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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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들노래 중 모심을 때 부르는 일노래. 남도들노래는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인지리를 중심으로 전승되는 일노래로, 한 사람이 메김소리를 선창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후렴을 합창하는 방식으로 불린다. 상사소리는 남도들노래의 하나로, 모를 심을 때 부르는 노래라고 해서 ‘못소리’ 혹은 ‘모심는소리’라고도 한다. 진도군에서 불리는 상사소리는 내륙 지방의 “어~어어어 어허 어허~로~오 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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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판소리의 하나. 「열사가」는 역사적 위인들의 생애를 소리로 엮어 부르는 창작 판소리의 하나이다. 해방을 전후하여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창작된 노래로서, 지금도 진도 지역에서는 쉽게 들을 수 있는 판소리의 하나이다. 「열사가」는 일본의 부당한 식민지 지배에 대한 강력한 항의의 의미로, 주로 이준·안중근·윤봉길·유관순 등 일제에 대하여 폭력적 저항을 했던 인물의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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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있는 오봉산에 얽힌 이야기. 오봉산의 지명 유래와, 일제강점기 때 강제노역으로 만든 산 정상의 도리장에 얽힌 이야기이다. 2002년 2월 4일 진도군 임회면 상만리 귀성마을에서 그 마을에 사는 박명우(남, 80세), 김정화(남, 62세)가 구연하였다. 오봉산은 봉우리가 다섯 개여서 오봉산이라고 불렀다. 오봉산에는 돌로 쌓은 도리장이 있는데, 일제강점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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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국인 바실 홀이 쓴 조선 견문기. 영국 정부는 청나라와의 무역 관계를 개선하기 위하여 사절단을 파견하기로 하였다. 암 허스트 사절단을 수행한 파이어호 함장 바실 홀(Basil hall) 대령은 주함 알세스트호를 이끈 머리 맥스웰(Murray Maxwell) 함장과 함께 1816년 2월 19일 영국을 출항하여 7월 27일 목적지인 천진 항에 도착하였다. 천진에서 북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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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가사도리에 있는 크고 작은 섬들. 가사군도는 가사도, 주지도[손가락섬], 양덕도[발가락섬], 혈도[활목섬, 공도], 송도(솔섬), 광도[광대섬, 사자섬] 및 무인도인 외공도, 가덕도, 접우도, 마도, 대소동도, 소소동도, 돈도, 방구도 등으로 이루어진 섬들의 무리를 일컫는다.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지력산 남쪽 산자락에 있던 절 동백사에서 수도하던 노스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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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지형이 가새(가위)형국이라 가사도라 불렀다는 설과, 주변 섬들을 불의불형(佛衣佛形)의 모습으로 보아, 스님이 장삼 위에 걸치는 법복인 가사(袈裟)에 해당하는 형국이라 가사도라 했다는 설이 있다. 『고려사지리지』, 『동국여지승람』, 『동국여지도』에는 ‘伽西’로,『대동여지도』에는 ‘加沙’로, 『진도읍지』에는 ‘伽士’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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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뭇가사리를 끓여 식힌 다음 만든 묵 상태의 식품 또는 이것을 얇게 채 썰어 콩물이나 냉국에 혼합한 향토음식. 한천은 우뭇가사리에서 겔을 만들 수 있는 성질을 가진 물질을 정제한 것을 말하며, 우무는 우뭇가사리의 겔을 만들 수 있는 성분을 이용하여 만든 묵을 말한다. 우무는 주로 여름철에 즐겨 먹는데 채 썬 것을 콩물이나 냉국에 말아 먹거나 양념하여 냉채로 먹기도 한다. 최근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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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동마을과 모도(茅島)를 잇는 길이 2.8㎞에 너비 약 40~50m의 모래등이 드러나는 신비의 바닷길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1975년 주한 프랑스 대사를 지냈던 피에르 랑디(Pierre Landy)에 의해서이다. 역사와 지리학 분야의 박사였던 피에르 랑디는 진도개를 살피러 왔다가 그 해 4월 회동마을과 의신면 모도 사이의 바닷길이 열리는 것을 보고 감격하여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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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인 지도 제작 측면에서 볼 때 현대지도와 구별되는 지도.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사기(三國史記)』나 『삼국유사(三國遺事)』 등의 고문헌과 벽화 등을 통하여 고대 지도의 윤곽을 엿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지도가 제작되기 시작된 것은 조선시대부터였다. 현존하는 지도로서 가장 오래된 것은 1402년(태종 2)에 김사형·이무·이회 등이 제작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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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지방이나 다른 나라의 풍속(風俗)·풍광(風光)·사적(史蹟) 등을 유람하는 것. 관광이라는 말의 어원은 주나라 때의 『역경(易經)』에 나오는 “관국지광이용빈우왕(觀國之光利用賓于王)”이라는 구절에서 비롯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한 나라의 사절이 다른 나라를 방문하여 왕을 알현하고 자기 나라의 훌륭한 문물을 소개하는 동시에, 그 나라의 우수한 문물을 관찰함이 왕의 빈객으로 대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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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나 짐을 한 장소에서 다른 지점으로 옮기는 일. 교통은 일반적으로 사람이나 재화(財貨) 등 유체물(有體物)은 물론 의사(意思)·정보 등 무체물(無體物)의 장소적 이동을 총칭하는 개념이다. 좁은 의미에서의 교통은 그 중 유체물의 장소적 이동을 뜻한다. 인간의 사회생활은 항상 일정한 지역적인 확대를 가진다. 이 지역적인 확대, 즉 공간적 거리를 극복하는 행위가 교통이다. 교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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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전라남도 진도군의 역사. 일제강점기와 현대의 진도의 역사는 민족사의 고난과 함께 하는 것이었다. 진도는 일본 제국주의의 경제적 침략이 일찍부터 시작된 지역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진도가 목포·해남에 인접한 다도해의 요충지로서 풍부한 농·수산물의 생산지인 때문이다. 이런 일제의 경제적 침략에 대해 진도민의 저항 또한 거세었다. 또한 3·1운동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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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말선초에 왜구의 침략을 피해 전라남도 진도지역 주민이 해남 금산(金山)으로 이주한 사건. 여말선초 왜구가 창궐했을 때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진도 또한 끊임없는 왜구의 침입을 받았다. 이에 진도군민의 생존대책의 자구책을 찾고 후일을 도모한다는 차원에서 1350년경 진도군민 전체가 해남 금산으로 이사하면서 군치소도 함께 옮겼다가, 1437년 진도로 다시 돌아온 사건이다. 고려 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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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무장(武將)·정치가. 김방경은 고려 후기의 무신으로서 대몽항쟁의 주력인 삼별초(三別抄)를 진압했고, 원의 일본 정벌 때 고려군을 이끌고 출정했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본연(本然). 신라 경순왕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병부상서·한림학사를 지낸 김효인(金孝印)이다. 