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중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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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청룡리 청룡마을에 있는 못에 얽힌 이야기. 「기생못 전설」은 고려 후기 배중손이 이끄는 삼별초군이 승화후 온[왕온]을 왕으로 추대한 뒤, 진도를 본거지 삼아 몽골과 맞서 싸우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이다. 1979년 7월 30일 진도군 의신면 청룡리 청룡마을에서 지춘상이 조사하였고, 제보자는 그 마을의 이덕순(남, 82세)이다. 삼별초군이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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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용장리에 있는 바위에 얽힌 이야기. 망바위전설은 고려후기 배중손이 이끄는 삼별초군이 승화후 온(溫)을 왕으로 추대한 뒤, 진도를 본거지삼아 몽골과 맞서 싸우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이다. 망바위는 군내면 용장리 방북(현 오룡초등학교)의 주산인 대암석을 말한다. 고려후기 진도로 내려온 삼별초군들이 이 바위에 올라, 세곡이나 보물을 싣고 가는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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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집에서 제사가 끝나면 다시 제관 일행은 굿을 치는 사람들과 더불어 마을 앞 삼거리 길에 차일을 쳐둔 거릿제터로 향한다. 예전에는 이때 마을길 양쪽에 수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나왔으며, 길굿을 멋있게 치고 놀았다 하는데 요즈음은 구경을 나온 마을 사람들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차일 속에는 거리신에게 바칠 제상을 차린다. 과일과 나물, 메와 국, 그리고 제주 등 간단하다. 거릿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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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리(龍藏里)는 현재 행정구역상 진도군 군내면 속해 있다. 용장리는 법정리이며 동시에 행정리이기도 하다. 용장리는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기왕의 용장리에 세등리 일부를 병합하여 군내면에 편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용장리는『호구총수』(1789)의 기록에 의하면 진도군 군내면(郡內面) 27개 마을 중의 하나였다. 이 자료에는 용정리(龍井里)로 마을 명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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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에 관련된 기술 내용은 『지명총람』(진도군)과 용장마을에서 제작한 자료를 바탕으로 하며, 용장마을 이장인 곽재설(남, 64세) 씨와의 직접 면담조사 및 현장조사를 통해 작성되었다. 관청골[골] 삼별초 당시 삼별초군의 관공서가 있었다고 한다. 구서당터[鄕校] 진등 지나서 있는데, 옛날에 향교와 서당이 있었다고 한다. 노시난골[골] 고려장이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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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리(龍藏里)하면 한자로 용을 품는다 또는 감춘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용은 예로부터 임금을 상징하는 말이다. 한양도성에서 천리 먼 길 떨어진 이곳이 이런 이름을 갖게 된 데에는 필시 곡절이 있을 것이다. 군지에는 1772년 남양홍씨가 처음 입향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995년(성종 14)에 진도군을 옥주군(沃州郡)으로 개칭하였다가 1018년(현종 9)에 옥주를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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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굴포리에서 매년 모시는 동제의 제당.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굴포리는 매년 정월 보름이면 마을 제사인 당제를 모셔왔다. 그러나 2005년부터는 모시지 않는다. 당제를 모실 때 사용하는 제당을 이곳에서는 당집이라고 부르는데, 당집은 본래 두 곳이었으나 현재는 하나만 남아 있다. 당집 앞에 세워진 굴포신당유적비(掘浦神堂遺蹟碑)에서는 당을 짓고 당제를 지내게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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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본래 진도군 임이면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굴개 또는 굴포라 하였다. 1896년 굴포에서 남선리가 분리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다시 남선리를 병합하여 굴포리라 해서 임회면에 편입되었다. 굴포리는 연대산[148.8m]과 소산[154m] 사이의 만입된 곳에 위치한 천연의 요새이자 양항이다. 굴포리는 임회면 남쪽 해안가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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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무신. 