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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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 때에는 바닷물로 덮여 있으나 썰물 때에는 육지로 드러나는 바닷가의 평평한 땅. 갯벌은 밀물과 썰물에 의해 바다로도 되고 육지로도 되는 지역이다. 갯벌을 구성하는 모래와 진흙은 육지에서 운반되어 퇴적된 것이다. 이러한 갯벌에는 다양한 생물들이 살아간다. 또한 생산성이 풍부하고 오염 물질을 깨끗하게 정화하는 등의 기능이 있다. 흔히 조간대, 간석지, 개펄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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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에 속하는 행정리. 900년 경 지씨가 처음으로 들어왔으며, 이후 현풍곽씨와 밀양박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진도군 지산면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거제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거도(巨島)와 안치(鞍峙)를 병합하여 거제리가 되었다. 서쪽은 황해와 접하고 있으며 그 외에는 구릉성 산지이다. 구릉 아래 사이사이로 논과 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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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길은리에 속하는 행정리. 본래 진도군 지산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길은리에 병합되었다. 남동쪽과 북서쪽에는 구릉성 산지가 있다. 고길리의 동쪽에는 석교천이 남쪽에서 북쪽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북동쪽과 남서쪽에는 넓은 논이 바둑판 모양으로 펼쳐져 있다. 남쪽은 용동리, 동북쪽은 소포리, 서쪽은 길은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고길리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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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교동리에 속하는 행정리. 본래 진도군의 해창(海倉)이 있던 곳으로, 큰 선창인 해창과 구분하여 작은 선창을 고작(庫作)이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1910년 경 진주강씨 강도민이 처음으로 마을에 들어왔다. 1913년 고작리에 방조제가 완공된 후 목포까지 왕래하는 선착장이 세워졌다. 이후 밀양박씨, 광산김씨 등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북쪽은 낮은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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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을 본관으로 하고 김여용(金汝龍)을 입향조로 하는 진도의 세거 성씨. 전라남도 광주 출신 김흥광을 시조로 하는 광산김씨(光山金氏)는 한국의 대표적인 가문의 하나로서 ‘광김’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광산(光山)은 현 광주(光洲)이다. 광산김씨가 조선조에 접어들어 명문이 된 것은 김주정과 같은 항렬의 김연(金璉) 집안이 충청남도 연산을 중심으로 사계 김장생(金長生)[1548~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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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본래 진도군 지산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물은리, 고길리, 들문거리, 용동을 병합하여 고길과 물은의 이름을 따서 길은리가 되었다. 200m 내외의 산이 마을을 감싸고 있으며, 길은저수지에서 흘러온 물과 석교천의 지류가 있어 주변의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제공하여 농업에 이용되고 있다. 면의 북부에 있으며, 동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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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악을 할 때 착용하는 민속복식. 우리나라 민속예술로 인정되는 농악은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해방 후 산업화에 밀려 명절이나, 마을단위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다가 민속경연대회를 기점으로 지역의 축제나 정부의 행사에 연행되고 있다. 진도 지역에서는 영등축제나 지역행사장에서 농악을 볼 수 있는데, 이때 착용되는 복식이 농악복식이다. 농악은 농경생활에서 파종기나 수확기에 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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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를 부르기에 앞서 창자들이 목을 다스르기 위해 불렀던 짧은 노래. 단가는 본래 판소리 소리판에서 목을 다스르기 위해 불리던 노래이나 진도지역의 소리판에서는 곧잘 독립적인 노래의 형태로 불리기도 하였다. 특히 다시래기나 씻김굿에서 청중들이 참여하는 거리 등에 단골메뉴로 등장하여 인기를 끌었다. 