김방경은 첫 부인으로 박익정(朴益旌)의 딸을 맞이하였다. 기거랑지제고중서사인을 지낸 박익정은 무인 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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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무신. 강화도에서는 김통정이 강화 교동면 출신으로 구전되어 오고 있다. 김통정에 관해서는 구전설화가 여럿 전해지고 있는데, 그 중에서 탄생설화로는 과부 어머니가 지렁이와 희롱하여 태어났다고 하여 원래 성은 지렁이 ‘진’씨였으나 나중에 김씨로 고쳐 김통정이 되었다고 한다. 김통정은 배중손(裵仲孫) 등과 함께 개경 환도를 반대하여 삼별초를 거느리고 대몽항전을 하였다. 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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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굴포리 남선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 남선마을 동제는 ‘당제’ 또는 ‘당지‘라고 하며, 정월 대보름날 오후 6시경부터 지낸다. 예전에는 정월 초사흗날에 지냈는데, 초사흗날에 지낼 때는 정월 초하루부터 3일 동안 금기를 지켰으나 지금은 보름날 하루만 금기를 지킨다고 한다. 20여년 전까지는 큰마을 뒷산 바위 밑에 있는 제장에서 기우제도 모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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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5년(명종 10) 왜구들이 배 70여 척으로 강진·진도 등 전라남도 연안지방을 습격한 사건. 을묘왜변(달량포왜변)은 삼포왜란(三浦倭亂) 이래 조선 정부의 세견선(歲遣船) 감축으로 어려움을 겪게 된 왜인들이 1555년 5월 11일 달량포(達梁浦)[지금의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와 이포(梨浦) 등을 침입하면서 시작되었다. 조선 조정은 전라도 병마절도사 원적(元積) 등을 출전시켜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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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나 차가 다닐 수 있도록 만든 비교적 큰 길. 조선시대 도로는 중앙통치와 관치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그러므로 모든 도로는 관아와 궁실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진도의 관치도로는 진도읍에서 벽파진까지였다. 그 밖의 도로는 읍에서 군대가 주둔하고 있던 금갑진과 만호진이었다. 조선시대 도로 제도는 10리마다 이수(里數)와 지명을 적은 표지를 세우고 30리마다 원(院)이나 역(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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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전개한 진도의 인물. 진도에서의 독립운동은 조선 말기에서 일제강점기까지 독립운동을 하다가 진도로 유배되었던 독립운동가들의 영향을 받은 지역 인사, 그리고 진도 출신으로 외지에 나가 독립운동에 가담했던 사람들이 귀향하여 벌인 운동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음에서는 조선 말기 외세의 침투에 대항하여 국권을 회복하려 한 활동으로부터 일제강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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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거차군도에 속해있는 섬. 거차도의 동쪽이 되므로 동거차도라 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동거차리로 변경했다. 마을 동서로 동육리와 동막리가 있다. 막그미 또는 막금이라고 불리는 동막리가 가장 큰 마을이다. 부속섬으로 동육리 북동쪽에 망도(網島) 또는 망태섬, 동육리 동쪽에 북처럼 생긴 북섬, 동막리 서쪽에 소나무가 무성한 솔섬(송도)과 아랫 솔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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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동거차도리에 속한 행정리. 동막리 마을이 있는 동거차도는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거차군도 가운데 동쪽에 있다하여 동거차도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 다른 설로는 우리나라의 해상교통의 요지로 이 곳 해상을 지나는 선박들이 거쳐 가는 곳 또는 ‘거친 바다’라 하여 ‘거차’로 표기했다고 한다. 과거 일본 승려 엔닌의 일기에 ‘구초도(丘草島)’란 기록이 나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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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동거차도리에 속한 행정리. 마을이 있는 동거차도는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거차군도 가운데 동쪽에 있다하여 동거차도로 부르게 되었다. 또 다른 설로는 우리나라의 해상교통의 요지로 이 곳 해상을 지나는 선박들이 거쳐가는 곳, 또는 ‘거친 바다’라 하여 거차로 표기했다고 한다. 과거 일본 승려 엔닌의 일기에 ‘구초도(丘草島)’란 기록이 나온다.『동국여지승람』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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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반봉건·반침략의 기치 아래 일어난 농민들의 사회개혁운동. 동학은 1860년 최제우가 창도한 종교로, ‘보국안민 광제창생(輔國安民 廣濟蒼生)’을 기초로 천주교인 서학에 대칭되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이다. 동학농민군이 궤멸되고 1905년 교도 손병희(孫秉熙)는 교명을 천도교(天道敎)로 바꿨다. 동학농민운동은 1894년에 일어난 반제·반봉건·근대화운동으로 농민전쟁, 동학란,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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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이 육지나 주요 변경점 또는 자신의 위치를 확인할 때 표지로 삼거나, 항만의 소재·항구 등을 표시하기 위해 설치한 탑 모양의 구조물. 등대는 독특한 형태와 색으로 낮에는 물론, 특히 밤에 중요한 지표가 된다. 등대는 견고하고 높은 곳에 설치되어 강한 빛줄기를 발하여야 하며 빛이 도달하는 거리도 길어야 한다. 등대에는 유인 등대와 무인 등대가 있다. 유인 등대는 야간에 등화로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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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마산리에 위치한 저수지. 목장에서 사육한 말을 이 곳 해안을 통해 육지로 운송하여 예전에는 이곳을 마재보(馬載步)라 하였다. 마재보에서 마산리(馬山里)가 유래하였으며, 마산리에서 마산저수지가 유래하였다. 1933년 마산방조제 축조로 만들어진, 일본 기업인 소유의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1936년 마산저수지가 축조되었다. 고군면 북동쪽 마산리 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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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선조 30) 9월 정유재란 때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명량해협(울돌목)에서 일본 수군을 대파한 해전. 1597년 일본은 다시 조선을 침략하여 정유재란이 일어났다. 그해 1월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은 모함을 받아 하옥되었고, 원균(元均)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왜의 수군과 싸웠으나 다대포(多大浦)와 칠천량(漆川梁)에서 대패하였다. 사태가 긴급해지자 조정은 그해 7월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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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에서 매년 9월부터 10월 사이에 명량 대첩을 기념하여 열리는 축제. 명량대첩축제는 정유재란 때인 1597년(선조 30) 9월 16일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명량[울돌목, 전라남도 진도군과 육지 사이의 해협]에서 일본 수군을 대파한 해전을 기념하기 위해 전라남도와 진도군과 해남군이 연합하여 개최하는 축제이다. 