 비포장의 구도로가 있다. 이 길을 따라 절반 정도 지나면, 길 왼...
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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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고일 2리에 있는 조선 시대 절터. 고일리 절터는 포천시 신북면 고일리 116번지에 있다. 죽엽산 정상부 북서쪽에 위치한다. 1996년 9월부터 1998년 9월까지 단국대학교 사학과에서 포천시 신북면 고일 2리에 위치한 성석린 선생 묘(成石璘先生墓) 입구, 텃골과 방축골 사이 인삼 경작지 두 곳의 절터를 발굴 조사하였다. 성석린 선생 묘 입구에 위치한 절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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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군내면 구읍리에 있는 고려 전기의 절터. 구읍리 절터의 포천 구읍리 석불 입상(抱川舊邑里石佛立像)은 1석의 화강암으로 조성되어 있다. 머리 정상에는 큼직한 육계(肉髻)가 솟아 있다. 상호는 원만한 편으로 눈·코·입 등이 표현되었으나, 인위적으로 파손된 흔적이 역력하다. 양쪽 귀는 길게 흘러 어깨에 닿았고, 목에는 삼도의 흔적이 약간 남아 있다. 어깨는 당당하여 상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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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금현리에 있는 조선 전기에 폐사된 것으로 보이는 절터. 금현리 절터에 대한 직접적인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을 비롯한 문헌에서는 찾을 수 없다. 다만 일제 강점기에 조사된 기록인 『조선 보물 고적 조사 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에 “금현리의 서남쪽 약 4정(町)[400m]에 있다. 전부 경지화되어 있다. 죽엽산의 북쪽 기슭에 있다. 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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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길명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절터. 길명리 절터는 금주산 동쪽의 좁은 계곡부인 일명 ‘절골’에 위치하고 있다. 제2355부대 301부대 주둔지 북동쪽 사격 훈련장 내 계곡 부분 좁은 평지에 위치한다. 주소지는 포천시 일동면 길명리 산198번지이다. 길명리 절터의 규모, 형태, 수습 유물의 양상을 종합해 볼 때 18세기 이후 짧은 기간 경영되었던 소규모 암자 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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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에서 조선 시대에 이르는 절터. 도평리 사지 또는 약사지(藥寺址)라고도 한다. 통일 신라 말 또는 고려 시대에 창건되었다가 조선 시대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절의 이름이나 창건 연대, 폐사 기록 등이 전혀 전하지 않는 절터이다. 다만 인근의 지명에 ‘약사골’, ‘약사령’이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전하는 바대로 ‘약사(藥寺)’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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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무봉리에 있는 조선 시대 절터. 무봉리 절터는 향적산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데, 여러 문헌에 “향적사(香積寺) 재 향적산(香積山)”이라 기록되어 있어 이곳이 향적사의 옛터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동국 여지지(東國輿地誌)』에서 사찰의 존재를 알리고 있는 데 비해 『경기 읍지(京畿邑誌)』와 『견성지(堅城志)』에는 “금무(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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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에 있는 고려 시대에서 조선 시대에 이르는 절터. 상선암 터에 대한 역사 기록은 조선 중기 문신이며 사상가인 미수(尾叟) 허목(許穆)[1595~1682]의 문집인 『기언(記言)』 권(卷)27 산천(山川)에 실린 기행문 「백운산(白雲山)」에 “상선암은 산중 바위로 이루어진 20리 골짜기 안에 위치하는데 산길이 끝나는 깊은 계곡에 위치한다. 이름(頤凜)이 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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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선단동에 있는 조선 시대 절터. 선단동 절터는 선단동 마을 북쪽의 왕방산 일대에 위치하고 있다. 전계 대원군 묘(全溪大院君墓) 뒤편의 왕방산과 해룡산 사이에 개설된 등산로를 따라 800m 정도 오르면 해발 고도 약 326m 위치의 남동쪽 능선부에 있다. 주소지는 포천시 선단동 산11-14번지이다. 선단동 절터 일대에서 석축 1기가 발견되었으나, 잡목과 수풀이 우거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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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에 있는 고려에서 조선 시대에 이르는 절터. 선적사 터에 대해서는 기록에 전하는 바가 없어 정확한 절 이름과 유래를 알 수 없다. 그러나 1942년에 조사된 『조선 보물 고적 조사 자료』에 “전부 경작지화되어 있으며 그 터는 완전히 명확하지 않다. 삼층 석탑 1개가 대체로 완전하다. 그 밖에 기와 파편이 셀 수 없이 흩어져 있고 선적사라고 칭한다”라고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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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관인면 중리에 있는 고려 시대 절터. 