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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도면의 섬들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섬이 바로 관매도이다. 특히 관매도에는 천연기념물 제211호인 상록수림대와 제212호인 후박나무가 있어서 생태 테마 관광지로서의 가치도 지니고 있다. 관매도에는 절경을 자랑하는 곳이 많다. 사람들은 그 가운데 여덟 곳을 선정해 ‘관매 8경’이라고 부른다. 관매도 제1경은 관매도해수욕장이다. 이 해수욕장에는 길이 3㎞, 폭 200m의 백사장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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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매도를 드나드는 교통편은 팽목(진도)-관매, 팽목-창유(조도)-관매, 팽목-진도의 여러 섬 경유-관매, 목포-관매[도중에 여러 섬을 경유]의 네 가지 교통편이 있다. 가장 많이 이용하는 교통편은 팽목에서 조도를 거쳐서 관매도를 오가는 배편으로 1시간 정도 소요된다. 다음은 팽목과 관매 사이에 진도의 대마도, 소마도, 관사도, 조도 등을 경유하여 2시간 정도 소요되는 배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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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지는 논이 41.7㏊, 밭이 8.7㏊에 이르며, 미역과 톳양식을 하는 호수가 23호, 낭장망을 이용해 멸치잡이를 하는 호수가 1호, 통발을 이용해 장어,문어,꽃게잡이를 하는 호수는 6호다. 벼농사를 짓는 사람은 전체 가구 중 7~8호에 불과하며, 밭농사를 짓는 사람도 20여 호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농사를 짓지 않고 외지사람에게 임대해주고 있다. 외지사람들은 3만 평 정도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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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매도에서 생산되는 대표적인 상품이 자연산 미역이다. 잭원에서 생산되는 상품은 가내수공업 형태로 가공한 뒤 20가닥(1속)으로 묶어 상인에게 넘긴다. 주로 목포상인들을 통해서 유통된다. 자연산 미역을 넘기면, 상인들이 판매하고 일정한 소개료를 제한 뒤 주민들에게 판매대금을 송금한다. 특별한 계약관계에 의해서가 아니라, 서로 믿는 신뢰관계로 유통판매가 이루어지고 있다. 미역판매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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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매리(觀梅里)는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관매도에 있는 마을이다. 관매리[1구]와 관호리[2구]로 이루어져 있으며, 관매도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관매도리, 또는 관매도라고 부른다. 관매도의 마을명칭, 즉 관매(觀梅)라는 이름은 일제강점기인 1917년에 조선총독부령으로 만들어진『신구대조 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에 처음으로 나타난다. 진도군 조도면 지역의 명칭으로 ‘관매도리(조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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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매도리(觀梅島里)[관매도, 관매리]:본래 진도군 조도면 지역으로, 관매도 또는 관매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관매도리로 개칭하였다. 관매도리는 현재 관매마을[관매 1구]과 관호[관매 2구]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이외에 자연마을로 장산편, 장산너머[또는 장산너메]가 있다. 관매리의 본래 이름, 즉 고유한 명칭은 볼매섬, 볼매리이다. 각흘리[마을]:각흘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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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매리에는 주로 땅이름의 유래와 관련하여 전하는 설화가 많다. 『한국지명총람』(1984)에 나타난 내용을 중심으로 정리한다. 구렁이바우[바위]:다리축구석에 있는데, 이 바위의 형상이 두 마리의 구렁이가 바다에서 서로 엉기어 산으로 올라가는 것 같다. 옛날 당제를 지내던 청년이 몰래 벼락바우 밑에서 애인을 만나 속삭이다가 천벌로 벼락을 맞아 구렁이바우가 되었다고 한다. 여자들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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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매마을 주민들의 주요 소득원은 양식톳과 양식미역, 자연산미역 등이다. 따라서 주민들의 생업력은 이들 수산물의 생육에 맞추어져 있다. 양식미역과 양식톳의 포자를 바다에 넣는 11월과 12월, 자연산미역과 자연산톳을 채취하는 7월 말경은 관매마을 주민들에게 가장 분주한 시기이다. 또한 여름철에는 이름난 관광지인 관매도해수욕장을 찾는 관광객들이 많다. 이 때문에 주민들 대다수가 민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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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⑵ 세시풍속 ⑶ 생업력 꽃게잡이와 고기잡이가 계속되며, 음력 9월 말이면 벼농사 수확이 거의 마무리된다. 톳 종자를 채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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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⑵ 세시풍속 시제모시기 음력 10월은 시제를 모시는 달이다. 각 문중의 법도에 따라 시제를 지낸다. 메주쑤기 이달에 메주를 쑤어서 띄운다. ⑶ 생업력 이달에 미역포자를 바다에 넣는다. 꽃게잡이와 고기잡이가 계속되며, 이달에 가을콩을 수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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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총회 매년 12월 30일경에 마을총회를 개최한다. 주로 날이 궂어 바깥일을 할 수 없는 날에 회의를 하며, 일년간의 마을의 수입금과 지출금을 보고 결산하고 새로운 이장을 선출한다. ⑵ 세시풍속 동지 이날 팥죽을 쑤어먹는다. 예전에는 집안 곳곳마다 팥죽을 뿌리기도 했으나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김장담그기 12일 20일경, 즉 크리스마스 이전에 김장을 한다. 배추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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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⑵ 세시풍속 미알배기 관매마을에서는 설을 앞두고 미알배기라는 풍속이 행해졌다. 미알배기란 어떤 집에서 명절 2~3일 전에 음식을 장만한 뒤 마을의 노인들을 방문하여 대접하거나 절친한 사람들을 초대하여 음식을 나누어 먹던 풍속이다. 활발하게 행해지던 풍습이었으나 30여 년 전부터 흐지부지되었다고 한다. 섣달 그믐날 ①불싸움 섣달 그믐날 저녁 온 마을의 쓰레기를 다 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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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⑵ 세시풍속 설날 설날에는 조상께 차례를 지내고 떡국을 끓여먹는다. 설날 아침에는 집안의 어른들에게 세배를 올리는데, 어른들은 덕담으로 응수한다. 세배를 마친 후에는 산소에 성묘를 한다. 정초 ①당제 관매마을에서는 약 30여 년 전까지 음력 섣달 그믐날부터 정월 초사흘날까지 당제를 지냈다. 주민들은 당제의 신격을 입도선조로 여기고 있다. 당제는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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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⑵ 세시풍속 하리드리날 전에는 이날 아침이면 선영에 차례를 지내기도 했으나 지금은 지내지 않는다. 이날은 밥을 아홉 그릇 먹고 나무도 아홉 짐 하는 날로 여겼다. 또한 이날 아침 왼새끼를 꼬아서 머리카락 등을 끼워 끌고 다니며 “진거끗자, 진거끗자.”라고 말하면 뒤따르는 사람들이 막대기로 왼새끼를 때렸다. 이것은 액을 쫓아내기 위한 방편이라고 한다. ⑶ 생업력 이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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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⑵ 세시풍속 ⑶ 생업력 양식미역을 채취하며, 벼농사를 하는 집에서는 곡우 무렵 볍씨를 담근다. 