명량 대첩의 위대한 승리를 기념하고 후손들에게 호국 정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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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과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사이에 있는 좁은 해협. 명량해협은 울돌목이라고도 한다. 명량해협은 이충무공의 3대 해전 중의 하나인 명량대첩지로 잘 알려진 서해의 길목이다. 전라남도 해남과 진도 간의 좁은 해협인데, 바다의 폭은 한강 너비 정도의 294m 내외이다. 물길은 동양 최대 시속인 11노트에 이르며 젊은 사나이가 소리를 지르는 것처럼 물소리가 크고, 거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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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반과에 속하는 해조류로 진도의 특산물. 모자반은 모자반과(Sargassaceae)를 대표하는 종으로 일반적으로 참몰 또는 참모자반이라고 부른다. 갈조류인 모자반은 톳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뿌리, 줄기, 잎의 구분이 뚜렷하고 짙은 황갈색을 띠고 있다. 자웅이주이며, 타원형 또는 도란형의 기포 끝에 미철도 또는 소엽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와 일본 연안에서 생산되며 진도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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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국가 사이에 필요한 물건을 서로 거래하는 것. 전라남도 진도군은 청해진대사 장보고 시대부터 고대 무역로로서의 역할을 했다. 청해진대사 장보고는 주로 완도의 청해진을 중심으로 활약한 것처럼 알려져 있으나, 사실상 청해진을 거점으로 하는 장보고의 해상세력이 기반으로 한 것은 ‘중국-신라-일본’을 연결하는 고대 무역로였고, 명량해협이 무역로가 통과하는 큰 길목이었다. 뒤이어 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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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지역과 사회의 전반적인 삶의 모습. 개들이 서로에 대해서 이름을 짓는지, 여왕벌이 다른 벌들에 대해서 이름을 짓는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사람이라는 종은 동종 내에서도 이름을 짓고, 이종에 대해서도 이름을 짓는다. 이름을 짓는 행위는 인간의 문화에 속한 영역이며, 인간의 독특성을 발현하는 문화의 문제라고 인식할 수 있다. 침팬지의 행태를 연구하는 영장류학자들이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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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에서 전승되고 있는 습속. 민속은 민중들의 삶속에 일상적, 집단적, 유형적으로 되풀이되어 누적된 지식, 기술, 행위 등의 총체적인 문화현상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따라서 민속은 공간적, 역사적, 시간적 조건에 의해 형상화된 민(民)의 생활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진도는 공간적으로 한국의 남해(南海)에 위치하고 있는 도서(島嶼)로서 천혜의 자연경관과 비옥한 농토가 많아 고려시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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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1797년(순조 7)에 도총도사(都總都事)를 역임하였고, 이듬해에 낭청(郞廳), 비랑(備郞)을 지냈다. 1808년(순조 8)~1810년(순조 10)까지 제234대 진도군수를 역임하였다. 진도군수 재직 시절 조도면 주민 차돌금 등 6명이 표류하여 일본에 갔다가 살아 돌아온 사건이 있었다. 이를 제대로 보고하지 않고 조치를 소홀히 하였다 하여 1810년 초에 조사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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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의 의병장으로 진도에 유배된 문신. 1895년 을미사변 후 벼슬을 버리고 충청남도 정산으로 우거, 운둔하였다가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 체결되자 의병을 일으켰다. 홍주성 점령 후 일군에 패하여 재기를 도모하던 중에 붙잡혀 진도로 유배되었다. 본관은 여흥. 아버지는 판서를 지낸 민영상(閔泳商)이다. 1882년(고종 19) 별시문과 병과로 급제하여 벼슬이 이조참판에 이르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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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진도군 진도읍 북상리에서 박봉우(朴鳳禹)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박봉우는 중국 천진 시회(詩會)에서 장원한 진도의 대표적 선비였다. 그는 정만조의 진도 유배 중에 진도읍 서외리 박진원(朴晋遠)과 함께 진도의 문예 중흥을 일으킨 명필 시인이었다. 진도의 문학과 학문을 상징하는 두 사람은 각자의 집을 항일운동원들의 비밀 집합장소로 제공하면서 식사를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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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박봉석은 1903년 8월 24일(음력) 진도군 진도읍 교동리에서 아버지 박동술(朴東述)과 어머니 김죽심(金竹心)의 3남 2녀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 동생으로 박봉갑·박봉위가 있고, 조카로 박기영이 있다. 1919년 진도보통학교를 16세에 졸업하고, 1924년 21세로 광주숭일중학교를 졸업했다. 박봉석은 25세인 1928년 5월 같은 마을에 사는 두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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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말기 진도로 유배된 의병. 1868년(고종 5)년에 충청남도 청양에서 태어났다. 궁내부주사, 의병대 향관으로 의병 활동을 하다가 1939년에 향년 72세로 타계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자 궁내부주사를 사직하고 정재호(鄭在鎬)·김덕진(金德鎭) 등과 함께 을사오적을 토멸하기로 결의하였다. 민종식(閔宗植)을 총대장으로 추대하고 자신은 운영대장격인 향관(餉官)에 임명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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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박종식은 1910년 12월 20일 진도군 고군면 지막리에서 박원배(朴元培)와 곽동순의 3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인 창녕조씨 조순덕과의 사이에서 박창원(재미실업가), 박경원, 박지원(전 청와대 대변인, 김대중 대통령 비서실장) 등 3남 1녀를 두었다. 1948년 향년 39세로 세상을 떠났다.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운동으로 시작된 목포학생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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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1906년에 진도군 진도읍 북상리에서 태어나 1984년 향년 79세로 타계하였다. 박종준의 묘는 군강공원 맞은편 철마산 자락에 있다. 아들 박상철이 진도군 진도읍 동외리에 살고 있다. 16세에 진도공립보통학교 2학년으로 편입하여 1926년에 졸업하였다. 진도공립보통학교 재학 중인 1924년 5학년 때 일본인 교장의 수업을 거부하고 동맹휴학을 선동하여 무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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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일제강점기의 학자. 본관은 밀양. 호는 강재(康齋), 자는 일삼(日三). 밀양박씨 청재공파 박후령(厚齡)의 12세손으로 1860년 7월 20일 아버지 박송학(朴松鶴)과 어머니 진주하씨 사이에서 3남 1녀 중 장남으로 진도 읍내에서 태어났다.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동외리에서 살며 문장에 뛰어나 당시 진도를 대표하는 학자였다. 일제강점기인 1924년, 『중증진도읍지(重增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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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떡잎식물 미나리아재비목 방기과의 낙엽덩굴 식물. 줄기가 항상 푸르기 때문에 청등(靑藤)이라고도 한다. 길이는 약 7~10m 쯤 뻗는다. 줄기는 녹색이고 광택이 난다. 가지에는 털이 없으며 세로줄이 있다. 