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가상리(佳上里)는 가래실이라고도 하며, 예로부터 가래나무[楸子]의 숲이 무성하여서 ‘가래실’이라 불렀다고 한다. 가상리에는 약 520여 년 전에 구의헌(九宜軒) 권열이 안동에서 처음으로 입향하여 정착하였다고 전해진다. 웃가래실과 아랫가래실엔 화산리·암기리·대기리가 있으며 그 중에서도 가래실이 으뜸 되는 마을이...
-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에 속하는 법정리. 강회리(江回里)는 내[川]가 마을을 돌아 흐르므로 ‘강회’라 하였다고 한다. 강회리는 조선 말 영천군 모사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모사면 대부분과 현재 금호읍인 창수면의 일부 및 흥해군 북안면의 일부가 합쳐서 대창면이 신설됨에 따라 영천군 대창면 강회동이 되었다. 1988년 5월 3일에...
-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보현리 거동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불전. 거동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 말사이다. 신라 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한 천년 고찰이라 전하나 분명한 기록이 없고, 조선 시대 전·후기 문헌에도 사찰명이 등재되어 있지 않아 창건 등 사력(寺歷)은 정확히 알 길이 없다. 다만 현존 경내에 조선 후기의 건물로 추정되는 거동사 주 불전...
-
경상북도 영천시에서 시민의 보건·휴양·놀이 등을 위하여 마련한 휴식 공간. 공원은 공공 녹지로서, 일반 공중의 휴식, 교육 및 정서 함양을 위하여 자연적·인공적으로 조성한 조경지를 말한다. 영천시에는 시민의 휴식 공간으로서의 도심 공원, 역사적 의미를 기리기 위한 문화 공간으로서의 문화 역사 공원, 자연 풍경지(風景地)를 보호하고 시민의 보건 휴양 및 정서 생활의 향상에...
-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효정2리에 있는 나주 정씨 신녕파 문중 재사(齋舍). 곽남재(郭南齋)는 조선 인조 때 학자인 정민도(丁敏道)를 기리기 위해 그의 아들인 정남주가 문중산 아래에 초창을 하고 이후 후손들을 수호하기 위한 재사로 이어져 왔다고 전해진다. 곽남재는 영천시 화산면 효정2리 마을 앞 산 아래 있는 곽산저수지 옆에 있다. 효정2리 마을 어...
-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선천리에 있는 양효지(楊孝智)를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齋舍). 양곡(良谷) 양효지(楊孝智)[1414~1505]의 관향은 청주이며 조선 세종 때 참판(參判)을 지내다가 세조의 왕위 찬탈 시 한양에서 이곳 신녕현 대량리로 내려와 거처하던 곳에 ‘망미대’를 쌓아 매월 초 1일과 15일에 영월의 단종을 향하여 배향하고 애석한 서거를 사모하...
-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상리에 있는 산. 구룡산(九龍山)은 높이 674.8m의 산으로, 행정구역상으로 영천시와 청도군, 경산시의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구룡산이 청도군과 영천시를 경계로 하고 있어 구룡, 경산구룡, 구룡리 자인구룡이라 부르기도 한다. 구룡산이라는 명칭은 용왕과 관련되어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동해의 용왕에게 딸이...
-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계지리 북쪽 산봉우리에 있는 조선 시대 내지봉수대 터. 봉수는 봉(烽)[횃불]과 수(燧)[연기]로 변경의 군사정보를 정해진 신호체계에 따라 중앙과 주변지역에 전하던 통신방법이었다. 봉수제는 고대 삼국 시대부터 원시적으로 활용되었으나 정례화한 것은 고려 시대였다. 이후 조선 세종 대에 크게 정비되어 1894년까지 국가적인 운영을 하였다. 조선 시대...
-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귀호리에 있는 고택. 귀애고택은 문헌공 조명직(曺命稷)[1733~1807]이 1767년(조선 영조 43)에 이곳으로 이주해 온 뒤 귀애 조극승(曺克承)[1803~1877], 운파 조병수(曺秉秀)[1832~1903] 등 일산 삼대가 귀애정·사당·별묘·육각정 등 47칸을 건축하였다. 귀애고택은 화남면사무소에서 화산면 간 신화로를...
-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치산리에 있는 의병장 권응수를 모시는 서원. 귀천 서원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던 권응수와 조경온을 배향한 서원으로 1676년 건립되었다가 훼철된 후 1923년 복설하였다. 현재 경내에는 강당, 영정각을 비롯한 4동의 건물이 있다. 귀천 서원은 지방도 919호선에서 치산 관광길을 따라 치산 계곡 쪽으로 가다보면 치산 마을 맞은편...
-
탤런트 이병헌·수애 주연의 멜로 영화로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연정에서 일부 촬영한 드라마. 1969년 여름, 서울에서 농촌 봉사활동을 내려 온 대학생들의 풋풋하고 싱그러운 사랑을 그린 작품으로, 첫사랑의 아련함을 느끼게 하는 멜로 영화로 영천 연정에서 영화의 10% 분량을 촬영했다. 연정(蓮亭)은 중요민속문화재 제107호로 1725년(영조 원년)에 건축한 정용준 가옥...
-
개항기부터 1945년 8월 15일 광복까지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역사. 우리나라에서의 근대(近代)는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이후 대한제국기와 일제 강점기를 거쳐 1945년 8월 15일 광복까지의 기간을 가리킨다. 학자에 따라서는 근대의 시점을 1876년(고종 13) 개항 이후로 보기도 한다. 1. 대한제국기 현재의 영천 지역은 1894년(고종 31) 7월 갑오개혁으로 영천...
-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치일리 은해사에 있는 소나무 숲길. 금포정길은 은해사 일주문에서 보화루까지 2㎞ 구간으로, 1714년 조선 숙종 때 소나무 숲을 조성하였다. 300년생 송림이 울창하며, 2007년부터는 경내 일대에 매년 1천여 주의 금강 소나무를 식재하여 숲을 가꾸고 있다. 일체 생명의 살생을 금한다고 하여 금포정(禁捕町) 길이라 이름을 붙였다....
-
근대 경상북도 영천 출신 역사학자. 김성칠(金聖七)[1913~1951]은 영천 출신으로 경성제국대학에서 역사학자로 활동한 인물이다. 1928년 대구고등보통학교 2학년 때 독서회사건으로 검거되어 1년간 미결수로 복역하였다. 일제 치하 단일 학생결사사건으로선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사건은 1928년 11월에 있은 ‘대구학생비밀결사사건’이었다. 대구의 고등경찰 9명이 넉 달...
-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소설가 백신애의 대표 소설. 1933년 『신여성』 1~2월호에 「ㅅ거래이」로 발표했다가 10월에 「꺼래이」로 개작 발표한 백신애의 단편소설이다. 백신애는 1908년 5월 20일 영천군 창구동 68번지에서 출생했다. 1923년 경북사범학교 강습과에 입학하고 다음해 졸업 한 후 영천공립보통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1929년 단편소설 「나의 어머니」가 『조...
-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과 청송군 현서면 경계에 있는 고개. 노귀재는 노고재라고도 하며, 해발 고도 502m의 고개이다. 경상북도 청송군과 영천시 경계로서, 과거에는 청송군과 영천시를 이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노귀재의 북쪽으로 안동시 길안면, 동쪽으로 안덕면·현동면, 남쪽으로 영천시 화북면, 서쪽으로 의성군 춘산면 및 군위군 고로면과 접한다....
-
경상북도 영천시 중앙동에 속하는 법정동. 녹전동(錄田洞)은 조선 영조 때 명고(鳴皐) 정간(鄭幹)이 관직에 재직하면서 선정을 베풀어 조정으로부터 전답을 녹(錄)으로 하사 받은 땅이라 하여, 마을 이름을 녹전(錄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녹전동은 원래 원녹전·활수·석동·창녕골·가장골·대추골·서당골·예정곡 등 여러 이름의 자연마을로 형성되었으며,...
-
경상북도 영천 북안 출신인 조선 시대의 문인이며 시가 작가인 노계(蘆溪) 박인로(朴仁老)의 가사 작품. 박인로[1561~1642]는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도천리 출생이며, 「조홍시가(早紅柹歌)」·「五倫歌(오륜가)」·「입암가(立巖歌)」 등 70여 편의 시조를 남긴 걸출한 시조작가였다. 「누항사」는 1690년 한음 이덕형의 증손 이윤문이 영천군수로 재...
-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정각리에 있는 조선 시대 학자 구규징을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건립한 정자. 은양공(隱陽公) 구규징(具規徵)의 초명은 구용징(具龍徵)으로, 경상북도 영천의 능주 구씨(綾州具氏) 입향조이다. 정규양(鄭葵陽)·정만양(鄭萬陽)과 더불어 교유가 두터웠으며, 영천 보현산 아래에 은거했다. 그의 묘소는 영천시 화북면 정각리 보현산(普賢山)에 있다....
-
고려 말기 영천 출신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가 지은 시조.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개국하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던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이 고려 왕조의 마지막 충신 정몽주의 속마음을 떠보고 회유하기 위하여 술자리에서 「하여가(何如歌)」를 부르자, 그에 대한 답변으로 즉석에서 지어 불렀다는 노래다. 정몽주가 이방원의 심복인 조영규에게 선죽교에서 피살을 당하게...
-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선천리에 있는 모와(慕窩) 성적(成績)이 건립한 서당을 재실로 이용한 건물. 모와(慕窩) 성적(成績)은 조선 선조 때의 학자로 황준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참전하여 큰 공을 세우고 국자감의 관직을 제수 받았으나 사직하고, 늙은 부모에 효도를 다하면서 후학을 양성하였다. 단양재 좌측 편에는 성적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
경상북도 영천시 남부동에 속하는 법정동. 도남동(道南洞) 명칭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도동과 예곡면 봉동 일부를 통합하여 도남리가 된 데에서 유래하였다. 도남동 지역은 영천 청제비(永川菁堤碑)의 유적으로 보아 서기 500년대부터 사람이 살았음을 증명하고 있으며, 아울러 문헌에도 도동화현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 도남동 지역은 영...