고기잡이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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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관매초등학교 봄운동회 관매초등학교의 현재 재학생은 20명 정도밖에 안 되지만 예전에는 500명 정도가 다닐 정도로 큰 학교였다고 한다. 재학생수가 감소한 이유는 마을에 젊은 사람들이 살지 않기 때문이다. 관매초등학교 봄운동회는 주민들에게는 소축제의 장이다. 이때는 관매마을과 관호마을 사람들이 운동회에 참여하여 줄다리기와 달리기 등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자녀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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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⑵ 세시풍속 ⑶ 생업력 망종 무렵에 모내기를 한다. 이곳의 모내기는 다른 지역보다 다소 늦은 편인데, 물대기가 어려운 천수답이기 때문에 시기가 늦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이 시기에 콩과 고구마를 심는다. 6월 초에서 7월 중순까지 자연산 미역에 물주기를 한다. 사리 물때에는 바위가 드러나 미역이 뜨거운 햇볕에 익어버리면 생산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물을 끼얹어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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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⑵ 세시풍속 복날 전에는 복날을 크게 쇠지 않았으나 지금은 삼계탕이나 개장국으로 몸을 보신하는 집이 많다. 유두차례 관매마을에서는 예전에도 유두차례를 지내는 가정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⑶ 생업력 7월 초에 양식톳 채취가 끝나면 톳말리기를 하며, 이때 양식톳 밑뿌리에 있는 김을 매주어야 톳뿌리를 살릴 수 있다. 중순 이후에는 자연산미역과 자연산톳을 채취한다. 모자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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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면민체육대회 8월 15일 즈음에 조도면민체육대회가 열린다. 조도면민이 체육경기를 통해 경쟁하고 즐기는 행사로서 관매마을 주민들도 참여하고 있다. ⑵ 세시풍속 백중 전에는 백중차례를 지내는 가정이 많았으나 지금은 지내지 않는다. 벌초하기 음력 7월에 벌초를 한다. ⑶ 생업력 이달에도 관광객을 위한 민박과 식당이 운영된다. 고기잡이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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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⑵ 세시풍속 추석 추석날에는 타지에 있던 일가친척이 한데 모여 정을 나눈다. 송편을 빚고 햇곡식과 햇과일로 제물을 마련하여 차례를 지내고 조상께 성묘를 한다. 약 30여 년 전에는 추석날 저녁에 마당 넓은 집이나 초등학교운동장, 회관 앞 공터 등에서 여자들이 강강술래를 했다고 한다. ⑶ 생업력 고기잡이가 계속되며 꽃게잡이가 시작된다. 이달에는 망종에 파종한 콩을 수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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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1) 조도면 관매리 관매마을 진도군 조도면에 자리한 관매도는 관매, 장산, 관상 세 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조도는 섬들이 새떼처럼 모여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관매도의 원래 지명은 '볼매'였다고 전해진다. 이를 '새가 먹이를 물고 날아가다 잠깐 쉬어가는 섬'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관매도의 형상은 관호마을과 방에섬 양측을 날개로 매가 나는 형상을 하고 있다. 관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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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군 조도면에 자리한 관매도는 관매, 장산, 관상 세 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조도는 섬들이 새떼처럼 모여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관매도의 원래 지명은 '볼매'였다고 전해진다. 이를 '새가 먹이를 물고 날아가다 잠깐 쉬어가는 섬'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관매도의 형상은 관호마을과 방에섬 양측을 날개로 매가 나는 형상을 하고 있다. 관매리는 1970년대까지 270여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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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매도의 총면적은 5.73㎢로, 동경 126° 03′와 북위 34°14′에 위치하며, 진도 본섬의 남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진도 본섬 팽목항에서 남서부로 직선거리 약 17㎞ 정도 떨어져 있는데, 뱃길로 1시간 30분 거리이다. 관매도는 154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조도군도의 중심 섬인 하조도에서 남쪽으로 직선거리 약 5.6㎞ 정도에 위치하고 있다. 섬으로 이루어진 해안선의 길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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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관매도리 당제 관매도리 당제는 입도선조(入島先祖)에게 마을의 안녕과 해산물의 풍요를 비는 마을제사의 성격이 강하다. 대대로 전승되어오다가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 정부의 미신타파 정책으로 철폐되었다. 당시 관매도에 파견돼 있던 경찰들이 방위병들을 시켜 당집을 해체하면서 당제가 중단되었다. 당제를 지내는 시기는 음력 정월 초하루였다. 관매초등학교 앞에 있는 후박나무가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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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에서는 어로의 안전을 지켜주는 배서낭을 모셨다. 대개는 여(女)서낭으로, 서낭은 깨끗한 곳에 모시는데 밥을 하는 ‘투시칸’이나 침실에 감실을 마련해 모셨다. 감실 안에는 삼색헝겁에 바늘과 실을 함께 묶어 모셨다. 서낭과 별도로 조상을 모시는 경우도 있었다. 창지를 접어서 ‘할아버지들’을 선주의 침실 머리맡에 모셨다. 뱃고사는 대부분 닻배와 관련이 있다. 뱃고사의 종류로는 지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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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배가 출어하기 2~3일 전에 단골을 불러 연신굿을 했다. 한식 무렵에 칠산어장으로 출어를 하는데, 관매도에서는 10여 척의 닻배가 고기잡이에 나섰다. 연신을 하게 되면 선주집에 금줄을 치고 부정한 사람(개고기를 먹었거나 상복을 입고 산고 든 사람)들은 출입을 금하고, 선주와 선주가족 그리고 선원들은 목욕재계한다. 연신굿은 낮에 배 위에서 했다. 굿을 하게 되면 이틀간 술과 음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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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강술래는 관매도의 대표적인 여성민요로서 추석이나 설, 대보름 등 명절 때 부르던 노래이며 놀이다. 닻배노래가 남성들 중심의 구비전승이라면 강강술래는 여성들이 전승해온 민요다. 강강술래 여흥놀이로는「긴강강술래」, 「자진강강술래」, 「덕석몰이」, 「청어엮고 풀기」, 「고사리꺽자」, 「남생아놀아라」, 「도굿대당기기」 등이 있다. ①조사일자:1996년 7월 13일 ②조도면 관호리 ③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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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매도는 닻배의 중심지답게 관련 민요가 많이 전승된다. 닻배노래는 닻배를 타고 고기를 잡으면서 부르는 어업노동요로, ①놋소리 ②술비소리 ③풍장소리(배치기)로 구성된다. ①은 노를 저을 때 부른 소리이며, ②는 배에 그물을 싣거나 바다에서 그물을 당길 때 부른다. 그리고 ③은 만선의 흥취와 신명을 표출하는 풍장소리로 불린다. 닻배노래에는 조도 어민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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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매도는 어로활동이 활발한 섬이다. 특히 닻배라고 불리는 조기잡이 어로는 관매도를 비롯한 조도군도의 두드러진 전통 중의 하나이며, 1960년대까지도 사용되던 닻배는 이 지역사람들의 어로활동을 상징하는 문화적 코드라고 할 수 있다. 