단가는 주로 이병기나 김득수, 신치선 등에 의해 보급되어 여러 사람들에게 파급된 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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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지역과 사회의 전반적인 삶의 모습. 개들이 서로에 대해서 이름을 짓는지, 여왕벌이 다른 벌들에 대해서 이름을 짓는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사람이라는 종은 동종 내에서도 이름을 짓고, 이종에 대해서도 이름을 짓는다. 이름을 짓는 행위는 인간의 문화에 속한 영역이며, 인간의 독특성을 발현하는 문화의 문제라고 인식할 수 있다. 침팬지의 행태를 연구하는 영장류학자들이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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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들이 문화예술을 공연하고 전시할 수 있는 동시에 군민들이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장소 및 시설. 진도의 문화시설은 공연시설, 전시시설, 지역문화보급 전수시설로 나눌 수 있다. 공연시설로는 진도향토문화회관과 국립남도국악원 등이 있다. 전시시설로는 소치기념관·진도역사관·소전미술관·조가비전시관·남진미술관 등이 있다. 지역문화보급 전수시설로는 진도문화원·진도공공도서관·여성회관·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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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출신의 민속예술인. 박태주는 1897년 2월 28일생으로,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소포리 148번지에서 박문국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일찍이 소포걸군농악을 통해서 북춤을 연마하여 일명 ‘북태주’로 불릴 만큼 양북춤을 잘 추었다. 집안사람 중에 조카사위 김오현이 현재 국가무형문화재 진도 씻김굿 전수조교 및 진도군립민속예술단 단장을 맡고 있다. 박태주는 소년시절부터 예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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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의 평지보다 높게 돌출한 지표의 일부. 산은 평야·대지·구릉과 비교하여, 기복이 크고, 급경사가 뚜렷하며, 큰 면적을 차지한다. 산지는 기복의 크기에 따라 고산성 산지·중산성 산지·저산성 산지(또는 구릉지)의 세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고산성 산지는 2,000m 이상의 산지이다. 중산성 산지는 1,000m 내외의 산지이다. 저산성 산지는 대개 500m 이하의 산지로 구릉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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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 교파의 하나인 천주교를 믿는 신자들이 종교의식을 거행하기 위해 모이는 회당. 진도의 천주교 선교는 1870년경 제주도 선교를 담당했던 프랑스 신부가 범선을 타고 목포로 가던 중 심한 풍랑을 만나 상조도 동구리에 안착하면서 비롯되었다. 프랑스 신부는 천주교 설교 및 선교활동을 펼쳤으며, 그 결과 프랑스 신부가 진도에 표착한 지 30년 후인 1900년~1904년에 동구리공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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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소포리에 설치된 조선 전기의 수군시설. 현재 진도군 지산면 소포리의 이름이 조선 전기에는 소가포(蘇可浦) 또는 소가포(所可浦)였던 데서 유래하였다. 1432년(세종 14) 10월 20일에 진도 서면 소가포(蘇可浦)에 수영의 병선 3~4척을 윤번으로 배치시켰다. 이곳의 군 주둔은 25년 만인 1457년(세조 3) 1월 남도포(현재 임회면 남동리) 만호진으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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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소포리에 있는 행정 자치부 지정 정보화 마을. 정보화 마을 사업은 농어촌이나 산촌과 같이 정보화에 소외된 지역에 초고속 인터넷 이용 환경 조성과 전자 상거래와 정보 콘텐츠를 구축하여 지역 주민의 정보 생활화를 유도하고 실질적인 수익을 창출함으로써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을 주기 위해 시작한 사업이다. 2016년 7월 현재 행정 자치부 지정 정보화 마을은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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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소포리에 위치한 나루터. 진도군 내에서 주민끼리 가장 많이 이용했던 나루였으며, 소포리의 나룻배 삯은 1년에 벼 다섯 되, 보리 다섯 되였다. 소포리에 있는 나루터라는 데서 유래하였다. 소포리에서 진도읍 산월리 사이 500m 거리를 왕래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소포나루는 진도군 내에서 가장 번창했던 나루였으나 1975년 소포나루 하류에 소포방조제가 축조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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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소포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돌무덤 무리. 