-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삼포리에 있는 박세미(朴世美)의 묘하 재사(墓下 齋舍). 동계재는 조선 숙종 때의 학자로, 영조 때 호조참의로 추증된 박세미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로, 수흥길을 따라 400여m 이동하면 길 끝자락에 있으며, 앞쪽으로 마을이 있다. 동계재는 산 아래 경사진 대지에 동남향하여 배치되고 일곽은 토석담장으로 둘러져 있다....
-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화산리에 있는 정순돈(丁順敦)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하여 건립한 재사(齋舍). 두곡재는 조선 명종 때 장사랑과 전연사 참봉을 지낸 정순돈(丁順敦)의 묘하 재실이다. 정순돈은 화산면 효정리 곽남재 정민도의 5대조이다. 두곡재는 영천시 화산면 화산마을 초입에서 신녕 방면으로 0.7㎞ 지점 못을 지나 서편 좌측 못 안길로 진입하여 3...
-
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류혜동(柳惠同)의 본관은 서산. 자는 화이(和而)이며, 1444년(세종 26)에 태어났다. 고조는 관찰사(觀察使) 류후(柳厚)이며, 증조는 고려조에 문과에 급제하고 조선 태종 때 관찰사(觀察使)를 지내고 서녕군(瑞寧君)에 봉군된 류기(柳沂)이며, 조부는 태재(泰齋) 류방선(柳方善), 아버지는 대사간(大司諫) 류윤겸(柳...
-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신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인 성이직(成以直)를 기리기 위해 지은 정사. 만천 정사는 조선 선조 때 생원시에 합격하고 찰방을 역임한 성이직(成以直)의 유덕을 기리고 향내(鄕內)의 교육을 증진하기 위해 후손들이 지은 정사이다. 성이직의 본관은 창녕. 자는 여방(汝方), 호는 경재(敬齋)이다. 병자호란 후 성이직은 벼슬을 버리고...
-
경상북도 영천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정규양(鄭葵陽)이 강학을 위해 건립한 정자. 정규양[1667~1732]의 본관은 영일, 자는 숙향(叔向), 호는 지수(篪叟)이며, 형인 정만양(鄭萬陽)[1664~1730]과 함께 부친이 돌아가신 후 보현산 횡계(橫溪)로 들어가 정자를 짓고 학문에 전념했다. 벼슬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학문과 우애로 여생을 보내며 영의정 조현...
-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나무에 글을 새긴 인쇄용 판. 목판은 주로 사찰과 서원, 문중(門中)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문집 간행에 필요한 인쇄용 판을 말한다. 영천 지역에서는 고려 말 성리학이 도입되고 조선 왕조가 숭유정책을 취하면서 일찍부터 유가적 문풍(文風)이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1. 고려 시대 여말 선초 영천 지역의 유풍(儒風) 진작에 영향을 끼친 인물은...
-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사상이나 감정을 상상의 힘을 빌려 언어로 표현한 예술. 또는 그 작품. 영천은 보현산을 중심으로 동남으로 운주산, 서북으로 팔공산 둘러싼 분지형태의 지역이다. 영천은 부족국가시대 골벌소국이라 불리웠으며 신라시대 임고군, 고려초 영주, 조선 태종 때 영천군이라고 불리웠다가 1937년 영천읍으로, 1981년 영천시로 승격되었다....
-
경상북도 영천시에서 있는 무용·사진·연극·영화·음악·미술 등 각 분야의 단체와 활동 모습. 영천시의 문화·예술은 무용·사진·연극·영화·음악·미술 등 각 분야 단체의 활동을 통해 그 흐름을 파악할 수가 있다. 영천의 문화·예술 관련 업무는 영천문화원에서 총괄하고 있다가 2003년 1월 17일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예총] 영천지부가 발족되면서, 영천문...
-
경상북도 영천시의 문화 활동에 대한 소산으로서 문화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는 유형 무형의 자산. 문화재는 오랜 기간을 통하여 예술·과학·종교·도덕·법률·경제·민속·생활양식 등에서 문화적 가치를 이루어 온 소중한 자산이다. 우리나라는 1962년 제정한 문화재보호법에서 문화재를 역사상·예술상·학술상·관상상(觀賞上) 가치가 큰 것으로서, 다음의 네 가지로 분류하여 정의하고 있다...
-
경상북도 영천시 도계서원(道溪書院)에 있는 노계(蘆溪) 박인로(朴仁老)의 문집을 새긴 판목. 노계 박인로 선생의 판목은 도계서원에 소장되어 있는 68장의 『박노계집』 책판을 말한다. 『박노계집』은 조선 선조 때 가사문학의 선구자인 시인 박인로[1561~1642]의 시문집이다. 박인로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였고 임진왜란 때에는 의병장 정세아(鄭世雅)의 휘...
-
조선 전기 월성 박씨(月城朴氏) 경상북도 영천 지역 입향조. 월성 박씨는 신라 경명왕의 8남으로 월성대군(月城大君)에 봉해진 박언의(朴彦儀)를 시조로 하는 인재공파(忍齋公派) 파조이다. 박석문(朴碩文)의 호는 인재(忍齋)이며, 고조는 고려 중직대부(中直大夫) 예조전서(禮曹典書) 박유(朴瑜)이며, 증조는 고려 중군사정부령(中軍司正副令) 박구(朴龜), 조부는 조선...
-
한말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의병. 박한종(朴漢宗)의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치만(致萬)이고, 1855년(철종 6) 지금의 영천시 자양면 도일리에서 태어나 1934년에 세상을 떠났다. 박한종(朴漢宗)은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일제의 조선 식민지화 정책이 노골화되어 가자 민족적 위기의식을 느끼고 항일 투쟁을 전개할 것을 결의하고 동지를 규합하고 있었다....
-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임포리 일대에 있는 조선 시대 내지봉수대 터. 봉수는 봉(烽)[횃불]과 수(燧)[연기]로 변경의 군사정보를 정해진 신호체계에 따라 중앙과 주변지역에 전하던 통신방법이었다. 봉수제는 고대 삼국 시대부터 원시적으로 활용되었으나 정례화한 것은 고려 시대였다. 이후 조선 세종대에 크게 정비되어 1894년까지 국가적인 운영을 하였다. 조선 시대 봉수제는 노...
-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고대 변한어에 기층을 둔 신라 경주 방언권에 속하는 방언. 영천 방언은 삼한어(三韓語)의 중심인 변한어(弁韓語)에 기층을 둔 신라 경주 방언권에 속하는데, 조선에 들어서서 대구~경주~포항과 군위~의성~청송으로 연결되는 교통의 중심지로서 독특한 영천 방언을 형성하고 있으나 크게는 대구-경주 방언권에 속한다. 영천 방언의 역사적 흔...
-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사천리에 있는 경주 김씨·구산 박씨·순흥 안씨·오천 정씨 등 네 문중의 친화를 도모하기 위해 세운 재사(齋舍). 방화재(芳華齋)는 영천시 화남면 사천리 영천 중앙 초등학교 화남 분교장 뒤편에 있다. 방화재는 대청 종도리 장혀 하부에 상량 묵서가 기록되어 있으나 희미하여 판독이 어렵고 상량기문, 편액 등도 없어 건립연대를 알 수...
-
영천 출신 포은 정몽주의 어머니 이씨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시조. 「백로가(白鷺歌)」는 과거 여러 문헌의 기록에 포은 정몽주의 어머니 이씨가 아들을 훈계하기 위하여 지은 작품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작가 미상으로 기록된 곳도 있고, 연산군 때 사람인 김정구(金鼎九)가 작자라는 주장도 있어 작가에 대한 의문이 아직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고 있다. 「백로가」는 『...
-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치일리 팔공산에 있는 은해사의 산중 암자. 백흥암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산내 암자이다. 신라 경문왕(景文王)[?~875]때 혜철 국사(惠哲國師)[785~861]가 완공하였으며, 주변에 잣나무가 많아 창건 당시에는 백지사(栢旨寺)라 불렀다. 1546년(조선 명종 원년)에 인종의 태실을 팔공산에 모시게 되자 수호 사찰...
-
이총언(李忩言)을 시조로 하고 이배원(李培源)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시의 세거 성씨. 벽진 이씨(碧珍李氏)의 시조는 고려 삼중대광 개국원훈 벽진장군(碧珍將軍) 이총언(李忩言)이다. 이총언은 858년(신라 헌안왕 2)에 태어나 938년(고려 태조 21) 81세로 사망하였다. 묘소는 성주군 서쪽 명암방(明巖坊) 수촌(樹村) 태극봉 아래에 있었다고 하여 심혈...
-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에 속하는 법정리. 병암리(屛岩里)는 병풍 바위가 있으므로 병암 또는 병풍바우라 하였다고 한다. 병암리는 조선 말 영천군 모사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모사면 대부분과 현재 금호읍인 창수면의 일부 및 흥해군 북안면의 일부가 합쳐져 대창면이 신설됨에 따라 영천군 대창면에 편입되었다. 이때 송구동·세동을 병합하...
-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자천리에 건립한 서당. 봉양 서당은 조선 헌종 때 유학자인 봉양(鳳陽) 서재신(徐載信)[1821~1856]이 건립한 서당으로 많은 인재가 배출되었다. 저서로 『봉양선생문집(鳳陽先生文集)』 3권 1책이 있다. 그중에서도 「고각사의록 내외편(顧各思義錄內外篇)」은 그의 철학적 사상 체계를 집대성한 저술이라고 할 수 있다 봉양 서당은...
-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북리(北里)는 ‘북골’이라고도 하는데 마을 모양이 베 짜는 북처럼 생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지명을 한자화하면서 북리(北里)로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북리는 본래 영천군 원곡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나현동을 병합하여 영천군 북안면 북동이 되었고, 1995년 1월 1일 영천시·영천군...