전라북도 위도의 칠산어장까지 원정을 다녔던 닻배는, 외형적인 규모에서뿐만 아니라 생활문화를 지탱하는 물적 기반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낭장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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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낙은 긴 모릿줄에 수많은 낚시를 매달아 물고기를 잡는 어구다. 어종에 따라 농어주낙, 돔주낙, 명태주낙, 장어주낙, 우럭주낙, 다랑어주낙, 꽁치주낙 등이 있다. 사용방법은 거의 비슷하다. 관매도에서는 주낙으로 농어, 장어, 꽁치 등을 주로 잡는다. 꽁치주낙은 약 50발 정도의 모릿줄에 낚시 180여 개를 매달아 조업한다. 상자 하나에 정리된 낚시를 한 틀이라고 하는데 사각형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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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게통발은 원통형 통발에 미끼를 끼워 꽃게를 잡는 어구다. 관매도에는 관매리, 관호리, 각흘도에 각각 1척 씩의 꽃게통발어선이 있다. 한 줄에 100~200개 정도의 통발을 연결하는데 그것을 ‘한 틀’이라고 한다. 통발의 부피 때문에 한번에 세 틀 정도를 배에 싣고 간다. 어업시기는 9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이다. 산란기인 6월~8월에는 금어기다. 봄에는 안개, 가을에는 바람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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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닻배의 구조 닻배는 배에 수많은 닻을 싣고 다닌 데서 유래된 명칭이다. 다른 이름으로는 정선(碇船)이라고 한다. 정선망은 물 속에 병풍처럼 길게 그물을 펼쳐 고기를 잡는 자망의 일종으로, 그물의 아랫부분에 무게를 주고 그물을 일자로 펼치기 위해 소형 닻들이 많이 필요하다. 그 닻들을 배에 싣고 어로활동을 한다고 하여 닻배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 관매도 닻배제작은 주로 관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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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장망은 물살이 센 장소에 설치하는 멸치잡이 어구다. 자루 모양처럼 길게 생겼다고 해서 낭장이라고 부른다. 관매도 주변 바다는 조류의 흐름이 세어 낭장망 어업에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낭장 그물 한 조를 ‘한 틀’이라고 한다. 관매리는 1호, 관호리는 10여 호 정도가 낭장망 어업을 한다. 조업은 양력 7월 무렵부터 11월까지 하는데, 조업이 끝나면 그물을 철거한 뒤 손질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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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치 끌낚시는 소형(1~3톤) 어선에 대나무 2개를 양팔 벌리듯 설치하고 여기에 낚시줄을 매달아 삼치를 잡는 어업이다. 현지에서는 ‘삼치 스릴’이라고 부른다. 관매도에는 30여 척의 채낚기 어선이 조업 중이다. 어구는 배의 중간 부분에 설치한다. 낚시대 2개에 각각 2개 또는 3개씩의 낚시를 매단 줄을 연결한다. 줄은 약 30㎝ 정도이고, 낚시대에서 1.5m 떨어진 곳에 삼치가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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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해역에 위치한 관매도는 질좋은 해조류가 많이 생산되는 곳이다. 미역, 톳, 가사리, 파래, 김 등이 생산되는데, 특히 자연산미역과 톳이 유명하다. 관매도에서는 자연산 해조류를 공동으로 생산한다. 관매도의 해안선은 마을 공동소유의 어장이다. 관매도의 두 개 마을 관매도리와 관호리는 각각 어촌계가 있어 공동으로 어장을 관리한다. 두 마을에서는 해안선을 구역화하여 조별로 운영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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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산미역은 바위에 달라붙어 자란다고 하여 돌미역이라고 부른다. 채취시기는 음력 6월 보름 무렵의 사리 때다. 물이 들었다가 빠지기 시작하면 ‘재건’들이 소형 채취선을 타고 자신들의 구역인 ‘똠’으로 가서 작업을 한다. 낫으로 미역을 잘라 채취하는데 물이 바로 들기 때문에 2시간 정도밖에 일을 하지 못한다. 똠의 공동작업으로 채취한 미역은 회원이 똑같이 분배하고, 개별적으로 건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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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산톳은 미역 채취시기인 음력 6월에 채취한다. 대개 미역을 먼저 하고 톳을 채취한다. 낫이나 칼로 베어 바구니나 망에 담아 온다. 생톳을 분배하기도 하고, 공동으로 건조해서 판매가를 분배하기도 한다. 양식톳은 음력 9월경 바위에 붙은 톳 종자를 채취하여, 원줄에 10㎝ 간격으로 부착해 바다에 설치한다. 원줄의 길이는 50발이며 플라스틱 원형 부표를 이용해 줄을 뜨게 하고 나무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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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처럼 도로가 발달하기 전에는 진도읍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고뱅이 잔등[고백리] - 칠전부락 - 꿀재를 지나야 읍내로 들어설 수 있었다. 이 길은 30여㎞에 이른다. 소포만이 막히기 전에 진도읍으로 가는 길은 앵무까지 걸어가서 나룻배를 타고 장구포를 거쳐 진도읍으로 들어가는 길과, 소포에서 나룻배를 타고 해창으로 들어가 진도읍으로 가는 길이 있었다. 이렇게 진도읍으로 들어가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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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치리의 경지면전은 밭이 46.3㏊, 논이 47.5㏊이며, 인구에 비해서 경지면적이 적은 편이다. 주민들의 주 생업은 밭에서 이루어지는 대파농사이며, 이를 통해 생계와 자녀교육을 하고 있다. 과거에는 대파 대신 보리를 심었으며, 일부 논에서는 배추를 심기도 한다. 대파농사를 짓는 농가는 100여 농가에 이르며, 20여 년 전 나락수매가 이루어지고 쌀값이 좋을 때는 논에는 벼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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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파는 100평 한 마지기에 약값, 종자값, 인건비 등을 고려할 때 35만 원 정도 투자가 되며 2005년 가격이 좋을 때는 150만 원, 보통 50~60만 원에 거래되었다. 가격이 좋지 않을 때는 투자비용을 건지기 어려울 때도 있다. 대파농사는 예약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 대파가격이 괜찮을 것 같으면 3월부터 상인들이 선금을 주고 예약을 한다. 대파판매는 포전판매(밭떼기)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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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치리(禿峙里)는 현재 행정구역상 진도군 지산면 인지리에 속해 있는 마을이다. 독치마을의 법정리인 인지리(仁智里)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이전의 인천(仁川)마을과 독치마을을 병합하면서 새로 생긴 명칭이다.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1912년)에 인지리의 명칭이 보이지 않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을 반영하여 작성한 『신구대조 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1917)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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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에 관련된 기술 내용은 『지명총람』(진도군)의 자료를 바탕으로 하고, 김옥택[남, 66세, 마을 이장] 씨의 도움을 받았다. 독치리는 마을 뒤쪽(부흥산)으로 가치리, 관마리와 경계를 이루고, 마을 앞쪽으로 인천리, 마을 좌측으로 와우리, 마을 우측으로 삼당리와 경계를 이룬다. 규암(窺岩)[바위] 외뜬바우의 다른 이름이다. ‘외뜬바우’ 항 참조할 것. 꿀버성등[꿀버선등][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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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치마을의 주요 소득원은 벼농사와 밭농사 등 농업이기 때문에 주민들의 생활도 농사주기에 맞추어져 있다. 