잎은 어긋나고 둥글거나 넓은 달걀 모양이며 길이 6~15㎝, 나비 3~12㎝이고 때로 3개로 얕게 갈라진다. 잎의 가장자리는 밋밋하거나 3~7개의 얕게 패어 들어간 흔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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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사, 형사 및 행정 사건의 재판권 행사에 관한 모든 제도. 3세기경의 고대사회는 부족이 국가를 형성하는 부족국가였다. 고대 부족국가의 족장은 부족의 질서위반에 대해 제재를 가했다. 부족국가에서는 연 2회 봄과 가을마다 국중대회를 열었는데, 여기에서 단죄와 형옥을 행하고 죄인을 방면하였다. 여기에서 고대사회의 사법조직은 소박한 민중재판으로 족장이 행하였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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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무신정권기에 특수부대였던 삼별초가 몽고의 간섭에 대항하여 일으킨 반란. 무인정권(武人政權) 말기 최우가 집권하여 도적이 횡행하자, 이들을 잡기 위해 용사를 선발, 경찰부대를 조직하고 이를 야별초(夜別抄)라 하였다. 그 뒤 인원이 늘고 기구가 확대되어 좌별초·우별초로 나누어져 편성되었다. 이후에 몽고군에 잡혔다가 탈출해온 군사와 장정들이 새로 신의군이라는 별초부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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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1운동 당시 진도 지역에서 전개된 만세운동.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시작된 독립만세운동은 1919년 5월에 이르기까지 전국적인 독립만세운동으로 확산·전개되었다. 전국을 휩쓴 시위운동 상황을 보면 집회회수 1,542회, 참가인원수 202만3,089명, 사망자 수7,509명, 부상자 1만5,961명, 검거자5만2,770명, 불탄 교회 47개소, 학교 2개교, 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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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에 속해있는 섬. 진도군 조도면의 지역으로서 동거차도·항도·윗대섬·아랫대섬 등과 함께 거차군도를 이룬다. 다도해상국립공원에 속하며 대흑산도의 흑산항과 함께 어업전진기지로 지정되었다. 거차군도의 서쪽에 있다 하여 서거차도로 불렀다. 거차도는 백제시대부터 어획조업에 긴요한 지점으로, 무역선과 여객선이 ‘거차(去次)한다’는 뜻에서 ‘거차도’라 하였다는 설과 거차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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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남동리 서망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 서망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보름날 마을공동으로 제를 올린다. 마을사람들은 이 제를 ‘당제’라고 하는데, 원래는 정월 초사흗날에 지냈으나 2000년 이후부터 정월 보름에 지낸다. 정월 초사흗날에 지낼 때는 정월 초하루부터 3일 동안 금기를 지켰으나 지금은 보름날 하루만 가린다. 제를 지내는 시간은 아침 7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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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한 자격을 갖춘 집단 구성원의 투표를 통해 대표자를 선출하는 방식 혹은 절차. 현대 국가에서 선거의 일차적인 기능은 국민의 대표 선출이지만 국민의 의사·가치·이익을 정치에 투입시키는 이익표출 기능 역시 선거가 수행하는 주요 기능 중의 하나이다. 현대 국가에서는 선거를 통해 정부를 구성하기 때문에 선거는 당선된 지도자와 정부의 행위에 민주적 권위와 통치의 정당성을 부여한다.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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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출신의 군인. 1947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하여 1969년 육군행정학교 부교장 겸 교장대리를 역임하다 1971년 준장으로 예편한 군인이다. 아버지 설치굉(薛治宏)과 어머니 김윤심(金允心)의 2남 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43년 일본 전문학교를 졸업하였으며, 해방 후인 1947년에 육군사관학교(제4기)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하였다. 1955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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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습격에 대비하여 흙·돌로 구축한 방어시설의 총칭. 성(城)과 성곽(城郭)은 엄밀하게는 다르다. 성(城)은 내성(內城)만을 의미하고 성곽(城郭)은 내·외성을 통칭한다. 성곽은 거주 주체에 의해 도성(都城)과 읍성(邑城)으로 나누어진다. 지형에 의해서는 평지성(平地城), 평산성(平山城), 산성(山城)으로 나누어진다. 지리적 위치에 따라서는 국경성(國境城), 해안성(海岸城), 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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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성내리에 있는 미술관. 소전미술관은 추사 김정희 이래 한국 근·현대 서예계의 대가로 추앙받는 소전 손재형(孫在馨)[1903~1981]을 기리는 미술관이다. 손재형은 중국의 서법(書法), 일본의 서도(書道)에 대해 서예(書藝)란 용어를 만든 인물로 평생 붓을 놓지 않은 서예가이자 그림에도 뛰어난 문인화가(文人畵家)이다. 조부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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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출신의 현대 서예가. 본관은 밀양. 아명(兒名)은 판돌(判乭), 호(號)는 소전(素荃)·전옹·전도인, 당호(堂號)는 옥전장(玉田莊), 봉래제일선관(蓬萊第一仙館), 존추사실(尊秋史室). 손재형(孫在馨)은 옥전(玉田) 손병익(孫秉翼)의 손자(孫子)이자 손영환(孫寧煥)의 유복자이며, 8·15광복 후 서단의 원로로서 한국의 서예발전을 위해 힘쓴 서예가이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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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진도에 유배되었던 독립운동가. 호는 해석(海石). 1882년 평남 강서군 증산면 오흥리에서 아버지 손형준과 어머니 오신도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13세에 연상의 박신일과 결혼했다. 23세에 평양으로 공무원시험을 보러 가던 길에 어느 목사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그날 밤 기독교와 서구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감화를 받았다. 이튿날 상투를 자른 뒤 집으로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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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재상. 신사전(申思佃)은 무반으로 관직에 나아간 듯하며 1260년(원종 1)에 상장군에 올랐다. 1263년(원종 4)에 병부상서가 되었고, 이후 재추의 반열에 들었다. 1268년(원종 9) 지문하성사(知門下省事)가 되었고, 뒤에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올랐다. 찬성사(贊成事)로 치사(致仕)하였고, 1289년(충렬왕 15)에 생을 마감하였다. 1259년(원종 즉위) 고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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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칠전리에 있는 행정리. 옷나무 밭이 많아 옷 밭 또는 칠전이라 하였다. 마을의 입향조는 전주이씨이며, 칠전리 10반 "장태"와 인접한 곳에 8·15 해방 후 일본, 만주 등 외국에 흩어진 동포들이 돌아와 정부에서 임시로 주택을 지어 이주한 마을로서 신생리(신생동)라 부르게 된 것이다. 본래 진도군 명금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명금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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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기성종교보다 성립된 시기가 짧은 종교. 진도군에는 원불교와 통일교회가 신종교로서 교세를 확장하고 있다. 