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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리(龍藏里)하면 한자로 용을 품는다 또는 감춘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용은 예로부터 임금을 상징하는 말이다. 한양도성에서 천리 먼 길 떨어진 이곳이 이런 이름을 갖게 된 데에는 필시 곡절이 있을 것이다. 군지에는 1772년 남양홍씨가 처음 입향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995년(성종 14)에 진도군을 옥주군(沃州郡)으로 개칭하였다가 1018년(현종 9)에 옥주를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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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리(龍藏里)는 현재 행정구역상 진도군 군내면 속해 있다. 용장리는 법정리이며 동시에 행정리이기도 하다. 용장리는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기왕의 용장리에 세등리 일부를 병합하여 군내면에 편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용장리는『호구총수』(1789)의 기록에 의하면 진도군 군내면(郡內面) 27개 마을 중의 하나였다. 이 자료에는 용정리(龍井里)로 마을 명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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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에 관련된 기술 내용은 『지명총람』(진도군)과 용장마을에서 제작한 자료를 바탕으로 하며, 용장마을 이장인 곽재설(남, 64세) 씨와의 직접 면담조사 및 현장조사를 통해 작성되었다. 관청골[골] 삼별초 당시 삼별초군의 관공서가 있었다고 한다. 구서당터[鄕校] 진등 지나서 있는데, 옛날에 향교와 서당이 있었다고 한다. 노시난골[골] 고려장이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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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오룡장주(五龍藏珠), 오룡재주(午龍爭珠) 이야기 옛날부터 군내면 용장리 경내는 오룡이 장주(藏珠)하고 있는 명당 중의 명당이었다고 전해오고 있었다. 약 200년 전에 일지승(一指僧)이란 이름난 도승(道僧)이 있었는데 나이가 들어 진도로 들어왔다가 노환이 생겨 진도읍내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곤란한 지경에 빠졌는데 모두 못 본 척하였다. 그러나 조그마한 여막(旅幕) 집을 경영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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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수와 인구수는 표1 과 같이 여느 농촌과 다름없이 꾸준히 감소했다. 1968년에 134가구였으나, 37년 만에 54가구가 감소하여 2005년 현재 80가구(주민등록상)가 거주하고 있다. 최근 10년간은 감소 추이가 둔화되고 있으나, 여전히 줄고 있다. 가구수 감소와 비례하여 마을 인구도 대폭 감소하여 1968년에 688명이었으나, 522명이 감소하여 2005년 현재 166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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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용장리의 운영 조직 -그림- 용장리 운영의 조직 구조 -그림-과 같이, 이장은 개발위원회와 경로회, 상수도를 직접 관리하고, 이장의 지휘를 받아 (새마을)지도자가 부녀회와 상도회를 운영하고 있다. 용장리는 1991년 1월 1일에 8장 28조로 제정된 ‘마을 규약’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2) 마을 총회(동계) 동계는 매년 12월 25~30일에 개최된다. 동계에서는 1년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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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2년 당시의 동안(洞案)으로 보면, 박씨 36가구, 곽씨 20가구, 홍씨 16가구, 김씨 10가구, 조씨 6가구, 양씨 6가구, 하씨 5가구, 이씨 2가구 등 총 101가구였다. 2005년 12월 현재 행정상의 기준인 75세대를 대상으로 성별 세대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장 많은 성씨 순으로 정리하면, 박씨 29세대, 곽씨 21세대, 조씨 8세대, 김씨 6세대, 고씨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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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는 밀양박씨와 무안박씨로 나누어져 있는데, 무안박씨는 4가구이고, 나머지는 밀양박씨이다. 그러므로 박씨는 거의 대부분 혈연관계라고 할 수 있다. 곽씨는 장파와 중파로 나누어지는데, 거의 절반 정도 된다. 조씨는 창녕조씨이고, 김씨는 김해김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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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까지만 해도 고군면과 군내의 인접 마을에서 또는 마을 내에서 혼인이 많이 이루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반촌이었던 용장리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민촌과의 혼인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늘날에는 마을에서 이루어지는 혼인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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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리와 관련된 주요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 밀양박씨(密陽 朴氏): 곽윤배(郭允培)[본관 현풍]의 처로 청상과부가 되었으나, 수절하면서 자식들을 잘 키워 집안을 일으켰다. 열녀로 칭송되어 동리에 비가 세워졌다. 군내면 세등치에 있는 삼강비에도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 조극현(曺極鉉) : 본관은 창령(昌寧)이고, 호는 해농(海農)이다. 1936년 2월 20일 용장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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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지침 : 용장리는 마을 주민의 삶의 지침을 다음과 같이 4가지로 정리하여 마을 회관에 게재하였다. ①경노·효친을 우선합니다. ②서로 사랑하며 친절합니다. ③모범인이 되려고 노력합니다. ④마을일에 헌신 참여합니다. ◦ 상도계(喪徒契) : 용장리에는 6개의 상도계(喪徒契)가 반별 등을 기준으로 운영되었다. 그러나 마을 구성원이 점차 감소하고, 각 상도계들이 각자 운영되다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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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리 출신들로 타 지역 거주자들이 중심이 되어 구성한 향우회의 성격을 갖는 모임이다. 현재 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도 가입되어 있다. 청년들로 구성된 모임과 장년들로 구성된 모임이 각각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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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리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놀이는 윷놀이다. 농한기에 시간이 나면 모여서 하는 편인데, 주로 60대와 70대가 참여한다. 게이트볼을 활성화하기 위해 구장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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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보면, 무종교인이 많다. 용장교회가 1950년대에 건립된 용장교회의 영향으로 기독교도가 16가구이다. 불교도는 7가구에 달한다. 유교와 관련된 사우재실(祠宇齋室)로는 현충락씨 64위가 안치된 은모사(恩慕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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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서당터’라는 지명이 현재까지 남아 있는 것으로 볼 때, 마을에 유서 깊은 서당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제 하에서의 서당 교육은 파악할 수 없으나, 해방 뒤에는 마을의 서당이 있었다. 야학은 공식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1955년과 1956년에 동네 사람들에게 한글을 가르쳐주는 활동이 있었다. 초등학교는 처음에는 주로 군내초등학교를 다녔다. 한국전쟁 이후 고군면에 오룡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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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용장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좌익에 의한 학살과 우익에 의한 학살이 모두 발생했는데, 사망자가 백 수십 명에 달했다. 좌익에 의해 희생된 마을 사람들 83명을 추모하는 ‘오호순국지혼(嗚呼殉國之魂)’비가 1951년 10월 마을 입구에 건립되었다. 우익에 의해 희생된 숫자는 30~40명 정도 된다. 이로 인해 마을 사람들은 한국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꺼리는 경향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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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쌀을 재배하는 논농사의 경우 휴경 농지를 신청하는 가구수가 늘어나고 있고, 이에 비례하여 경작 면적도 감소 추세이다. 밭농사는 고추, 배추, 대파를 주로 재배하고 있는데, 2004년의 경우 평당 판매가가 폭락하여 재배 작물을 폐기하거나 헐값으로 매도하였다. 1968년에 실시한 마을조사에 의하면, 취업자 산업활동 인구를 대상으로 할 때 농업·임업·수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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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지면적은 2005년을 기준으로 300㏊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논이 55.3㏊, 밭이 53.8㏊, 임야가 190.9㏊로 구성되어 있다. 경지정리는 1990년에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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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목반은 없고 용장영농회가 있다. 용장영농회는 동진농협 소속으로 농업에 종사하는 마을 사람 전체가 가입되어 있다. 영농회 회장은 이장이 겸직을 한다. 영농회 활동의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받아서 1992년 1월 28일과 1998년 2월 12일에 동진농업협동조합장으로부터 표창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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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수지 : 1969년 11월 20일에 마을 저수지인 용장제가 준공되었다. 용장제는 마을 동편에 위치해 있다. 몽이 면적이 15㏊이고 저수량은 45,060t이다. 농업용수로는 4월, 5월, 7월에 군내면 차원에서 또는 마을 차원에서 청소 및 정비를 하고 있다(2005년 기준). 2005년 5월 19일에 마을의 숙원사업이던 기존 용수로 철거 및 확장 신설 사업(저수지에서 큰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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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농업은 농기계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농기계는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것과 농기계를 소유한 사람이 일정한 금액을 받고 관련 농사를 대신해 주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농기계를 임대하여 농사를 짓는 경우, 군내면의 공시 임대 가격을 준수하고 있다. 2006년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경지면적 100평당 쟁기의 경우 밭 전용은 15,000원, 논 전용은 10,000원, 로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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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에 마을회관 1층에 동진농협용장영농회구판장이 개설되었는데,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생필품 구입과 판매는 주로 오일시장, 진도읍장, 우수영장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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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로 : 용장리로 진입하는 도로는 801번 지방도이다. 18번 국도와 연결되어 용장산성 내부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마을 안길의 도로는 차량 통행이 힘들 정도로 좁다. 최근 마을 안길 흙담을 철거하고, 블록 담을 개축하고 있다. ◦ 교량 : 교량으로는 용장교(龍藏橋)가 있다. 용장교는 도로 벽파선(碧波線)에 놓여 있다. 1925년에 혼응토조(混凝土造)로 도로 확장과 동시에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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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마을은 역사와 유래가 깊은 마을이며 현재에도 70가구 이상이 거주하고 있는 비교적 큰 마을이다. 주민들의 주요소득원은 벼농사와 대파, 월동배추 재배 등 농업이기 때문에 주민들의 생활도 농사 주기에 맞추어져 있다. 마을주민들이 공동으로 하는 행사로는 망제, 경로잔치, 동계가 있다. 망제는 음력 1월 14일에 마을의 안녕과 농작물이 잘 자라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지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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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장 담그기 음력 11월에 메주를 쑤어 띄워 놓았다가 1월에 장을 담는다. ○ 빚 갚기 구정 설이 되기 전에 빚을 갚아야 한다고 하여 섣달에는 빚 정산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 ○ 설점치기 12월에 눈이 많이 와야 이듬해 농사시절이 좋다고 하였다. (3) 생업력 월동배추, 봄동, 대파를 출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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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 출향형제 귀향 좌담회 정기적인 행사는 아니지만 2005년 2월 8일 설을 쇠려고 귀향한 출향인사들과 좌담회를 벌였다. 마을의 유래와 역사적 변천상황, 유물유적, 리정현황, 마을의 발전방향 등을 보고하고 출향인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 망제(들제) 용장마을에서는 음력 1월 14일 밤 11시에서 새벽 1시 사이에 망제(望祭)를 지낸다. 망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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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정기적인 행사는 아니지만 농삿일이 한가한 이 달에 관광을 가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돈을 내기도 하고 마을기금으로 다녀오기도 한다. (2) 세시풍속 ○ 하루달날(하구달날) 옛날에는 이날도 차례상을 차리는 집이 있었다. 이날은 사람날이라고 하여 잘 먹고 놀았다. 또한 손끄스럼 지진다고 하여 콩을 볶아 먹었다. 그리고 짚벼늘 속에 콩을 넣어두면 그해 농사가 잘 된다고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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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 경로잔치 용장마을에서는 농사일이 바빠지기 전인 4월 초에 마을 어른들을 모시고 경로잔치를 한다. 