신흥사 터의 정확한 창건 연대나 성립 후의 활동은 알 수 없으나, 신흥사 터에서 발견된 석조 여래 좌상은 고려 중기의 양식을 띠고 있어서 고려 중기부터 절이 있었던 것으로 예상할 수 있으며, 6·25 전쟁 이전까지 절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다만 존재 형태나 규모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확인할 수가 없다. 신흥사 터는 포천시 관인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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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음현리에 있는 고려에서 조선 시대에 이르는 절터. 안양사 터에 대해서는 자세한 연혁은 알 수 없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향적산(香積山)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견성지(堅城志)』와 『범우고(梵宇攷)』에 폐사되었다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18세기 후반 이전에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일제 강점기에 조사된 『조선 보물 고적 조사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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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어룡동에 있는 고려 시대 절터. 왕방산 절터에 있던 사찰의 정확한 창건 연대를 알 수 없으나, 경기도 유형 문화재 제155호인 포천 석조 여래 입상으로 보아 고려 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왕방산 절터는 왕방산의 남쪽 기슭 남동향으로 자리한다. 주소지는 포천시 어룡동 산32-1번지이다. 사역(寺域) 북단에는 포천 석조 여래 입상 1구가 현존하고 있고, 남쪽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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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자일리에 있는 고려 시대 절터. 자일리 절터는 포천시와 철원군의 접경인 영북면 자일리 중군봉 아래 동쪽 비탈면 경작지에 위치하고 있다. 1996년 9월~1997년 4월 자일리 절터에 대해 단국 대학교 사학과에서 발굴 조사를 하였고, 청자, 백자, 기와 조각이 수습되었다. 약 661.16㎡[200평]의 대지가 형성되어 있는데, 사찰은 남동 60°의 축선으로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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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주원리에 있는 조선 시대 절터. 절취미 절터는 포천시 창수면 주원리의 절취미 약수터 오른쪽 경작지에 위치한다. 주소지는 포천시 창수면 주원리 590번지이다. 절터는 약 2,314.05㎡[700평]이다. 마을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오래전 이곳에 절이 있었으며, 약수가 나와 절집 약수터라 부른다고 한다. 과거에 기와·토기·자기 조각 등이 흩어져 있었다고 하나,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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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고모리에 있는 조선 시대 절터. 죽엽산 절터는 포천시 소흘면 고모 2리 죽엽산 아래에 위치한 석원사에서 등산로를 따라 약 1㎞ 오른 9부 능선에 위치하고 있다. 주소지는 포천시 소흘읍 고모리 산34번지이다. 하단에 위치한 석축은 길이 15.3m, 높이 80㎝ 정도만 남아 있다. 석축의 하단에는 가파른 산세가 형성되어 있어 사역(寺域)을 구성하기 위해 가장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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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관인면 초과 2리에 있는 고려 시대 절터. 초과리 절터는 길이 50m, 높이 20m의 암반을 뚫어 굴착한 석굴과 요사채로 구성되어 있다. 동향한 석굴은 길이 16.7m, 높이 2.4m, 깊이 10.2m 규모로 상면과 하면이 타원형의 형태를 이루며 교차하고 있다. 석굴의 벽과 천장에는 굴착한 흔적이 역력히 보이고, 하면에는 굵은 모래가 깔려 있다. 석굴의 남쪽에는 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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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추동 1리에 있는 조선 시대 절터. 한나 기도원 관계자에 의하면 1992년 기도원을 신축하기 위해 대지를 정리하던 중 꽃그림이 새겨진 많은 기와가 출토되었다고 한다. 현재 한나 기도원 곳곳에서 물결무늬[파상문(波狀紋)]가 새겨진 회청색의 기와 조각을 찾을 수 있는데, 남동 70°의 축선을 지닌 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추동리 절터는 포천시 창수면 추동 1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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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설운동에 있는 고려 시대 절터. 마을에서는 이곳을 절골이라고 부르는데, 청자 및 기와 조각이 흩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 시대에 조성된 절터로 추정된다. 해룡사에 대해서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동국 여지지(東國輿地志)』에 “해룡사는 해룡산의 감지(鑑池) 옆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견성지(堅城誌)』...