주요작물로는 벼, 검정쌀, 대파, 월동배추, 고추, 구기자 등이다. 농사력은 농촌지도소에서 제시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지만 전체적으로 시기가 앞당겨지고 있다고 한다. 이는 기계화의 영향이기도 하지만 빨리 수확을 해야 좋은 가격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서두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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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성주고사 농사를 지어 첫 방아를 찧으면 손 없는 날을 택일하여 성주동우에 쌀을 담는다. 성주동우의 쌀은 조심해서 밥을 지어먹었다. 가옥을 입식으로 개조하면서 마래가 없어지면서 거의 모든 집에서 성주동우를 치워버렸다고 한다. (3) 생업력 만생종 벼는 이달에 수확한다. 구기자, 조, 수수도 수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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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시제모시기 10월에는 집안별로 시제를 모신다. ○ 이엉얹기 지붕개량을 하기 전에는 추수가 끝난 후 짚으로 마람을 엮어 이엉얹기를 하였다. ○ 메주쑤기 이달에는 메주콩을 삶아서 메주를 쑨 후 짚으로 엮어서 메주를 띄운다. (3) 생업력 대파를 출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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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 총회 매년 12월 말일에 결산총회를 한다. 총회에서는 1년간의 운영실적을 보고하고 재정을 결산하고 새해예산을 세우며, 이장을 선출한다. (2) 세시풍속 ○ 동지 이날에는 팥죽을 쑤어 먹는다. 전에는 집 안 곳곳마다 팥죽을 뿌리기도 했으나 지금은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 김장담그기 이달 중순경에는 김장을 한다. 배추김치, 동치미 등을 담궈서 겨우내 먹을 수 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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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설점치기 12월에 눈이 많이 와야 이듬해 비가 많이 와서 농사시절이 좋다고 하였다. (3) 생업력 월동배추와 대파를 출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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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설날(음력 1월 1일) 설날에는 차례를 지낸다. 차례를 지내는 시간은 각 가정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섣달 그믐날 밤 10시가 넘어서 지내는 사람도 있고, 자정이 넘어서 지내는 사람도 있고 새벽에 지내는 사람도 있다. 차례음식으로는 대부분 메를 올린다. 세배를 마친 후에는 산소에 가서 성묘를 한다. ○ 정초 ① 토정비결 보기 정초에 토정비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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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하루달날(음력 2월 1일) 옛날에는 이날도 차례상을 차리는 집이 있었다. 독치마을에서는 40년 전까지만 해도 이날에 마을을 절반으로 나누어 줄다리기를 했다. 또한 손끄스럼 지진다고 하여 콩을 볶아 먹었다. 하루달날 먹는 칡은 약이 된다고 하여 이날 칡을 캐서 먹었다. ○ 경칩 이날 올챙이를 먹으면 약이 된다고 하여 깨끗한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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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한식 이때 산일을 하면 탈이 없다 하여 이장을 하거나 묘를 손질하고 개사토를 한다. 이날 시제를 모시는 집안도 있다. (3) 생업력 이달 초까지 대파 못자리를 하고 이달 말까지 대파를 옮겨 심는다. 볍씨를 담그고 고추 이종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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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 경로잔치 매년 5월 어버이날 근경에 65세 이상 노인들을 공경하는 의미에서 경로잔치를 벌인다. 마을회관에서 음식을 푸짐하게 장만하여 먹고 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하루를 보낸다. (2) 세시풍속 ○ 4월초파일 불교인은 이날 연등을 달고 절에 간다. (3) 생업력 이달까지 대파 이종을 하고 마늘을 수확한다. 만생종 벼의 못자리를 만들고 조생종 벼의 모내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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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단오날 이날 창포로 머리를 감으면 머릿결이 좋아진다고 하였다. 또한 이날 뜯은 풀잎은 약이 된다고 하였으며 익모초즙을 마시기도 했다. (3) 생업력 망종 즈음에 만생종 벼의 모내기를 한다. 콩과 깨를 갈고 감자를 수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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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유두 예전에는 유두날에도 차례를 지내는 집이 있었다. 유두날은 또랑신네가 농사를 정해주는 날이므로 논밭에 나가서는 안 된다고 하여 보리개떡을 만들어 먹고 놀았다. ○ 복날 삼복에는 시집간 딸들이 복달음을 하기 위해 음식을 장만하여 친정을 찾기도 했다. (3) 생업력 이달에는 벼의 생장을 돕기 위해 비료를 하고 병충해와 잡초를 막기 위해 농약을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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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 면민체육대회 매년 8월 15일에 개최되는 면민체육대회는 지산면민들의 체육행사이다. 축구, 배구, 달리기, 씨름, 줄넘기, 낚시 등 다양한 종목으로 마을별 경합을 벌인다. 몇 년 전까지는 면민의 날 행사에서 종합 1등을 가려서 포상하였으나 1등을 가리다 보니 경쟁이 과열되는 폐단이 있어서 종목별 우승만 가리고 종합우승은 가리지 않고 있다. 종합우승을 가리지 않았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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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추석 추석에는 타지에 나가 있던 일가친척이 모두 모여 햇곡식으로 음식을 장만하고 송편을 만들어 차례를 지내며 조상에게 성묘한다. 타지에 나가 있던 사람들은 추석날 벌초를 하기도 한다. (3) 생업력 추석 무렵부터 조생종 벼를 수확하고 월동배추를 이종한다. 콩, 깨, 고구마, 구기자를 수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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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치마을 마을 달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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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공식 임원으로는 이장, 반장, 부녀회장, 남녀 새마을지도자, 청년회장, 개발위원 등이 있다. 회의는 정기적인 마을 '운영위원회'와 ‘연말결산총회’로 구분할 수 있다. 운영위원회는 6명의 반장과 6명의 개발위원들이 참여하는 회의이며, 연말결산총회는 마을주민 전체가 참여하는 총회다. 결산총회는 12월 말에 일 년 예산, 수입을 결산 보고하는 자리이며, 사업보고와 계획이 수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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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리에는 1999년 12월 설립된 '지산면 민속놀이 전수관'이 있다. 이 전수관에서는 「남도들노래」(이영자: 남도들노래 예능보유자, 박동매: 남도들노래 예능보유자, 박재준: 남도들노래 조교), 「진도만가」(김항규: 진도만가 예능보유자, 설재림: 진도만가 예능보유자)의 전수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진도들노래보존회 회원들이 주축이 되어 전수활동을 하고 있으며, 김기순씨[남도들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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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면은 나라의 목장이 있었던 탓에 조선시대 중엽까지 목장면이라고 하다가 1895년(고종 32) 지방관제 개정에 의하여 이곳에 위치한 지력산의 이름을 빌려 지산면이라 하였다. 