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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500062
한자 建築
영어의미역 architecture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남도 진도군
집필자 김지민

[정의]

실용적·미적 요구에 따라 건축 재료를 이용하여 만든 구조물.

[개설]

고대 사회의 움집으로부터 현재의 최첨단 고층빌딩에 이르기까지 건축은 인간의 모든 역사, 즉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인문학, 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가 서로 어우러진 하나의 구성체이다. 시멘트, 철, 유리 등 근대화 이후 새롭게 도입된 재료로 현대생활에 맞게 꾸며진 집이 현대건축이라면, 나무와 흙 등 자연 소재를 주로 하여 과거 전통사회에 지어진 집을 전통건축이라 할 수 있다.

전라남도 진도군에서 가치를 부여할 만한 전통건축으로는 쌍계사(지방문화재 제121호)와 운림산방(기념물 제51호), 그리고 진도향교(문화재 자료 제127호)가 있다. 이외 향적사, 칠성사, 삼성사 등의 사찰과 여러 문중의 사우가 있으나 이들 모두가 1900년대에 창건 내지는 새로 복원한 것으로서 건축적으로 의미를 부여할 만한 대상은 아니다.

전통건축물 가운데 전통주택은 오랜 세월 선조들이 우리의 삶에 맞추어 완성해놓은 정주 공간으로, 우리 민족의 동질성이 있고, 유·무형의 다양한 전통문화 요소가 깃들어 있다. 그러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진도에서도 문화재로 지정된 가옥을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과거의 주거문화가 현대 주거문화의 편리성에 밀려난 때문이다.

[현황]

1. 쌍계사(雙溪寺)

1) 건축연혁

쌍계사는 진도군에 현존하고 있는 유일한 고찰(古刹)로, 확실하지는 않으나 신라 문성왕대에 도선국사(道詵國師)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와 조선을 거쳐 몇 차례 중수 및 보수되었다. 현재 지방문화재 제121호로 지정되어 있는 쌍계사 대웅전은 1982년 지붕 보수 시에 상량문이 나왔는데 그 연대가 “강희삼십육년정축”(康熙三十六年丁丑)으로 되어 있어 1697년(숙종 23년)에 건축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2) 입지환경 및 건물배치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에 위치하고 있는 쌍계사는 해발 485m의 첨찰산 서쪽면 하단부에 자리하고 있다. 사찰 주위는 천연기념물 제107호로 지정된 상록수림이 있는 등 경관이 매우 수려하다. 한편 사찰 우측으로는 조선 후기 남종화의 거봉인 소치(小痴) 허련(許鍊)선생의 유적인 운림산방(雲林山房)이 있어 쌍계사와 함께 진도 관광의 명소가 되고 있다.

건물의 전체배치 모습은 약간 경사진 지형을 3단으로 정지하여 그 첫째 단에 해탈 문을 건립하였으며, 둘째 단에는 우화루, 종각, 승방을 건립하였다. 대웅전은 맨 윗단 중앙에 해탈문과 약 78m의 거리를 두고 자리하고 있다. 십왕전은 대웅전 우측에, 원통전은 좌측에 각각 자리하고 있으며 원통전 옆으로 ‘ㄱ자’형 요사채가 있다. 축은 동서로 설정하여 서향으로 대웅전을 배치하였으며, 해탈문은 이 축선상에서 좌측으로 7m 정도 옮겨져 있다.

3) 건축구조 및 의장

대웅전의 전각은 정면 3간, 측면 3간의 단층 맞배집으로 양 박공면에는 풍판을 달았으며, 처마는 전후 모두 부연을 단 겹처마로 되어 있다. 기단은 막돌허튼층쌓기로 낮게 형성되어 있으며, 초석은 커다란 막돌초석을 사용하였다. 기둥은 원통형 두리기둥을 세웠으나 중앙간만은 민흘림기둥을 사용하였다. 기둥머리는 창방으로 결구하고 이 위에 평방을 얹혔으며, 평방 위에는 주두를 놓아 공포를 짜 얹혔다. 전면 양 우주 머리에는 조각한 용두를 꽂았으며 그 상부에는 평방을 뺄목으로 하여 십자로 교차시켰다. 공포는 중앙 간에는 2구, 양협 간에는 1구씩의 공간포를 놓은 내·외 3출목의 다포양식으로, 외부로 뻗은 살미첨차는 나약한 앙서형이며 그 끝은 예리한 삼각형 모양으로 되어있고 내부는 하나의 판형으로 그 단부는 연봉으로 처리하였다. 그리고 외부 첨차의 소로 밑면에는 연봉이 하나씩 받침으로 놓여있다.

가구는 전후방 평주 위에 대량을 걸고 이 위에 짧은 동자주를 놓아 종량을 얹힌 5량구조이다(양측면은 중앙으로 고주를 2개 세우고 앞뒤로 평주를 세움). 창호는 중앙간에는 빗살 사분합문을 달고 양 협간에는 띠살 3짝문을 달았다. 천장은 우물천장이며 내부바닥은 우물마루로 되어있다. 전반적으로 보아 본 전각은 다포 후기양식의 성격을 띠고 있는 건물이다.