가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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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거사 2리에 있는 조선 시대 가마터. 기록에 따르면 포천 지역에는 예로부터 도자기를 생산하는 곳이 여럿 있었으나 대부분 그 위치가 확인되지 않는다. 거사리 가마터는 지금까지 발견된 포천 지역의 몇몇 도자기 생산 시설 중 하나이다. 포천시 영중면 거사리에는 금화봉이 솟아 있는데, 그 북쪽에 사기막골이라는 자연 마을이 있다. 거사리 가마터는 이곳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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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주원 5리에 있는 조선 시대 가마터. 군자동 사기점 밭 가마터는 포천시 창수면 주원 5리에서 창수면사무소 쪽으로 진행한 뒤 사기막골로 들어가는 작은 길을 따라 골짜기로 150m 정도 가면 낮은 언덕에 위치한다. 동북향의 낮은 언덕의 남서 경사면을 이용하여 길게 조성되었다. 포천시 창수면 주원 5리 군자동 마을에 있다. 군자동 사기점 밭 가마터는 작은 길을 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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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길명 2리에 있는 조선 후기 흑유자 가마터. 흑유자(黑釉磁)는 유약에 다량의 철분이 포함되어 있어 도자기의 표면이 흑색이나 암갈색을 띠는데, 수량은 적으나 고려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 제작되어 왔다. 흑유자가 출토된 대표적인 가마터는 조선 전기의 공주 학봉리, 진해 두동리, 고창 용산리, 장성 추암리 등이 있다. 조선 후기에는 울산 상삼정리,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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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도평 3리에 있던 조선 후기 가마터. 옛날부터 기와를 굽던 곳이라고 하여 도평리 가마터가 있는 곳을 ‘점말[점촌(店村)·(粘村)]’이라고 부른다. 점말의 ‘점(粘)’은 기와를 굽는 원료가 되는 찰흙을 의미한다. 최근에 도로가 확장·포장되면서 완형(完形)으로 남아 있던 가마터의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지금은 가마의 윗부분과 흙을 다지고 모래를 깐 요상(窯床)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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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소학 1리에 있는 조선 전기 가마터. 소학리 가마터는 15세기 초부터 임진왜란(壬辰倭亂) 이전까지 존재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백자 가마터이다. 소학리 가마터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봉소리 자기소(峰巢里磁器所)”로 기록되었으며, 일제 강점기에 발간된 『조선 보물 고적 조사 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에는 경작지에 자기 조각이 산재되어 있다고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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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운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 가마터. 운천리 옹기 가마터는 제7598부대 301부대 주둔지 북쪽 부대시설과 인접한 남향 비탈의 아래쪽 경사면에 위치한다. 이곳은 군부대가 위치하기 전에 있었던 마을 이름이 ‘점말’로 불리던 곳으로, 운천리 옹기 가마터에 지명의 연원을 둔다. 가마터가 위치한 곳은 포천시 영북면 운천리와 인접하여 솟아 있는 각흘봉의 남쪽 지맥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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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유동리에 있던 조선 시대 흑유 도기 가마터. 포천시 일동면 유동리에 70여 년간 거주하였다는 유홍렬에 의하면, 자신이 어렸을 때 이곳에 옹기점이 있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고, 30여 년 전 도로 공사를 할 때 다수의 옹기류가 출토되었다고 한다. 가마터로 추정되는 서쪽에는 1995년까지 민가가 있었다고 한다. 현재 일동 레이크 골프 클럽의 퍼블릭(pub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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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주원 4리에 있는 조선 시대 가마터. 주원리 가마터는 영평천 변, 북동쪽으로 뻗은 해발 142m 낮은 능선 끝자락에 위치한다. 주소지는 포천시 창수면 주원 4리 산215-1번지이다. 주변 지역에서 백자 조각을 중심으로 많은 양의 자기 조각이 수습되었으며, 도침(陶枕)[자기로 만든 베개] 및 가마벽 조각 등도 수습되었다. 백자 대접 조각은 회색 사질토를 활용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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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화대 2리에 있는 조선 시대 가마터. 화대리 가마터는 포천시 일동면 화대 2리 강수봉 아래 양물골 내 한나물골 주말 공원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잡목이 우거져 있으나 남서향의 낮은 언덕에 길이 14m, 폭 5m에 걸쳐 소토와 자기 조각이 수습되어 가마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능선 아래로는 등산로와 작은 개울이 있다. 마을 사람들에 의하면 등산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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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화현면 화현리에 있는 조선 전기 분청사기 가마터. 화현리 분청사기 가마터는 포천시 화현면 화현리 산190번지에 있는 운악산 자연 휴양림 매표소를 지나 조금 들어가면 오른편으로 보이는 잔디 광장에 위치한다. 화현리 분청사기 가마터는 약 1,695㎡[512.74평] 규모로 운악산 일대에 자연 휴양림 조성을 계획한 산림청이 육군 사관학교 화랑대 연구소에 의뢰해 2004년...