부녀회에서 음식을 장만하고 밴드를 불러 흥겹게 노는 자리이다. (2) 세시풍속 ○ 삼짇날 삼짇날은 제비가 돌아오는 날로 인식되고 있다. ○ 한식 이 때 산일을 하면 탈이 없다 하여 이장을 하거나 묘를 손질하고 개사토를 한다. (3) 생업력 대파를 옮겨 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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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 면민체육대회 면민체육대회는 군내면민들의 체육행사이다. 이 행사에 용장마을 주민들도 참여하여 이웃마을 주민과 경쟁을 하면서 단합심을 키우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매년 5월에 치러지지만 올해에는 지방선거 때문에 6월에 했다. (2) 세시풍속 ○ 사월 초파일 불교인은 이날 연등을 달고 절에 간다. 용장마을 사람들은 주로 마을에 있는 용장사를 찾는다. (3) 생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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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단오날 이날은 ‘오만 풀잎은 다 약이 된다’고 하여 익모초, 인동초, 설모초, 쑥, 녹음방초 등 여러 가지 풀잎을 뜯어서 말렸다. (3) 생업력 망종 즈음에 만생종 벼의 모내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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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산제(충제) 2005년까지 음력 6월 1일에 충제를 지냈다. 충제를 지내는 시간은 밤 11시 이후로 정월 보름에 지내는 망제와 같다. 충제는 병충해를 막기 위해 지내며 장소는 용장마을 뒷산에 위치한 도신난굴이다. 충제를 지내는 날에는 온 주민이 들일을 하지 않고, 빨래하는 것도 금지하는 등 노는 날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에는 지내지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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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백중 예전에는 백중날도 차례를 지냈다. 이 날은 도랑신네가 백가지 곡식을 정하는 날이기 때문에 논밭에 나가면 안 된다고 하였다. 백중날 여자들은 마당 넓은 집에서 강강술래 등을 하면서 놀았다고 한다. 지금은 백중을 쇠는 집은 없다. ○ 벌초하기 음력 7월 1일부터 벌초를 하기 시작하여 추석 전에 마무리한다. (3) 생업력 이달에는 고추와 옥수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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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 추석노래자랑콩쿠르대회 추석날 밤에는 주민들이 모여서 콩쿠르대회를 했다. 중단된 지 10여 년이 되었다. (2) 세시풍속 ○ 성주고사 농사를 지어 첫 방아를 찧으면 손 없는 날을 택일하여 성주동우에 쌀을 담는다. 성주동우의 쌀은 함부로 하기가 조심스러워서 시장에 내다 파는 집이 많았다고 한다. ○ 추석 추석에는 타지에 나가 있던 일가친척이 모두 모여 햇곡식으로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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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없음 (2) 세시풍속 ○ 중구날 중구날에 산일을 하면 탈이 없다고 하여 이날 묘지를 손보는 집이 있다. (3) 생업력 만생종 벼는 이달에 수확한다. 벼를 수확하고 난 논에 봄동을 심는다. 이달에도 대파 출하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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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시제모시기 10월에는 집안별로 시제를 모신다. 용장마을에는 많은 수의 재각이 있는데, 훈효사(현풍곽씨 25세손), 은모사(현풍곽씨 27세손), 숭효사(현풍곽씨 27세손), 남지사(무안박씨 25세손), 엄지사(무안박씨 26세손), 영추사(밀양박씨 청재공파), 장성사(창녕조씨 19세손)가 있다. ○ 메주 쑤기 이달에는 메주콩을 삶아서 메주를 쑨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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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 동계 매년 12월 21~31일에 동계를 개최한다. 동계는 마을정기총회로 1년간의 행사 실적, 재정결산, 사업계획, 입례(마을로 전입된 사람에게 받는 예절과 예품), 관례(지난 1년간 혼례를 치룬 사람에게 받는 예절과 예품) 들을 총 결산하는 모임이다. 매년 동계의 내용을 기록하여 보존하고 있는데 1772년부터 기록된 동계안이 보존되고 있다. (2) 세시풍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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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시제모시기 10월에는 집안별로 시제를 모신다. 용장마을에는 많은 수의 재각이 있는데, 훈효사(현풍곽씨 25세손), 은모사(현풍곽씨 27세손), 숭효사(현풍곽씨 27세손), 남지사(무안박씨 25세손), 엄지사(무안박씨 26세손), 영추사(밀양박씨 청재공파), 장성사(창녕조씨 19세손)가 있다. ○ 메주 쑤기 이달에는 메주콩을 삶아서 메주를 쑨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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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 동계 매년 12월 21~31일에 동계를 개최한다. 동계는 마을정기총회로 1년간의 행사 실적, 재정결산, 사업계획, 입례(마을로 전입된 사람에게 받는 예절과 예품), 관례(지난 1년간 혼례를 치룬 사람에게 받는 예절과 예품) 들을 총 결산하는 모임이다. 매년 동계의 내용을 기록하여 보존하고 있는데 1772년부터 기록된 동계안이 보존되고 있다. (2) 세시풍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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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 추석노래자랑콩쿠르대회 추석날 밤에는 주민들이 모여서 콩쿠르대회를 했다. 중단된 지 10여 년이 되었다. (2) 세시풍속 ○ 성주고사 농사를 지어 첫 방아를 찧으면 손 없는 날을 택일하여 성주동우에 쌀을 담는다. 성주동우의 쌀은 함부로 하기가 조심스러워서 시장에 내다 파는 집이 많았다고 한다. ○ 추석 추석에는 타지에 나가 있던 일가친척이 모두 모여 햇곡식으로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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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없음 (2) 세시풍속 ○ 중구날 중구날에 산일을 하면 탈이 없다고 하여 이날 묘지를 손보는 집이 있다. (3) 생업력 만생종 벼는 이달에 수확한다. 벼를 수확하고 난 논에 봄동을 심는다. 이달에도 대파 출하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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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산제(충제) 2005년까지 음력 6월 1일에 충제를 지냈다. 충제를 지내는 시간은 밤 11시 이후로 정월 보름에 지내는 망제와 같다. 충제는 병충해를 막기 위해 지내며 장소는 용장마을 뒷산에 위치한 도신난굴이다. 충제를 지내는 날에는 온 주민이 들일을 하지 않고, 빨래하는 것도 금지하는 등 노는 날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에는 지내지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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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단오날 이날은 ‘오만 풀잎은 다 약이 된다’고 하여 익모초, 인동초, 설모초, 쑥, 녹음방초 등 여러 가지 풀잎을 뜯어서 말렸다. (3) 생업력 망종 즈음에 만생종 벼의 모내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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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백중 예전에는 백중날도 차례를 지냈다. 이 날은 도랑신네가 백가지 곡식을 정하는 날이기 때문에 논밭에 나가면 안 된다고 하였다. 백중날 여자들은 마당 넓은 집에서 강강술래 등을 하면서 놀았다고 한다. 지금은 백중을 쇠는 집은 없다. ○ 벌초하기 음력 7월 1일부터 벌초를 하기 시작하여 추석 전에 마무리한다. (3) 생업력 이달에는 고추와 옥수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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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 면민체육대회 면민체육대회는 군내면민들의 체육행사이다. 이 행사에 용장마을 주민들도 참여하여 이웃마을 주민과 경쟁을 하면서 단합심을 키우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매년 5월에 치러지지만 올해에는 지방선거 때문에 6월에 했다. (2) 세시풍속 ○ 사월 초파일 불교인은 이날 연등을 달고 절에 간다. 용장마을 사람들은 주로 마을에 있는 용장사를 찾는다. (3) 생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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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 출향형제 귀향 좌담회 정기적인 행사는 아니지만 2005년 2월 8일 설을 쇠려고 귀향한 출향인사들과 좌담회를 벌였다. 마을의 유래와 역사적 변천상황, 유물유적, 리정현황, 마을의 발전방향 등을 보고하고 출향인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 망제(들제) 용장마을에서는 음력 1월 14일 밤 11시에서 새벽 1시 사이에 망제(望祭)를 지낸다. 망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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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 경로잔치 용장마을에서는 농사일이 바빠지기 전인 4월 초에 마을 어른들을 모시고 경로잔치를 한다. 부녀회에서 음식을 장만하고 밴드를 불러 흥겹게 노는 자리이다. (2) 세시풍속 ○ 삼짇날 삼짇날은 제비가 돌아오는 날로 인식되고 있다. ○ 한식 이 때 산일을 하면 탈이 없다 하여 이장을 하거나 묘를 손질하고 개사토를 한다. (3) 생업력 대파를 옮겨 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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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정기적인 행사는 아니지만 농삿일이 한가한 이 달에 관광을 가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돈을 내기도 하고 마을기금으로 다녀오기도 한다. (2) 세시풍속 ○ 하루달날(하구달날) 옛날에는 이날도 차례상을 차리는 집이 있었다. 이날은 사람날이라고 하여 잘 먹고 놀았다. 또한 손끄스럼 지진다고 하여 콩을 볶아 먹었다. 그리고 짚벼늘 속에 콩을 넣어두면 그해 농사가 잘 된다고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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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장 담그기 음력 11월에 메주를 쑤어 띄워 놓았다가 1월에 장을 담는다. ○ 빚 갚기 구정 설이 되기 전에 빚을 갚아야 한다고 하여 섣달에는 빚 정산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 ○ 설점치기 12월에 눈이 많이 와야 이듬해 농사시절이 좋다고 하였다. (3) 생업력 월동배추, 봄동, 대파를 출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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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에 마을회관 1층에 동진농협용장영농회구판장이 개설되었는데,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생필품 구입과 판매는 주로 오일시장, 진도읍장, 우수영장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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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마을은 역사와 유래가 깊은 마을이며 현재에도 70가구 이상이 거주하고 있는 비교적 큰 마을이다. 주민들의 주요소득원은 벼농사와 대파, 월동배추 재배 등 농업이기 때문에 주민들의 생활도 농사 주기에 맞추어져 있다. 마을주민들이 공동으로 하는 행사로는 망제, 경로잔치, 동계가 있다. 망제는 음력 1월 14일에 마을의 안녕과 농작물이 잘 자라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지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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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로 : 용장리로 진입하는 도로는 801번 지방도이다. 18번 국도와 연결되어 용장산성 내부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마을 안길의 도로는 차량 통행이 힘들 정도로 좁다. 최근 마을 안길 흙담을 철거하고, 블록 담을 개축하고 있다. ◦ 교량 : 교량으로는 용장교(龍藏橋)가 있다. 용장교는 도로 벽파선(碧波線)에 놓여 있다. 1925년에 혼응토조(混凝土造)로 도로 확장과 동시에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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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농업은 농기계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농기계는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것과 농기계를 소유한 사람이 일정한 금액을 받고 관련 농사를 대신해 주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농기계를 임대하여 농사를 짓는 경우, 군내면의 공시 임대 가격을 준수하고 있다. 2006년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경지면적 100평당 쟁기의 경우 밭 전용은 15,000원, 논 전용은 10,000원, 로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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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지면적은 2005년을 기준으로 300㏊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논이 55.3㏊, 밭이 53.8㏊, 임야가 190.9㏊로 구성되어 있다. 경지정리는 1990년에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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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목반은 없고 용장영농회가 있다. 용장영농회는 동진농협 소속으로 농업에 종사하는 마을 사람 전체가 가입되어 있다. 영농회 회장은 이장이 겸직을 한다. 영농회 활동의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받아서 1992년 1월 28일과 1998년 2월 12일에 동진농업협동조합장으로부터 표창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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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수지 : 1969년 11월 20일에 마을 저수지인 용장제가 준공되었다. 용장제는 마을 동편에 위치해 있다. 몽이 면적이 15㏊이고 저수량은 45,060t이다. 농업용수로는 4월, 5월, 7월에 군내면 차원에서 또는 마을 차원에서 청소 및 정비를 하고 있다(2005년 기준). 2005년 5월 19일에 마을의 숙원사업이던 기존 용수로 철거 및 확장 신설 사업(저수지에서 큰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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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쌀을 재배하는 논농사의 경우 휴경 농지를 신청하는 가구수가 늘어나고 있고, 이에 비례하여 경작 면적도 감소 추세이다. 밭농사는 고추, 배추, 대파를 주로 재배하고 있는데, 2004년의 경우 평당 판매가가 폭락하여 재배 작물을 폐기하거나 헐값으로 매도하였다. 1968년에 실시한 마을조사에 의하면, 취업자 산업활동 인구를 대상으로 할 때 농업·임업·수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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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용장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좌익에 의한 학살과 우익에 의한 학살이 모두 발생했는데, 사망자가 백 수십 명에 달했다. 좌익에 의해 희생된 마을 사람들 83명을 추모하는 ‘오호순국지혼(嗚呼殉國之魂)’비가 1951년 10월 마을 입구에 건립되었다. 우익에 의해 희생된 숫자는 30~40명 정도 된다. 