강화도에서는 김통정이 강화 교동면 출신으로 구전되어 오고 있다. 김통정에 관해서는 구전설화가 여럿 전해지고 있는데, 그 중에서 탄생설화로는 과부 어머니가 지렁이와 희롱하여 태어났다고 하여 원래 성은 지렁이 ‘진’씨였으나 나중에 김씨로 고쳐 김통정이 되었다고 한다. 김통정은 배중손(裵仲孫) 등과 함께 개경 환도를 반대하여 삼별초를 거느리고 대몽항전을 하였다. 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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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무신. 1270년(원종 11) 원종이 몽고와의 화평 교섭에 의하여 출륙환도(出陸還都)를 결정하고 삼별초의 명단을 압수하였다. 이때 노영희는 야별초지유(夜別抄指諭)로서 배중손과 함께 궐기하였다. 이들은 승화후 왕온을 왕으로 옹립하고 관부를 설치하여 반몽고, 반개경정부 입장을 명확히 하면서, 보다 효과적인 항전을 위하여 근거지를 강화도에서 진도로 옮겼다. 진도에 근거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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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에서 전승되고 있는 습속. 민속은 민중들의 삶속에 일상적, 집단적, 유형적으로 되풀이되어 누적된 지식, 기술, 행위 등의 총체적인 문화현상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따라서 민속은 공간적, 역사적, 시간적 조건에 의해 형상화된 민(民)의 생활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진도는 공간적으로 한국의 남해(南海)에 위치하고 있는 도서(島嶼)로서 천혜의 자연경관과 비옥한 농토가 많아 고려시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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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후기 삼별초를 이끌었던 장군. 배중손이 역사에 뚜렷이 부각되는 것은 삼별초의 대몽항전 이후부터이며, 그 이전의 경력은 자세하지 않다. 왕정복고파와는 달리 대몽항전의 지속을 주장하였던 임연(林衍) 부자 계열에 속하는 무인으로, 임연 부자의 몰락 후에 대몽 강경파의 선봉에 서서 비타협적 항전을 계속한 인물이다. 배중손은 서반의 장군인 동시에 가장 유력한 삼별초의 지휘관이었던 까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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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대몽항전을 이끈 삼별초의 장수 배중손을 기리기 위한 사당. 고려 1270년(원종 11)에 몽고 침략에 대항하여 거병한 삼별초 항쟁의 지도자 배중손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이다. 제향일은 6월 15일이다.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임회면 굴포리 마을에는 당(堂)이 있어 매년 음력 정월 보름에는 농악을 연주하고 배중손 장군과 삼별초군, 고산 윤선도 제를 모시는 전통이 있었다. 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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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무신정권기에 특수부대였던 삼별초가 몽고의 간섭에 대항하여 일으킨 반란. 무인정권(武人政權) 말기 최우가 집권하여 도적이 횡행하자, 이들을 잡기 위해 용사를 선발, 경찰부대를 조직하고 이를 야별초(夜別抄)라 하였다. 그 뒤 인원이 늘고 기구가 확대되어 좌별초·우별초로 나누어져 편성되었다. 이후에 몽고군에 잡혔다가 탈출해온 군사와 장정들이 새로 신의군이라는 별초부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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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전라남도 진도군의 역사. 진도는 반도의 서남쪽 모서리에 위치하여 작게는 서남해 섬 지역과 섬 지역, 그리고 크게는 서해와 남해를 연결하는 중간다리 역할을 한다. 지도를 펴놓고 고대 한·중·일 삼국을 연결했던 바닷길이 지나는 중요한 길목들을 살펴보면, 서해로는 흑산도가 먼저 상기되고 영산강과 연결하여서는 목포와 영산포가 돋보인다. 그리고는 해남의 화원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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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왕족으로 삼별초에 의해 진도에서 왕으로 추대된 인물. 왕온은 고려 현종의 8대손이다. 청화후 왕경(王璟)의 맏아들로 태어났으며, 형제로 왕서·왕염(王剡)·왕정(王珽)이 있다. 아들은 왕환(王桓)이다. 왕춘(王瑃)·왕희(王禧)·왕기(王祺)가 숙부이다. 승화후(承化侯)에 봉해졌다. 1270년(원종 11) 고려와 몽고가 강화하기로 하고 왕실이 강화에서 개경으로 환도하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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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의 삼별초정권은, 이를 나위조차 없는 일이지만, 반몽(反蒙)을 기치로 내세웠었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배중손이 노영희 등과 더불어 변란을 일으키고서는, 사람을 시켜 나라 안에 외치기를 몽고 군사가 크게 이르러 인민(人民)을 마구 죽여 대니, 무릇 나라에 힘이 되고자 하는 이는 모두 격구장(擊毬場)으로 모여라’라고 하였다. 