인지리는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인천리와 독치리를 병합하여 인지리라 했다. 2006년 6월 현재 독치리는 총 152세대 290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중 농가는 130호, 비농가는 22호이며,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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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리는 진도민속을 배태한 마을이다. 「남도들노래」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30여 명에 이른다. 진도의 무형문화재 중 소포리에서 나온 진도북춤을 제외하고, 씻김굿, 다시래기, 만가 등은 모두 이곳 인지리에서 나왔다. 인지리는 많은 진도민속, 무형문화재와 관련된 조공례, 박병천, 신영희 등 많은 인물을 배출한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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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치리는 1400년 광산이씨가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970년대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진도군지』, 1973) 밀양박씨[24], 김해김씨[20], 순창설씨[21], 동복오씨[16], 광산이씨[21], 경주이씨[12], 안안차씨[12], 강진김씨[9], 경주최씨[8] 등이 거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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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치리 주민들은 진도 동부 쪽, 즉 소포, 고야, 보전, 갈두, 거제, 기린, 안치, 앵무 등의 마을과 많은 혼인관계를 맺어왔다. 하지만 가치, 와우, 삼당 마을과는 결혼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사돈을 맺고 좋은 결과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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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들노래」의 고장 인지리는 진도 남서쪽에 위치한 지산면의 면소재지이다. 과거 해남군 화원지방에 있던 목장을 지산면 지력산으로 옮기면서 사람들이 들어오고 초기에 임회면에 부속되어 오다가 조선시대 중엽 목장면이라 칭하고 관마리에 청을 두었던 곳이기도 하다. 지산면 인지리의 절대적 위치인 경,위도 좌표는 북위 34도 25분 27초이고, 경도는 126도 10분 00초로 면의 중심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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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문화재가 인지마을의 경제적 발전에 어떤 도움을 주었는가에 대해서는 섣불리 대답하기 곤란하다. 다만 문화적인 영향면에서 본다면, 진도의 민속문화를 대표할 수 있는 마을로 자리매김을 했다는 점과, 많은 명인들을 배출한 마을이라는 점 등을 고려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면 인지마을의 문화적 위상을 무형문화재가 높였다고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 관점에서 인지리에 있는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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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면 인지리는 지산면의 소재지 마을이다. 진도의 7개 무형문화재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무형문화재의 본산이라고 할만하다. 직접적으로 관련된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는 남도들노래, 진도씻김굿을 비롯해, 전라남도지정 무형문화재인 진도만가가 해당되고, 간접적으로는 강강술래, 다시래기 등의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와 진도북놀이 등의 전라남도지정 무형문화재가 해당된다. 직접적으로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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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강강술래는 인지마을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다만, 강강술래를 안무할 당시에 해남군 우수영 강강술래를 지도한 사람이 인지리의 박병천이었고, 그런 영향 때문인지 지금까지 왕성하게 강강술래를 보존시켜오고 있는 마을 중의 하나가 인지마을이라는 점에서 강강술래와의 친연성을 부인할 수 없다고 본다. 본래 강강술래는 진도읍의 양홍도를 중심으로 196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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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들노래는 특히 지산면 인지마을을 중심으로 전승되어 오던 노래를 중심으로 하여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바 있다. 즉, 남도들노래는 지산면 인지리를 중심으로 전승되는 논일노래를 일컫는 말이다. 따라서 벼농사에 관련된 노래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 들노래는 1972년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진도에는 남도들노래 뿐만 아니라, 의신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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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래기는 임회면 강준섭을 중심으로 문화재로 지정된 바 있다. 다만 인지마을의 다시래기는 조공례, 김항규 등에 의해 일부의 노래가 전승되어 왔다. 한때는 이들을 중심으로 다시래기패들이 조직되어 연행에 나서기도 하였다. 다시래기가 문화재로 지정되고 난 이후로도 인지마을의 김송순, 김영자, 김복자 등이 다시래기패에 속해 활동해온 것도 인지마을이 다시래기의 전승력을 확보하고 있었음을 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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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만가는 지산면 인지리를 중심으로 연행되는 상여소리를 말한다. 진도만가(珍島輓歌)라는 이름은 1975년 남도문화제에서 입상하는 시기를 전후해서 이를 연구하거나 관여했던 학자들이 붙여준 이름이다. 원래 진도에서는 상여소리라고 했는데, ‘상여소리를 한다.’ ‘상여운구를 한다’, ‘생애(喪輿) 나간다’ 등의 동사(動詞)적 개념으로 사용해 오던 말이다. 대체로 진도만가는 두 가지 유형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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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진도북놀이가 인지마을과 직접 관련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못북기원설’의 측면에서 보면, 남도들노래가 못북의 배경에 해당되는 것이므로, 북놀이와 들노래의 친연성을 짐작해볼 수 있다. 따라서 북춤으로 지정된 인간문화재가 인지마을에 없다는 것을 빼고는 인지마을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북춤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박병천을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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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진도씻김굿은 진도 전역을 통괄하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그러나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될 당시 인지리 출신의 박병천 일가를 중심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인지마을이 진도씻김굿의 본산으로 불리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문화재로 지정된 후 박병천 일가가 인지리를 떠나 서울생활을 하게 되면서 인지마을에서의 전승활동이나 연행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진도읍에 설치된 무형문화재 전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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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인의 산업별 구성에서 알 수 있듯이 성내리에는 비농가가 많고, 이곳이 진도읍의 중심이어서 농경지 면적은 적은 편이다. 