이로 인해 마을 사람들은 한국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꺼리는 경향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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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서당터’라는 지명이 현재까지 남아 있는 것으로 볼 때, 마을에 유서 깊은 서당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제 하에서의 서당 교육은 파악할 수 없으나, 해방 뒤에는 마을의 서당이 있었다. 야학은 공식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1955년과 1956년에 동네 사람들에게 한글을 가르쳐주는 활동이 있었다. 초등학교는 처음에는 주로 군내초등학교를 다녔다. 한국전쟁 이후 고군면에 오룡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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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보면, 무종교인이 많다. 용장교회가 1950년대에 건립된 용장교회의 영향으로 기독교도가 16가구이다. 불교도는 7가구에 달한다. 유교와 관련된 사우재실(祠宇齋室)로는 현충락씨 64위가 안치된 은모사(恩慕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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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리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놀이는 윷놀이다. 농한기에 시간이 나면 모여서 하는 편인데, 주로 60대와 70대가 참여한다. 게이트볼을 활성화하기 위해 구장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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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리 출신들로 타 지역 거주자들이 중심이 되어 구성한 향우회의 성격을 갖는 모임이다. 현재 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도 가입되어 있다. 청년들로 구성된 모임과 장년들로 구성된 모임이 각각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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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지침 : 용장리는 마을 주민의 삶의 지침을 다음과 같이 4가지로 정리하여 마을 회관에 게재하였다. ①경노·효친을 우선합니다. ②서로 사랑하며 친절합니다. ③모범인이 되려고 노력합니다. ④마을일에 헌신 참여합니다. ◦ 상도계(喪徒契) : 용장리에는 6개의 상도계(喪徒契)가 반별 등을 기준으로 운영되었다. 그러나 마을 구성원이 점차 감소하고, 각 상도계들이 각자 운영되다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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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리와 관련된 주요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 밀양박씨(密陽 朴氏): 곽윤배(郭允培)[본관 현풍]의 처로 청상과부가 되었으나, 수절하면서 자식들을 잘 키워 집안을 일으켰다. 열녀로 칭송되어 동리에 비가 세워졌다. 군내면 세등치에 있는 삼강비에도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 조극현(曺極鉉) : 본관은 창령(昌寧)이고, 호는 해농(海農)이다. 1936년 2월 20일 용장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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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2년 당시의 동안(洞案)으로 보면, 박씨 36가구, 곽씨 20가구, 홍씨 16가구, 김씨 10가구, 조씨 6가구, 양씨 6가구, 하씨 5가구, 이씨 2가구 등 총 101가구였다. 2005년 12월 현재 행정상의 기준인 75세대를 대상으로 성별 세대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장 많은 성씨 순으로 정리하면, 박씨 29세대, 곽씨 21세대, 조씨 8세대, 김씨 6세대, 고씨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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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까지만 해도 고군면과 군내의 인접 마을에서 또는 마을 내에서 혼인이 많이 이루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반촌이었던 용장리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민촌과의 혼인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늘날에는 마을에서 이루어지는 혼인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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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는 밀양박씨와 무안박씨로 나누어져 있는데, 무안박씨는 4가구이고, 나머지는 밀양박씨이다. 그러므로 박씨는 거의 대부분 혈연관계라고 할 수 있다. 곽씨는 장파와 중파로 나누어지는데, 거의 절반 정도 된다. 조씨는 창녕조씨이고, 김씨는 김해김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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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오룡장주(五龍藏珠), 오룡재주(午龍爭珠) 이야기 옛날부터 군내면 용장리 경내는 오룡이 장주(藏珠)하고 있는 명당 중의 명당이었다고 전해오고 있었다. 약 200년 전에 일지승(一指僧)이란 이름난 도승(道僧)이 있었는데 나이가 들어 진도로 들어왔다가 노환이 생겨 진도읍내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곤란한 지경에 빠졌는데 모두 못 본 척하였다. 그러나 조그마한 여막(旅幕) 집을 경영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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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수와 인구수는 표1 과 같이 여느 농촌과 다름없이 꾸준히 감소했다. 1968년에 134가구였으나, 37년 만에 54가구가 감소하여 2005년 현재 80가구(주민등록상)가 거주하고 있다. 최근 10년간은 감소 추이가 둔화되고 있으나, 여전히 줄고 있다. 가구수 감소와 비례하여 마을 인구도 대폭 감소하여 1968년에 688명이었으나, 522명이 감소하여 2005년 현재 166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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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용장리의 운영 조직 -그림- 용장리 운영의 조직 구조 -그림-과 같이, 이장은 개발위원회와 경로회, 상수도를 직접 관리하고, 이장의 지휘를 받아 (새마을)지도자가 부녀회와 상도회를 운영하고 있다. 용장리는 1991년 1월 1일에 8장 28조로 제정된 ‘마을 규약’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2) 마을 총회(동계) 동계는 매년 12월 25~30일에 개최된다. 동계에서는 1년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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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리(龍藏里)하면 한자로 용을 품는다 또는 감춘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용은 예로부터 임금을 상징하는 말이다. 한양도성에서 천리 먼 길 떨어진 이곳이 이런 이름을 갖게 된 데에는 필시 곡절이 있을 것이다. 군지에는 1772년 남양홍씨가 처음 입향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995년(성종 14)에 진도군을 옥주군(沃州郡)으로 개칭하였다가 1018년(현종 9)에 옥주를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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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리(龍藏里)는 현재 행정구역상 진도군 군내면 속해 있다. 용장리는 법정리이며 동시에 행정리이기도 하다. 용장리는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기왕의 용장리에 세등리 일부를 병합하여 군내면에 편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용장리는『호구총수』(1789)의 기록에 의하면 진도군 군내면(郡內面) 27개 마을 중의 하나였다. 이 자료에는 용정리(龍井里)로 마을 명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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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에 관련된 기술 내용은 『지명총람』(진도군)과 용장마을에서 제작한 자료를 바탕으로 하며, 용장마을 이장인 곽재설(남, 64세) 씨와의 직접 면담조사 및 현장조사를 통해 작성되었다. 관청골[골] 삼별초 당시 삼별초군의 관공서가 있었다고 한다. 구서당터[鄕校] 진등 지나서 있는데, 옛날에 향교와 서당이 있었다고 한다. 노시난골[골] 고려장이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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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지면적은 2005년을 기준으로 300㏊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논이 55.3㏊, 밭이 53.8㏊, 임야가 190.9㏊로 구성되어 있다. 경지정리는 1990년에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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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로 : 용장리로 진입하는 도로는 801번 지방도이다. 18번 국도와 연결되어 용장산성 내부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마을 안길의 도로는 차량 통행이 힘들 정도로 좁다. 최근 마을 안길 흙담을 철거하고, 블록 담을 개축하고 있다. ◦ 교량 : 교량으로는 용장교(龍藏橋)가 있다. 용장교는 도로 벽파선(碧波線)에 놓여 있다. 1925년에 혼응토조(混凝土造)로 도로 확장과 동시에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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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쌀을 재배하는 논농사의 경우 휴경 농지를 신청하는 가구수가 늘어나고 있고, 이에 비례하여 경작 면적도 감소 추세이다. 밭농사는 고추, 배추, 대파를 주로 재배하고 있는데, 2004년의 경우 평당 판매가가 폭락하여 재배 작물을 폐기하거나 헐값으로 매도하였다. 1968년에 실시한 마을조사에 의하면, 취업자 산업활동 인구를 대상으로 할 때 농업·임업·수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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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농업은 농기계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농기계는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것과 농기계를 소유한 사람이 일정한 금액을 받고 관련 농사를 대신해 주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농기계를 임대하여 농사를 짓는 경우, 군내면의 공시 임대 가격을 준수하고 있다. 2006년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경지면적 100평당 쟁기의 경우 밭 전용은 15,000원, 논 전용은 10,000원, 로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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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수지 : 1969년 11월 20일에 마을 저수지인 용장제가 준공되었다. 용장제는 마을 동편에 위치해 있다. 몽이 면적이 15㏊이고 저수량은 45,060t이다. 농업용수로는 4월, 5월, 7월에 군내면 차원에서 또는 마을 차원에서 청소 및 정비를 하고 있다(2005년 기준). 2005년 5월 19일에 마을의 숙원사업이던 기존 용수로 철거 및 확장 신설 사업(저수지에서 큰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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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목반은 없고 용장영농회가 있다. 용장영농회는 동진농협 소속으로 농업에 종사하는 마을 사람 전체가 가입되어 있다. 영농회 회장은 이장이 겸직을 한다. 영농회 활동의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받아서 1992년 1월 28일과 1998년 2월 12일에 동진농업협동조합장으로부터 표창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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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에 마을회관 1층에 동진농협용장영농회구판장이 개설되었는데,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생필품 구입과 판매는 주로 오일시장, 진도읍장, 우수영장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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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마을은 역사와 유래가 깊은 마을이며 현재에도 70가구 이상이 거주하고 있는 비교적 큰 마을이다. 주민들의 주요소득원은 벼농사와 대파, 월동배추 재배 등 농업이기 때문에 주민들의 생활도 농사 주기에 맞추어져 있다. 마을주민들이 공동으로 하는 행사로는 망제, 경로잔치, 동계가 있다. 망제는 음력 1월 14일에 마을의 안녕과 농작물이 잘 자라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지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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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없음 (2) 세시풍속 ○ 중구날 중구날에 산일을 하면 탈이 없다고 하여 이날 묘지를 손보는 집이 있다. (3) 생업력 만생종 벼는 이달에 수확한다. 벼를 수확하고 난 논에 봄동을 심는다. 이달에도 대파 출하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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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시제모시기 10월에는 집안별로 시제를 모신다. 용장마을에는 많은 수의 재각이 있는데, 훈효사(현풍곽씨 25세손), 은모사(현풍곽씨 27세손), 숭효사(현풍곽씨 27세손), 남지사(무안박씨 25세손), 엄지사(무안박씨 26세손), 영추사(밀양박씨 청재공파), 장성사(창녕조씨 19세손)가 있다. ○ 메주 쑤기 이달에는 메주콩을 삶아서 메주를 쑨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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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 동계 매년 12월 21~31일에 동계를 개최한다. 동계는 마을정기총회로 1년간의 행사 실적, 재정결산, 사업계획, 입례(마을로 전입된 사람에게 받는 예절과 예품), 관례(지난 1년간 혼례를 치룬 사람에게 받는 예절과 예품) 들을 총 결산하는 모임이다. 매년 동계의 내용을 기록하여 보존하고 있는데 1772년부터 기록된 동계안이 보존되고 있다. (2) 세시풍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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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장 담그기 음력 11월에 메주를 쑤어 띄워 놓았다가 1월에 장을 담는다. ○ 빚 갚기 구정 설이 되기 전에 빚을 갚아야 한다고 하여 섣달에는 빚 정산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 ○ 설점치기 12월에 눈이 많이 와야 이듬해 농사시절이 좋다고 하였다. (3) 생업력 월동배추, 봄동, 대파를 출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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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 출향형제 귀향 좌담회 정기적인 행사는 아니지만 2005년 2월 8일 설을 쇠려고 귀향한 출향인사들과 좌담회를 벌였다. 마을의 유래와 역사적 변천상황, 유물유적, 리정현황, 마을의 발전방향 등을 보고하고 출향인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 망제(들제) 용장마을에서는 음력 1월 14일 밤 11시에서 새벽 1시 사이에 망제(望祭)를 지낸다. 망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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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정기적인 행사는 아니지만 농삿일이 한가한 이 달에 관광을 가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돈을 내기도 하고 마을기금으로 다녀오기도 한다. (2) 세시풍속 ○ 하루달날(하구달날) 옛날에는 이날도 차례상을 차리는 집이 있었다. 