잠깐 동안에 나라 사람들이 크게 모여들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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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의 삼별초정권이 조운로(漕運路)를 장악하자 개경정부의 재정상태는 곤핍을 극하게 되었다. 당장 시급한 군량(軍糧)조차 제대로 맞춰서 대줄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하루 빨리 진도 를 되찾는 것이 개경정부 존립의 관건이었던 셈이다. 원나라의 입장에서도 삼별초와 남송의 동맹을 방지하고 또한 일본을 정복하려는 야욕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진도 를 점령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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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별초(三別抄)는 최씨 무인정권에 의해서 창설된 군사조직이었다. 야간순찰과 같은 공적(公的)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함이라는 게 그 명분이었다. 그 시초는 최씨정권의 제2대 집권자인 최이가 수도의 치안을 빙자해서 창설한 야별초(夜別抄)라는 특수부대였다. 무인의 일당인 악소(惡少)의 무리들이 날뛰지 못하도록 막아 그 정권을 공고히 할 목적에서였다. 이 야별초가 후에 소속 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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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에 있는 공원. 삼별초(三別抄)는 고려 무신 정권의 특수 부대이다. 이들은 몽골의 잦은 침략에 맞서 고려의 정규군보다 더 강한 전투력으로 활약하였으나, 1270년 원종의 개경 환도 명령과 삼별초 해산령, 몽골과의 강화를 반대하며 자주 국방의 기치를 내걸고 대몽 항쟁을 벌였다. 그 결과 한때는 영호남 백성들의 지지를 받아 진도를 비롯한 전라도 및 경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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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남동리에 있는 석성. 진도 남도진성 자리는 배중손이 이끄는 삼별초가 진도를 떠나 제주도로 향하기 직전까지 마지막 항전을 벌였던 유적지로서 진도 남도진성은 삼국시대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며, 현재의 진도 남도진성은 조선시대에 재축성한 것으로 짐작된다. 1964년 6월 10일에 사적 제127호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바다를 앞에 두고 있는 남동리를 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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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용장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산성. 1270년 (원종 11) 배중손과 노영희 등이 몽고에 굴복한 고려 정부에 반발하여 삼별초와 그 지지자들을 이끌고 강화도에서 진도로 내려와 이곳에서 부서(部署)를 정하고 관부(官府)를 열었으며, 궁궐과 성곽을 쌓고 몽고 침략자와 개경 정부에 반기를 들어 승화후 온(承和侯溫)을 왕으로 추대하여 왕실과 대립되는 정권을 세웠는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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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에 속하는 17개 군(郡) 중의 한 군. 진도군은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이다. 면적은 430.6㎢로 전라남도 면적의 3.6%를 차지한다. 진도·상조도·하조도·가사도 등 231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섬의 대부분은 진도군의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진도군에는 진도읍·군내면·고군면·의신면·임회면·지산면·조도면, 가사출장소·거차출장소 등 1개 읍, 6개 면, 2개 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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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관광을 위한 계절별, 주제별, 권역별 경로. 진도는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섬으로 조도면 일대 해역의 서남해 해상국립공원, 울돌목, 진도 용장성, 백조 도래지, 진도 첨찰산의 상록수림 등과 많은 민속무형문화재, 국립남도국악원, 향토문화회관, 기념관, 미술관 등과 아울러 진도개, 구기자, 대파, 검정 쌀, 진도 미역, ‘신비의 바닷길’ 까지 다양한 자연 관광자원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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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나 공연을 위하여 창작된 문학작품. 전라남도 진도군에서 ‘희곡’이라는 개념이 처음으로 형성된 것은 일제강점기로 보인다. 1924년 12월에 허행복(許行福)이 진도군 진도읍에서 20세 이하의 소년들을 모아 ‘지방순회극단’을 조직한 뒤 「계모의 악행」이란 작품으로 각 마을을 돌며 순회공연을 했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계모의 악행」을 누가 창작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청년들의 단결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