원불교 진도교당은 1986년 박혜순 원불교 목포교구장의 염원 아래 신양화 교도가 1,000만 원의 특별성금을 냄으로써 설립되었다. 원불교 진도교당은 진도군 진도읍 성내리 22번지에 있던 기와집을 전세로 얻고 삼육일(6일, 16일, 26일) 법회를 열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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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출신의 민속예술인. “북을 칠려면 양태옥이만큼 쳐라.”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북춤에 일가를 이룬 양태옥은 1918년 군내면 정자리에서 출생하였다. 「진도 북놀이」가 전라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비무계 출신으로 정의현과 함께 진도국악원을 설립하는 등 진도 국악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다. 국악협회 전라남도위원으로 재직하였다. 비무계로 신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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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전라남도 진도군의 역사. 진도는 반도의 서남쪽 모서리에 위치하여 작게는 서남해 섬 지역과 섬 지역, 그리고 크게는 서해와 남해를 연결하는 중간다리 역할을 한다. 지도를 펴놓고 고대 한·중·일 삼국을 연결했던 바닷길이 지나는 중요한 길목들을 살펴보면, 서해로는 흑산도가 먼저 상기되고 영산강과 연결하여서는 목포와 영산포가 돋보인다. 그리고는 해남의 화원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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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가 무대 위에서 대본에 따라 동작과 대사를 통하여 표현하는 예술 형태인 연극과 스크린 상에 움직이는 영상(映像)을 이르는 영화를 총괄적으로 아우르는 말. 연극은 삶의 근원적·총체적 경험에 기원을 두고 있어서 다른 어떤 문화적 산물에 못지않게 역사적·지역적·민족적 소산인데 반하여, 영화는 제작과정에 창조적 요소와 기계·기술적 요소, 그리고 경제적 요소가 합쳐져서 만들어진다.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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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내동리에 있는 산. ‘일본 수군에게 덕을 베풀었다’라는 의미에서 왜덕산(倭德山)이라 불리고 있다. 명량대첩 당시 이순신 장군에게 대패해 수장된 일본 수군(水軍)의 시체 100여 구가 내동리 마을까지 떠내려 오자 주민들이 시신을 거두어 왜덕산에 묻어 주었다고 한다. 왜덕산은 나지막한 언덕으로 완경사면은 밭으로 개간되어 있다. 왜덕산 너머는 남해와 접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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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시아의 초원지대에서 성장한 몽고(蒙古)와 같은 유목민족의 가장 중요한 정복대상은 남쪽의 농경민족이었다. 농경민족들이 지니는 풍부한 생산품이 그 구미를 돋우어 준 때문이었다. 이리하여 금(金)·송(宋)과 함께 고려도 몽고의 침략 대상 가운데 하나가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금을 치고 남송(南宋)과 일본(日本)을 정복하기 위한 기지를 구하려는 목적도 몽고가 고려에 침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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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에 도착한 삼별초는 곧바로 새 수도를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도성인 용장성(龍藏城)을 중심으로 그 주위를 둘러싼 용장산성(龍藏山城)의 안쪽, 즉 현재의 용장리 일원이 그곳이다. 여기에 처음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주변의 고인돌 등으로 미루어 늦어도 청동기시대 즈음에 주민이 거주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이후 삼국을 거쳐 고려와 조선에 이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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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업무를 담당하는 정보통신부 산하의 행정기관. 우체국의 효시는 1884년(고종 21) 3월 우정총국(郵政總局 : 관리업무와 현업업무 겸장)과 인천분국(仁川分局)의 설치이다. 그 뒤 1895년 5월에 농상공부의 통신국 밑에 24개의 우체사(郵遞司)가 있었다. 1897년 12월 23일에는 부(府)·군(郡) 소재지까지는 임시우체사라도 빠짐없이 두어 전국에 걸친 우편망을 형성하고자 칙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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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물을 만들어 판매하는 곳. 음식점은 대중음식점·전문음식점·유흥음식점 등으로 구분된다. 대중음식점은 탕반·면류·죽류·도시락 등을 조리·판매하는 음식점을 말하며, 전문음식점은 고가의 전문음식을 조리·판매하거나, 접객부를 두고 주류 및 고가의 전문음식을 조리·판매하는 음식점이다. 또한 유흥음식점은 유흥업종사자를 두고 주류와 음식물을 조리·판매하며, 손님의 유흥을 위하여 가무·음곡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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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갖가지 형식으로 결합하여 나타내는 시간예술. 진도지역의 고유한 예술문화가 담겨있는 음악으로는 민요, 농악, 무가, 잡가, 판소리, 시나위, 산조, 삼현육각 등을 들 수 있다. 속담에 ‘진도에 와서 다섯 가지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진도가 섬이라 여느 섬처럼 문화예술이 미비한 줄 알고 다섯 부문에서 함부로 자랑하다가는 망신당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다섯 가지는 문자·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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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진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1924년에 진도군 고군면 고성리에서 태어나 2020년 2월 13일 사망하였다. 어렸을 때부터 일본 어린이들과 자주 싸웠을 만큼 일본을 싫어했다. 15세가 되자 마을에 계를 만들어 항일운동 의지를 고취하고 신사 참배 거부를 주지시켰다. 1941년 4월에는 한형술·이기창 등으로부터 고성국민학교 학생들이 신사 참배 차 간다는 소식을 듣고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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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출신의 금융인 . 광산이씨 23세손이다. 이차문(李次文)의 둘째아들로 1910년 진도읍 교동리에서 태어났다. 부인이 원주이씨이며 아들은 이만성(李萬城) 등 3명이 있다. 일본에서 대학을 나왔다. 산업은행부총재, 한국투자금융사장 등을 지냈다. 재경진도군 향우회 제6대 회장, 재경광주전남향우회 제15대 회장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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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무신. 1270년(원종 11) 삼별초가 강화도에서 봉기하여 진도로 내려갈 때 중서사인(中書舍人)으로 강화도에 있다가 노비들을 모아 삼별초를 구포(仇浦)까지 추격하여 5명을 베었다. 또한 낭중(郎中) 전문윤(田文胤)과 함께 강화도의 부고(府庫)를 봉쇄하여 도적을 예방하였다. 이후 경상도 안찰사가 되었다. 1271년(원종 12)에 밀성군(密城郡)[현재 경상남도 밀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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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덕수. 자는 여해(汝諧), 시호는 충무공. 아버지는 이정(李貞)이며, 어머니는 초계변씨(草溪卞氏)로 1545년에 서울 건천동(乾川洞)에서 출생하였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1년 전인 1591년 일본과의 관계가 미묘하고도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조정에서는 1591년 2월에 정읍현감이던 이순신을 진도군수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부임 도중에 완도 가리포수군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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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부터 1896년까지 제295대 진도군수를 지낸 조선 말기의 관리. 