이날은 사람날이라고 하여 잘 먹고 놀았다. 또한 손끄스럼 지진다고 하여 콩을 볶아 먹었다. 그리고 짚벼늘 속에 콩을 넣어두면 그해 농사가 잘 된다고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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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 경로잔치 용장마을에서는 농사일이 바빠지기 전인 4월 초에 마을 어른들을 모시고 경로잔치를 한다. 부녀회에서 음식을 장만하고 밴드를 불러 흥겹게 노는 자리이다. (2) 세시풍속 ○ 삼짇날 삼짇날은 제비가 돌아오는 날로 인식되고 있다. ○ 한식 이 때 산일을 하면 탈이 없다 하여 이장을 하거나 묘를 손질하고 개사토를 한다. (3) 생업력 대파를 옮겨 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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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 면민체육대회 면민체육대회는 군내면민들의 체육행사이다. 이 행사에 용장마을 주민들도 참여하여 이웃마을 주민과 경쟁을 하면서 단합심을 키우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매년 5월에 치러지지만 올해에는 지방선거 때문에 6월에 했다. (2) 세시풍속 ○ 사월 초파일 불교인은 이날 연등을 달고 절에 간다. 용장마을 사람들은 주로 마을에 있는 용장사를 찾는다. (3) 생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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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단오날 이날은 ‘오만 풀잎은 다 약이 된다’고 하여 익모초, 인동초, 설모초, 쑥, 녹음방초 등 여러 가지 풀잎을 뜯어서 말렸다. (3) 생업력 망종 즈음에 만생종 벼의 모내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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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산제(충제) 2005년까지 음력 6월 1일에 충제를 지냈다. 충제를 지내는 시간은 밤 11시 이후로 정월 보름에 지내는 망제와 같다. 충제는 병충해를 막기 위해 지내며 장소는 용장마을 뒷산에 위치한 도신난굴이다. 충제를 지내는 날에는 온 주민이 들일을 하지 않고, 빨래하는 것도 금지하는 등 노는 날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에는 지내지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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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백중 예전에는 백중날도 차례를 지냈다. 이 날은 도랑신네가 백가지 곡식을 정하는 날이기 때문에 논밭에 나가면 안 된다고 하였다. 백중날 여자들은 마당 넓은 집에서 강강술래 등을 하면서 놀았다고 한다. 지금은 백중을 쇠는 집은 없다. ○ 벌초하기 음력 7월 1일부터 벌초를 하기 시작하여 추석 전에 마무리한다. (3) 생업력 이달에는 고추와 옥수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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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 추석노래자랑콩쿠르대회 추석날 밤에는 주민들이 모여서 콩쿠르대회를 했다. 중단된 지 10여 년이 되었다. (2) 세시풍속 ○ 성주고사 농사를 지어 첫 방아를 찧으면 손 없는 날을 택일하여 성주동우에 쌀을 담는다. 성주동우의 쌀은 함부로 하기가 조심스러워서 시장에 내다 파는 집이 많았다고 한다. ○ 추석 추석에는 타지에 나가 있던 일가친척이 모두 모여 햇곡식으로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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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용장리의 운영 조직 -그림- 용장리 운영의 조직 구조 -그림-과 같이, 이장은 개발위원회와 경로회, 상수도를 직접 관리하고, 이장의 지휘를 받아 (새마을)지도자가 부녀회와 상도회를 운영하고 있다. 용장리는 1991년 1월 1일에 8장 28조로 제정된 ‘마을 규약’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2) 마을 총회(동계) 동계는 매년 12월 25~30일에 개최된다. 동계에서는 1년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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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서당터’라는 지명이 현재까지 남아 있는 것으로 볼 때, 마을에 유서 깊은 서당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제 하에서의 서당 교육은 파악할 수 없으나, 해방 뒤에는 마을의 서당이 있었다. 야학은 공식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1955년과 1956년에 동네 사람들에게 한글을 가르쳐주는 활동이 있었다. 초등학교는 처음에는 주로 군내초등학교를 다녔다. 한국전쟁 이후 고군면에 오룡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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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리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놀이는 윷놀이다. 농한기에 시간이 나면 모여서 하는 편인데, 주로 60대와 70대가 참여한다. 게이트볼을 활성화하기 위해 구장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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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지침 : 용장리는 마을 주민의 삶의 지침을 다음과 같이 4가지로 정리하여 마을 회관에 게재하였다. ①경노·효친을 우선합니다. ②서로 사랑하며 친절합니다. ③모범인이 되려고 노력합니다. ④마을일에 헌신 참여합니다. ◦ 상도계(喪徒契) : 용장리에는 6개의 상도계(喪徒契)가 반별 등을 기준으로 운영되었다. 그러나 마을 구성원이 점차 감소하고, 각 상도계들이 각자 운영되다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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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용장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좌익에 의한 학살과 우익에 의한 학살이 모두 발생했는데, 사망자가 백 수십 명에 달했다. 좌익에 의해 희생된 마을 사람들 83명을 추모하는 ‘오호순국지혼(嗚呼殉國之魂)’비가 1951년 10월 마을 입구에 건립되었다. 우익에 의해 희생된 숫자는 30~40명 정도 된다. 이로 인해 마을 사람들은 한국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꺼리는 경향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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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2년 당시의 동안(洞案)으로 보면, 박씨 36가구, 곽씨 20가구, 홍씨 16가구, 김씨 10가구, 조씨 6가구, 양씨 6가구, 하씨 5가구, 이씨 2가구 등 총 101가구였다. 2005년 12월 현재 행정상의 기준인 75세대를 대상으로 성별 세대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장 많은 성씨 순으로 정리하면, 박씨 29세대, 곽씨 21세대, 조씨 8세대, 김씨 6세대, 고씨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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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수와 인구수는 표1 과 같이 여느 농촌과 다름없이 꾸준히 감소했다. 1968년에 134가구였으나, 37년 만에 54가구가 감소하여 2005년 현재 80가구(주민등록상)가 거주하고 있다. 최근 10년간은 감소 추이가 둔화되고 있으나, 여전히 줄고 있다. 가구수 감소와 비례하여 마을 인구도 대폭 감소하여 1968년에 688명이었으나, 522명이 감소하여 2005년 현재 166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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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리와 관련된 주요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 밀양박씨(密陽 朴氏): 곽윤배(郭允培)[본관 현풍]의 처로 청상과부가 되었으나, 수절하면서 자식들을 잘 키워 집안을 일으켰다. 열녀로 칭송되어 동리에 비가 세워졌다. 군내면 세등치에 있는 삼강비에도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 조극현(曺極鉉) : 본관은 창령(昌寧)이고, 호는 해농(海農)이다. 1936년 2월 20일 용장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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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보면, 무종교인이 많다. 용장교회가 1950년대에 건립된 용장교회의 영향으로 기독교도가 16가구이다. 불교도는 7가구에 달한다. 유교와 관련된 사우재실(祠宇齋室)로는 현충락씨 64위가 안치된 은모사(恩慕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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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리 출신들로 타 지역 거주자들이 중심이 되어 구성한 향우회의 성격을 갖는 모임이다. 현재 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도 가입되어 있다. 청년들로 구성된 모임과 장년들로 구성된 모임이 각각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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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는 밀양박씨와 무안박씨로 나누어져 있는데, 무안박씨는 4가구이고, 나머지는 밀양박씨이다. 그러므로 박씨는 거의 대부분 혈연관계라고 할 수 있다. 곽씨는 장파와 중파로 나누어지는데, 거의 절반 정도 된다. 조씨는 창녕조씨이고, 김씨는 김해김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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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까지만 해도 고군면과 군내의 인접 마을에서 또는 마을 내에서 혼인이 많이 이루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반촌이었던 용장리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민촌과의 혼인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늘날에는 마을에서 이루어지는 혼인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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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시아의 초원지대에서 성장한 몽고(蒙古)와 같은 유목민족의 가장 중요한 정복대상은 남쪽의 농경민족이었다. 농경민족들이 지니는 풍부한 생산품이 그 구미를 돋우어 준 때문이었다. 이리하여 금(金)·송(宋)과 함께 고려도 몽고의 침략 대상 가운데 하나가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금을 치고 남송(南宋)과 일본(日本)을 정복하기 위한 기지를 구하려는 목적도 몽고가 고려에 침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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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의 삼별초정권은, 이를 나위조차 없는 일이지만, 반몽(反蒙)을 기치로 내세웠었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배중손이 노영희 등과 더불어 변란을 일으키고서는, 사람을 시켜 나라 안에 외치기를 몽고 군사가 크게 이르러 인민(人民)을 마구 죽여 대니, 무릇 나라에 힘이 되고자 하는 이는 모두 격구장(擊毬場)으로 모여라’라고 하였다. 잠깐 동안에 나라 사람들이 크게 모여들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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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의 삼별초정권이 조운로(漕運路)를 장악하자 개경정부의 재정상태는 곤핍을 극하게 되었다. 당장 시급한 군량(軍糧)조차 제대로 맞춰서 대줄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하루 빨리 진도 를 되찾는 것이 개경정부 존립의 관건이었던 셈이다. 원나라의 입장에서도 삼별초와 남송의 동맹을 방지하고 또한 일본을 정복하려는 야욕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진도 를 점령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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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별초(三別抄)는 최씨 무인정권에 의해서 창설된 군사조직이었다. 야간순찰과 같은 공적(公的)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함이라는 게 그 명분이었다. 그 시초는 최씨정권의 제2대 집권자인 최이가 수도의 치안을 빙자해서 창설한 야별초(夜別抄)라는 특수부대였다. 무인의 일당인 악소(惡少)의 무리들이 날뛰지 못하도록 막아 그 정권을 공고히 할 목적에서였다. 이 야별초가 후에 소속 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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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별초는 반개경정부(反開京政府) 그리고 반몽고(反蒙古)의 노선을 표방하며 거사하였다. 1270년(원종 11) 6월 초하루의 일이었다. 앞서 같은 해 5월 23일에 재상들이 회의에서 개경으로 환도할 것을 결정하자 삼별초는 그에 반대하며 반란을 일으킬 속셈을 처음 드러냈었다. “재추(宰樞)가 모여 옛 서울로 돌아갈 것을 의논하고 날을 정하여 방(榜)을 붙이니, 삼별초가 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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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에 도착한 삼별초는 곧바로 새 수도를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도성인 용장성(龍藏城)을 중심으로 그 주위를 둘러싼 용장산성(龍藏山城)의 안쪽, 즉 현재의 용장리 일원이 그곳이다. 여기에 처음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주변의 고인돌 등으로 미루어 늦어도 청동기시대 즈음에 주민이 거주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이후 삼국을 거쳐 고려와 조선에 이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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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시제모시기 10월에는 집안별로 시제를 모신다. 용장마을에는 많은 수의 재각이 있는데, 훈효사(현풍곽씨 25세손), 은모사(현풍곽씨 27세손), 숭효사(현풍곽씨 27세손), 남지사(무안박씨 25세손), 엄지사(무안박씨 26세손), 영추사(밀양박씨 청재공파), 장성사(창녕조씨 19세손)가 있다. ○ 메주 쑤기 이달에는 메주콩을 삶아서 메주를 쑨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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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 동계 매년 12월 21~31일에 동계를 개최한다. 동계는 마을정기총회로 1년간의 행사 실적, 재정결산, 사업계획, 입례(마을로 전입된 사람에게 받는 예절과 예품), 관례(지난 1년간 혼례를 치룬 사람에게 받는 예절과 예품) 들을 총 결산하는 모임이다. 매년 동계의 내용을 기록하여 보존하고 있는데 1772년부터 기록된 동계안이 보존되고 있다. (2) 세시풍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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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까지만 해도 고군면과 군내의 인접 마을에서 또는 마을 내에서 혼인이 많이 이루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반촌이었던 용장리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민촌과의 혼인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늘날에는 마을에서 이루어지는 혼인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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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리와 관련된 주요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 밀양박씨(密陽 朴氏): 곽윤배(郭允培)[본관 현풍]의 처로 청상과부가 되었으나, 수절하면서 자식들을 잘 키워 집안을 일으켰다. 