전체 경작지는 188㏊인데, 논은 60㏊이고, 밭은 128㏊, 임야는 10㏊이다. 2005년의 진도읍사무소 통계에 의하면, 성동리 거주자가 경작지하는 면적은 112㏊로 59.6%이고, 성서리의 경작지 면적은 76㏊로 40.4%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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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내리와 남동리 및 쌍정리의 경계도로는 한동안 진도읍에서 가장 넓은 중심도로였다. 그러나 철마광장에서 남동리로 큰 도로가 연장 관통되고, 남동리 일대에 외곽 도로가 개설되면서 중심도로의 기능은 많이 감소되었다. 성내리 주택가 지역은 옛 길이 남아 있고 노후된 가옥들이 있어 차량 통행을 저해하고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교통이 편리한 마을이라고 할 수 있다. 성내리에 접한 도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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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에 실시한 마을조사에 의하면, 성내리의 취업자 산업활동 인구는 총 666명이었다. 남자는 351명이었고, 여자는 315명이었다. 농업,임업,수렵업 종사자가 354명이었는데, 남자보다 여자가 월등하게 많았다(남자 124명, 여자 230명). 제조업 종사자는 총 19명이었는데, 남자는 13명, 여자는 6명으로 농업 관련업과는 반대였다. 전기,가스,수도,위생 시설 서비스업 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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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내리의 생산 과정 가운데 상업은 광주나 목포 등의 대도시에서 상품을 도매 또는 중매로 들여와 소매하는 형태이다. 농업은 고령인 소유의 농경지는 임대로 경작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경지 면적이 적어 자가 노동에 의존하고 있다. 성동리의 경우 전체 농경지 가운데 27.7%가 휴경지일 정도로 농업 의존도가 낮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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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내리뿐만 아니라 주변 마을인 남동리, 쌍정리 등에 다양한 업종의 상가들이 개업해 있고, 진도군에서 가장 큰 진도읍 매일시장이 인접해 있어서 생산한 상품들은 이곳을 통해 판매 및 유통하고 있다. 농업 생산물의 판매 유통은 다른 농촌마을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성동리에서 생산되는 주요 농산품은 쌀, 구기자, 배추, 대파 등인데, 자급용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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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내리(城內里)는 현재 행정구역상 진도군 진도읍에 속한 마을이다. 성내리는 성안 또는 줄여 성내라고도 하는데, 성동(城東)마을과 성서(城西)마을을 행정리로 두고 있다. 성내리의 마을 명칭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기왕의 동상리(東上里), 동중리(東中里), 동하리(東下里), 서상리(西上里), 서하리(西下里)를 합쳐 성내리라 한 데서 비롯되었다.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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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읍성은 1440년(세종22) 진도고읍성에서 현재의 진도읍으로 진도군의 터전을 옮기면서 축조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진도고읍성에서 현재의 진도읍성으로 치소를 옮기게 된 이유는 세종 때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등 하 삼도를 비롯한 함경도, 평안도의 읍성축조를 관장한 최윤덕의 건의에 따른 것이다(『진도군지』(미간행) 참고). 진도읍 성내리에 있는 산성으로 통일신라 때부터 조선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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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강(郡岡)[산] 성안에 있는 산으로 공원이 되었는데, 성이 있다. 성내(城內)[마을] 성내리를 줄여서 부르는 이름이다. 성내리(城內里)[마을] 성안, 성내라고도 부르며 진도읍성의 안쪽에 위치하고 있어 성안 또는 성내리라 하였다 한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마을 이름이 처음으로 명명되었다. 진도군청, 진도등기소, 농협중앙회, 진도교육청 등 행정의 주요 기관들이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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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내리 성동마을은 진도읍 중심가에 위치한 마을로서 비농가가 70%를 차지한다. 전체 270가구에서 230가구가 비농가이고 40가구만이 농사를 짓고 있다. 대부분 관공서에 다니거나 상업을 하는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다. 성동마을 내에는 농지가 거의 없기 때문에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인근마을에 농지를 소유하고 있거나 인근마을의 농지를 임대하여 농사를 짓고 있다. 재배작목으로는 벼,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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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중구 중구날은 뱀이 들어가는 날이라는 말이 있었으며 임자 없는 제사를 지내주는 날이라고 한다. (3) 생업력 구기자와 콩, 참깨를 수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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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시제모시기 10월에는 집안별로 시제를 모신다. (3) 생업력 구기자를 수확하고 대파를 출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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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 마을총회 매년 12월 30일경에 마을총회를 개최한다. 마을총회에서는 1년간 마을에서 진행된 사업에 대해 보고하고 수입금과 지출금을 결산한다. 또한 새로운 이장과 임원을 선출한다. 성동마을의 임원은 고문 3명, 이장 1명, 노인회장 1명, 청년회장 1명, 새마을지도자 남녀 각 1명, 감사 2명, 개발위원장 1명, 개발위원 7명, 반장 7명이다. (2) 세시풍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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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설점치기 섣달에 눈이 많이 오면 이듬해 농사가 잘 된다고 여겼다. (3) 생업력 대파를 출하한다. 구기자를 수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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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설날(음력 1월 1일) 성동마을에서는 설날 0시경에 차례상을 차린다. 차례상에 메를 올리는 집안도 있고 떡국을 올리는 집안도 있다. 설날 아침에는 설빔을 입고 가족과 친지에게 세배를 한다. 세배를 받으면 덕담을 하고 세뱃돈을 주기도 한다. 세배를 마친 후에는 산소에 성묘를 간다. 설날 아침에는 여자가 남의 집에 일찍 가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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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하루달날(사람날) 옛날에는 이날도 차례상을 차리는 집이 있었다. 이날에는 손그을음이 일어나지 말라는 뜻에서 콩을 볶아 먹었다고 한다. 또한 하루달날 칡을 먹으면 이빨이 튼튼해진다고 해서 이날 칡을 캐서 먹었다. ○ 영등달 음력 이월은 ‘영등 오는 달’이라고 하여 물을 떠놓은 사람들이 있었다. ○ 경칩 이날 산에 있는 깨끗한 옹달샘에 있는 올챙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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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삼질날 삼질날은 제비새끼가 돌아오는 날로 인식되고 있다. ○ 한식 이때 산일을 하면 탈이 없다 하여 이장을 하거나 묘를 손질하고 개사토를 한다. (3) 생업력 4월 초에 구기자의 꺾꽂이를 하는데 15센티미터 정도 길이로 잘라서 땅에 묻는다. 