-
경상북도 영천시에 속하는 행정 구역. 북안면(北安面)은 북쪽의 평안한 고을이라 하여 북안면으로 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북안면은 신라 시대에는 경주부에 딸린 북안곡부곡이라 불렸고, 고려 시대까지는 경주군에 속하였다. 조선 태종 때 영천군에 속하였으며, 영조 때 북안면이 되었고, 고종 때는 흥해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원곡면·비...
-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명주리와 신대리를 지나 송포리에서 서쪽으로 흘러 금호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하천. 북안천(北安川)은 조선 영조 때 북안면이라 이름 지어진 마을을 관류한다 하여 북안천이라 부른다. 북안천은 금호강(琴湖江)[116㎞]의 지류 하천으로, 북안면 발원지에서 북서류하여 명주리를 지나 신대리의 상류 지역을 형성하면서 송포리로 흘러간 후 서...
-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에 속하는 법정리. 사리(沙里)는 골짜기가 사방으로 담같이 둘러져 있고, 하천에 모래가 많아 담과 모래를 의미하는 사곡(沙谷)·장곡(墻谷)으로 칭한 데서 연유한다. 사리의 가정(柯亭)은 조선 숙종 때 성가정(成柯楨)이란 사람이 이 마을에서 살았고, 가정 남동쪽에 있는 마을 ‘감나무골’은 전주 이씨가 주로 살고 있었다. 예전에는...
-
1712년(숙종 38)에 병와 이형상이 사이국(四夷國)에 대해 지리·역사에 관해 기술한 필사본. 『사이총설(四夷總說)』은 고사이국(古四夷國)·동이(東夷)·남만(南蠻)·서융(西戎)·북적(北狄)에 대한 역사적 변천 과정과 중국의 번국 가운데 오늘날의 사이국인 여진·일본·대소유구·서반 등 4개국에 대한 간략한 역사와 그들의 언어를 기술한 책이다. 이형상[1653~1...
-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사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당. 사천리 장학소는 조선 중종 때 대사헌을 역임하고 예조판서에 추증된 이승수(李承須)의 유덕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서당이다. 경내에 충간공의 기적비가 있다. 사천리 장학소는 상뜸마을 입구에 서향하여 자리 잡고 있다. 북영천 나들목에서 내려 북쪽에 있는 마을로 국도 35호선을 따라 가면 영천 중앙 초...
-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오계리에 있는 창녕 조씨 재사(齋舍). 사효재는 고려 우왕 때 급제하여 희천 군수로 봉직하였고, 조선에서는 강계도 좌익병마사로 제수되었으나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절의로 영천으로 은둔한 조신충(曺信忠)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이다. 사효재는 영천시 금호읍에서 대창 방면 지방도로 909번에서 동쪽으로 500여m 가...
-
강덕문(姜德文)을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경상북도 영천에 건립한 조선 시대 정자. 조선 선조 때 성균관 진사를 지낸 강덕문을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산은정(山隱亭)을 건립했다. 산은정은 행정구역으로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신방리에 있다. 신방리는 임고면소재지에서 영천댐 방면으로 가다 보면 댐 제당 직전에 우측으로 난 길을 따라 가면 노항리 다음에 있...
-
선원마을은 조선 인조 때 호수(湖叟) 정세아(鄭世雅)[1535~1612]의 장손인 정호례(鄭好禮)[1604~1672]가 입향해 세거한 영천의 대표적인 동족마을로, 현재 행정구역으로는 영천시 임고면 선원리 지역이다. 선원마을은 자호천과 선원천을 곁에 두고 그 뒤로 해발 200m 내외의 학산이 병풍처럼 둘러 있어 주변 산수가 너무 아름다워 도연명(陶淵明)의 무릉도...
-
경상북도 영천시 도남동에 있는 조선 숙종 대 학자인 삼괴당(三槐堂) 안세징(安世徵)이 거처하던 집. 삼괴당(三槐堂)은 광주 안씨 집성촌인 도남동 도남마을에 안마당을 중심으로 ‘ㄱ’자형 정침과 ‘一’자형 사랑채, ‘一’자형 삼괴당이 튼 ‘ㅁ’자형으로 배치하고, 정침 우측 뒤로는 가묘를 갖춘 상류 주택이었다. 삼괴당은 경상북도 영천시의 4번국도[천문로]...
-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에 속하는 법정리. 삼매리(三梅里) 마을의 풍수를 보면, 마을 뒷산은 매화 가지가 뻗어 있는 형상이고, 앞산은 매화꽃을 향하여 날아드는 형상이라 매곡(梅谷)이라 칭하다가, 3개 이(里)가 합쳐서 삼매(三梅)라는 지명이 생겼다. 삼매리의 매곡마을은 조선 영조 때 형조 참의를 지낸 정중기(鄭重器)가 개척한 마을로, 270여 년 동안...
-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삼창리(三昌里)과 관련되는 지명을 보면, 먼저 ‘고현장터’는 조선 시대부터 신녕현 동·면 소재지였으며 사람들의 왕래와 각종 물품들의 거래가 잘 되는 곳이었다고 한다. ‘한마’는 원래 큰 마을이 있었으며, ‘진동골’은 골짜기의 입구라는 뜻이다. 삼창리는 이 세 곳이 번창하기를 바라며 지은 지명으로 보인다. 삼창...
-
경북 영천시 금호읍 구암리에 있는 광주 안씨 재사(齋舍). 상로재는 조선 숙종 때 성균관 학정(學正)을 봉직한 안후정(安后靜)이 그의 선조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세운 재사이다. 학연사는 광주 안씨 영천 입향조인 안증(安嶒)[1494~1553]을 향사하기 위해 건립한 것이다. 안증의 호는 완귀(玩龜)이며, 남원 부사를 역임한 안구(安購)의 둘째 아들이다. 아버지...
-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근대 공립 교육 기관이 설립되기 전 초등 교육을 담당했던 사설 교육 기관. 신교육이 실시될 때까지 가장 보편화된 교육 기관이었던 서당은 민간 사설 교육 기관으로 오늘날의 초등 교육을 담당하던 기관이다. 서당의 기원은 고구려의 경당(扃堂)에 있으며, 고려와 조선을 거쳐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교육 기관이다. 서당의 사회적 의...
-
경상북도 영천시에 있는 조선 후기의 학자 박성세(朴聖世)가 강학을 위해 건립한 정자. 박성세[1652~1705]의 본관은 밀양, 자는 호여(皡如), 호는 석연(石淵)이다. 조선 숙종 때의 문신으로 1690년 식년 문과 병과(丙科)에 합격해 1693년 학유(學諭)와 학록(學錄)을 거쳐 성균관 학정(學正) 겸 양현고봉사(養賢庫奉事)를 지냈으나 관직을 버리고 낙향해...
-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석촌리(石村里)는 마을에 멋진 바위가 있어 석촌(石村)이라 불렀다고 한다. 한때 석계정(石溪亭)이라 부르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다시 석촌이라 하였다고 한다. 석촌은 조선 인조 때 경주 김씨 형제가 정착한 마을이며, 박연(朴淵)덤은 마을 앞의 절벽으로,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권응수(權應...
-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 있는, 흙이나 돌 따위로 높이 쌓아 만든 군사적인 방어 시설물. 성(城)의 사전적 의미는 ‘적을 막기 위하여 높이 쌓은 담’이며, 한자의 자의(字義)는 흙[土]으로 마련한[成] 시설물임을 뜻한다. 또한 성곽(城郭)이란 내성(內城)과 외성(外城)을 전부 일컫는 말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내성과 외성을 구분하여 축조하거나 뚜렷이 구분하지 않았다....
-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신덕리 봉화산 정상에 있는 조선 시대 내지봉수대 터. 봉수는 봉(烽)[횃불]과 수(燧)[연기]로 변경의 군사정보를 정해진 신호체계에 따라 중앙과 주변지역에 전하던 통신방법이었다. 봉수제는 고대 삼국 시대부터 원시적으로 활용되었으나 정례화한 것은 고려 시대였다. 이후 조선 세종대에 크게 정비되어 1894년까지 국가적인 운영을 하였다. 조선 시대 봉수...
-
이능일(李能一)을 시조로 하고 이방(李芳)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시의 세거 성씨. 성산 이씨(星山李氏)의 시조는 고려 개국 공신인 이능일(李能一)이다. 그는 신라 말기에 성산현(星山縣)[지금의 성주군] 일대를 통치하던 호족이었는데 12년간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후삼국 통일에 큰 공훈을 세웠다. 고려가 건국된 후 태조 왕건의 딸인 정순궁주(淨...
-
경상북도 영천시 쌍계동 봉화산 정상에 있는 조선 시대 내지봉수대 터. 봉수는 봉(烽)[횃불]과 수(燧)[연기]로 변경의 군사정보를 정해진 신호체계에 따라 중앙과 주변지역에 전하던 통신방법이었다. 봉수제는 삼국 시대부터 원시적으로 활용되었으나 정례화한 것은 고려 시대였다. 이후 조선 세종 대에 크게 정비되어 1894년까지 국가적으로 운영되었다. 조선 시대 봉수제는 노선 상...
-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파계리 무학산 일대에 있는 조선 시대 내지봉수대 터. 봉수는 봉(烽)[횃불]과 수(燧)[연기]로 변경의 군사정보를 정해진 신호체계에 따라 중앙과 주변지역에 전하던 통신방법이었다. 봉수제는 삼국 시대부터 원시적으로 활용되었으나 정례화한 것은 고려 시대였다. 이후 조선 세종대에 크게 정비되어 1894년까지 국가적인 운영을 하였다. 조선 시대 봉수제는...