십왕전은 정면 3간, 측면 2간의 맞배집으로 박공면에는 풍판을 달지 않았다. 처마는 겹처마로 되어 있다. 구조는 막돌허튼층쌓기의 낮은 기단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이 위에 원통형의 두리기둥을 세운 5량구조이며, 공포는 2익공식으로 아래 쇠서 위에는 연봉이 놓여 있다. 창호는 전면에만 빗살문을 달았다. 천장은 종량 상부로 우물천장을 가설하였고 바닥에는 우물마루를 깔았다.

해탈문은 정면 3간, 측면 2간의 맞배집으로 중앙간은 통로로 사용하기 위해 개방하였다. 양 박공면에는 풍판을 달았고 처마는 전·후면 겹처마로 되어 있다. 구조는 다듬은 원형초석 위에 두리기둥을 세우고 그 머리를 창방으로 결구시켰으며 창방위로는 주간마다 화반을 1구씩 배치하였다. 공포는 행공첨차를 두어 외목도리의 장혀를 받게 한 2익공식이며 가구는 전·후 평주 위에 대량을 걸은 기본적인 5량구조다.

원통전은 정면 1간, 측면 1간의 방형 평면으로 된 다포식 맞배집이다. 커다란 맞돌 초석위에 원통형 두리기둥을 세우고 창방과 평방을 걸고 그 위에 주간포를 3구 놓았다. 가구는 굴도리를 사용한 5량구조이며 내부 상부에는 우물천장을 가설하였다.

우화루는 정면 5간, 측면 2간의 2층 누각이다. 막돌기단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웠으며 공포는 외부로 1출목을 둔 2익공식이다. 지붕은 맞배지붕이며 양 박공면에 풍판을 달았다. 아래층은 일부를 막아 현재 전통 찻집 등으로 사용하고 있고 2층은 4면 모두에 판장문을 달았다.

진설당은 정면 5간, 측면 2간반의 팔작집이다. 전면에 반간 폭으로 툇마루를 설치하고 안쪽으로는 방을 드렸다. 기단은 낮은 막돌기단으로 되어있고 초석 역시 막돌초석을 사용하였다. 공포는 2익공식으로 되어있다.

범종각은 정면 1간, 측면 1간의 방형 익공식 집이다. 장초석 위에 두리기둥을 세웠고 내부 바닥면을 1.25m정도 지상면 보다 높게 하였다.

2. 진도향교(珍島鄕校)

1) 건축연혁

진도향교는 진도지역이 해남군에서 분리되는 즉, 창군 당시인 1437년(세종 19년)에 성 동측에 창건되었다. 그 후 1475년(성종 6년)에 현재의 진도면 동외리(오리정)로 옮겼다가 정유재란시 소실되어 1623년(인조 원년)에 읍성 남쪽(용두리)으로 2차 이건하였다. 이로부터 40여년이 지난 뒤 현재의 자리로 3차 이건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의 위치로 이건한 연대에 대해서는 『옥주지(沃州誌)』에 의하면 성남이건(城南移建, 1623년)후 사십사 년 병신(丙申)이라 하고 있으나, 이 연대는 서로 차이가 있어서 44년을 기준으로 할 경우 병신은 무신(戊申 1688년, 현종 9년)의 착오로 볼 수 있다. 만일 병신(1656년 효종 7년)을 기준으로 한다면 44년이 아닌 34년이 맞을 것이다. 아무튼 진도향교는 17세기 중·후반부터 현재의 자리에 안착한 이 지역의 대표적 유교건축이다.

향교 건물의 주요 중수내용을 살펴보면, 학교등록(學校謄錄)의 1689년(숙종 15년) 8월 14일 기사에 명륜당과 동·서재의 보수 및 제기고의 건립에 관한 기록이 나타나며 이후의 기록으로는 중수현판을 통해서 그 내용을 살펴볼 수 있는데, 1800년대 중반 철종고종 때 대부분 중수했다. 최근에 들어서는 1986년에 명륜당의 번와 및 창호 개수 등이 있었다.