열녀로 칭송되어 동리에 비가 세워졌다. 군내면 세등치에 있는 삼강비에도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 조극현(曺極鉉) : 본관은 창령(昌寧)이고, 호는 해농(海農)이다. 1936년 2월 20일 용장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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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지침 : 용장리는 마을 주민의 삶의 지침을 다음과 같이 4가지로 정리하여 마을 회관에 게재하였다. ①경노·효친을 우선합니다. ②서로 사랑하며 친절합니다. ③모범인이 되려고 노력합니다. ④마을일에 헌신 참여합니다. ◦ 상도계(喪徒契) : 용장리에는 6개의 상도계(喪徒契)가 반별 등을 기준으로 운영되었다. 그러나 마을 구성원이 점차 감소하고, 각 상도계들이 각자 운영되다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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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리 출신들로 타 지역 거주자들이 중심이 되어 구성한 향우회의 성격을 갖는 모임이다. 현재 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도 가입되어 있다. 청년들로 구성된 모임과 장년들로 구성된 모임이 각각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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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리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놀이는 윷놀이다. 농한기에 시간이 나면 모여서 하는 편인데, 주로 60대와 70대가 참여한다. 게이트볼을 활성화하기 위해 구장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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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보면, 무종교인이 많다. 용장교회가 1950년대에 건립된 용장교회의 영향으로 기독교도가 16가구이다. 불교도는 7가구에 달한다. 유교와 관련된 사우재실(祠宇齋室)로는 현충락씨 64위가 안치된 은모사(恩慕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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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서당터’라는 지명이 현재까지 남아 있는 것으로 볼 때, 마을에 유서 깊은 서당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제 하에서의 서당 교육은 파악할 수 없으나, 해방 뒤에는 마을의 서당이 있었다. 야학은 공식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1955년과 1956년에 동네 사람들에게 한글을 가르쳐주는 활동이 있었다. 초등학교는 처음에는 주로 군내초등학교를 다녔다. 한국전쟁 이후 고군면에 오룡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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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용장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좌익에 의한 학살과 우익에 의한 학살이 모두 발생했는데, 사망자가 백 수십 명에 달했다. 좌익에 의해 희생된 마을 사람들 83명을 추모하는 ‘오호순국지혼(嗚呼殉國之魂)’비가 1951년 10월 마을 입구에 건립되었다. 우익에 의해 희생된 숫자는 30~40명 정도 된다. 이로 인해 마을 사람들은 한국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꺼리는 경향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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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수와 인구수는 표1 과 같이 여느 농촌과 다름없이 꾸준히 감소했다. 1968년에 134가구였으나, 37년 만에 54가구가 감소하여 2005년 현재 80가구(주민등록상)가 거주하고 있다. 최근 10년간은 감소 추이가 둔화되고 있으나, 여전히 줄고 있다. 가구수 감소와 비례하여 마을 인구도 대폭 감소하여 1968년에 688명이었으나, 522명이 감소하여 2005년 현재 166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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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용장리의 운영 조직 -그림- 용장리 운영의 조직 구조 -그림-과 같이, 이장은 개발위원회와 경로회, 상수도를 직접 관리하고, 이장의 지휘를 받아 (새마을)지도자가 부녀회와 상도회를 운영하고 있다. 용장리는 1991년 1월 1일에 8장 28조로 제정된 ‘마을 규약’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2) 마을 총회(동계) 동계는 매년 12월 25~30일에 개최된다. 동계에서는 1년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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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2년 당시의 동안(洞案)으로 보면, 박씨 36가구, 곽씨 20가구, 홍씨 16가구, 김씨 10가구, 조씨 6가구, 양씨 6가구, 하씨 5가구, 이씨 2가구 등 총 101가구였다. 2005년 12월 현재 행정상의 기준인 75세대를 대상으로 성별 세대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장 많은 성씨 순으로 정리하면, 박씨 29세대, 곽씨 21세대, 조씨 8세대, 김씨 6세대, 고씨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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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는 밀양박씨와 무안박씨로 나누어져 있는데, 무안박씨는 4가구이고, 나머지는 밀양박씨이다. 그러므로 박씨는 거의 대부분 혈연관계라고 할 수 있다. 곽씨는 장파와 중파로 나누어지는데, 거의 절반 정도 된다. 조씨는 창녕조씨이고, 김씨는 김해김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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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리(龍藏里)하면 한자로 용을 품는다 또는 감춘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용은 예로부터 임금을 상징하는 말이다. 한양도성에서 천리 먼 길 떨어진 이곳이 이런 이름을 갖게 된 데에는 필시 곡절이 있을 것이다. 군지에는 1772년 남양홍씨가 처음 입향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995년(성종 14)에 진도군을 옥주군(沃州郡)으로 개칭하였다가 1018년(현종 9)에 옥주를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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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리(龍藏里)는 현재 행정구역상 진도군 군내면 속해 있다. 용장리는 법정리이며 동시에 행정리이기도 하다. 용장리는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기왕의 용장리에 세등리 일부를 병합하여 군내면에 편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용장리는『호구총수』(1789)의 기록에 의하면 진도군 군내면(郡內面) 27개 마을 중의 하나였다. 이 자료에는 용정리(龍井里)로 마을 명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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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에 관련된 기술 내용은 『지명총람』(진도군)과 용장마을에서 제작한 자료를 바탕으로 하며, 용장마을 이장인 곽재설(남, 64세) 씨와의 직접 면담조사 및 현장조사를 통해 작성되었다. 관청골[골] 삼별초 당시 삼별초군의 관공서가 있었다고 한다. 구서당터[鄕校] 진등 지나서 있는데, 옛날에 향교와 서당이 있었다고 한다. 노시난골[골] 고려장이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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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오룡장주(五龍藏珠), 오룡재주(午龍爭珠) 이야기 옛날부터 군내면 용장리 경내는 오룡이 장주(藏珠)하고 있는 명당 중의 명당이었다고 전해오고 있었다. 약 200년 전에 일지승(一指僧)이란 이름난 도승(道僧)이 있었는데 나이가 들어 진도로 들어왔다가 노환이 생겨 진도읍내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곤란한 지경에 빠졌는데 모두 못 본 척하였다. 그러나 조그마한 여막(旅幕) 집을 경영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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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쌀을 재배하는 논농사의 경우 휴경 농지를 신청하는 가구수가 늘어나고 있고, 이에 비례하여 경작 면적도 감소 추세이다. 밭농사는 고추, 배추, 대파를 주로 재배하고 있는데, 2004년의 경우 평당 판매가가 폭락하여 재배 작물을 폐기하거나 헐값으로 매도하였다. 1968년에 실시한 마을조사에 의하면, 취업자 산업활동 인구를 대상으로 할 때 농업·임업·수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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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지면적은 2005년을 기준으로 300㏊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논이 55.3㏊, 밭이 53.8㏊, 임야가 190.9㏊로 구성되어 있다. 경지정리는 1990년에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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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목반은 없고 용장영농회가 있다. 용장영농회는 동진농협 소속으로 농업에 종사하는 마을 사람 전체가 가입되어 있다. 영농회 회장은 이장이 겸직을 한다. 영농회 활동의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받아서 1992년 1월 28일과 1998년 2월 12일에 동진농업협동조합장으로부터 표창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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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수지 : 1969년 11월 20일에 마을 저수지인 용장제가 준공되었다. 용장제는 마을 동편에 위치해 있다. 몽이 면적이 15㏊이고 저수량은 45,060t이다. 농업용수로는 4월, 5월, 7월에 군내면 차원에서 또는 마을 차원에서 청소 및 정비를 하고 있다(2005년 기준). 2005년 5월 19일에 마을의 숙원사업이던 기존 용수로 철거 및 확장 신설 사업(저수지에서 큰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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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장 담그기 음력 11월에 메주를 쑤어 띄워 놓았다가 1월에 장을 담는다. ○ 빚 갚기 구정 설이 되기 전에 빚을 갚아야 한다고 하여 섣달에는 빚 정산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 ○ 설점치기 12월에 눈이 많이 와야 이듬해 농사시절이 좋다고 하였다. (3) 생업력 월동배추, 봄동, 대파를 출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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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농업은 농기계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농기계는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것과 농기계를 소유한 사람이 일정한 금액을 받고 관련 농사를 대신해 주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농기계를 임대하여 농사를 짓는 경우, 군내면의 공시 임대 가격을 준수하고 있다. 2006년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경지면적 100평당 쟁기의 경우 밭 전용은 15,000원, 논 전용은 10,000원, 로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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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에 마을회관 1층에 동진농협용장영농회구판장이 개설되었는데,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생필품 구입과 판매는 주로 오일시장, 진도읍장, 우수영장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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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로 : 용장리로 진입하는 도로는 801번 지방도이다. 18번 국도와 연결되어 용장산성 내부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마을 안길의 도로는 차량 통행이 힘들 정도로 좁다. 최근 마을 안길 흙담을 철거하고, 블록 담을 개축하고 있다. ◦ 교량 : 교량으로는 용장교(龍藏橋)가 있다. 용장교는 도로 벽파선(碧波線)에 놓여 있다. 1925년에 혼응토조(混凝土造)로 도로 확장과 동시에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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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마을은 역사와 유래가 깊은 마을이며 현재에도 70가구 이상이 거주하고 있는 비교적 큰 마을이다. 주민들의 주요소득원은 벼농사와 대파, 월동배추 재배 등 농업이기 때문에 주민들의 생활도 농사 주기에 맞추어져 있다. 마을주민들이 공동으로 하는 행사로는 망제, 경로잔치, 동계가 있다. 망제는 음력 1월 14일에 마을의 안녕과 농작물이 잘 자라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지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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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없음 (2) 세시풍속 ○ 중구날 중구날에 산일을 하면 탈이 없다고 하여 이날 묘지를 손보는 집이 있다. (3) 생업력 만생종 벼는 이달에 수확한다. 벼를 수확하고 난 논에 봄동을 심는다. 이달에도 대파 출하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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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 추석노래자랑콩쿠르대회 추석날 밤에는 주민들이 모여서 콩쿠르대회를 했다. 중단된 지 10여 년이 되었다. (2) 세시풍속 ○ 성주고사 농사를 지어 첫 방아를 찧으면 손 없는 날을 택일하여 성주동우에 쌀을 담는다. 성주동우의 쌀은 함부로 하기가 조심스러워서 시장에 내다 파는 집이 많았다고 한다. ○ 추석 추석에는 타지에 나가 있던 일가친척이 모두 모여 햇곡식으로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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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백중 예전에는 백중날도 차례를 지냈다. 이 날은 도랑신네가 백가지 곡식을 정하는 날이기 때문에 논밭에 나가면 안 된다고 하였다. 백중날 여자들은 마당 넓은 집에서 강강술래 등을 하면서 놀았다고 한다. 지금은 백중을 쇠는 집은 없다. ○ 벌초하기 음력 7월 1일부터 벌초를 하기 시작하여 추석 전에 마무리한다. (3) 생업력 이달에는 고추와 옥수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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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산제(충제) 2005년까지 음력 6월 1일에 충제를 지냈다. 충제를 지내는 시간은 밤 11시 이후로 정월 보름에 지내는 망제와 같다. 충제는 병충해를 막기 위해 지내며 장소는 용장마을 뒷산에 위치한 도신난굴이다. 충제를 지내는 날에는 온 주민이 들일을 하지 않고, 빨래하는 것도 금지하는 등 노는 날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에는 지내지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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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2) 세시풍속 ○ 단오날 이날은 ‘오만 풀잎은 다 약이 된다’고 하여 익모초, 인동초, 설모초, 쑥, 녹음방초 등 여러 가지 풀잎을 뜯어서 말렸다. (3) 생업력 망종 즈음에 만생종 벼의 모내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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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 면민체육대회 면민체육대회는 군내면민들의 체육행사이다. 