-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예로부터 민간에 전하여 오는 비유적인 짧은 글귀. 속담(俗談)은 시대정신이나 민중의 삶의 지혜와 가치가 녹아 있는 함축된 문장으로 된 글귀를 말한다. 속담은 누가 언제 만든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지역에 따라 생활양식과 정신이 짙게 배인 민중들의 공동 소작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 시대에는 계급을 풍자하거나 남성과 여성의 차등성이라는 사회적...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선원리에 있는 송고헌(松皐軒) 정치술(鄭致述)의 주택. 송고헌고택은 정치술(鄭致述)이 1863년에 건립한 살림집으로 안채·사랑채·아래채·고 방채가 튼 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고, 사랑채 전방으로 솟을대문, 기타 부속건물 등이 있어 상류주택의 면모를 갖고 있다. 송고헌고택은 영천 지역의 대표 씨족인 오천 정씨(烏川 鄭氏)의 동족...
-
경상북도 영천 출신 시조 시인들이 지은 우리나라 고유의 정형시. 시조(時調)는 고려 말엽에 발생하여 조선 시대를 거치는 동안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고, 현재도 많은 시인들에 의하여 창작되고 있는 우리나라 고유의 정형 시가다. 우리나라 문학사에는 향가·고려가요·가사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고전 시가 갈래들이 다채롭게 등장했으나, 지금은 그것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그러한...
-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광리(新光里)는 개상·효일·지일을 합쳐서 생긴 마을로, “새로 빛나라”는 뜻을 가졌다고 한다. 신광리는 조선 말 영천군 모사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모사면 대부분과 현제 금호읍인 창수면의 일부 및 흥해군 북안면의 일부가 합쳐서 대창면이 신설됨에 따라 영천군 대창면에 편입되었다. 이때...
-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 설치되었던 조선 시대 행정구역의 명칭. 신녕현(新寧縣)은 신라 시대 사정화현(史丁火縣)·화산(花山) 등으로 불리다가 757년(경덕왕 16) 군현재 한화개혁의 일환으로 지명을 고치면서 신녕현(新寧縣)이라 하였다. 바다의 풍파를 막아 평안하게 지나게 한다는 뜻으로 명명하였다 한다. 『삼국사기』 잡지 지리조에 “신녕현(新寧縣)은 본시...
-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원리(新源里)는 개척 당시 청통천(淸通川) 상류에 새 마을을 개척하였다고 하여 유래되었다고 하며, 내신원·외신원·수꾸바탕[수수터]이라고도 불린다. 1914년 행정 구역 폐합 시 내신동·외신동·신기동·유룡동을 병합할 때 붙여진 이름이다. 자연 마을 중, 안신원[내신원(內新源)]은 신원리 가운데 가장 안쪽에 위치한 데서...
-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옥계리에 있는 서당. 조선 인조 때의 문인 김복천(金馥天)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한 서당이다. 양우당은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옥계리의 마을 내에 있다. 35번 국도를 따라가면 자양 방면[보현산 천문과학관]으로 빠지기 직전에 옥계리 버스 정류소가 나온다. 버스정류소 뒤쪽 마을 안에 있으며 주택과 같은 대지 내에 있다....
-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화산리에 있는 청주 양씨 신녕파 문중 재실. 양청재(養淸齋)는 조선 세조 때의 학자로, 천품이 순후하고 우애가 돈독했던 성균관 교리 양자한(楊自漢)을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지은 정자로 현재 재사로 사용하고 있다. 양청재는 화산1리 화산마을에서 삼창 방면으로 1.2㎞ 지점 도로변에 있다. 덕강서원과 담장을 경계로 인접하고 있고...
-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에 속하는 법정리. 어방리(於方里)는 온양 방씨(溫陽方氏)가 많이 산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이라고 전한다. 어방리는 조선 말 영천군 모사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에 모사면 대부분과 현 금호읍이 되어 있는 창수면의 일부 및 흥해군 북안면의 일부가 합쳐져 대창면이 신설됨에 따라 영천군 대창면에 편입되었다. 본래...
-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부산리 봉화재 일대에 있는 조선 시대 봉수대 터. 봉수는 봉(烽)[횃불]과 수(燧)[연기]로 변경의 군사 정보를 정해진 신호 체계에 따라 중앙과 주변 지역에 전하던 통신 방법이었다. 봉수제는 삼국 시대부터 원시적으로 활용되었으나 정례화한 것은 고려 시대였다. 이후 조선 세종대에 크게 정비되어 1894년까지 국가적으로 운영을 하였다. 조선 시대 봉수...
-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죽전리에 있는 한일순(韓日順)의 추모 재사(齋舍). 연호재는 조선 영조 때의 학자로 가선대부를 지낸 한일순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이다. 연호재는 지천초등학교 상송분류 앞 삼거리에서 상송안길로 150m 직진 후 다시 연지안길로 좌회전 후 100여m 이동하면 연지마을 초입에 있다. 연호재는 평탄한 대지에 북향하여...
-
영천시는 서울에서 동남쪽으로 350㎞ 지점에 위치하고, 경상북도의 동남부에 자리 하고 있다. 또 동쪽은 경주시와 포항시, 서쪽은 경산시와 대구광역시, 남쪽은 청도군, 북쪽은 청송군과 군위군이 접하고 있는 경북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도시이다. 역사적으로는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 및 봉수대(烽燧臺)와 연관이 있었고, 시장 및 교통망의 중심지로 대변되는 영천의 역할과...
-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해선리에 있는 이영찬(李英讚)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齋舍). 영모재는 포항~영천 간 국도 28호선의 고경면사무소를 지나 우측에 있는 장재 못을 지나서 북서쪽으로 30m 지점의 언덕에 있다. 이영찬은 조선 인조 때 훈련원정을 지냈다. 영모재의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대청 상부 종도리 장혀에 ‘단기사천삼백년정미사월십오일중...
-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귀호리에 있는 조희장(曺希章)의 묘하(墓下) 재사(齋舍). 영모재는 조선 중종 때의 학자로 정릉참봉을 역임한 송당(松堂) 조희장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로, 1568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영모재는 화남면사무소에서 귀호리 방향의 신화로를 따라 1.1㎞ 이동한 후 우측의 귀호1길을 따라 1.7㎞ 이동하면 새못 아...
-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죽곡리 이보흠(李甫欽)의 묘소에 있는 재사(齋舍). 영모재는 조선 단종 때 순흥 부사로 재직하면서 단종 복위를 꾀하다가 참형을 당한 이보흠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로, 영천 이씨 충장공파 17대손인 이희춘의 조부가 거창에서 영천으로 이주하면서 1897년 재실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영모재는 북영천 나들목에서 영천댐 방...
-
경상북도 영천시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황보성(皇甫星)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정자. 황보성[1700~1756 추정]의 본관은 영천, 자는 경우(景虞)이다. 조선 후기 정조 때 효자로 홀어머니를 모시며 지극한 효성으로 이름이 나, 나라에서 조봉대부(朝奉大夫) 동몽교관(童蒙敎官)이란 증직을 내렸다. 어머니 영양 이씨는 마을에 흉년이 들었을 때 구휼한 것으로 마을...
-
1935년 정형식(鄭瑩植)이 편찬하고 영천향교(永川鄕校)에서 간행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읍지. 『영양지』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나는 문묘(文廟)와 관련된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향안(鄕案)이며, 맨 마지막에는 간기(刊記)가 실려 있다. 읍지의 가장 첫 부분은 문묘위차(文廟位次)로, 그것은 다시 대성전(大成殿)·동배위(東配位)·서배위(西配位)·동종향(東從...
-
1995년 영천군이 영천시와 통합함에 따라 영천군정 자료를 편찬하여 발간한 군정사. 『영천군정사』는 1414년(조선 태종 14) 영천군으로 명명된 이후 580년간 이어져 온 영천군의 역사 및 행정 전반을 상세히 발굴·조사해 수록한 시대적 기록물이다. 1995년 1월 1일 영천군은 영천시와 통합함에 따라 영천군의 전반적인 행정을 종합적으로 정리해 편찬하게 되었다. 편찬위원...
-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말[馬]을 국조의 탄생과 결부시켜 신성시하여 왔고 초자연적인 세계와 교감하는 신성한 동물로 여겨 왔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는 말이 전해 준 알에서 태어났고, 고구려의 시조 주몽(朱蒙)이 타고 땅속을 통하여 조천석(朝天石)으로 나아가 승천했다는 기린말의 설화도 있으며, 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서울 동대문 밖에 마조단(馬祖壇)을 설치하여 제사를 지...
-
경상북도 영천시에 있는 조선 정조 때 무인 조학신(曺學臣)이 건립한 살림집. 조학신[1732~1800]의 본관은 창녕, 자는 심부(心夫)이며, 지산 조호익 선생의 7세손으로 조선 후기 정조 때의 경상북도 영천 지역 무인이다. 영조가 친히 면접하고 그의 기개에 감탄해 청룡도를 내리고 사복내승으로 제수했다. 그 후 여러 벼슬을 거쳐 전라도 수군병마절도사를 지냈다....
-
경상북도 영천시에서 10월 중순~11월 상순에 재배되는 배나무의 열매. 영천은 비가 적고 맑은 날이 많아 과수재배의 적지이다. 특히, 삼호배가 영천배의 주축을 이루고 있으며 재배 기술이 뛰어나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금호강 상류지역인 영천은 강 주변에서 부터 과수농업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맑은 물과 토양오염이 없는 사질양토로 천혜의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
1592년(선조 25) 7월 26일부터 7월 28일까지 영천 지역 의병들이 영천성을 탈환하기 위해 왜군과 싸운 전투. 영천복성 전투는 1592년(선조 25) 4월 22일 왜군에게 영천성이 점령당하자 영천 지역 의병이 중심이 되어 인근 의병들과 연합하여 성을 탈환한 전투이다. 이 전투는 임진왜란 초기 의병이 승리를 거둔 중요한 전투로 꼽히며, ‘영천복성 전투’ 또는 ‘영천성 복성 전...