건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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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군내면 구읍리에 있는 조선 시대 관아 터. 구읍리 관아 터는 조선 후기까지 유지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는 군내면사무소가 관아 터 인근에 위치하고 있다. 구읍리 관아 터는 군내면사무소 맞은편 평탄한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반월산성 남쪽의 포천 들판이 조망되는 지형으로 현재는 경작지로 활용되고 있다. 주소지는 포천시 군내면 구읍리 530번지 일대이다. 구읍리 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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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고모리에 있던 조선 시대의 관아 터. 도감(都監)이란 고려 및 조선 시대에 나라의 일이 있을 때 임시로 설치하던 관아를 가리키며, 훈련도감 등이 이에 해당한다. 도감 터 위쪽에는 문화 유씨(文化柳氏)의 묘가 있었으나, 포천시 일동면 길명리로 이전하였으며 묘비는 원래 없었다고 한다. 포천시 소흘읍 고모리의 향적산 남쪽 아래에 있는 저수지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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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영평리에 있는 조선 시대 향교 터. 영평 향교(永平鄕校)는 조선 시대 영평군[현재 포천시 북부 지역]에 소재하였던 향교로 1938년 철폐되어 현재 터만 남아 있다. 영평 향교는 1173년(명종 3) 창건하여,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으나 1594년(선조 27) 중건해 성리학의 강학과 유림의 제향을 병행해 오면서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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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영평리에 있는 조선 시대 관아 터. 영평리 마을 사람들에 의하면 영평현 관아는 일제 강점기에 주재소로 사용되다가, 이곳이 38선 인접 지역인 까닭에 6·25 전쟁 때 건물이 파괴되었다고 한다. 영평현 관아 터는 영평 초등학교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영평 초등학교 정문 앞에는 인근에서 공사할 때 발견되어 옮겨 온 선정비 3기와 초등학교 내에 미륵불과 귀부가 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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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가채리에 있는 개항기 포천 출신 의병장 최익현의 생가 터. 가채리에서도 최익현이 태어난 마을은 경주 최씨(慶州崔氏)가 많이 살고 있어서 최가채리라고도 불렀다. 이 마을은 450여 년 전 경주 최씨의 중시조인 한산 군수 최수준[1472~1527]이 낙향하여 자리를 잡고 살기 시작한 듯하다. 최익현은 1833년(순조 33) 12월 5일[음력] 포천시 신북면 가채리...