2) 입지환경 및 건물배치

진도향교가 입지한 곳은 진도읍의 중심지(조선시대 면성지)에서 서북쪽으로 약 1.5㎞ 떨어져 있는 교동리 275번지로, 진도면의 진산인 철마산(鐵馬山)의 서쪽에 있는 북산(해발 295m)의 한 지맥이 남쪽으로 뻗어 내린 기슭에 정남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진도읍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약 1,000여 평의 대지 위에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기법으로 각 건물들이 세워져 있다. 넓은 경내, 우람한 목재로 지어진 건물 등으로 미루어 보아 진도향교는 조선 후기 진도지방의 가장 권위 있는 상징물로서 존재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건물의 전체배치 구성은 비교적 경사가 심한 지형을 3단으로 정지한 후에 각 건물을 건립하였는데 그 첫째 단에는 외삼문만을 건립하였고 둘째 단에는 명륜당과 동재, 그리고 서재를 건립하였다. 둘째단과 약 3.5m의 지반차가 나있는 셋째 단에는 안쪽 중앙에 대성전이 조영되어졌고 그 전면 좌·우측으로는 대성전 터 보다 낮게 하여 정대칭으로 동·서무가 각각 세워져 있다. 대성전과 외삼문이 이루는 일축선상 명륜당은 우측(동쪽)으로 약 3m가 이동되어져 있다. 그러나 명륜당(明倫堂) 현판만큼은 일축선상인 좌측(서쪽)으로부터 3번째 간에 걸어 주목된다. 의도적으로 축선을 의식한 것 같다. 현재 외삼문에서 명륜당으로 오르는 과정적 공간 내에는 좌측으로 방형의 연못이 축조되어 있다. 향교 좌측면(서쪽)에는 담장을 경계로 하여 단군전(檀君殿)이 있고 향교 전면에는 2002년에 건립한 정면 5간, 측면 3간의 충효관이 있다.

3) 건물구조 및 의장

대성전은 약 2m의 막돌축대 위에 조영되어 있으며, 정면 3간, 측면 3간의 전퇴를 두지 않은 맞배집이다. 양 박공면에는 풍판을 달았고 처마의 경우 전면은 겹처마로, 후면은 홑처마로 되어 있다. 구조는 막돌허튼층쌓기의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운 5량구조로 도리는 장혀받침 굴도리를 걸쳤으며 대량 위로는 동자주를 놓아 종량을 받게 했다. 종량 위로는 파련대공을 놓아 종도리를 받게 했다. 기둥 위에는 주두가 놓이고 기둥머리는 창방으로 결구시켰으며 공포는 행공첨차를 내어 외목도리를 받게 한 3익공양식으로 되어 있다.

창호는 빗살문으로 정면 중앙 간에는 쌍여닫이를, 그리고 양 협간에는 외여닫이문을 각각 설치하였으며, 양 측면과 후면은 회로 마감한 벽체로 되어 있다. 내부 바닥은 우물마루로 되어 있고 천장은 연등천장으로 꾸몄다.

명륜당은 정면 7간, 측면 2간의 단층 팔작집이다. 평면구성은 양 끝으로 1간씩을 온돌방으로 꾸몄으며, 중앙은 모두 장마루를 깔은 넓은 대청으로 되어있다. 기단은 막돌로 낮게 축조하였으며, 초석은 막돌초석을 사용하였고 그 위에 두리기둥을 세웠다. 기둥머리는 창방으로 결구시켰으며, 창방과 주심도리의 장혀 사이에는 주간마다 각각 소로를 3구씩 배치하였다. 공포는 양 우주만을 제외하고 2익공양식으로 꾸몄는데 아래 쇠서 위에는 초각된 연봉을 하나씩 놓았다. 가구는 전·후방 평주 사이에 안쪽으로 2개의 고주를 세우고 대량을 걸은 5량형식이며, 대량 위에는 사다리꼴의 판대공을 놓아 종도리를 받게 했다. 도리는 모두 장혀받침 굴도리를 사용하였다. 처마는 홑처마이며 천장은 대청위로만 연등천장으로 꾸미고 온돌방은 종이반자로 마감하였다.

동·서무는 비교적 높게 축조된 막돌허튼층쌓기 기단 위에 건립되어 있으며, 모두 정면 2간, 측면 1간의 맞배집이다. 구조로는 막돌초석 위에 두리기둥을 세우고 주두를 얹힌 다음 굴도리를 결구한 3량형식이며, 공포는 서무만 초익공양식으로 되어 있고 동무는 기둥머리에 끝이 직선으로 잘린 보아지만을 끼웠다. 창호는 전면에만 주간마다 빗살무늬 외여닫이문을 설치하였다. 내부바닥은 동무는 우물마루, 서무는 우물마루를 깔았고 천장은 모두 연등천장으로 되어 있다. 현재 동·서무에는 위패봉안이 안되어 있다.

동재는 정면 3간, 측면 1간의 맞배집으로 내부는 모두 온돌방으로 꾸몄다. 구조는 막돌허튼층쌓기 기단 상에 막돌초석을 놓고 방주를 세운 민도리집 형식이며, 처마는 홑처마로 되어 있다. 전면 주간에는 쌍여닫이의 띠살문을 달았다. 현재 전면으로는 쪽마루가 놓여 있다.

서재는 정면 5간, 측면1간의 민도리 집이다. 지붕은 홑처마 맞배지붕이다. 좌측에서 2번째 간만 부엌이고 나머지는 모두 온돌방으로 꾸몄다. 기단은 막돌기단이며 초석역시 막돌초석을 사용하였고 기둥은 방주이다.

내·외삼문은 모두 정면3간, 측면1간의 납도리집 양식이며 지붕은 중앙 간을 높게 한 솟을삼문 형식이다. 기둥은 방형 장초석을 사용하였고 기둥은 원주를 썼다. 내삼문만은 중앙 간 상부에 홍살을 꽂았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