이달에 볍씨를 담근다. 4월 20일경에 고추를 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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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 경로잔치 매년 5월 어버이날 경에 경로잔치를 한다. 부녀회에서 음식을 장만하여 65세 이상 노인을 공경하는 의미에서 잔치를 벌여 대접하는 것이다. 마을기금으로 해오다가 작년에는 읍사무소의 지원을 받아 일주일에 서너 번씩 노인회관에서 중식을 제공하기도 했다. ○ 읍민의 날 매년 봄에 열리는 읍민의 날 행사가 올해는 5월 1일에 진도초등학교에서 열렸다. 올해 읍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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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단오날 이날은 풀잎마다 약이 된다고 하여 들에 가서 익모초, 설모초, 우실나무, 쑥 등 여러 가지 풀을 뜯어서 응달에서 말렸다. (3) 생업력 콩, 참깨 등을 파종하고 마늘을 수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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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유두 유두는 보리쌀을 갈아서 보리개떡을 해먹었다. 예전에는 이날 차례를 지내는 집도 있었으나 지금은 유두를 쇠는 집이 없다고 한다. 반촌에서는 유두를 안 쇠고 민촌에서만 유두를 쇤다는 말이 있었다. ○ 복날 예전에는 이날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친정에 보냈다. 형편에 따라 국수, 닭고기, 보리개떡, 송편, 국수, 보리술 등을 옹기 오가리에 담아서 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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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칠석 칠석은 견우직녀가 만나는 날로 인식하고 있다. 불교인은 이날 절에서 조상을 위해 천도제를 지내기도 한다. ○ 백중 이날은 ‘도랑신네’가 일 년 농사를 결정하는 날이어서 논밭에 가면 안 된다고 했다. 예전에는 백중날도 차례를 지냈는데, 지금은 백중을 쇠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 벌초하기 음력 7월 1일부터 벌초를 하기 시작하여 추석 전에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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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성주고내기 농사를 지어 첫 방아를 찧으면 손 없는 날 머리목욕하고 성주에 밥을 차려놓은 뒤 성주동우에 쌀을 넣었다. 어느 집에서는 겉벼를 그대로 성주동우에 넣기도 했다. 성주동우에 넣었던 쌀은 특별히 조심해서 밥을 지어먹거나 신경 쓰지 않으려고 시장에 내다가 팔기도 했다. 성주동우에 넣었던 쌀을 팔아서 그 돈으로 며느리 옷을 해주는 시어머니도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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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을 총회 성동리의 마을 총회는 매년 1월에 개최하고 있으나, 회의 날짜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2006년의 경우에는 1월 16일에 마을 총회를 개최했다. 마을 총회에서는 지난해의 마을 수입과 지출 등 마을 사업에 대한 감사 결과를 보고하고, 이장 및 마을 임원들을 선출한다. 이장의 임기는 2년이다. 성서리의 경우는 총회 개최가 일정하지 않고, 참석자는 적다. 2006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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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성내리에 향교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바로 인접한 마을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이곳에서 젊은이들이 교육을 받았다. 성내리는 진도군에서 근대적 교육기관인 국민학교가 처음 개교한 곳이다. 이 국민학교는 진도읍의 다른 국민학교에 비해 약 10년 이상 빨리 개교했으며, 현재에는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진도군의 다른 농촌 마을에 비해 성내리는 근대적 교육을 가장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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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강공원 내 현충탑 앞에 게이트볼 경기장이 15년 전에 조성되었다. 따라서 성동리 노인들은 이곳에서 게이트볼을 자주 하고 있다. 성서리에는 한 명만 게이트볼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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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도계 : 성동리에만 상도계가 있었는데, 3년 전에 해산했다. 성동리의 상도계는 약 15년 전에 결성되었으나, 젊은이들이 가입을 하지 않아 계속 유지할 수가 없다고 한다. ◦ 성동마을은 200년 전부터 마을의 주요 성씨인 김해김씨, 창녕조씨, 무안박씨, 밀양박씨 등 8현의 영전이 모셔져 있는 향현사(鄕賢祠)에서 함께 제사를 봉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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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내리는 진도읍의 중심 마을이다. 오늘날과 같이 진도읍이 확장되기 이전에는 성내리에 대다수의 공공기관들이 위치해 있었고, 진도군을 대표하는 상권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래서 진도군에서 발생했던 상당수의 정치,사회적 사건들이 성내리를 장소적 배경으로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철마광장이 진도읍의 중심지로 활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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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삼현(任三鉉)[1874~1948]: 오위장을 지낸 임경록(任慶錄)의 아들로 태어났다. 호는 호석(湖石)이며, 1889년 16세가 되던 해에 소치(小癡) 허련(許練)의 제자로 입문하여 그림을 공부했다. 운림산방의 살림을 운영했고, 소치 허련이 1893년에 사망하자 그의 아들 미산(米山) 허형(許瀅)의 휘하에서 그림과 글씨를 공부하다 소치의 유언을 따라 운림산방을 관리했다. 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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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내리는 1792년경 청주 한씨가 입향한 후 김해김씨, 밀양박씨, 전주이씨 등이 입거하면서 마을을 형성했다. 한때 성동리에 영향력을 행사했던 성씨는 한씨였다. 한편 성서리는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인구의 변화가 많아 다성적 특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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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내리는 성동리와 성서리로 구분된다. 이장도 각 마을별로 있으며, 두 개의 독립된 공동체가 결합되어 있다. 성내리, 특히 성서리는 가구 및 인구 이동이 빈번하고, 변화가 많아 정확한 통계가 어렵다. 따라서 공식적인 통계자료를 활용하여 그 추세를 살펴볼 수밖에 없다. 성내리의 가구수는 1968년 조사 당시 285가구였으나, 126가구가 증가하여 2006년 현재 410여 가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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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내리의 인접마을인 교동리 275번지에 향교가 있으며, 역시 인접마을인 남동리에 진도천주교회와 통일교회가 있다. 한편 성내리에는 진도교회(감리교)와 진도중앙교회가 있다. 그리고 인접마을인 쌍정리에는 원불교 진도교당이 있다. 성동리는 약 30가구가 장로교계 기독교인이고, 3가구 정도가 감리교계 기독인이다. 불교는 10여 가구인데, 진도읍에 소재한 영룡사를 많이 다닌다. 성서리는 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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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리에만 총 3개의 친목계가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가장 오래된 것은 약 40년 이상 되었다. 