이 행사에 용장마을 주민들도 참여하여 이웃마을 주민과 경쟁을 하면서 단합심을 키우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매년 5월에 치러지지만 올해에는 지방선거 때문에 6월에 했다. (2) 세시풍속 ○ 사월 초파일 불교인은 이날 연등을 달고 절에 간다. 용장마을 사람들은 주로 마을에 있는 용장사를 찾는다. (3) 생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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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 경로잔치 용장마을에서는 농사일이 바빠지기 전인 4월 초에 마을 어른들을 모시고 경로잔치를 한다. 부녀회에서 음식을 장만하고 밴드를 불러 흥겹게 노는 자리이다. (2) 세시풍속 ○ 삼짇날 삼짇날은 제비가 돌아오는 날로 인식되고 있다. ○ 한식 이 때 산일을 하면 탈이 없다 하여 이장을 하거나 묘를 손질하고 개사토를 한다. (3) 생업력 대파를 옮겨 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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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 출향형제 귀향 좌담회 정기적인 행사는 아니지만 2005년 2월 8일 설을 쇠려고 귀향한 출향인사들과 좌담회를 벌였다. 마을의 유래와 역사적 변천상황, 유물유적, 리정현황, 마을의 발전방향 등을 보고하고 출향인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 망제(들제) 용장마을에서는 음력 1월 14일 밤 11시에서 새벽 1시 사이에 망제(望祭)를 지낸다. 망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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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행사 정기적인 행사는 아니지만 농삿일이 한가한 이 달에 관광을 가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돈을 내기도 하고 마을기금으로 다녀오기도 한다. (2) 세시풍속 ○ 하루달날(하구달날) 옛날에는 이날도 차례상을 차리는 집이 있었다. 이날은 사람날이라고 하여 잘 먹고 놀았다. 또한 손끄스럼 지진다고 하여 콩을 볶아 먹었다. 그리고 짚벼늘 속에 콩을 넣어두면 그해 농사가 잘 된다고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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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면적은 575.5㏊이다. 논은 21.3㏊, 밭은 28.2㏊, 그리고 임야는 526㏊를 차지하고 있다.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해마다 바뀌기 마련인데, 2002년 7월에 조사된 결과를 통해 토지 소유형태를 살펴보면, 28농가가 밭 21.3㏊, 논 28.2㏊ 등 총 49.5㏊의 농경지를 경작하고 있다. 호당 경지면적은 1.77㏊(5,310평)으로 진도군의 호당 경지면적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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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로 : 진도는 진도군의 초고봉인 첨찰산 기슭 서남쪽의 의신천 상류 하천을 따라 형성되어 있어서 비가 조금만 많이 와도 교통이 쉽게 차단되곤 했다. 교통난을 해결하기 위해 도로 개설과 관련된 부역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주요 도로는 ‘사천선(斜川線)’이다. 이 도로는 1940년에 개통되었는데, 논수동(論水洞)을 기점으로 하여 쌍계사(雙溪寺)를 종점으로 했다. 1982년 새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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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에 실시한 마을조사에서 의하면, 취업자 산업활동 인구를 대상으로 할 때 농업,임업,수렵업 종사자는 남자가 122명, 여자가 123명으로 총 245명이었다. 서비스업 종사자가 남자 2명이었고, 거의 대부분 농업에 종사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2006년 2월 현재는 농가가 30가구, 비농가가 29가구로 크게 바뀌었다. 그리고 농업인은 82명이고, 비농업인은 36명이다.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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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까지 사천리는 자급자족의 생산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은 농업을 주업으로 했으나, 사람별로 특화된 생산을 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강월인은 기름 짜는 일을, 허문찬, 허수찬 형제는 솥을 수리하는 일을, 박두주는 방아를 찧는 일을, 박두주와 진만수는 리어커를 끄는 일을, 박남조는 비석 등 석물 제작을, 김태중의 모친은 두부 제작을, 유복산의 부친은 지게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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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수지 : 1968~1969년경 한해가 들자 국비로 ‘사천제’라는 명칭으로 완공했다. 완공 이후 마을에서 운영했으나, 몇 해 되지 않아 홍수로 저수지가 훼손되었다. 저수지를 보수하기 위해서는 백 몇십만 원의 보수비가 필요했으나, 이를 부담하기 어려워 관리 및 운영권을 농조로 넘겼다. 사천제는 몽리면적이 31㏊이고, 92,228t을 저장할 수 있는데, 사천 제1저수지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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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목반 현재 표고버섯을 재배하는 가구는 7가구이다. 작목반은 구성되지 않았고, 재배를 많이 한 사람이 수합하여 출하하는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구기자 재배 농가는 현재 12가구로 점차 감소하고 있다. 운림천 작목반을 구성하여 운영하고 있다. 1990년대 초부터 구기자 병충해(탄저병)가 돌기 시작하면서 수확량이 감소하고, 일손이 많이 필요해서 점차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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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들은 진도읍 장날인 2일과 7일에 생산품을 판매하고, 소비품을 구입하고 있다. 의신면에도 1일과 6일에 장이 서기는 하지만 잘 이용하지 않는다. 도로가 놓이기 전에는 절재를 넘어 진도읍으로 갔으나, 경운기의 보급 이후 왕무덤재를 넘어 이동했다. 마을까지의 길이 포장되고 버스가 개통되면서 버스가 주요 이동수단이 되었다. 필요한 물품은 진도읍에 있는 농협연쇄점이나 대형 마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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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리(斜上里)는 현재 행정구역상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에 속해 있는 마을이다. 사상마을의 법정리인 사천리(斜川里)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기왕의 사상리와 사하리, 영산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명명된 마을로, 이때 의신면에 편입되었다. 사상마을은 사천마을에서 분화되었다. 현재 사천마을은 ‘빗끼내, 빗내’로도 불린다. 『호구총수』(1789)에 보면 사천마을은 의신면(義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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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당산제에 얽힌 이야기 빗기내 당산제를 모시던 당산목은 수백 년 된 팽나무로 100여 년 전에 고목 밑부분이 썩어 바람에 쓰러져 고사되었다. 썩어 있던 팽나무에서 버섯이 나와서 최석 씨의 할아버지인 최광윤(당시 30세) 씨가 그 버섯을 따먹고 정신이 이상해져 ‘버섯 버섯’하고 다니다가 세상을 떴다고 한다. 그 자리에 다시 팽나무가 자라나 그 당산목에 해마다 제를 모신다. 그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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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에 관련된 기술 내용은 『지명총람』(진도군)과 『사상마을지』를 기본 자료로 하여 작성하였고, 이희춘(남, 사상마을 새마을지도자) 씨의 도움을 받았다. (골 / 굴) 개락굴 사하리에서 사상리로 가는 중간쯤의 우측 산이다. 옛날에 어린이가 죽으면 이곳에 돌(독)담 장사를 지냈다. 거친들고랑 봉화골 입구 산길 북측 주변을 일컫는다. 굴등 사구지재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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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리 사상마을은 여느 마을에 비해 마을행사가 많은 편이다. 1월 1일 새해 해맞이 행사를 시작으로 음력 1월 15일에 열리는 정월대보름 세시풍속 놀이, 5월의 경로잔치, 추석날의 한가위 노래자랑, 12월의 동계와 김장 나누기 등 다채로운 행사들이 열리고 있다. 이러한 행사들이 활발하게 전개되는 데에는 사상마을 청년회와 새마을봉사대의 역할이 큰 것으로 보인다. 마을행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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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 행사 - 없음 (2) 세시풍속 -중구날 사상마을에서는 중구날에도 산일을 한다. 이날 산일을 하면 탈이 없다고 전하기 때문이다. -이엉 얹기 지금은 초가집이 없지만 1960대까지만 해도 초가집이 많았다. 그래서 이달에는 이엉 얹기가 중요한 세시행사였다. 볏짚을 엮어서 마람을 엮어 새로 지붕을 얹는 것이다. (3) 생업력 이달에는 전달에 이어서 구기자를 수확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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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 행사 -효도관광 2004년부터 11월에 사상새마을봉사대에서 행사를 주관하여 사상리 경로당 회원을 대상으로 효도관광을 다녀오고 있다. 2004년에는 대전, 온양, 양산, 사천시 등을 관광하였다. 이 행사는 진도군의 시책인 ‘노인공경군’ 방침에 따라 진도군에서 일부 지원금을 받기도 했으며 독지가의 후원을 받기도 했다. (2) 세시풍속 -시제 모시기 10월 상달이 되면 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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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 행사 -총회(대동계) 매년 12월 22일 총회(대동계)를 개최한다. 대동계는 마을의 최고 의결기관으로서 이장이 의장이 되어 회의를 진행한다. 1년간의 마을의 수입금과 지출금을 보고 결산하고 새로운 이장을 선출한다. -김장 나누기 사상마을 새마을봉사대와 부녀회에서 주관하며, 연말을 맞이하여 독거노인 가구 및 진도 기상대에 김장김치를 전달하는 행사이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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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 행사 -새해 해맞이 ▷일시 : 1월 1일 해 오르는 시각 ▷장소 : 첨찰산 정상 사천리에 위치한 첨찰산은 진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매년 1월 1일,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새해 첫날의 해돋이를 구경하며 한해의 소원을 기원한다. 2005년 1월부터 사상마을 새마을봉사대원을 중심으로 이곳을 찾는 관광객에게 구기자차, 떡국, 돼지고기를 대접하는 행사를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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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 행사 -정월대보름 세시풍속 놀이 ▷일시 : 음력 정월대보름(음력 1월 14일~1월 15일) ▷장소 : 운림산방과 사상마을 일원 정월대보름인 음력 1월 14일부터 15일 양일간 치러지는 마을행사로 사상마을 새마을봉사대에서 주관한다. 행해지는 행사로는 당산제, 달맞이, 답교놀이, 쥐불놀이, 농악놀이, 용줄다리기, 전통혼례, 달집 태우기 등이 있다. 전통혼례, 용줄다리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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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 행사 - 없음 (2) 세시풍속 -하루달날 음력 2월 1일에 예전에는 선영께 밥을 올렸으나 지금 그렇게 하는 집은 없다. 이 날은 산에 가서 칡을 캐다 먹는다. 그리고 또 콩을 볶아 먹는다. 전에는 정월보름에 세워두었던 유지지를 이때 철거하여 이것으로 콩을 볶기도 하였다. 콩을 볶을 때 “손 꺼시럼 지지자, 손 꺼시럼 지지자.”하며 콩을 볶는다. 만약 정월에 마을에 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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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 행사 - 없음 (2) 세시풍속 -삼질날 삼질날은 제비새끼가 돌아오는 날로 인식되고 있다. 특별하게 행하는 의례는 없다. -청명, 한식 이 때 산일을 하면 탈이 없다하여 이장을 하거나 묘를 손질하고 개사토를 한다. (3) 생업력 이 달에 못자리를 한다. 볍씨를 담아 논에다 갖다 두고 비닐하우스를 씌운다. 그리고 모가 잘 자라도록 물을 준다. 이 달에 고추와 옥수수를 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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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 행사 -경로잔치 ▷일시 : 5월 초 ▷장소 : 마을 복지회관 매년 5월 초에 마을 청년회와 부녀회에서 주관하여 경로잔치를 하고 있다. 돼지고기 등 음식을 장만하여 대접하고 합동배례를 하며, 국악인을 초청하여 공연을 하는 등 노인들을 위한 행사이다. (2) 세시풍속 -4월초파일 사상마을에는 쌍계사라는 절이 있어 매년 4월 초파일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 마을을 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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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 행사 - 없음 (2) 세시풍속 - 없음 (3) 생업력 이 달에는 주로 밭작물을 수확한다. 보리, 감자, 마늘, 양파를 수확한다. 이 달에 고구마를 심고 조를 파종한다. 모내기를 한 논에 돋은 풀을 제거하기 위해 제초제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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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 행사 - 없음 (2) 세시풍속 -충제 지금은 중단되었으나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음력 6월 1일에 동네 앞산에 있는 바위에 음식을 차려놓고 충제를 지냈다. 농사지을 때 병충해가 없기를 기원하는 의례이다. -유두 유두에는 동쪽에서 흐르는 맑은 개울에 가서 머리 감고 목욕하면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전한다. 이날 유두국수를 먹고 햇감자도 먹는다. 예전에는 각 가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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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 행사 -없음 (2) 세시풍속 -백중 음력 7월 15일은 백중이다. 이날은 명절로 여겨졌으며 간단히 제물을 갖추어 조상께 차례를 모셨다. 또한 이 날은 집안일을 돕는 일꾼들에게 하루를 쉬게 한다 하여 ‘머슴날’이라 하였다. 백중날을 전후하여 농사일이 거의 끝나므로 호미를 씻어둔다고 하여 ‘호미씻이’한다고도 한다. 1960년대까지는 보릿가루를 반죽해 소다와 당분을 친 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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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요 행사 -한가위노래자랑 ▷일시 : 음력 8월 15일 ▷장소 : 사천리 광장 및 운림산방 주차장 한가위 노래자랑은 매년 추석날 저녁에 행해지는 마을축제이다. 1989년에 제1회 한가위 노래자랑이 개최된 이후로 한 번도 빠짐없이 지속되고 있다. 명절을 맞아 고향을 찾은 친지들과 주민들이 함께 어울려 노래와 장기자랑으로 즐겁고 흐뭇한 시간을 보낸다. 행운권 추첨을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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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을 총회(대동계) 대동계는 진도의 최고 의결기구이다. 