소포리는 지산면의 가장 북쪽에 위치하는 마을이다. 유적은 소포리 마을 입구 도로변에 2기가 있었고, 마을주민 조인섭씨 집 마당에 3기가 있었다고 전한다. 현재는 마을길과 조인섭씨 집을 재건축하면서 파괴되어 남아 있는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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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본래 진도군 지산면의 지역으로 소개 또는 소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안치리를 병합하여 소포리라 하였다. 마을은 구릉성 산지 아래에 입지하고 있으며 북쪽은 황해와 접하고 있다. 동쪽은 석교천을 경계로 진도읍과 접하고 있다. 소포방조제와 대흥포방조제로 간척된 넓은 농경지가 펼쳐져 있다. 남동쪽은 진도읍 지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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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산월리에 속하는 행정리. 1643년대 경주최씨 최석후(崔碩厚)가 처음 입거한 뒤 밀양박씨, 김해김씨 등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전해온다.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에 속해 있다가 1973년 진도읍에 편입되었다. 2014년 12월 31일 현재 소포리 지역에는 총 49세대에 8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주요 성씨는 김씨와 박씨이다. 주로 벼, 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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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소포리와 진도읍 산월리 사이에 있는 방조제. 지산면 소포리 주민들은 소포리와 진도읍 산월리 사이를 나룻배로 건너다녔다. 그러나 소포방조제 축조 이후 소포리는 진도읍 교통권이 되었다. 바다는 간척지로 바뀌었고 간척지 근처에 백연동이라는 마을이 새로 생겼다. 소포만 연안의 염전은 매립되었다. 정기시장이었던 십일시는 임회면 장구포리와 지산면 앵무리 사이에 육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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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소포리 146번지에 있는 민요연행단체. 소포어머니노래방은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소포리에 있는 주부들의 자생적 민요그룹이라고 할 수 있다. 소포어머니노래방은 박병임이 설립했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박병임이 소포리에서 진도아리랑을 비롯한 흥타령, 육자배기 등을 지속적으로 전수해왔기 때문이다. 이후 한남예가 주도적으로 이끌면서 ‘소포노래방’으로 확대시켰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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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민간에 전하여 오는 풍자·교훈·비판 등이 담긴 짧은 구절. 속담은 민중 속에서 생성된 관용적 표현이다. 그래서 간결한 형식 속에 민중의 생활철학을 담고 있으며 표현은 고상하기보다 비속한 것이 많다. 또한 속담은 민중의 풍속·관습·신앙 등을 반영하고 있다. 더불어 속담에는 예리한 풍자, 엄숙한 교훈, 실감나는 비유 등이 살아 있다. 진도군의 속담에 자주 등장하는 어휘는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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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에 속하는 행정리. 1770년경 전주이씨 이계도가 처음으로 들어왔으며, 그 후 창녕조씨·김해김씨 등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기대봉(起大峰)[192m], 춘산봉(春山峰)[220.8m], 부주산(浮舟山)[149m]으로 이어진 산릉의 동쪽 완경사면에 입지한다. 신흥리 서쪽의 완경사면은 밭이며 남쪽과 북쪽은 농경지이다. 남동쪽은 매향리, 북동쪽은 수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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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에 있는 행정리. 조선 명종 때 영의정을 지낸 노수신이 1547년 순천을 거쳐 안치리로 유배되어 기거하였으며, 1750년 경 그 후손이 이곳에 정착하였다. 그 뒤 1900년대 현풍곽씨와 김해김씨가 신안에서 살다가 안치리에 정착하였다고 전한다. 본래 진도군 지산면의 지역으로서 소개 또는 소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안치리는 전라남도 진도군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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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길은리에 있는 행정리. 용동리는 본래 진도군 지산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물은리, 고길리, 들문거리와 함께 용동리가 고길과 물은의 이름을 딴 길은리에 병합되었다. 