-
경상북도 영천시에서 7월~10월 상순에 재배되는 복숭아 나무의 열매. 복숭아는 중국이 원산지로 실크로드를 통해 서양으로 전해졌다. 주성분은 수분과 당분이며 타타르산·말산·시트르산 등의 유기산이 1% 가량 들어 있고, 비타민 A와 폼산·아세트산·발레르산 등의 에스터와 알코올류·알데하이드류·펙틴 등도 풍부하다. 현재 복숭아의 주산지는 경상북도·충청남도·경기도·경상남도 등이다...
-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전개된 소년 운동. 일제 강점기 때의 소년 운동은 1920년을 전후로 전개되었으며,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몰아내고 조국 광복을 목적으로 한 실력 양성 운동이다. 1919년 조직된 안변소년회와 왜관소년회는 동화나 학습을 목적으로 한 최초의 소년 운동 단체였으며, 1920년 조직된 진주소년회는 20세 이하의 학생들이 조선 독립을 목적으로 만세 운동을...
-
경상북도 영천시에 있는 조선 전기 무인 이순몽(李順蒙)이 살던 집. 위양공(威襄公) 이순몽[1386~1449]의 본관은 영천. 조선 전기 세종 때의 문신으로 대마도와 여진족 정벌에서 큰 공을 세워 복장군(福將軍)이라 불렸다. 이순몽은 1417년 무과에 합격해 의용위 절제사(義勇衛節制使)·우군 절제사(右軍節制使)·도총제(都摠制) 등을 거쳐 영중추원사(領中樞院事)...
-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용호리에 있는 영지사의 대웅전 및 범종각. 영지사(靈芝寺)는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용호리 구룡산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銀海寺)의 말사이다. 경내에는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07호인 대웅전 및 범종각를 비롯해서 명부전·산신각·요사·삼층석탑과 입구에 임자갑유공비(壬子甲有功碑)와 역대 주지승의 부도(浮圖) 5기가...
-
경상북도 영천시 도남동에 자리한 조선 숙종 때 학자인 성재(省齋) 안후정(安后靜)[1659-1702년]과 그의 아들 6형제의 생활 및 학문 공간. 육우당은 광주 안씨 영천 입향조인 완귀(玩龜) 증(嶒)의 7세손으로 조선 숙종 때 학자인 성재(省齋) 안후정(安后靜)[1659~1702년]이 거처하던 당(堂)으로 그의 장남인 육우당(六友堂) 안여택(安汝宅)[1682...
-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치일리 백흥암에 있는 조선 시대 불전. 은해사 백흥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이다. 영천 은해사 백흥암 극락전은 백흥암의 주 불전으로 1546년(명종 1)에 건립되고 1685년(숙종 1)에 중건한 조선 전·후기 다포계의 대표적인 건축 수법을 잘 간직하고 있는 건물이다. 백흥암은 은해사 서편에 위치한다....
-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결성된 청년운동 단체.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는 3·1 독립 운동 이후 영천 청년회(永川靑年會)·영천 기독 청년회(永川基督靑年會)·영천 기독 여자 청년회·영양 청년회(永陽靑年會)·영천 구락부(永川俱樂部)·금호 청년회(琴湖靑年會)·신녕 청년회(新寧靑年會) 등이 조직되었다. 1920년대 사회주의 사상이 수용되면서 사상계는 민족주의 계열과...
-
경상북도 영천시 교촌동에 있는 향교. 국도(國都)를 제외한 각 지방에 관학이 설치된 것은 고려 이후에 이루어졌지만, 조선 왕조의 성립과 함께 정책적으로 그 교육적 기능과 문화적 기능을 확대, 강화하였다. 따라서 향교의 전반적 설명은 조선 왕조에서 전개된 역사상을 중심으로 설명되어진다. 영천 향교는 영천시 법원의 좌측 배면 쪽에 교촌길을 따라가면 야산 아래에 있...
-
1895년부터 1913년까지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영천군(永川郡)은 1895년(고종 32) 갑오개혁 당시 지방 제도 개정건이 공포되어 새로운 지방 행정 제도가 설치되면서 영천군이 되었다. 고려 시대 영주(永州)로 불렸던 영천은 조선 개국 후 1413년(태종 13) 작은 군현은 ‘주’라는 명칭을 금지하고 대신 ‘천’과 ‘산’을 사용하도록 명하자 천을 선택...
-
경상북도 영천시는 기후적으로 일조량은 많은 반면에 강수량은 적은 편에 속한다. 따라서 농경을 위한 수리(水利) 시설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1,500여 개의 저수지가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고대 수리 시설의 모습을 밝혀 줄 수 있는 중요한 사료로서 영천시 도남동 청못 밑에 세워진 청제비(菁堤碑)가 있다. 영천시는 전국 최대량의 저수지가 분포되어 있는 지역이...
-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치일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태실. 영천 치일리 인종 태실은 영천에 설치한 조선 인종의 태실이다. 태실이란 왕족의 태반을 묻은 석실(石室)을 말하며 태봉(胎封)이라고도 한다. 왕실의 자손이 태어나면 의식과 절차를 거쳐 태를 묻은 시설을 말한다. 태실은 아기의 태를 최초로 설치한 아기 태실과 아기 태실의 주인공이 왕위에 올랐을 때 아기 태실...
-
경상북도 영천 출신 인사가 제작하였거나 영천 지역을 배경으로 스크린상에 움직이는 영상(映像)으로 만든 종합 예술. 영화는 제작 과정에 창조적 요소와 기계 기술적 요소, 그리고 경제적 요소가 합쳐져서 만들어진다. 따라서 한 편의 영화를 만들기 위하여는 재정을 책임지는 제작자와 스튜디오·카메라·녹음·현상 등의 시설이 있어야 하며, 작품을 감독하며 시나리오작가·배우·촬영기사·...
-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오동리(梧桐里)는 옛날에 오동나무가 많아서 오리(梧里)라 하다가 오동리라 하였다. 오동나무 속이 빈 것 같이 마을 가운데가 비어 있어야 한다는 전설에 따라 마을 가운데는 집을 짓지 않고 공터로 둔다고 한다. 오동리는 520여 년 전 조선 중종 때 안우곤(安遇坤)이란 선비가 마을을 개척하였다. 옛날에는 봉황산...
-
일제 강점기인 1940년 경상북도 영천군 은해사에 설립된 불교학교. 오산 불교 학교(五山佛敎學校)는 1939년 10월 대한불교 조계종 경상북도 5본산이 영천 은해사 경내에 설립한 중등 정도의 불교학교이다. 1940년 4월 8일 개교 이래 근대 교육에 입각한 민족 계몽 운동을 실시하였다. 중일 전쟁 발발 이후 일제의 식민지 조선에 대한 문화 말살 정책이 극에 달하여 젊은...
-
경상북도 영천시 호연정 병와유고각에 소장된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가 그린 중국 5현의 초상화. 병와(甁窩) 이형상(李衡祥)은 자신의 생질서이자 당대 최고의 화가인 공재 윤두서에게 기자(箕子)·주공(周公)·공자(孔子)·안자(顔子)·주자(朱子) 등 오성현의 묵화, 즉 「오성도(五聖圖)」를 그리게 하여 당시 영천 오수동에 있었던 성남서원 감실에 안치해 두고 매...
-
경상북도 영천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정만양과 정규양이 강학을 위해 건립한 정자. 영일 정씨(迎日鄭氏) 후손인 정만양(鄭萬陽)[1664~1730]의 자는 경순(景醇), 호는 훈수(塤叟)이며, 아우 정규양(鄭葵陽)[1667~1732]의 자는 숙향(叔向), 호는 지수(篪叟)이다. 부친이 돌아가신 후 함께 보현산 횡계(橫溪)로 들어가 정자를 짓고 학문에 전념했다....
-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옥계리(玉溪里)는 마을 앞개울에 구슬 같은 둥근 암반이 많고 물이 맑아 불리어진 이름이다. 일제 강점기인 1914년 군·면을 통폐합할 때 신녕군을 영천군으로 통폐합함에 따라 영천군과 신녕군의 경계 지역은 화동면·지곡면·신촌면으로 재구성하여 영천군에 편입되었다. 그래서 신녕군 신촌면(新村面) 죽전·상송·하송·용소·법화·옥...
-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에 있는 법정리. 왕산리(旺山里)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별일동(別一洞)·별이동(別二洞)의 각 일부와 은점동(銀店洞)을 병합하면서 이곳에 있는 ‘왕산’의 이름을 따라 왕산리라 하였다. 왕산리는 본래 신녕군 현내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별일동·별이동의 각 일부와 은점동을 병합하여 왕산동이라 하여...
-
경상북도 영천 출신으로 「황성옛터」의 작사가인 왕평(王平)의 일대기를 통해 우리 근대의 대중가요사와 음반사를 조명한 특집 프로그램. 경상북도 영천 출신 작사가 왕평의 일대기를 통해서 한국의 근대 대중예술사를 조명한 프로그램으로 대구 MBC가 제작하여 2011년 3월 31일 밤 11시 5분에 방영하였다. 왕평의 활동상과 예술적 가치 조명과 연구를 지속...
-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에 속하는 법정리. 용전리(龍田里)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에 본촌동과 용호동을 합하여 불리게 된 지명이다. 용전리는 조선 말 영천군 모사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모사면 대부분과 현재 금호읍인 창수면의 일부 및 흥해군 북안면의 일부가 합쳐서 대창면이 신설됨에 따라 영천군 대창면에 편입되었다. 이...
-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우항리에 건립한 서원. 우고 서사가 있는 마을은 조선 세조 때 사간원 헌납 등 내직을 두루 거치고 황해도 풍천 군수로 재직 시에 지방 정사를 살피고 돌아온 암행어사의 보고에 ‘청렴 고결하고 빙옥처럼 맑다’고 하여 왕으로부터 청풍당이란 호를 하사받은 박영손[1442~1486]의 자손들이 세거해온 마을이다. 우고 서사와 청풍당(淸風堂)은 청...