봉수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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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진목리에 있는 조선 시대 봉수 터. 넙재 봉수는 기록상에 보이는 잉읍현(芿邑峴) 봉수로 여겨진다. 독산 봉수에서 신호를 받아 남양주에 있는 대이산[한이산] 봉수로 연결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는데, 이 신호는 다시 아차산 봉수를 거쳐 최종지인 목멱산[남산] 봉수로까지 통하였다. 넙재 봉수 터는 포천시 가산면에서 내촌면으로 통하는 지방도 325호선의 길목에 있는 큰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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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기지 1리에 있는 조선 시대 봉수 터. 독산 봉수 터는 ‘봉화뚝’이라고도 불린다. 독산(禿山) 정상에는 약 2,644.63㎡[800평]의 대지가 조성되어 있는데, 산등성이부터 흙으로 쌓은 단을 형성하여 정상부를 확장하였다. 이곳에서는 포천 시내와 반월산성(半月山城), 신북면 일대가 잘 조망된다. 독산 봉수 터는 정상부의 동쪽에 양호하게 보존되어 있다. 포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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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야미리에 있는 조선 시대 봉수 터. 야미리 봉수 터는 미로곡(彌老谷) 봉수 터 또는 며로곡 봉수 터라고도 부른다. 야미리 봉수는 8㎞ 북쪽에 위치한 중군봉 정상에 있는 적골산 봉수로부터 신호를 받아 15㎞ 남쪽의 독산 봉수로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영평 읍지(永平邑誌)』에는 “원군 25명, 보군 75명[元軍二十五名 保軍七十五名]”이라고 야미리 봉수의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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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자일리에 있는 조선 시대 봉수 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47 철원도호부 봉수조에 “적골산 봉수는 부의 서쪽으로 46리에 있다. 북쪽으로 소이산에 응하고, 남쪽으로 경기의 영평현 미로곡에 응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국도 43호선 포천과 철원의 경계점에 위치한 울음봉 맞은편 적골산 정상부에 있다. 중군봉 봉수 터에 민묘 1기와 봉수에 활용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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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관인면 냉정 1리에 있는 조선 후기 봉수 터. 할미산 봉수는 서북방으로 10.5㎞ 떨어진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사요리의 소리산 봉수의 신호를 받아 6.5㎞ 남쪽의 적골산 봉수에 연결하였다. 할미산 봉수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동국 여지지(東國輿地志)』 등의 철원도호부편 봉수조에는 소개되지 않았으나, 『여지도서(輿地圖...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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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우금리에 있는 현대 6·25 전쟁 당시 육사 생도 대대가 방어 전투를 벌인 곳. 내촌 전투는 6·25 전쟁 초기 육사 생도 대대가 내촌 일대에 방어 진지를 편성하여 북한군을 저지하였던 전투이다. 육사 생도 대대는 372고지에서 철야 경계 태세를 갖추고 진지 작업을 하였다. 대대는 교육을 받은 부대로 주진지와 예비 진지 및 보조 진지까지 구축하면서 사계 청소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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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노곡리에 있는 1950년 6·25 전쟁 당시 노곡리 일대 주민들이 독수리 유격대를 창설한 곳. 독수리 유격대 창설지는 1950년 11월 포천 노곡리 일대 주민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독수리 유격대가 만들어진 곳이다. 독수리 유격대는 1950년 6월 북한군의 남침 직후 포천 노곡리 일대에서 당시 대한 청년단 간부인 최종성과 최종철 형제를 주축으로 모두 63명의 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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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만세교리에 있는 1950년 국군 제9연대가 북한군의 도하를 저지하였던 곳. 국군 제9연대 2대대는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 남침을 저지하기 위해 4시간 동안 홀로 싸우고 있었고, 전방의 분산 병력을 수습하면서 북만세의 급편 방어 진지를 고수하고 있었다. 제9연대 주력은 2대대를 지원하기 위해 6월 25일 아침 일찍 주둔지를 출발하여 북상하였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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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무봉리에 있는 3·1 운동 당시 무봉리 주민이 만세 시위를 벌인 곳. 1919년 서울에서 전개된 3·1 운동 소식은 곧바로 포천 지역에 알려졌다. 3월 13일 포천 공립 보통학교 학생들은 일본 교원들의 눈을 피해 학교 뒷산에서 만세 시위를 벌였다. 