아버지는 이정우(李庭羽)이다. 형으로 이경·이정·이벽이 있다. 1886년 교섭아문주사와 내무주사를 지냈다. 1889년 11월 12일자로 조일통어장정(朝日通漁章程)이 조인되어 제주도 해역에서 일본 어선들의 조업이 가능해지자 제주 도민들이 소요를 일으켰다. 이때 내무주사로 있던 이전(李琠)을 순심사(巡審使)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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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표상의 인문적 여러 요소를 분성대상으로 지역의 의의를 일반적으로 고찰·연구하는 분야. 진도군은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인 진도를 비롯해 유인도 44개(430.82㎢), 무인도 185개 등 총 229개의 도서로 이루어져 있다. 면적 430.82㎢, 해안선 길이 650.0㎞에 달하는 서남해의 관문 지역이다. 총 15,719세대에 인구는 36,619명이다. 행정구역은 1읍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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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친 왜군의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 조선 중기 1510년(중종 5) 삼포왜란이 일어난 뒤 남해안 지방에서 왜변이 빈발해지자, 조선 조정에서는 군국기무(軍國機務)를 장악하는 비변사(備邊司)라는 합좌기관(合坐機關)을 설치하여 이에 대비하였다. 하지만 선조 때의 지배계급은 당파를 중심으로 분열하여 서로 반목, 질시만 하고 있었다. 이와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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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사회적 동물로서 군거본능에 따라 마을을 형성하게 된다. 주거지 선택에서 중요한 고려사항은 토지로부터 보장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정주농업이 가능한가의 여부일 것이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살기 좋은 곳의 조건으로 지리,생리(生利),인심,산수를 들고 있는데, 생리가 바로 정주농업의 조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우선 땅이 기름져야 하고, 다음으로 배와 수레, 사람과 물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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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표의 자연현상을 지역적인 관점에서 규명하려는 지리학의 한 분야. 자연환경은 암석권, 대기권, 수권, 생물권으로 구성된다. 암석권은 지질환경, 대기권은 기후 환경, 수권은 담수와 해수의 영역으로 구성되고, 생물권은 크게 식물과 동물 영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암석권, 대기권, 수권이 상호 접촉하는 부위에 지형과 토양이 형성되고 변화하며 이곳에 생물의 생활권이 형성된다. 따라서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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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치를 생산하기 위해 뽕을 길러 누에를 치는 산업. 잠업은 오랜 고대로부터 우리 민족의 중요한 산업으로서 발전하여 왔으며, 전라남도 진도군에서는 기후풍토에 알맞은 관계로 고대부터 성행해왔다. 진도군에서는 판매에까지 이르는 생산활동으로서 잠업을 한 것이 아니라, 각 가정 내 수요를 위해 제사(製糸)·직견(織絹) 작업까지 가내공업으로서 해왔다. 정부에서는 잠업개량에 힘써 진도군에 잠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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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출신의 농학자. 본관은 경주. 호는 지봉(智峰)이다. 아버지 정동창(鄭東昌)[1870~1944]과 어머니 경주이씨 사이에서 진도군 지산면 가치리에서 1899년 6월 9일 태어났다. 1979년 10월 3일 향년 81세로 타계하였다. 광주농업학교를 거쳐 수원고등농림학교를 졸업하였다. 일본으로 유학하여 1927년 규슈[九州]대학 농학부를 졸업하였다. 1928년 이후 의주농업학교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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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출신의 향토사학자. 서울의 양정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유학하여 동경척식대학을 졸업했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후 미군정기에 진도 군민들에 의해 군수로 추대되어 3개월 동안 군정을 살폈다. 향토사에 관심을 가져 『월간 진도』에 「진도군 명고(珍島郡 名考)」와 같은 향토사 기사를 쓰기도 하고 진도살랭이놀이 등에 대한 조사 등 많은 조사 기록을 남겼다. 친족이 운영하는 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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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진도 출신의 공무원. 본관은 경주. 1911년 진도군 진도읍 서외리에서 태어났다.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규슈대학[九州大學] 법학부를 나왔다. 전매청 근무를 시작으로 완도군의 장흥군수, 육군사관학교 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6·25 전쟁 때 피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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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권력을 획득·유지하고 국민들의 풍요로운 삶을 보장하고 이해갈등을 조정하는 모든 활동. 진도지방에서는 신석기 때의 유적이 발견된 적은 없지만 인근의 서남해 도서지방인 신안군의 대흑산도, 소흑산도, 우이도, 하태도, 완도군의 고금도, 여천군의 돌산도 등과 내륙에 가까운 지역인 해남군 현산면 백포리 두모마을 등에서 발견된 조개더미(패총)로 보아 진도지방에서도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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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붙여진 이름. 우리 조상은 우리 땅에 정착하여 생활하면서 어디에나 알맞은 지명을 정하고 이를 일상생활에 써왔으며, 그러는 동안에 오늘날과 같이 많은 지명이 축적되었다. 그러므로 지명 속에는 우리 조상의 사고와 의지가 담겨진 것도 있고, 생활 모습을 나타내는 지명도 있어서, 우리 문화 발전의 역사와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는 귀중한 문화재가 된다. 역사 기록이 적은 향토사에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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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지역에 산재하고 있는 선사시대의 돌무덤. 지석묘는 대부분 무덤으로 쓰이는 공동무덤을 상징하는 묘표석으로, 또는 종족이나 집단의 모임 장소나 의식을 행하는 제단(기념물)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이다. 지석묘는 지역에 따라 명칭이 다른데, 우리나라에서는 고인돌이라고도 하며, 일본에서는 지석묘, 중국에서는 석붕(石棚), 또는 대석개묘(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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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관매도리 관매도에 있는 후박나무. 후박나무는 녹나무과에 속하며 제주도와 울릉도 등 따뜻한 남쪽 섬 지방에서 자라는 상록 활엽 교목이다. 성장한 것은 높이가 20m에 이른다. 꽃은 양성화이며 털이 없다. 열매는 흑자색의 둥근모양이며 5~6월에 개화하여 7월에 성숙한다. 후박나무는 일본, 대만, 중국 남부 지역에도 분포하고 있는데 주로 해안을 따라 자라면서 껍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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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금갑리에 위치한 조선시대의 수군진(陣). 금갑진성은 조선시대 남해와 서해를 잇는 주요 해상교통로에 위치하였으며, 왜구를 막는 전략상의 요충지로 조선 수군만호가 지휘하는 수군진이 설치되어 있었다. 성벽은 돌로 쌓은 석성이며, 축조된 시기는 1485년에서 1499년 사이로 추정된다. 현재 잔존하고 있는 성곽은 성의 서측부와 북측부이다. 금갑진이 위치한 진도는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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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군 조도면 섬 지역의 바위에 붙어 자생하는 미역. 