-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에 속하는 법정리. 원기리(元基里)는 안기동·원방동(元方洞)·마단동(麻丹洞)을 병합하면서 원방과 안기의 이름을 따서 원기리라 하였다. 마단동은 원방의 남쪽에 있는 마을로서 1545년(인종 1) 9월 15일 조선 중종 때 경재(警齋) 곽순(郭珣)이 대사간에 재직하다가 을사사화를 당하여 옥사할 때 죽으면 고향의 삼[마(麻)]대가 붉어질 것이라...
-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삼귀리에 있는 김응정(金應挺)과 김연(金演)의 묘하(墓下) 재실(齋室). 원모재는 조선 명종 때 참봉을 지낸 김응정과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참전한 공으로 한성부 판관에 증직된 김연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이다. 원모재는 자양면 삼귀리 마을 중귀미에 6개의 재사 및 정자 건물과 나란히 배치되어 있으며 구성재 옆에 있다...
-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행해지는, 중국 공자를 시조로 하는 전통적 학문과 종교적 의례 및 활동. 유교는 중국 공자의 가르침에서 시작된 도덕 사상이다. 인(仁)을 기본 이념으로 삼고, 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일종의 윤리학이며 정치학을 내재한 종교 개념으로,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와 일본·베트남 등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유...
-
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 유배 온 문인. 유방선(柳方善)의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자계(子繼), 호는 태재(泰齋)이다. 유방선의 고조는 태상경(太常卿) 유성계(柳成桂)이며, 증조는 예문관 대제학(藝文館大提學)으로 서녕군(瑞寧君)으로 봉해진 유숙(柳淑)이다. 조부는 관찰사(觀察使) 유후(柳厚)이고, 부친은 고려 때 문과에 급제하고 조선 태종 때 관찰사(觀察使)를...
-
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인. 문화 유씨(文化柳氏)는 고려 개국공신 유차달(柳車達)을 시조로 한다. 유성간(柳成澗)은 문화 유씨 9세손으로 1252년(고려 고종 39)에 문과에 급제하여 첨자광록대부(僉紫光祿大夫) 정당문학(政堂文學) 참지정사(參知政事)로 서녕부원군(瑞寧府院君)에 봉해졌다. 유성간으로부터 서산 유씨(瑞山柳氏)로 분관(分貫)되었다. 유윤겸...
-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대재리에 있는 조선 시대 문신 조치우(曺致虞)의 묘를 수호하기 위해 건립한 재실과 옥비. 조치우[1459~1529]의 호는 정우당이며 조선 성종 때의 문신으로, 1494년 별사문과에 급제해 예문관 검열을 거쳐 성균관 전적이 되어 『성종실록』 편찬에 참여했다. 중종반정 이후 장령을 지내고 대구 부사를 역임하면서 어진 다스림을 펼쳐 칭송을...
-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화성리에 있는 조선 시대 신녕 현감을 지낸 윤명운(尹明運)의 불망비. 윤명운[1642~1718]은 본관 파평, 자는 여회(汝會)이다. 조선 숙종 26년 경진년(1700)에 의금부도사로 재직하다 외직으로 나와서 경상도 신녕현의 수령[현감]이 되었다. 신녕 현감으로서 탁월한 업적이 있어 백성들이 비석을 세워 그 은덕을 추모하였다. 윤명운 불...
-
경상북도 영천 지역을 관향(貫鄕)으로 하는 신녕 윤씨(新寧 尹氏) 시조. 신녕 윤씨는 고려 개국공신 윤신달(尹莘達)의 7세손 윤인직(尹仁直)이 득관조(得貫祖)이다. 윤인직은 고려 명종 때 동북병마사로서 서경(西京)의 난을 진압해 화산군(花山君)에 봉해졌다. 윤자임(尹自任)의 본관은 신녕. 자는 충부(忠父)이다. 고조는 윤인직의 현손으로 통헌대부(通憲...
-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 있는 은행나무과에 속한 낙엽 침엽 교목. 영천시에서는 마을의 전통과 유래를 지닌 나무를 보호하고 관리하기 위해 보호수를 지정하고 있다. 영천시의 보호수 중 은행나무는 총 여덟 그루이다. 곧게 뻗은 나무는 시민의 무궁한 발전과 도약을 상징하며, 부채 모양의 고운 잎은 화합과 단결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하여 영천시의 시목(市木)으로 지정되어...
-
고려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문인. 이감의 자는 의민(義民), 호는 문한당(文閒堂)으로 1380년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385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내·외직을 두루 거쳐 전라도관찰사를 지냈다. 조선이 개국되자 유배생활을 하다가 만년에 고향에 은거하였고, 양친이 돌아가시자 『주자가례』에 의거하여 묘소를 돌보며 3년을 여막에서 보냈다. 이감(李敢)[1...
-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양항리에 이감(李敢)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각. 고려 시대 학자인 이감[1362~1426]의 자는 의민(義民), 호는 문한당(文閒堂)으로 정몽주의 고향 인근에서 태어나 정몽주의 영향을 받고 자랐다. 1380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1385년 문과에 급제해 내·외직을 두루 거쳐 전라도 관찰사(全羅道觀察使)를 지냈다. 조선이 개국되자 언관이란...
-
여주 이씨(驪州李氏) 경상북도 신녕현(新寧縣)[현 영천시] 입향조. 이운재(李雲載)는 고려(高麗) 중윤(中尹) 이은백(李殷伯)을 시조로 하고, 문순공(文順公) 이규보(李奎報)를 현조(顯祖)로 하며, 조선 태종(太宗) 때 보국공신(輔國功臣) 숭록대부(崇祿大夫) 좌의정(左議政)으로 구산군(龜山君)에 봉군된 이번(李璠)을 파조(派祖)로 하는 여주 이씨(驪州 李氏)...
-
고려 말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 있었던 행정 구역. 이지폐현(梨旨廢縣)은 고려 시대 영주(永州) 이지은소(梨旨銀所)였는데, 고려 말에 이지현으로 승격되었다가 폐현(廢縣)되었다. 조선 태조 때 신녕현(新寧縣)에 편입되었는데, 이로 보아 이지폐현의 위치는 오늘날 신녕 일대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27권 경상도 신녕현 고적조에 “이지폐현(梨...
-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이태일(李泰一)의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삼수(三叟), 호는 명암(明庵)이며, 1860년(철종 11) 10월 15일 현재의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용산리 원각(元覺)마을에서 태어나 1944년 8월 30일 8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이인호(李仁浩), 증조는 이재장(李載璋), 조부는 이진현(李鎭鉉)이다. 아버지는...
-
경상북도 영천시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조진옥·조상옥이 강학을 위해 건립한 정자. 조진옥(曺振玉)의 본관은 창녕, 호는 형호(兄皓)이다. 조선 후기 영조 때 학자로 『척사변(斥邪辨)』·『이기변(理氣辨)』·『삼재변(三才辨)』 등 많은 저술을 남겼으며, 종제(從弟)인 제호(弟皓) 조상옥(曺相玉)과 함께 이곳 이호당(二皓堂)에서 강학을 했다. 이호당은 행...
-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용산리에 있는 주택. 인구초당은 조선 고종 때 덕행이 탁월했던 정진성(鄭鎭聖)의 사가이다. 인구초당은 영천댐 곁에 있는 자양면 내에서 69번 지방도[포은로]를 타고 가다 용산리 원각마을을 지나자마자 도로 위쪽의 민가들 사이에 있다. 인구초당은 전방의 영천댐이 바라다 보이는 산록에 정면 3칸, 측면 1칸의 조촐한 一자...
-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선원리에 있는 마을. 영천 임고면 선원마을은 세 개의 작은 마을로 나눌 수 있는데, 가장 북쪽의 큰 마을이 ‘선원리 큰 마을’로 불린다. 선원마을에 들어서면 고색창연한 기와지붕이 즐비하고 솟을대문이 있어 반촌(班村)으로서 손색이 없다. 선원리 큰 마을의 범위는 마을 입구 언덕에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30호인 함계정사(涵溪精舍)로부터 마...
-
1592년에서 1598년까지 2차에 걸쳐 일본이 조선을 침입하여 경상북도 영천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1592년(선조 25) 4월 13일 부산포에 도착한 왜군은 경상도 지역 주요 고을을 차례로 점령하였다. 영천성은 1592년 4월 22일 일본군에게 함락되었다. 영천·신녕 지역의 의병들은 인근 지역의 의병들이 연합하여 각처에서 소규모의 유격전을 전개하여 승전하였다. 특...
-
경상북도 영천시에 속하는 행정 구역. 자양면(紫陽面)은 예로부터 많은 인물이 배출되었으며, 학문과 예의를 숭상하여 마치 중국 송대 주자(朱子)가 서당을 세워 후진을 양성했던 자양산과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된다. 자양면은 신라 경덕왕 때 임고군에 속하였으며, 고려 말 익양군에 합병되었다가 조선 개국 해인 1392년에 자양현이라 칭하고 익양...
-
1716년(숙종 42)에 이형상이 저술한 한자의 자형과 성운에 대한 연구서. 『자학(字學)』의 내제는 ‘자학제강(字學提綱)’으로 1716년(숙종 42)에 쓴 필사본 『갱영록(更永錄)』 9권 가운데 권2에 해당한다. 이형상은 저술 동기를 “육서의 뜻은 각각 취한 바가 있었으나 세월이 오래되면서 와전되어 대부분 그 참된 뜻을 잃어버렸다. 혹은 마음대로 글자체를 변화시킨 것도...
-
1629년(인조 7)에 새로 그린 고려 충신 정몽주(鄭夢周)[1337~1392]의 초상화. 정몽주의 본관은 영일이며, 경상북도 영천군 임고면 우항리에서 출생하였다. 1360년(공민왕 9)에 과거에 장원 급제한 후 주요 요직을 역임하였으며, 고려 말 조선 초의 혼란기에 정승을 역임하면서 이성계의 조선 건국에 반대하다 이방원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정몽주 초상」...