이러한 학생들의 시위는 포천 전 지역에 영향을 주어 3월 24일 영중면 영평리와 소흘면 송우리에서 본격적인 대중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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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사직리에 있는 6·25 전쟁 당시 국군 제9연대 2대대가 북한군을 맞아 전투를 수행한 곳.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남침할 때 국군 제9연대 2대대는 포천시 일동면 추동리~사직리 일대에서 경계하던 중에 북한군 제3사단 예하 부대의 남침을 받았다. 제2대대는 6중대와 7중대를 전방 경계 지대에 배치하고 있었으나 전투가 여의치 않자 적의 공격을 받으면서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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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송우리에 있는 개항기 포천 지역에서 최초로 의병 활동이 일어난 곳. 1907년 9월 20일 오전 3시경, 포천군 외면 상송우리에 의병 약 100명이 내습하여 일본 경찰의 밀정으로 추정되는 마을 사람 1명을 총살하고 1명에게 중상을 입힌 뒤 일진회원 1명을 납치하였다. 그 후 이 소식을 접한 포천 주재 순검 신석주(申錫柱)가 수비병과 함께 추격해 오자 의병은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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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신팔리에 있는 6·25 전쟁 당시 북한군에 맞서 전투를 행한 곳. 서파 전투지(西坡戰鬪址)는 북한의 남침 당일 북한군 주력을 방어한 전투 현장이다. 1950년 6월 25일 국군 제9연대는 포천 일대에서 북한군 제3사단 예하 부대의 남침을 받았다. 북한군 전차 부대가 아군의 주저항선 방어 지대 중앙을 통과하자 제9연대 장병들은 후속하는 적 도보 부대만은 격퇴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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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송우리에 있는 6·25 전쟁 당시 북한군의 전투력에 밀려 철수하였던 곳. 송우리는 6·25 전쟁 초기 서쪽으로 화엄령을 넘어 동두천 가도의 덕정과 횡으로 연결되는 중요한 방어 요충이었다. 여기에서 적을 방어하지 못하면 8㎞ 후방의 축석령 사이에 방어할 만한 곳이 없기 때문에 국군 제3연대는 태봉산과 해룡산 동남쪽의 178고지를 방패삼아 이곳에서 적을 저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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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송우리에 있는 3·1 운동 당시 송우리 주민이 만세 시위를 벌인 곳. 1919년 3월 1일 거족적인 만세 시위가 시작된 이래 만세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대 되어 가던 중 포천 지역에서도 만세 시위가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1919년 3월 24일 송우리 주민 600여 명이 시위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출동한 송우리 헌병 분견소 헌병 경찰들의 총검에 맞서 다수의 부상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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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가채리에 있는 6·25 전쟁 당시 국군이 북한군의 진출을 저지한 곳.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남침할 때 국군 제9연대는 천주산과 가랑산 일대에서 북한군 제3사단 예하 부대의 공격을 받았다. 북한군은 이날 새벽 38도선을 돌파하여 만세교 부근까지 진출하였다. 제3사단 7연대가 국도 43호선을 따라 정면 공격을 하였고, 제9연대가 국군의 주저항선 중앙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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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기지리에 있는 3·1 운동 당시 신북면민이 만세 시위를 벌인 곳. 1919년 3월 29일 중면 신사리의 유중식은 2통의 통문을 받았다. 그 내용은 “내일 신북면사무소 앞에 군중이 모여 만세를 부르고자 하니 여러 사람과 같이 나오라”는 일종의 사발통문이었다. 유중식은 독립 만세를 부른다는 통문 내용에 찬성하여 동리 사람을 모아 놓고 “지금 사발통문이 돌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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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선단동에 있는 1907년 의병 활동이 일어났던 곳. 군대 해산 이후 울분을 금치 못한 해산 장병들은 지방 의병과 합류함으로써 의병의 역량을 배가시켰다. 1907년 9월 20일 이후부터 포천 지역에서도 이러한 영향으로 의병 활동이 산발적으로 진행되었다. 같은 해 10월 이후 포천을 주 무대로 의병 활동은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12월 김연성(金演性)이 이끄는 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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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읍길에 있는 1927년 포천 공립 보통 학교 4학년생들이 동맹 휴학을 벌인 곳. 포천 공업 보통학교 동맹 휴학은 1927년 이 학교 4학년 학생들이 송원(宋原) 일본인 교장의 학생 구타에 집단 반발하여 동맹 휴학을 한 사건이다. 1927년 포천 공립 보통 학교 송원 일본인 교장이 수업료를 내지 않은 학생을 구타하자, 교장을 배척하고자 동맹 휴학을 하였다. 학생들이...