200m 내외의 산이 마을을 감싸고 있으며, 길은저수지에서 흘러온 물과 석교천의 지류가 있어 주변의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제공하여 농업에 이용되고 있다. 지산면의 북부에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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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이 발달하면서 진도 역시 광주, 목포 등 도시와의 연결이 편리해졌다. 이와 함께 농수산물은 대도시로 직접 출하되고, 유통업자들이 자가용을 이용해 생활필수품을 소비자의 가정으로 직접 배달하면서 장시의 기능이 현저히 쇠퇴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군 단위의 농수산물집하장은 소량 다품목 생산에 의존하는 영세한 소농의 생산물을 공동 출하하고, 규격 상품화를 촉진하며, 생산자의 조직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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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에서 활동했던 무속인. 정숙자는 원래 충청도가 고향인 사람으로, 23세 때 박병천과 결혼하여 2남 3녀를 두었다. 본래는 유랑극단의 단원으로 진도에 들어왔다가 박병천을 만나게 되었다. 시어머니 김소심과 고모 박선내로부터 무업을 이어받았는데, 주요 기능으로 씻김굿·성주굿·재수굿·혼건지기굿 등이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예능보유자에는 오르지 못하고 지병으로 타계하였다.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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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의 세거성씨 중 하나. 삼성신화(三聖神話)에 양을나(良乙那)가 나오는 제주양씨의 시조(始祖)이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원래는 사람이 살지 않던 제주도에 고을나(高乙那)·부을나(夫乙那)와 함께 땅에서 솟아나왔다고 한다. 본래는 양성(良姓)을 썼으나 신라 태종무열왕 때 탐라의 왕족이던 양탕(良宕)이 신라에 들어가 벼슬하면서 사성(賜姓)에 의해 양씨(梁氏)로 개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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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에 속한 법정면. 지산면은 법정리 15개, 행정리 36개를 관할하고 있다. 법정리로는 인지리(仁智里), 관마리(觀馬里), 삼당리(三堂里), 고야리(古野里), 앵무리(鸚鵡里), 길은리(吉隱里), 소포리(素浦里), 거제리(巨濟里), 보전리(寶田里), 와우리(臥牛里), 가치리(加峙里), 가학리(加鶴里), 심동리(深洞里), 오류리(五柳里), 송호리(松湖里)가 속해 있다.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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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면은 나라의 목장이 있었던 탓에 조선시대 중엽까지 목장면이라고 하다가 1895년(고종 32) 지방관제 개정에 의하여 이곳에 위치한 지력산의 이름을 빌려 지산면이라 하였다. 인지리는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인천리와 독치리를 병합하여 인지리라 했다. 2006년 6월 현재 독치리는 총 152세대 290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중 농가는 130호, 비농가는 22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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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리는 진도민속을 배태한 마을이다. 「남도들노래」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30여 명에 이른다. 진도의 무형문화재 중 소포리에서 나온 진도북춤을 제외하고, 씻김굿, 다시래기, 만가 등은 모두 이곳 인지리에서 나왔다. 인지리는 많은 진도민속, 무형문화재와 관련된 조공례, 박병천, 신영희 등 많은 인물을 배출한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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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면 인지리는 지산면의 소재지 마을이다. 진도의 7개 무형문화재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무형문화재의 본산이라고 할만하다. 직접적으로 관련된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는 남도들노래, 진도씻김굿을 비롯해, 전라남도지정 무형문화재인 진도만가가 해당되고, 간접적으로는 강강술래, 다시래기 등의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와 진도북놀이 등의 전라남도지정 무형문화재가 해당된다. 직접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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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강강술래는 인지마을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다만, 강강술래를 안무할 당시에 해남군 우수영 강강술래를 지도한 사람이 인지리의 박병천이었고, 그런 영향 때문인지 지금까지 왕성하게 강강술래를 보존시켜오고 있는 마을 중의 하나가 인지마을이라는 점에서 강강술래와의 친연성을 부인할 수 없다고 본다. 