-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 소재하는 강학(講學)과 수양(修養)을 위해 지은 집. 정사(精舍)의 사전적 의미는 학문을 가르치기 위해 마련한 집, 수양하는 곳, 불도(佛道)를 닦는 중이 거처하는 집 등으로 정의되는데, 중국에서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절[寺]을 이르는 산스크리트어 비하라(vihāra)[승원(僧院)]를 한역하면서 종교 의례나 수양을 위한 장소로서 정사가 사용되게 되었다...
-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삼매리 매곡마을에 있는 주택. 정수용 가옥은 정확한 건립 연대는 알 수 없고 조선 시대 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건물은 6칸 一자형 큰 채와 블록조의 아래채 1동이 튼 ㄱ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건물 주위로는 토석 담장을 쌓아 막고 전면에 철 대문을 두어 출입한다. 정수용 가옥은 임고면 내에서 영천댐 쪽으로 난 69번...
-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삼매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주택. 정옥창 가옥은 조선 시대 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6칸 一자형 큰 채이다. 큰 채 앞에는 2칸 규모의 초가 아래채[방앗간+마구]가 있었으나 2001년경에 붕괴되어 철거되었다. 배치는 큰 채와 아래채가 튼 ㄱ자형으로 배치되었다. 정옥창 가옥은 임고면 내에서 영천댐 쪽으로 난 69번 지방도[...
-
조선 전기에 활동하던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충신. 나주 정씨(羅州 丁氏)의 시조는 정덕성(丁德盛)으로 당나라 사람이다. 벼슬은 승상(丞相)에 이르렀으나 신라 문성왕 때 신라에 귀화했다. 조선 세종(世宗) 때에 형 정몽길(丁夢吉)과 함께 신녕(新寧) 효정리(孝亭里)로 들어온 예조참판(禮曹參判) 정몽상(丁夢祥)이 영천 입향조이다. 정응거(丁應居)의 고조는 예...
-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재호(鄭在鎬)는 북로군정서와 연통제 및 정의부 요원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정재호(鄭在鎬)의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건중(建仲), 호는 춘산(春山)이며, 1891년 지금의 영천시 임고면 우항리에서 정용우(鄭鏞禹)의 아들로 태어나, 1943년 용정형무소에서 옥중 사망하였다. 정재호(鄭在鎬)는 19...
-
경상북도 영천시 녹전동에 조선 선조 때의 학자 정호의(鄭好義)가 강학을 위해 건립한 정자. 정호의[1602~1655]의 본관은 영일, 자는 자방(子方), 호는 명계(明溪)이며, 할아버지 정세아(鄭世雅)와 장인 전삼성(全三省)의 영향을 받아 견식이 넓어 이름을 떨쳤다. 저서로는 『명계일고(明溪逸稿)』가 전하고, 자양면 성곡리에 묘소가 있다. 정호의는 학문을 좋아...
-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에 위치한 명당과 관련해 전해 오는 이야기. 「정효자가 얻은 명당」은 조선 중종 때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로 효자의 지혜로 얻은 명당으로 인해 자손 대대로 복을 받았다는 일종의 풍수담(風水談)이다. 2006년 영천시에서 발간한 『충효의 고장』에 「정효자가 얻은 명당」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영천시 자양면 소재의 솔밭에는 고...
-
1392년부터 1863년까지 조선 왕조가 지속된 시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역사. 조선 시대 영천군과 신녕현은 경상도 소속으로 별개의 지방 행정 단위로 존속하다가 일제 강점기 때 영천군으로 통합된 이래 현재 영천시 행정구역과 큰 변동 없이 이어지고 있다. 고려 시대 영주(永州)로 불렸던 영천은 조선 왕조 개국 후 1413년(태종 13) 작은 군현은 주(州)라는 명칭을 금지하고, 대...
-
조선 시대 조선 국왕의 명의로 일본 막부 장군에게 보낸 공식적인 외교 사절단. 1428년(세종 10) 일본 막부 장군 습직(襲職) 축하로부터 시작된 조선통신사는 1811년(순조 11) 대마도에서 국서를 교환한 역지통신(易地通信)이 행해질 때까지 총 20회 이어진 외교 사절단이었다. 서울에서 목적지까지 5개월에서 8개월이 소요되는 조선통신사의 긴 노정은 단순히 정치·외교적 의미뿐 아...
-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오길리에 있는 성하구(成夏耈)의 장수지소(藏修之所). 성하구[1669~1740]는 조선 숙종 때 학자로 본관은 창녕. 자는 방언(邦言), 호는 죽오(竹塢)이다. 성하구는 창녕 성씨 영천 입향조인 성영준(成永俊)의 6세손이며, 병와(甁窩) 이형상(李衡祥)의 문인으로 전심으로 성리학을 닦고 고명한 학문과 지극한 행실로 세상의 추앙을 받았다....
-
경상북도 영천시를 거쳐 서울과 경주를 연결하는 철도. 중앙선은 서울특별시에서 시작하여 영천시를 지나 경상북도 경주시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중부 내륙 지방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노선이며, 총연장은 383.0㎞이다. 남부의 영천~우보 간 40.1㎞는 1938년 2월에 개통되었다 중앙선은 경부선에 이어 우리나라 제2의 종관 철도로서 일제 강점기에 한반도 및...
-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신광리에 있는 서당. 지헌 서당(芝軒書堂)은 조선 고종 때의 학자인 박용우(朴鏞佑)가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지헌 서당은 개상마을 서쪽의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있다. 개상마을은 신광리에서 가장 크고 중심되는 마을로 앞에는 들이 있고 뒤에는 못이 있다. 지헌 서당은 조선 말에 건립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현재의...
-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여자어린이들이 작은 돌을 가지고 하는 놀이. 돌받기·공기놀이·짜개받기[짜게받기]·짜구놀이라 불리는 짜개놀이[짜개]는 돌을 이용하여 편을 먹고 하는 놀이이다. 공기놀이는 오늘날에도 초등학교 여자아이들이 많이 하는 놀이 중의 하나인데, 예전에는 ‘공기놀이를 하면 날이 가문다’라고 하여 어른들 몰래 숨어서 하기도 하였다. 경기도 지역에서는 공...
-
조계룡(曺繼龍)을 비조(鼻祖)로 하고, 조겸(曺謙)을 1세조로 하며, 조신충(曺信忠)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세거 성씨. 창녕 조씨는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사위로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에 봉군된 조계룡을 비조로 하고, 고려 태조(太祖)의 사위로 대락승(大樂丞)에 오른 조겸을 1세조로 하여 왔다. 하지만 구보(舊譜)의 대수(代數)가 같지 않아 1...
-
경상북도 영천시 녹전동에 있는 창대 정대임(鄭大任)의 주택. 창대 종택 건물은 조선 선조 때 무장으로 경상좌도 병마우후 의금부사를 지냈고, 임진왜란 때에는 의병을 모집하여 영천성 회복 등 여려 번 큰 공을 세워 통정대부 병조참의에 증직되고 선무원종공신 2등에 기록된 정대임[1553~1594, 자는 중경(重卿), 호는 창대(昌臺)]의 종택이다. 창대...
-
경북 영천시 금호읍 삼호리에 있는 서당. 창주 서당은 지방 유림의 공의로 조선 단종 때 집현전 부제학을 지낸 정재 조상치(曺尙治)의 학덕과 충절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수사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셔 서원으로 건립하였으나 후에 훼철된 후 서당으로 복원하였다. 창주 서당은 삼호리 마을 천변에 있다. 창주 서당은 1727년(영조 3)에 창수사를 창건...
-
경상북도 영천시에 있는 조선 전기 학자 이언기가 건립한 정자. 이언기(李彦基)[1499~1575]의 본관은 성산, 자는 성원(聖源), 호는 처야당(處野堂)이다. 조선 전기 중종 때 학자로 경학(經學)과 행의(行誼)로써 천거되어 영릉참봉(英陵參奉)을 지냈으나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후 중년에 처야당(處野堂)을 짓고 자연과 더불어 지내며 후학에 힘썼다. 묘소는 고경...
-
은해사(銀海寺)는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치일리 팔공산(八公山)에 있는 사찰로, 은해사가 자리한 팔공산은 행정구역상 대구광역시 동구와 경상북도 영천시·경산시·군위군·칠곡군에 걸쳐 있다. 갓바위를 경계로 대구 쪽으로는 동화사(桐華寺)가 있고, 영천 쪽으로는 은해사가 팔공산의 대표 사찰로 자리하고 있다. 팔공산은 중악(中岳)·부악(父岳) 등으로 불려져 온 영남 지...
-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죽전리에 있는 문흥범(文興範)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재사. 첨모재는 조선 광해군 때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을 지낸 간은(澗隱) 문흥범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이다. 첨모재는 지천 초등학교 상송 분류 앞 삼거리에서 상송안길을 따라 2.2㎞ 직진하여 탑들소일길로 우회전 후 마을 안길을 따라 100여m 이동하면 있다....
-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화남리 갑현마을에 있는 주택. 청류당은 충의공 권응수(權應銖) 장군의 손자로 갑현마을을 개척한 조선 숙종 때 부호군을 지낸 권산보(權山甫)[1629~1708]의 종택이다. 청류당은 신녕면에서 28번 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4.2㎞ 지점에 있는 화남 1리 갑현마을에 있다. 마을 초입에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모집하여 영천성을 탈환한...
-
고려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무인이며, 화약 발명가. 영천 최씨(永川 崔氏)는 진한(辰韓) 사량부(沙梁部) 대인(大人)으로 고려 의종(毅宗)부터 명종(明宗) 때 신호위대장군(神虎衛大將軍)을 지내고 연산군(燃山君)[현 영천]에 봉해진 최한(崔漢)을 시조로 하고 있다. 최무선(崔茂宣)의 본관은 영주(永州)[영천]. 고조는 시조 최한의 손자인 현감(縣監...