기념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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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운천 1리에 있는 2003년 해방을 기념하여 세운 탑. 8·15 해방 기념탑은 원래 포천군 영북면 운천 9리 꿈이 있는 마을 보육원 자리에 주민들이 1945년 8월 해방을 기념하여 돌로 세웠던 것이다. 그런데 1950년 6·25 전쟁 당시 파괴되고 말았다. 그 뒤 포천시 영북면이 수복되면서 그 뜻을 기리기 위해 2003년 6월 3일 포천군 영북면 운천 1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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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도평리에 있는 1954년 6·25 전쟁 당시 포천 탈환의 성공을 기려 세운 탑. 포천 일대는 1951년 1월 중공군의 3차 공세로 피탈되었다가 3월 24일 유엔군의 반격 작전으로 수복하게 되었다. 미 제3사단은 호킨스 특수 임무 부대를 편성하여 의정부, 포천으로 진출하였으나 중공군 제26군의 완강한 저항을 받아 치열한 접전을 수행하였다. 중공군은 의정부 북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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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4일 미 제3사단이 포천 일대로 공격을 개시하여 중공군 제26군을 몰아내고 탈환한 것을 기념하여 세운 탑 한국전쟁 당시 포천은 북한군에 의해 점령되었다가 국군과 유엔군의 반격작전으로 1951년 3월 수복되었다. 미 제8군과 국군 제5군단은 공동주관으로 1954년 10월 15일 포천수복을 기념하기 위해 이 탑을 건립하였다. 수복탑의 제막식에는 이승만 대통령도 참석하였으며,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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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군내면 하성북리에 있는 1994년 독립 유공자 및 6·25 전쟁 참전 용사들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충혼탑. 충혼탑(忠魂塔)은 호국 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1994년 포천 군민들이 뜻을 모아 건립하였다. 충혼탑은 포천시 군내면 하성북리 산106번지 청성 문화 체육공원 내에 위치한다. 기념탑 앞에는 한자로 ‘충혼탑(忠魂塔)’이 새긴 머릿돌이 정면에 있다. 기념탑의 기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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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양문리에 있는 현대 평화 통일을 기원하며 세운 탑. 통일 기원탑(統一 祈願塔)은 평화 통일 정책 자문 회의 포천군 협의회가 38휴게소에 평화 통일을 기원하며 건립하였다. 통일 기원탑은 포천시 영중면 양문리 917-7번지 38휴게소 앞에 있다. 의정부시에서 포천을 지나 철원으로 가는 호국로 만세교 삼거리와 성동 삼거리 사이이다. 계단식으로 축조한 2층 기단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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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에 있는 1954년 미군이 중공군을 공격하여 포천 일대를 탈환한 것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6·25 전쟁 당시 포천 일대는 1950년 6월 25일부터 10월, 1951년 1~3월 두 차례 걸쳐 북한 점령 하에 있다가 1951년 3월 24일 유엔군의 반격 작전으로 1951년 3월 완전히 수복되었다. 중공군 공세에 미 제3사단은 호킨스 특수 임무 부대를 편...
기타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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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우금 2리에 있는 조선 시대 반석. 『견성지(堅城誌)』에는 옥동 반석(玉洞盤石)에 대하여 “반석(盤石)에는 50명이 앉을 만하고 맑은 물이 흐르며 둘레에는 단풍과 전나무가 우거져 있다”라는 내용과 함께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과 불정산인(彿頂山人) 홍지성(洪至誠)이 봄가을이 되면 옥동 반석을 찾아 노닐었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서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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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양문리에 있는 북위 38도선을 표시하는 표지석. 포천 38도선 표지석은 한반도의 남북을 가르는 북위 38도선을 표시하는 표지석이다. 민족의 비극인 분단을 상징하고 평화 통일을 기리기 위해 설치한 조형물로 보통 커다란 자연석을 받침대 위에 세워놓은 형태이다. 자연석에는 3·8선이라 쓰고 영어로 ‘THE 38th PARALLEL’이라고 함께 적은 표지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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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기지리에 있는 1948년 6·25 전쟁 당시 38도선 부근에 설치한 진지. 포천 방어 벙커는 남과 북이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던 1948년에 북한군의 침공을 방어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당시 38도선 부근에 설치한 4개의 진지를 설치하여 북한군과 대치하고 있었다. 6·25 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기도 하다. 6·25 전쟁 후 4개의 진지 중 3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