본래 강강술래는 진도읍의 양홍도를 중심으로 196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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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들노래는 특히 지산면 인지마을을 중심으로 전승되어 오던 노래를 중심으로 하여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바 있다. 즉, 남도들노래는 지산면 인지리를 중심으로 전승되는 논일노래를 일컫는 말이다. 따라서 벼농사에 관련된 노래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 들노래는 1972년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진도에는 남도들노래 뿐만 아니라, 의신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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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만가는 지산면 인지리를 중심으로 연행되는 상여소리를 말한다. 진도만가(珍島輓歌)라는 이름은 1975년 남도문화제에서 입상하는 시기를 전후해서 이를 연구하거나 관여했던 학자들이 붙여준 이름이다. 원래 진도에서는 상여소리라고 했는데, ‘상여소리를 한다.’ ‘상여운구를 한다’, ‘생애(喪輿) 나간다’ 등의 동사(動詞)적 개념으로 사용해 오던 말이다. 대체로 진도만가는 두 가지 유형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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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진도북놀이가 인지마을과 직접 관련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못북기원설’의 측면에서 보면, 남도들노래가 못북의 배경에 해당되는 것이므로, 북놀이와 들노래의 친연성을 짐작해볼 수 있다. 따라서 북춤으로 지정된 인간문화재가 인지마을에 없다는 것을 빼고는 인지마을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북춤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박병천을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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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여 의례에서 불려지는 노래. 「진도 만가(珍島 輓歌)」는 1975년 남도문화제에서 입상을 했을 때 이를 연구했던 학자들이 붙인 이름이다. 원래 진도에서는 「상여 소리」라고 했는데, ‘상여소리를 한다’, ‘상여운구를 한다’, ‘상여(喪輿) 나간다’ 등의 동사(動詞)적 개념으로 사용해 오던 말이다.「진도 만가(珍島 輓歌)」는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씻김굿의 길닦음곡을 차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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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을 어깨에 맨 채 양손에 채를 쥐고 추는 국내 유일의 양북춤 진도북춤은 흔히 ‘북춤’과 ‘북놀이’로 혼용해서 부르고 있다. 그러나 굳이 분류하자면, 군무를 중심으로 북을 메고 추는 춤을 북놀이라 하고 독무를 중심으로 북을 메고 추는 춤을 북춤이라고 부를 수 있다. 다만 전라남도 지정 무형문화재로 지정될 당시 북놀이로 지정되었으므로 ‘북놀이’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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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읍은 진도군의 중심지이고 성내리는 진도읍의 핵심지이다. 본래 진도읍은 1437년(세종 19)에 부내면이 되었다가 1873년(고종 11)에 진도면으로 개칭되었고, 1979년에 읍으로 승격되었다. 이렇게 여러 차례 행정개편이 있었지만 성내리는 읍성의 안쪽에 있다 하여 처음부터 성안 또는 성내로 불렸다. 법정동은 성내리이지만 행정동은 진도초등학교가 있는 성동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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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그리스도교 교파. 진도에 천주교가 처음 전래된 시기는 1870년경이다. 제주도 선교를 담당했던 프랑스 신부가 범선으로 목포로 가던 중 풍랑을 만나 상조도(上鳥島) 동구리(洞口里)에 안착하여 설교를 하면서 공소를 개설한데서 비롯되었다. 1900년부터 1904년에 걸쳐 동구리공소, 창유리공소, 지산면 인지리공소가 개설되었다. 당시 공소는 민간 가옥을 구입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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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조선 시대에 진도군의 해창(海倉)이 위치한 데서 유래하였다. 1800년대 김해김씨 김흥백(金興伯)이 처음 입거한 후 밀양박씨·경주이씨 등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진도군 군이면에 속해 있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소포리를 병합하여 해창리라 해서 군내면에 편입되었다. 그 후, 1973년 7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