-
경상북도 영천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정중교(鄭重喬)를 추모하기 위한 재실. 정중교의 본관은 오천. 호는 모재(慕齋)로 조선 후기 영조 때의 학자로 후손들이 그를 추모하기 위해 추모당(追慕堂)이라 이름 짓고 건립했다. 추모당은 행정구역으로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삼귀리 귀미마을에 있다. 삼귀리는 영천댐 둘레길을 따라 자양면소재지를 지나면 벽진 이씨가...
-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용전리에 있는 성이량(成以諒)의 묘하 재사(墓下 齋舍). 추모재는 조선 광해군 때의 학자로 성균관 진사를 지냈으며, 장현광과 친교를 맺으며 학문을 교류한 성이량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후손들이 지은 재사이다. 성이량은 1586년에 태어났으며 자는 여정(汝貞), 호는 송암(松庵)이다. 진사를 지냈으나 과거를 접고 학문에 힘쓰니 세상의 칭송...
-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어방리에 있는 조상치(曺尙治)의 묘하 재사(墓下 齋舍). 추원재는 조선 세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단종 때 부제학을 역임한 조상치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이다. 추원재는 영천시 운천보건진료소에서 운천2리 마을로 200여m 이동한 후 우회전하여 운잠길을 따라 산을 끼고 1.2㎞ 들어가면 능곡지 저수지 아래 있다....
-
경상북도 영천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정시간(鄭時衎)이 강학을 위해 건립한 정자. 정시간[1635~1690]의 본관은 영일, 자는 열지(悅之), 호는 취성당(醉醒堂)이다. 효성이 지극했고 1669년 성균관 생원(生員)이 되었으나 자양(紫陽)의 구계산(龜溪山)에 은거하며 학문에 전념했다. 술을 좋아해 당호를 취성당이라 했다. 저서로는 『취성당일고(醉醒堂逸稿)』가...
-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토정(土亭) 이지함(李之函)이 지은 책을 토대로 한 해의 신수를 보는 풍속. 『토정비결(土亭秘訣)』은 조선 명종 때 토정 이지함이 지은 책으로, 『주역(周易)』의 이치를 응용, 한 해의 운수를 알기 쉽게 풀이하여 그해의 신수를 보는 데 쓰인다. 토정비결은 민간에 널리 애용되어 토정비결 보는 것이 정초의 행사 중 하나였는데, 주로 정월 3...
-
고려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 문인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시문집. 정몽주[1337~1392]의 본관은 영일(迎日). 초명은 몽란(夢蘭) 또는 몽룡(夢龍), 자는 달가(達可), 호는 포은(圃隱)으로, 목은(牧隱) 이색(李穡), 야은(冶隱) 길재(吉再) 또는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과 함께 고려 말의 삼은(三隱)으로 불리고 있다. 고려 말의 대표적 성리학자...
-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연정리에 있는 정응백과 정응숙의 묘소에 있는 재사(齋舍). 품산재는 조선 인조 때 가선대부 행동지중추부사를 역임한 정응백과 통례원인의를 지낸 정응숙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이다. 품산재는 신녕 초등학교 앞 신화로를 따라 연정리 방향으로 1.2km 정도 이동하여 우측 방향에 있는 농로를 따라 200여m 직진한 후 다시...
-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성곡리에 있는 벽진 이씨 위계종중의 묘하(墓下) 재실(齋室). 하천재(夏泉齋)는 조선 중종 때의 학자이며 장사랑을 역임한 이배원(李培源)과 이의(李椅) 부자와 함께 통정대부 작위 이수눌(李守訥)과 이수겸(李守謙)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이다. 자양면사무소에서 지방도 69호선을 타고 평천리 방향으로 200여m 이동하면...
-
조지수(趙之壽)를 시조로 하고 조문림(趙文琳)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시의 세거 성씨. 한양 조씨(漢陽 趙氏)의 시조 조지수(趙之壽)는 고려 중기에 조순대부(朝順大夫) 첨의중서사(僉議中書事)를 지냈고 아들 형제를 두었는데, 첫째는 판도판서(版圖判書) 조인재(趙麟才), 둘째는 쌍성총관(雙城摠管) 조휘(趙暉)이다. 조인재의 아들 충무공(忠武公) 조...
-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 자생하고 있는 측백나무과의 상록 침엽 교목. 향나무는 강원도와 경상북도의 산지에서 햇볕이 잘 드는 건조한 지역에 자라는 늘 푸른 큰키나무이다. 향나무는 야생 상태로 자라는 것은 드물지만, 정원수로 키우기도 하며, 옛날부터 묘지 주변에 심는 관습도 있으며, 정원수·공원수 등 용도가 넓다. 향나무는 잘 자라면 20m 이상으로 높이 자랄 수 있으며 잎은...
-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정귀휴(鄭龜休)가 강학을 위해 건립한 정자. 정귀휴[1786~1852]의 본관은 영일, 자는 경서(景書), 호는 향양정(向陽亭)이다.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학자로 벼슬에 뜻을 버리고 향양정(向陽亭)을 건립해 후학 양성에 힘썼다. 정귀휴의 저서로는 『향양정유고(向陽亭遺稿)』가 전한다. 묘소는 영천시 임고면...
-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역사와 지리를 중심으로 사회·전승 등 주민들이 영위해 온 삶의 내력을 기록한 책. 1. 향토지의 의미 향토지는 사전적 의미로 어떤 지방의 지리·역사·풍속·산업 등을 조사하고 연구한 기록물을 지칭한다. 발행 주체로는 정부 기관과 지방 자치 기관, 민간단체, 향토지 간행을 위한 임시 조직체 또는 개인이 간행한 것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영천...
-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삼창리에 있는 서당. ‘현고(賢皐)’라는 명칭은 조선 영조 때 조사언(曺士彦)이라는 학자가 정착한 이후 그 자손이 살았으며, 인근에서 그 공덕을 칭송할 수 있을 정도로 현명하였기에 현(賢)자와 지형이 경사진 언덕이라 고(皐)자를 합하여 현고(賢皐)라 부르게 되었다. 현고 서당(賢皐書堂)은 조용석(曺龍錫) 선생이 강학하는 곳으로 건립하였다. 조용석은...
-
경상북도 영천시 도남동 호연사 유허지에 있는 비와 비각. 호연사(虎淵祠)는 조선 중종 때의 학자인 안증(安嶒)[1494~1553]을 향사하기 위해 세운 사당이었다. 광주 안씨(廣州 安氏) 경상북도 영천 입향조인 안증의 자는 사겸(士謙), 호는 완귀(玩龜)이다. 안증은 아버지가 김종직의 문인이었기에 김종직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벼슬에는 뜻이 없고 학문에만 심취...
-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화남 1리 갑현마을에 있는 주택 . 화남재는 조선 순조 때 무신으로 장기·공주·신도 등의 첨사를 역임했던 권재병(權載秉)[1782~1852, 자는 聖裕, 호는 華南]의 종택으로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화남재는 신녕면에서 28번 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4.2㎞ 지점에 있는 화남 1리 갑현마을에 있다....
-
1995년 4월 문화체육부에서 과학의 달 문화 인물로서 ‘과학자 최무선’이 선정되자, 최무선(崔茂宣) 장군의 태생지인 영천에서는 영천 최씨 문중과 지역 문화예술계·교육계 등 각계각층이 참여한 가운데 대대적인 추모 기념 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다. 이에 앞서 1995년 2월 15일에 ‘최무선장군기념사업회’가 발족되었고, 1995년 4월 21일 과학의 날에 종합적인 기념 행사를 실시한다는...
-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화남리에 있는 누정. 화포정(華圃亭)은 조선 고종 때의 학자로 안동 권씨(安東權氏) 복야공파의 후손인 권호현(權浩鉉)의 강학지소(講學之所)이다. 권호현은 천성이 탁월하고 행의가 지순(至純)하였으며 평생 동안 후학 양성에 힘쓴 인물이다. 화포정 아래에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크게 공을 세운 권응수(權應銖)[1546~1608...
-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효정리에 있는 누정. 활천정(活川亭)은 조선 철종(哲宗) 때의 학자인 정갑조(丁甲組)를 추모키 위해 문하생과 후손들이 마을 입구에 건립한 정자이다. 정갑조는 나주 정씨 영천 입향조(入鄕祖)인 관찰사 정몽길(丁夢吉)의 후손으로 자는 술지(述之), 호는 농고(聾皐)이다. 정갑조는 어릴때부터 효자로 소문이 났고, 자라서는 문사(文辭...
-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구전리에 살았던 황보 열(皇甫 悅)의 처 영양 이씨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비와 비각. 황보 열[?~1711]의 본관은 영천이며, 부인인 영양 이씨(永陽李氏)[영천 이씨, ?~1755]는 조선 영조 때 큰 흉년이 들어 동민 전체가 굶어 죽을 처지에 놓이자 재산을 털어 40여 호의 동민들을 구휼했다. 영양 이씨는 동몽교관(童蒙敎官...
-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에 속하는 법정리. 효리(曉里)는 조선 숙종이 민정 시찰을 하기 위해 이곳까지 오니 날이 새었다고 하여 ‘새벽골’이라 불리어진다. 또 마을이 동향으로 앉아 일광을 잘 받으므로 ‘효곡(曉谷)’이란 이름이 생겼다고 하는 설도 있는데, 지금은 ‘효리’로 바뀌었다. 임고면 삼매리에서 분리된 대곡(大谷)은 한때 60가구의 큰 마을이었으나...
-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효정리(孝亭里)에는 임진왜란 때 정응거(丁應居) 장군의 형이 부모를 위해 단신으로 왜적과 싸워 전사하고 그의 처는 자결하였으므로, 이 부부의 효(孝)와 열(烈)을 기리어 마을 앞에 효열정문(孝烈旌門)이 세워졌다. 그리고 마을에 괴목(槐木)이 많아 정자를 이루었다 하여 괴정리(槐亭里)란 이름이 붙었다. 두 개 이름을 합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