대동계 의장은 마을 이장이 겸직한다. 회의는 매년 12월 22일 동짓날 개최되며, 1년 동안의 마을 수입금과 지출금을 결산 보고하는 것이 주요 안건이다. 또한 이 모임에서 새로운 이장을 선출한다. 2001년 이전에는 이장의 임기가 1년이었으나, 이후에는 2년으로 늘어났다. 이장세는 춘곡과 추곡 때 일정량의 보리와 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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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당 마을 단위의 대표적인 교육기관이었던 서당은 조선 말기 3대 한학자이자 진도의 최후 유배자인 무정 정만조(鄭萬朝)[1858~1936]가 소치 선생의 아들인 미산 선생의 청에 의해 훈장으로 부임하면서 개설되었다. 이 서당의 명칭은 관란제(觀瀾齊)라고 칭했는데, 이는 흐르는 물의 순리를 깨우친다는 뜻이었다. 관란제는 현재의 서당골에 위치해 있었다. 지금은 터만 남아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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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도계: 진도에는 계(契)가 마을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계는 크게 ‘큰 상도계’와 ‘작은 상도계’로 나뉘어져 있었다. ‘큰 상도계’는 1931년에 처음 조직되었으며, 조직 당시 참여자는 김준홍 외 21명이었다. 한편 ‘작은 상도계’는 1972년 12월에 조직되었다. 참여자는 박두주 외 27명이었다. 1985년에는 김영봉과 박종두가 전입하여 가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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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가 건립되기 전 한해가 빈번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사건은 없었다. 한국전쟁 전후 시기에는 첨철산에서 빨치산이 활동했다. 부역혐의로 경찰과 청년단에 의해 마을 사람이 몇 명이 죽었고, 공무원을 한 사람이 좌익에 의해 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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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 현재 총 15개 성씨 59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주요 성씨로는 무안 박씨(8가구), 신안 주씨(8가구), 김해 김씨(6가구), 진주 강씨(5가구), 원주 이씨(4가구), 밀양 박씨(3가구), 연안 차씨(2가구), 유씨(3가구), 동복 오씨(2가구), 기타 성씨가 18가구 이다. 과거에는 박씨와 주씨가 매우 많았으나, 점차 다성촌으로 바뀌었다. 성씨를 넘어 친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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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수와 인구수는 (표 1)과 같이, 감소하기는 했으나 농촌의 일반적 추이에 비하면 완만한 감소라고 할 수 있다. 가구수는 1968년 조사에서는 79가구였는데, 2005년 현재에는 63가구(주민등록상)로 조사되어, 크게 줄어든 것은 아니다. 최근 10년 사이에는 거의 변화가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인구는 크게 줄었다. 1968년에는 463명이었으나, 313명이 줄어들어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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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운림산방과 남종화풍 화맥 진도에 있는 운림산방(雲林山房)은 소치(小痴) 허련(許練)[1808~1893]이 설치한 화실이다. 허련은 조선 말기 조희룡(趙熙龍), 전기(田琦) 등과 더불어 김정희(金正喜)의 문하에서 서화를 공부했다. 이를 통해 남종문인화의 필법과 정신을 읽혀 남종화풍을 토착화시킨 화가이다. 그는 1856년 운림산방을 개설하고, 제작활동에 몰두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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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인접한 이웃끼리 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놀이) 젊은 사람들이 많은 관계로 나이를 떠나 마을 사람들끼리 장기와 바둑을 즐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종교) 마을 사람들의 대부분은 무신론자이고, 쌍계사가 있기 때문에 불교 신자가 약간 있다. 기독교 신자는 2가구이다. 예전에는 단골이 있었으나, 요즘은 무속신앙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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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가 거주하고 있는 가구는 10가구로 오씨, 진씨, 박씨, 유씨, 이씨이고, 사촌간에 거주하는 가구는 7가구로 박씨, 강씨, 이씨이다. 5촌간에 거주하는 가구는 8가구로, 이씨와 차씨, 박씨이며 6촌간에 거주하는 가구는 2가구로 강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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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혼권은 특별하게 지역적 선택이나 차별이 없었다. 육지 사람들과 결혼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고, 대부분 관내에서 이루어졌다. 같은 마을 내에서의 혼인관계를 맺고 사는 가구는 총 5가구이다. 이 마을로 시집을 많이 온 마을은 의신면 초사리, 망길리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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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리는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에 속하는 지역으로서, 내가 비껴 흐르므로 비끼내, 또는 빗내라고도 하고, 이를 한자로 사천(斜川)으로 표기한 것이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사상리와 사하리, 논수동을 합쳐 지금의 사천리가 되었다. 진도읍에서 군도9호를 따라 왕무덤재를 넘어서, 논수동에서 좌측으로 군도15호를 따라가면 나오는 사천리는, 진도읍 남동방향으로 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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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전통회화의 바른 이해에 있어 넘어야 할 산과 선결되어야 할 어려운 점은 한 둘이 아니다. 이 중에서도 힘든 난제의 하나는 우리의 단절되고 달라진 미감에 대한 인식이다. 문인화 이해의 코드이기도 한 격조와 기량의 상관관계를 들 수 있다. 시차에 따른 사고와 심미안의 차이는 잠시 논외로 하더라도 격조라 하는 것은 기실 가시적으로 표현되어 드러나는 것이 아니기에, 화가의 내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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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은 깊은 산중에 있어 매번 봄이 가고 여름이 다가올 무렵이면 푸른 이끼는 들에 깔리고 떨어진 꽃은 길바닥에 가득하다. 사립문에는 사람 발자국 소리가 없고 소나무 그림자는 길고 짧으며 새 소리는 오르내려 낮잠도 만족한다. 이윽고 샘물 길어와 솔가지 주어다 차를 다려 마신다. 생각나는 대로 주역, 국풍, 좌씨전, 이소, 태사공서와 도연명과 두자미의 시, 한유와 소식의 글 수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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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에 확인되거나 알려져 있던 화단에서의 명성과는 별개로 조선 말기 화단에 있어 새롭게 조명된 매우 긍정적이며 값진 연구 성과와 업적의 예로 김수철과 홍세섭의 발굴을 들 수 있다. 이들에 대해선 일찍이 해방 후 한국미술사 연구의 일세대로 한국미술사 특히 회화사에 있어 전통적인 감식안(鑑識眼)을 바탕으로 초석을 세운 최순우(崔淳雨)[1916~1984], 이동주(李東洲)[19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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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련의 한 세대 후배이면서 상반된 성격이지만, 조선 말기 화단에서 중앙에서 활동이 두드러진 장승업은 조선왕조 전체를 통해 뽑힌 3대 화가 중의 한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에 큰 반대가 없긴 하지만, 이와 같은 오원 신화에 대해 이견이 없는 바는 아니다. 불과 백 여 년 전에 활동한 화가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그리 자세한 편은 아니며, 꽤나 신비화된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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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류의 오랜 역사가 증거하듯 영원한 승자는 없다. 그것은 마치 유아기에서 노년에 이르는 인체의 변화와도 다를 바 없다. 어느 시대나 그러하듯 번성이 있으면 절정에 이어 쇠락이 따른다. 조선왕조의 끝자락인 19세기 후반부터 1910년까지 60년 남짓한 시기를 미술사학자들에 따라서는, 3분법에서는 18세기와 함께 후기에 포함시키거나, 세분한 4분법에서는 조선 말기 화단으로 분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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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시대인 오늘날 우리 삶에 있어 그림과 글씨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중국 춘추시대 대사상가로 유교의 개조인 공자(기원전 551~479)는 종이가 발명되기 훨씬 이전『논어』에서 ‘흰 바탕을 칠한 뒤 그림을 그리는 것[繪事後素]’을 이야기했고 『주례(周禮)』에서도 ‘무릇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을 칠한 뒤에 한다[凡畵繪之事後素功]’는 언급이 보인다. 새하얀 종이와 검은 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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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련의 긴 화맥은 제자와 집안의 대물림으로 오늘에 이른다. 이런 점에서 다른 지역과 구별된다. 남도라는 지역과 조선 말기라는 지리적,시간적 범위를 넘어 20세기 근,현대로 이어진다. 대원군에게서 미방(米舫)이라는 호를 하사받은 김익로(金益魯)[1845~1915]는 소치와 초의에게 그림을 배웠다. 소치의 넷째 아들 허형은 일찍 타계한 형의 호인 미산(米山)을 물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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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시마을의 전체 경지면적은 논이 22.2㏊, 밭이 23.4㏊로 총 45.6㏊이다. 그리고 임야가 222.2㏊이다. 십일시마을 내에 포함된 경지면적은 적으나 농업종사자가 많은 이유는 소포만 간척지에서 농사를 짓기 때문이다. 실제로 십일시마을 거주자의 다수가 소포만 간척지에 농지를 소유하고 농사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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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량:십일시마을에는 총 3개의 다리가 있다. 가장 중요한 다리는 십일시교로 1932년 진팽선(珍彭線)에 놓였다. 연장 36m, 교폭 6m의 혼응토조로 건설되었다. 이 다리는 한동안 십일시마을과 진도읍을 연결하는 유일한 다리였다. 1994년에 새로 건설된 다리는 본래 다리가 있던 곳에서 약간 옆으로 이동하여, 연장 30m, 교폭 10.5m로 개축되었다. 또다른 다리는 홍수가 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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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에 이루어진 조사에 의하면, 십일시마을의 취업자는 총 275명이었다. 취업자 가운데 남자는 131명, 여자는 144명이었다. 농업,임업,수렵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127명으로 남자가 50명, 여자가 77명이었다. 전기,가스,수도,위생시설 서비스업 종사자는 53명으로, 남자가 30명, 여자가 23명이었다.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79명으로, 남자가 36명, 여자가 43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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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상가번영회와 시장연합회 등이 결성되어 활동을 했으나, 상가번영회는 1990년 이전에 해체되었고, 시장연합회는 활동을 중지했다. 농업인은 있으나, 작목반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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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적절한 수원의 공급이다. 십일시마을에는 저수지가 없다. 이 때문에 마을사람들은 농사와 관련한 물을 간척지의 중간에 흐르는 담수와 수장동 저수지에서 공급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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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과 장옥:간척사업을 통해 현재의 장터[석교리 245-1번지]가 개설된 것은 1964년 10월 1일이었다. 부지면적은 2,937㎡이고, 매장면적은 396㎡이다. 이때 시장 내의 상설점포수는 12개였으나, 현재에는 3곳만 영업하고 있다. 장터의 장옥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러나 인구가 감소하고 교통이 좋아지면서 상인과 소비자가 점차 감소하고 있다. 상가:영업 중인 상설점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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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십일시마을에 형성된 장시는 10일에 한 번씩 열렸으나 장시가 번성하면서 4일에도 장이 열린다. 장이 번성한 이유는 임회면과 지산면, 조도면 사람들이 주로 이 시장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이곳 주변 사람들에게 진도읍시장은 거리가 멀뿐더러 교통도 불편했다. 따라서 외부에서 상인들이 많이 들어왔고, 우시장도 크게 번성하여 시장의 발전을 촉진했다. 그러나 농업의 기계화로 우시장이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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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시마을은 현재 행정구역상 진도군 임회면 석교리에 속해 있다. 석교리는 본래 진도군 임이면(臨二面)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돌다리가 있다고 하여 독다리, 또는 석교로 불렸다. 『호구총수』(1789)에는 석교리가 임회면(臨淮面)에 속하며, 상석교리(上石橋里)와 하석교리(下石橋里)로 나누어져 있다. 또한 석교의 지명과 관련된 석교장(石橋場)이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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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장터[시장]:새장터가 형성되기 이전의 장터로, 새장터가 생기면서 구장터로 부르고 있다. 현재도 새장터와 함께 4일과 10일에 장이 선다. 콧대바위[산]:봉화산을 달리 이렇게도 부른다. 봉화산의 정상에 바위무더기가 있는데, 바위를 아우른 산의 형상이 사람의 콧대처럼 생겼다고 붙인 이름이다. 봉화산[산]:십일시마을 서쪽에 있는 산으로, 학교까끔 뒤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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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시마을은 장터상인들이 중심이 되어 이루어진 마을이다. 그러므로 마을사람들에게는 장이 서는 4일(4일, 14일, 24일)과 10일(10일, 20일, 30일)이 가장 활기있는 날이다. 따라서 일년이나 한달을 주기로 움직이는 여느 마을과는 달리 장이 서는 4일과 10일을 주기로 순환되는 마을이라고 할 수 있다. 사일장과 십일장 중에서 역사가 더 오래된 십일장이 현재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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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⑵ 세시풍속 -이엉얹기 지금은 초가집이 없지만 1960대까지만 해도 초가집이 많았다. 그래서 이달에는 이엉얹기가 중요한 세시행사였다. 볏짚을 엮어서 마람을 엮어 새로 지붕을 얹는 것이다. 십일시장터의 장옥도 1960년대 이전에는 초가였다고 한다. 