진도미역은 돌미역·진도곽이라고도 하며, 자연산돌미역과 양식미역으로 구분한다. 조도면 일대 해역은 수심이 깊어 갯벌이 없는데다 섬 사이를 지나는 물살이 빨라 오염된 바닷물이 머무를 틈이 없다. 섬의 바위와 절벽에 붙어 자라는 진도돌미역은 생명력이 강해 질기면서 바다의 영양분을 강하게 흡수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미역은 갈조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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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상만리에 있는 비자나무. 비자나무는 구과목 주목과의 상록침엽교목으로서 나무껍질은 청회색을 띠고 매끄럽다. 고목이 되면 껍질이 얇게 세로로 벗겨지며, 어린 가지는 녹색이다. 잎은 두텁고 광택을 내며 끝이 날카롭다. 잎사귀가 한자 ‘비(非)’자처럼 생겨서 비자(榧子)나무라 했다는 설이 있다. 우리나라의 제주도 및 남부지방의 산지 계곡사이나, 수직적으로 해발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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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에 있는 민속예술단. 진도군립민속예술단은 1993년 9월 1일 ‘군민 정서 함양과 지방 민속 예술 창달의 창조적 계승발전’을 목적으로 창단되었다. 특히 국가 지정 국가무형문화재뿐만 아니라 도 지정 무형문화재, 그리고 다양한 비지정 무형문화재들을 효과적으로 엮어서 공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진도군립민속예술단은 1961년 진도문화원이 설립되면서 창단 계기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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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대교 준공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탑. 1984년 10월 18일 진도대교가 준공됨에 따라 섬이던 진도가 육지와 연결된 것을 기념하여 현대건설이 건립한 기념탑이다. 진도대교 준공탑은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 녹진관광지 내에 세워져 있다. 진도대교 준공탑은 기념 조형물 형태로 지어진 탑이다. 상단에는 화강암으로 된 환조물이 있고, 하단에는 대리석 위에 부조가 새겨져 있다.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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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에 있는 진도아리랑 보존단체. 진도아리랑보존회는 진도아리랑의 유래와 잊혀져가는 가사를 발굴하고 수집, 전승하기 위한 목적으로 1985년 7월 13일 박병훈에 의해 만들어졌다. 진도아리랑보존회는 1985년부터 진도아리랑 가사 750여 수를 찾아 『진도아리랑 타령가사집』이라는 책자를 발간하였으며(1985년 제1집, 1991년 제2증보판, 1997년 제3증보판 발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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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관광을 위한 계절별, 주제별, 권역별 경로. 진도는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섬으로 조도면 일대 해역의 서남해 해상국립공원, 울돌목, 진도 용장성, 백조 도래지, 진도 첨찰산의 상록수림 등과 많은 민속무형문화재, 국립남도국악원, 향토문화회관, 기념관, 미술관 등과 아울러 진도개, 구기자, 대파, 검정 쌀, 진도 미역, ‘신비의 바닷길’ 까지 다양한 자연 관광자원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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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에서 보호 및 육성되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토종개. 진도개는 한국의 대표적인 토종개로 문화재보호법과 한국진도개보호육성법에 따라 관리되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53호로 지정되어 있다. 다른 인공육종견들에 비해 충성심이 강하고 영민하여 미래적 가치가 풍부하다. 진도군에서는 진도개시험연구소를 설치하여 보호·육성 및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주인을 찾아 충청도 대전에서 진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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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회동리와 의신면 모도리를 잇는 바닷길. 진도군 고군면 회동리와 그 앞바다에 있는 조그만한 띠섬 의신면 모도리 사이에 바닷물이 들고나는 영등살물 때 폭 60㎝, 길이 약 2.8㎞의 구간에서 해저 연안사주인 모래등이 드러난다. 이는 해류의 영향으로 육계사주가 발달한 바다가 조수간만의 차로 바닷물이 낮아질 때 모래등이 물 위로 드러나 바다가 갈라지는 것처럼 보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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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북놀이 예능 보유자 박관용을 포함한 인사들이 진도 민속을 전승·발전시키기 위해 만든 단체. 진도의 빛나는 진도 전통문화 예술을 후손에게 원형대로 보존하여 물려주며, 또한 계승, 발전시키는 데 이바지하고자, 박관용의 아들인 박흥일을 중심으로 결성되었다. 2002년 3월 3일 박관용 진도북춤 발표회를 개최했으며, 2002년 4월 6일에는 비엔날레 진도북춤 발표회를 가졌다. 이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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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바다에서 전사한 사람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한 제례 행사. 진도의 지리적 특성상 진도 앞바다 속에는 전쟁으로 인한 무주고혼(無主孤魂)이 잠들어 있다. 진도평화제는 이들의 고귀한 생명을 대상으로 국적을 초월한 수중고혼을 혼건짐으로 맞이하여 씻김굿으로 원한을 풀어 드리기 위한 합동제사 행사이다. 이는 전쟁의 아픈 역사를 이겨내고 풍요로운 땅과 바다를 가꾸며 살고 있는 진도군민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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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최제우가 창도한 동학을 3세 교주인 손병희가 1905년에 개칭한 종교. 동학(東學)은 1860년 최제우(崔濟愚)[1824~1864]에 의해 창도된 신흥종교로 서학(西學)에 대칭하는 이름이다. 당시의 정세는 어린 헌종이 즉위하여 정권다툼이 극에 달했고 유교와 불교는 부패하여 백성을 구제할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일본을 비롯한 외세의 간섭으로 국운이 위기에 처해 있는 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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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과 고군면 경계에 있는 석성. 첨찰산성은 진도군 의신면과 고군면의 경계지인 진도군에서 가장 높은 산인 첨찰산[해발 485m]에 위치해 있다. 첨찰산 정상 봉수대가 위치한 산정을 중심으로 동남쪽의 해발 460m 고지와 남쪽 420m 고지를 연결한 포곡식(包谷式) 산성이다. 1500년도 더 된 백제 때 왜 이렇게 높은 곳에 산성을 쌓았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되어 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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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배재중학교 영어교사. 본관은 경주최씨. 진도군 조도면 만재도 출신이다. 지금은 만재도가 신안군에 속해 있으나 1970년대까지도 진도군에 속해 있었다. 일본으로 유학하여 릿쿄[立敎]대학 법학부 영문과 졸업하였다. 무역업을 거쳐 배재중학교 영어교사로도 재직하였다. 광복 후 만주에 갔다가 간첩으로 몰려 소련 블라디보스톡 항을 거쳐 5년 뒤에 『지옥길 2만리(地獄길 二萬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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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7월 7일로 칠성공을 들이는 날. 음력 7월 7일은 칠석날이다.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1년 동안 헤어져 지내다가 이 날 밤에만 오작교를 건너 만날 수 있다는 견우와 직녀의 이야기가 전하는 날이다. 이 이야기는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3국에서 동일하게 전승되고 있다. 