두 번째는 약 10년 정도 된 친목계인데, 다른 마을 사람들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 세 번째는 칠성계라는 명칭의 형제계인데, 7가구의 부부동반 모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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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리의 경우에는 한씨들이 매우 많았다. 현재는 다수가 이사를 하여 수가 감소했으나, 여전히 10여 가구가 한씨이다. 현재는 박씨가 많고, 이들의 친척관계가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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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내에 소재한 관계로 특별하게 다른 지역과 혼인이 제한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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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읍은 진도군의 중심지이고 성내리는 진도읍의 핵심지이다. 본래 진도읍은 1437년(세종 19)에 부내면이 되었다가 1873년(고종 11)에 진도면으로 개칭되었고, 1979년에 읍으로 승격되었다. 이렇게 여러 차례 행정개편이 있었지만 성내리는 읍성의 안쪽에 있다 하여 처음부터 성안 또는 성내로 불렸다. 법정동은 성내리이지만 행정동은 진도초등학교가 있는 성동리와 진도군청, 등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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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내리의 특징은 교육 관련 시설들이 집중되어 있는 곳이라는 점이다. 비록 오늘날에는 성내리 내에 진도초등학교만 있으나, 진도군청 청사가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성내리 64-1번지에는 진도중학교와 진도고등학교가 있었다. 따라서 이 일대는 학생들의 이동이 많았다. 게다가 성내리는 진도군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학원가가 형성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공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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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도초등학교 진도초등학교는 1909년 3월 31일 진명 4년제 4학급으로 인가되었고, 같은 해 4월 15일 진도읍 동외리 가마골서 개교했다. 1912년 11월 화재로 교사가 소실됨에 따라 1914년 3월에 현재의 위치인 성내리 54번지로 이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교사는 이후에도 수차례 훼손되었다. 이를테면, 1943년 11월의 화재로 교사가 소실된 바 있고, 195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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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군청이 있던 성내리 63-1번지에는 현재 소전미술관이 있다. 소전미술관은 1977년 3월 구의회 사무실, 즉 현재의 소전미술관 바로 앞 건물에서 업무를 시작했다. 1990년 4월 11일에는 민속유물전시관으로 개관했다. 그리고 1990년 12월 10일에 진도군 문화예술관 관리사무소로 개칭되었다가 2003년 5월 31일에 소전미술관으로 재개칭하여 개관하였다. 본래 이곳은 진도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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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진도군지』에 의하면, 당시 진도에 개원해 있던 의원은 진도읍에만 7개가 있었는데, 이 가운데 4개가 성내리에 위치했다. 이 의원들은 진도보건소(1965년 2월 28일 개원), 중앙의원, 자생의원, 홍인의원 등이었다. 약국의 경우에도 진도읍에 총 7개가 영업을 하고 있었는데, 이 가운데 4개가 성내리에 있었다. 서울약국, 이화약국, 호남약국, 서약국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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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동안 진도의 치소였던 진도읍성이 있던 곳이 성내리인 관계로 이곳에는 진도의 법과 행정, 그리고 공공기관들이 모여 있었다. 진도군의 발전과 더불어 진도읍이 확대되었고, 이에 따라 중앙정부의 지방기관들과 각종 공공기관들이 인근 마을인 쌍정리, 남동리, 교동리 등에 신 청사를 건립하여 이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내리에는 여전히 진도군의 법과 행정을 시행하는 다수의 공공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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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진도군청 진도군의 행정업무를 총괄하고 시행하는 진도군청은 성내리 64-1번지에 위치해 있다. 그러나 이곳으로 진도군청이 신축, 이전한 것은 불과 몇 년 전이다. 이전하기 전의 청사는 현 ‘소전미술관’이 있는 성내리 63-1번지에 있었다. 이곳에서 진도군의 자치 업무가 개시된 것은 1437년(세종 19)에 해진군(海珍郡)으로부터 진도군이 분리되고, 진도읍성으로 이전한 이후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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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진도경찰서 진도경찰서는 1910년 9월 16일 목포경찰서 진도주재소가 설치되면서 창립되었고, 1922년 5월 8일에 진도경찰서로 승격되었다. 경찰서 청사는 진도군 객사터였던 성내리 50번지에 있었는데, 약 30평 규모의 일본식 목조건물이었다. 이 청사는 1966년에 12월 17일 2층으로 된 콘크리트조 건물로 개축되었다. 그러다가 2001년 6월 22일에 지하 1층, 지상 4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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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내리는‘진도읍성’으로 둘러싸인 마을이다. 1900년대 초 진도읍성이 해체되기 시작하면서 관청 이외의 건물과 시설들이 하나둘 건립되었다. 물론 진도읍성 내에 관청 및 통치 기구들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른 읍성들과 마찬가지로 관청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주택을 비롯하여 유지 및 상대적으로 신분과 지위가 높았던 사람들이 입거하면서 큰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성내리라는 명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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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에는 군 단위의 다른 지역에 비해 매우 많은 시민사회단체가 결성되어 활동하고 있다. 사회단체의 수가 많은 가장 큰 이유는 문화 및 예술 관련 단체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진도군의 시민사회단체들 가운데 많은 단체들이 성내리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성내리는 법과 행정 및 공공 기관들이 위치한 곳일 뿐만 아니라 시민사회단체에게도 선호되는 곳이라고 할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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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읍성은 1987년 1월 15일에 전라남도 지정 문화재 자료 143호로 지정되었다. 이 성은 1440년(세종 22)에 축조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본래의 진도읍성은 성내리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고군면 고성리에 있었다. 고성리에 있던 진도읍성은 백제시대에 처음 축조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새로운 읍성이 조성되기 전까지 오랫동안 이곳은 진도의 치소(治所)로서 기능을 했다. 빈번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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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에는 그 역할과 기능이 다소 약화되었으나, 성내리는 진도군 경제의 중심이었다. 오늘날에도 철마광장 주변과 과거 철마광장으로 진입하던 주요 도로의 주변에는 상가가 형성되어 있다. 이렇게 상가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일제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방 이후까지만 해도 철마광장에서 남강모텔이 들어서 있는 쪽이 진도시장이었다. 이곳에 있던 시장이 남동리로 이주한 것이 1964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