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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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桃花), 즉 복숭아꽃을 소재로 한 유희요. 「도화타령」은 본래 경기도 지역의 잡가(雜歌)인데, 현재는 전국적으로 불리고 있는 노래이다. 전라남도 진도군에서도 예전부터 부녀자들 사이에서 활발하게 불리어왔다. 이 노래는 원래 기생 도화(桃花)가 고종(高宗)의 총애를 받게 되자 이를 시샘한 엄비(嚴妃)가 도화의 얼굴에 바늘로 상처를 내어 부스럼이 난 자리처럼 만들어서 쫓아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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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적·미적 요구에 따라 건축 재료를 이용하여 만든 구조물. 고대 사회의 움집으로부터 현재의 최첨단 고층빌딩에 이르기까지 건축은 인간의 모든 역사, 즉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인문학, 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가 서로 어우러진 하나의 구성체이다. 시멘트, 철, 유리 등 근대화 이후 새롭게 도입된 재료로 현대생활에 맞게 꾸며진 집이 현대건축이라면, 나무와 흙 등 자연 소재를 주로 하여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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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나 주민의 보건 휴양 및 정서 생활의 향상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보호·관리하는 자연지(自然地) 또는 인공적으로 조성한 녹지 공간. 공원의 기원은 페르시아 왕들의 사냥터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후 자연지에 승마로나 오두막 등이 만들어지면서 인공적으로 꾸며지게 되었다. 한편 운동장, 집회장, 전시장, 사교장, 훈련장 등으로 활용된 고대 아테네의 야외 공공집회장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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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지방이나 다른 나라의 풍속(風俗)·풍광(風光)·사적(史蹟) 등을 유람하는 것. 관광이라는 말의 어원은 주나라 때의 『역경(易經)』에 나오는 “관국지광이용빈우왕(觀國之光利用賓于王)”이라는 구절에서 비롯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한 나라의 사절이 다른 나라를 방문하여 왕을 알현하고 자기 나라의 훌륭한 문물을 소개하는 동시에, 그 나라의 우수한 문물을 관찰함이 왕의 빈객으로 대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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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동외리에 있던 진도 최초의 사립학교. 1904년 설립된 광신학교는 진도초등학교의 전신으로 진도에서 최초로 세워진 사립학교이다. 1895년 7월 19일 고종(高宗)은 서당제도를 대체할 근대교육의 도입을 목적으로 소학교령을 발표했다. 진도에서는 1904년 진도읍 동외리 596번지 양사재(養士齋)에 광신학교(廣信學校)라는 사립 소학교를 세웠다. 광신학교 설립은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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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와 경상도 남서부, 충청남도 일부 지역에서 전승되어오는 잡가. 이병기는 처음에 사설시조를 잡가로 지칭하였다가, 후에는 민요·속요·타령 등을 통칭하는 명칭으로 잡가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또 김사엽은 잡가는 항간에서 잡되게 부르는 소리로 광대라는 직업적 가수에 의하여 창작되고 성행한 것이 일반에게 전창되어 내려온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어떤 규정이든 장단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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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의 세거성씨 중 하나. 동복오씨(同福吳氏)는 고려 고종 때 거란을 토평(討平)한 공(功)으로 동복군(同福君)에 봉해진 오령(吳寧)[1151~1215]을 시조로 하고 동복(전라남도 화순군)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오령의 19세손 오만국(吳萬國)[1597~1650]이 진도군 지산면 세방리에 자리잡았다. 오만국의 아버지 오계적(吳啓績)[1572~1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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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에 유배되었던 노수신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던 서원. 진도에 귀양살이를 하던 유학자들이 진도 군민들을 가르쳐 문풍을 일으켰으므로, 이들을 기리기 위해 서원을 세워 모시는 전통이 생겼다. 봉암서원에 대한 첫 기록은『영조실록』에 나오며 1759년 간행한『여지도서』 진도 「단묘(壇廟)」 항목에도 나온다. 1791년『진도군읍지』에 따르면 원생이 60명이었다고 한다. 