진도에서는 이 날 칠성공을 드리는 풍속이 전승되고 있다. 진도에서는 칠석날 밤 칠성공을 드리는 가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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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남동리에 있는 기독교 계통의 교회. 통일교회는 1962년 12월 1일 유종회 목사가 진도에 와서 진도 교역의 개척전도와 봉사활동을 펴면서부터 시작되었다. 통일교회는 그로부터 10년 동안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다가 1972년에야 비로소 진도읍 남동리 614-2번지에 성전을 짓고 현재의 모습으로 정착했다. 유종회 목사로부터 7대 여순봉 목사까지 성전기금마련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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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지역에서 특별히 생산되는 물품. 진도지역에서 유명한 특산물로는 미역, 김, 구기자, 대파, 울금, 흑미, 홍주 등을 들 수 있다. 1. 미역 진도미역은 조선시대부터 대표적인 진상품 가운데 하나였다. 또한 1530년(중종 25)에 발간된『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는 진도의 토산품 중 하나로 미역을 꼽고 있다. 인근 완도에서 일찍부터 김발이 시작되었지만 갯벌이 발달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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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에 속하는 행정리. 고작방조제가 축조되기 전에는 진도읍의 포구마을이었으므로 포구리라 하였다. 1910년경 김해김씨가 처음으로 포구리로 들어왔다. 1926년경 밀양박씨 등이 간척지에 농사를 짓기 위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1926년 일본 기업인 진도식산주식회사에서 포구리에 고작방조제를 축조하기 시작하면서 포구였던 마을 주변이 간척지가 되었다. 문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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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표류하여 어떤 곳에 닿는 것. 여기서의 표착은 외국인이 국내에 표류된 경우를 일컫는다. 외국인의 국내 표착 신고와 관리는 어느 때나 연안 고을과 수군의 주요 임무였다. 특히 진도 해역은 중국~일본 간 해로 상 중간 지점에 있어 비교적 표착 기록이 많다. 그 처리를 잘못해 진도군수가 징계를 받은 일도 있었다. 진도에 표착한 외국인은 주로 중국인, 일본인, 유구인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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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에 속해있는 섬. 명량대첩 당시 수장(水葬)된 일본 수군의 피가 스며들어 붉게 보인다 하여 피섬으로 부르게 되었다. 피섬은 규석 계열의 붉은색 암반으로 이루어졌다. 진도군과 해남군 사이에 있는 명량해협(울돌목) 가운데 위치했으나 지금은 녹진관광지에 포함되어 육지와 연결되어 있다. 망금산 관방성에서 50m 거리에 있다. 피섬의 면적은 331㎡, 높이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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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속에 들어가 해삼, 전복, 미역 등 해조류와 패류를 채취하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여자. 한국과 일본에서는 바다에서 자맥질하여 해산물을 캐는 여성을 흔히 ‘해녀, 아마(海女, あま)’라고 한다. 제주 사람들은 ‘바다에서 무자맥질하는 아주머니(여자)’라는 의미의 잠수(潛嫂), 잠녀(潛女) 등을 혼용한다. 전라남도 진도에 해녀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초반이다. 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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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에 있는 바닷길. 바다에는 해류와 조류가 있다. 해류는 바다 속에 있는 강을 따라 따뜻한 곳에서 찬 곳을 향해 흐르는 흑조라는 물줄기이다. 조류는 바람과 달의 인력과 다른 천체들의 끌어당기는 인력에 의해 움직이는 물줄기이다. 조류는 육지에 가까울수록 연안수인 강물의 영향을 받아 심해 무조점이라 이르는 극점을 향해 하루 두 차례 물이 쏠렸다가 원위치 가까이 돌아가는 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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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접해 있는 육지의 한 부분. 진도는 해안선의 드나듦이 복잡한 리아스식 해안이며, 해안선의 총연장은 662㎞이다. 특히 진도 본섬은 드나듦이 많고 깊은 만입지가 형성되어 있다. 진도의 만입지에는 간석지가 발달했고, 파도의 영향을 많이 받는 동거차도·서거차도·대마도·관매도·외병도·내병도의 해안을 따라 해식애와 파식대가 발달해 있다. 해안의 형성에는 해수면의 하강·상승운동과 지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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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군이 설립한 종합 공연장. 진도 향토문화회관은 진도에서 전래되는 전통 민속 음악, 무용, 놀이 등을 공연하는 곳이다. 향토문화회관은 진도군이 보유한 각종 무형문화재를 유형화시켜 이를 관광 자원화하기 위한 공연 공간으로 삼기 위해 건립되었다. 지하 1층, 지상 2층의 현대식 건축물로 건립된 향토문화회관은 630석 규모의 대공연장을 비롯해, 258석의 소공연장, 40여 평의 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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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에서 태어나 목포에서 활동한 한국화가. 허건은 조부인 소치(小癡) 허련(許鍊)과 부친 미산(米山) 허형(許瀅)을 이어 남종문인화를 현대적 화풍으로 승화시켜 ‘신남화’라는 새로운 화풍을 일구어낸 화가로서 본관은 양천(陽川), 호는 남농(南農)으로 전라남도 진도 출신이다. 19세기 남종문인화의 대가 소치 허련의 손자이자 미산 허형의 5남 중 넷째아들이다. 1926년 결혼한 부인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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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에서 태어난 남종화의 대가. 본관은 양천(陽川)이며 호는 의재(毅齋)로 허련(許鍊)의 방계(傍系)로 태어났다. 8세 때 한학을 배웠으며 허련의 넷째 아들 허형(許瀅)에게서 묵화의 기본화법을 익혔다. 서울 출신인 무정(茂亭) 정만조는 허백련에게 한학(漢學)을 가르친 스승이며 그에게 의재란 호를 지어 주었다. 무정은 39세 때인 1896년 무고(誣告)로 진도에 유배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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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원종·충렬왕 때의 부원(附元) 분자. 본관은 남양. 본명은 홍준기(洪俊奇)이며 홍다구(洪茶丘)는 아명(兒名)이다. 몽고명은 찰구이(察球爾)로, 원나라에서 태어나 자랐다. 할아버지는 1218년(고종 5) 몽골에 투항한 홍대순(洪大純)이며, 아버지는 몽골 침입의 길잡이 노릇을 한 홍복원(洪福源)이다. 원나라 세조의 총애를 받았으며 세조가 그를 다구라고 불렀다고 한다. 126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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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古郡面) 금계리, 의신면(義新面) 모도리(茅島里)·초사리를 중심으로 한 관광지. 회동관광지 내에는 신비의 바닷길, 뽕할머니 사당, 뽕할머니 동상, 전망대, 공연장, 피에르 랑디 기념공원, 가계해수욕장, 진도청소년수련관, 진도해양생태관, 전남지방 경찰청 수련원, 신석기시대의 유물, 모도 등이 있다. 국가 명승 제9호인 신비의 바닷길을 주요 관광 자원으로 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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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원나라의 무장(武將) 흔도(忻都)는 홀돈(忽敦)이라고도 한다. 1276년(충렬왕 2) 흔도의 아들과 안평공(安平公)의 딸이 결혼하였다. 1277년(충렬왕 3) 흔도의 아들 기(琪)가 수사공으로 임명되었다. 기는 안평공(安平公)의 딸과 결혼하였으므로 왕실의 예에 준하여 이 관직을 주었으며 또 성을 쓰지 않고 이름만 썼다. 고려 후기 삼별초 토벌과 일본 정벌을 위해 고려에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