지붕을 개량한 연도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제보자를 만날 수는 없었으나, 대부분의 연로자들은 한국전쟁 이후 슬라브로 된 장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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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⑵ 세시풍속 -시제모시기 10월에는 각 문중별로 시제를 모신다. 제각이 있는 문중에서는 제각에서 모시지만 그렇지 않은 문중에서는 큰집에서 시제를 모신다. -메주쑤기 이달에는 메주콩을 삶아서 메주를 쑨 후 짚으로 엮어서 메주를 띄운다. ⑶생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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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동계 매년 12월 31일에 동계를 개최한다. 동계에서는 일년간의 마을의 수입금과 지출금을 보고 결산하고 새로운 이장을 선출한다. 또한 새로 이사온 사람들은 이날 동계회원으로 가입한다. 십일시마을에서는 1943년부터 작성한 동계 문서가 전해오고 있다. ⑵ 세시풍속 -동지 이날 팥죽을 쑤어먹는다. 전에는 집안 곳곳마다 팥죽을 뿌리기도 했으나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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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⑵ 세시풍속 장담그기 음력 11월에 메주를 쑤어 띄워놓았다가 1월에 장을 담는다. ⑶ 생업력 이달에 대파와 월동배추, 봄동을 출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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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⑵ 세시풍속 -설날(음력 1월 1일) 설날에는 차례를 지낸다. 십일시마을에서는 섣달 그믐날 밤 12시가 넘어서 차례상을 차리는 집도 있고 설날 이른 아침에 차례상을 차리는 집도 있다. 차례상을 차리는 시간은 집집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고 한다. 차례음식은 일반 기제사와 같은데 메 대신 떡국을 올린다는 점이 다르다. 일부 집안에서는 메와 떡국을 함께 올리기도 한다.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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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⑵ 세시풍속 -하리드리날 옛날에는 이날 아침에도 차례상을 차리는 집이 있었다. 이날 아침 집안에 뱀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방비책으로 아이들이 앞에서 왼새끼로 꼬은 새끼줄을 끌고 가면 뒤따르는 아이들이 “뱀땔자, 뱀땔자.” 하면서 새끼줄을 쳤다고 한다. 또 이날에 손끄스럼이 일어나지 마라고 콩을 볶아먹었다고 한다. 하드렛날 먹는 칡은 약이 된다고 하여 이날 칡을 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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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정기적인 행사는 아니지만 부녀회나 노인회에서 주관하여 봄에 여행을 가기도 한다. ⑵ 세시풍속 -삼짇날 삼짇날은 제비새끼가 돌아오는 날로 인식되고 있다. 이날 흰나비를 보면 그해에 상자(喪者)가 된다는 말이 있었다. -청명, 한식 이때 산일을 하면 탈이 없다 하여 이장을 하거나 묘를 손질하고 개사토를 한다. ⑶생업력 4월 15일경 대파를 심는다. 조생종 벼의 경우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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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경로잔치 십일시마을에서는 2년에 한 번씩 경로잔치를 했으나 3년 전부터 중단하고, 5월 8일 어버이날 경로당에서 간단히 다과를 준비해서 노인들을 대접하고 있다. 이때 들어가는 비용은 마을기금에서 충당한다. 마을기금은 마을에 초상이 났을 때 운상계에서 ‘천돈’ 명목으로 받은 것을 적립한 것이다. ⑵ 세시풍속 -4월 초파일 불교신자들은 이날 연등을 달고 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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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⑵ 세시풍속 -단오날 이날 익모초, 쑥 등 여러 가지 풀잎을 뜯어서 말리면 약이 된다고 하였다. ⑶생업력 망종 즈음에 만생종 벼의 모내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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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⑵ 세시풍속 -유두 유두는 ‘노는 날’ 이라고 하여 밀개떡, 보리개떡을 만들어 먹고 놀았다. 이날은 도랑신네가 일년농사를 결정하는 날이어서 밭에 가면 안 된다고 했다. 예전에는 이날 차례를 지내는 집도 있었으나 지금은 유두를 쇠는 집이 없다고 한다. -복날 삼복에는 시집간 딸들이 복달음을 하기 위해 음식을 장만하여 친정을 찾기도 했다. ⑶ 생업력 이달에는 벼의 생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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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면민체육대회 8월 15일 근경에 면에서 주관하는 면민체육대회가 개최된다. 면민체육대회에는 임회면 사람들이 참여하여 축구, 배구, 달리기, 씨름 등 운동경기를 벌인다. 마을행사는 아니지만 주민들이 함께 참여하여 단합심을 키우는 행사라고 할 수 있다. ⑵ 세시풍속 -백중 예전에는 백중날도 차례를 지냈는데, 백중장을 보기 위한 사람들로 십일시장의 장터가 미어질 정도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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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주요행사 -추석노래자랑 십일시마을은 임회면의 중심지로서 추석날 저녁에 개최되는 추석노래자랑에는 마을사람들뿐만 아니라 다른 마을주민들도 참여하고 있다. 마을청년회가 주관하는 이 행사는 1990년대에 시작되었는데, 인기가수를 초청할 정도로 성대하게 열렸다. 1990년대 후반에 중단되었으나 2005년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명절을 찾아 고향을 찾은 임회면 사람들이 함께 어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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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을총회(동계) 십일시리는 동계와 마을총회가 하나로 운영되고 있다. 동계의 정기회의가 곧 마을총회인 것이다. 동계는 1926년에 마을 경조사를 함께 치르기 위해 처음 결성되었으나, 기록은 1947년부터 남아 있다. 각지의 상인을 비롯하여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십일시시장으로 모여들었고, 이들 가운데 나정순외 53명이 동계를 조직했다. 동계의 회칙 중에 시대적 흐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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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시마을에 거주하는 어린이들은 대부분 석교초등학교를 다닌다. 석교초등학교는 1919년 11월 15일에 석교공립보통학교로 설립인가를 받아 개교했다. 1909년에 개교한 진도초등학교에 이어 진도에서 두 번째로 설립된 학교이다. 십일시마을에는 1964년 12월 19일에 설립된 석교중학교가 있으며, 1982년 3월 10일에 설립한 석교고등학교가 있다. 많은 학생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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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명으로 배구동우회를 결성하여 종종 배구를 하고 있다. 한때 당구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근래에 들어서는 대부분의 당구장이 폐업을 할 만큼 당구를 즐기는 사람들이 줄어들었다. 윷놀이는 명절 때나 마을에 초상이 났을 때 가끔 이루어진다. 2005년에 게이트볼경기장이 완성되었으나, 즐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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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시마을은 인근 주변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출신지역별로 계를 하고 있다. ‘지산면계’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현재 남자 11명, 여자 10명을 회원으로 하고 있는데, 남자계는 1990년대 중반에 조직되었고, 여자계는 2001년에 조직되었다. 이 계의 결성목적은 친목도모와 목돈마련, 경조사 챙기기 등이다. 남자는 일년에 한 번, 여자는 두 달에 한 번 모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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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현재의 시장터는 1962~1963년경 지산면과 임회면 사람들이 부역으로 제방을 쌓아 만들었다. 그전의 시장터는 현재 상가들이 들어서 있던 곳이다. 시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시장터의 면적을 넓히기 위해 제방을 쌓은 것이다. 새롭게 장터가 마련되면서 시장이 크게 번성했는데, 마을에 텔레비전이 보급될 무렵인 1970년대 중반에는 시장을 보러온 사람들이 많아 걸어다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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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시마을은 1890년경 밀양손씨 손화삼이 임회면 연동에서 거주하다가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현재 이 마을에 거주하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많은 성씨는 밀양박씨, 김해김씨, 경주이씨, 전주이씨 등이고, 이외에 강씨와 장씨, 최씨가 있다. 밀양박씨가 전체 성씨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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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시마을은 면소재지이기 때문에 다섯 군데의 의약시설이 있다. 병원시설로는 임회보건지소가 있고, 1990년대 초에 개원한 그린의원과 2005년에 개원한 전남의원이 있다. 약국으로 매정약국과 구분실한약국이 있다. 진도군에 있는 총 11개의 약국 가운데 2개가 십일시마을에 있다는 점과, 진도읍 이외에 개원한 총 5개의 병원 가운데 2개가 십일시마을에 있다는 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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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회면 십일시마을은 석교리에 포함된 행정리의 하나이다. 석교리는 십일시, 고방, 석교, 구분실을 포함한 법정리의 명칭이다. 따라서 석교리라는 명칭은 때로는 행정리로, 때로는 법정리로 사용되고 있다. 십일시마을은 임회면의 중심지이자, 면소재지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마을이다. 1968년에는 106가구였으나, 2005년에는 188가구로 가구수가 늘어났다. 일반적인 농촌마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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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교리에는 본래 4개의 교회가 있었으나, 현재는 석교중앙교회, 임회제일교회, 제칠일안식일석교교회가 있다. 십일시마을에는 석교중앙교회가 위치해 있다. 교회는 많지만 기독교인은 많지 않다. 천주교회인 석교 공소가 1985년 10월에 신축, 축성되었으나 지산면과 통폐합되었다. 유교와 관련한 석교리의 사우재실(祠宇齋室)로는 밀양박씨 휘식 36위가 안치된 모충사(慕忠祠)와 밀양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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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5~6 그룹의 친구관계가 있다. 친분이 돈독한 사람끼리 모이는데, 나이는 고려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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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시마을에는 수대를 거주한 토박이가 거의 없다. 오랫동안 거주했던 사람들도 2~3대에 불과하다. 장사를 목적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모여 십일시마을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을 내에서 혈연 혹은 친척관계가 그다지 형성되어 있지 않다. 이로 인해 다른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형제끼리 계를 하는 사람들은 있으나 마을에서 형제계를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약 20가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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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진도군 내에서 이루어졌는데, 특히 지산면과 임회면이 많다. 포구를 끼고 있어 조도면 사람과의 결혼이 다수 성사되었다. 해남사람과의 결혼이 이루어지기는 했으나 그다지 많지 않다. 그래서 가까운 인근 지역 거주자끼리 사돈관계를 맺고 있는 경우가 많다. 특정 지역과의 결혼이 금지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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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시마을은 진도군 서남부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석교리의 한 마을로, 절대적 위치는 남위 34도 24분 38초와 동경 126도 11분 29초 지점(마을회관)에 해당한다. 임회면과 지산면의 경계지점으로 임회면에서는 서쪽의 중앙지점이고, 동쪽의 지산면에서는 서쪽 끝 경계지점에 위치한다. 십일시마을은 진도군에서 남쪽 팽목항으로 이어지는 18국도를 따라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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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이 발달하면서 진도 역시 광주, 목포 등 도시와의 연결이 편리해졌다. 이와 함께 농수산물은 대도시로 직접 출하되고, 유통업자들이 자가용을 이용해 생활필수품을 소비자의 가정으로 직접 배달하면서 장시의 기능이 현저히 쇠퇴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군 단위의 농수산물집하장은 소량 다품목 생산에 의존하는 영세한 소농의 생산물을 공동 출하하고, 규격 상품화를 촉진하며, 생산자의 조직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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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사회적 동물로서 군거본능에 따라 마을을 형성하게 된다. 주거지 선택에서 중요한 고려사항은 토지로부터 보장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정주농업이 가능한가의 여부일 것이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살기 좋은 곳의 조건으로 지리,생리(生利),인심,산수를 들고 있는데, 생리가 바로 정주농업의 조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우선 땅이 기름져야 하고, 다음으로 배와 수레, 사람과 물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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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관 시장은 물자의 교환이 이루어지는 영역(market), 또는 그러한 상호작용이 행해지는 장소(marketplace)를 말한다. 구체적인 장소를 지칭하는 공간적인 측면에서의 시장은 저자, 장시, 장문, 장터, 장, 시라고도 한다. 조선시대에는 정기시장을 장시라고 지칭한 경우가 많았으며, 지방에 있는 시장은 향시라고 하였다. 장시란 시장 중에서 일주일이나 순(旬, 열흘)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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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이 지역 물품을 상호 교환하는 장시는 과거 한때 지역의 중추적인 중심 역할을 했으며, 장날은 인근지역 사람들의 잔칫날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산업화,도시화의 진행과 함께 장시는 양적, 질적으로 쇠퇴를 거듭했다. 장시가 쇠퇴할 수밖에 없었던 주요 요인으로는 소득 증대, 교통,통신의 발달, 대중매체의 확산, 농산물 및 공산품 유통구조의 변화 등을 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