이 서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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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를 교조로 삼고 그가 설한 교법(敎法)을 종지(宗旨)로 하는 종교. 진도의 불교는 오래 전부터 이 지역민들의 신앙이 되어왔으나 오래된 사찰은 대부분 폐찰되었다. 해방 이전에 건립된 사찰로는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에 있는 쌍계사(雙溪寺)가 유일하고, 그 외에는 폐사지에 남아 있는 유구(遺構)와 암벽에 조각된 불상을 통해서 흔적만이 확인되고 있다. 1.쌍계사 쌍계사는 진도군 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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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진도에 정착한 입도조. 본관은 이천. 이천서씨 시조 서목의 21세손이다. 고려 고종 때 영평(永平)[지금의 남평] 감무를 지낸 서린(徐轔)의 후손이다. 1560년(명종 15) 전라남도 나주군 봉황면에서 태어났다. 16세기 말에 진도군 의신면 거룡으로 들어와 정착하였다. 1608년(선조 41)에 향년 49세로 타계하였다. 그 뒤에 이천서씨 23세손인 서매동(徐邁東)[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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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효자. 본관은 진주. 호는 겸와(謙窩)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당대 문장가였던 소세량(蘇世良)[1476~1528]의 후손이다. 소휘철은 말이나 글이 사람을 놀랠 만큼 뛰어났고 효행이 극진하였다. 조선말기 고종 때에 독실하고 품행이 방정하다 하여 통례원(通禮院) 인의(引儀)에 제배되었다. 그러나 정중하게 사양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평소 효성이 남달랐던 그는 부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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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용장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절터. 용장사지는『옥주지』의 기록에서 그 연혁을 확인할 수 있는 정도이다. 1985년에 나온『진도용장성지표조사보고서(珍島龍藏城地表調査報告書)』에 따르면 용장성지는 258만평이라는 광범위한 지역으로 조사되었다. 이곳에서 조사된 건물지 유구 가운데 초석의 형식 등으로 보아 삼별초군이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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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말기 진도 출신의 의병. 1875년 진도군에서 태어났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에 의해 외교권이 박탈되고 통감부가 설치되었고, 1907년에는 헤이그 밀사 사건으로 고종이 강제 퇴위되었고, 또한 군대도 해산되었다. 이에 이일근은 1908년 9월 1일 윤수봉(尹水封)과 함께 전라남도 장성군에서 김율(金聿)의 진에 들어가서 의병활동에 참여하였다. 그는 영광군, 영암군에서 정찰, 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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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신일을 시조로 하고 서성망을 입향조로 하는 진도 세거성씨의 하나. 서씨(徐氏)의 대종인 이천서씨(利川徐氏)의 시조 서신일(徐神逸)은 신라 효공왕 때 아간대부를 지내다가 국운이 다함을 예견하고 벼슬에서 물러나 이천의 효양산 기슭에 희성당을 짓고 은거하면서 스스로 처사라 칭하고 후진 교육에 여생을 바쳤다. 그의 후손들이 달성·장성·연산·남평·부여·평당·대구 등으로 분적된 것으로 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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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말기 진도로 유배된 학자.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대경(大卿), 호는 무정(茂亭)이다. 서울 출신이고 아버지는 정기우(鄭基雨), 할아버지는 정윤용(鄭允容), 증조부는 정동일(鄭東逸)이다. 아들로 정인형(鄭寅衡)이 있다. 강위(姜瑋)의 문하에서 수학해 문학에 일가(一家)를 이루었다. 1858년(철종 9)에 태어났다. 문과 급제 후 예조참의, 승지, 내부참의, 규장각부제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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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진도에 설치된 도호부. 조선은 1413년(태종 13)에 지방제도를 정비하면서 종래 각 도의 단부관(單府官)을 도호부로 고치고 종3품의 도호부사를 두었다. 1415년에는 군 가운데 1,000호 이상인 것은 도호부로 승격시켰다. 본래 중국에서는 군사적인 성격이 강하여 주로 변경에 설치되었으나 고려·조선시대에는 전국에 분포되어 있었다. 도호부의 수는 후기에 갈수록 증가해 세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