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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식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500578
한자 朴潤植
영어음역 Park Yunsik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남도 진도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정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의병|독립운동가
출신지 충청남도 청양군
성별
상훈 대통령표창|건국포장|애국장

[정의]

조선말기 진도로 유배된 의병.

[생애]

1868년(고종 5)년에 충청남도 청양에서 태어났다. 궁내부주사, 의병대 향관으로 의병 활동을 하다가 1939년에 향년 72세로 타계하였다.

[활동사항]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자 궁내부주사를 사직하고 정재호(鄭在鎬)·김덕진(金德鎭) 등과 함께 을사오적을 토멸하기로 결의하였다. 민종식(閔宗植)을 총대장으로 추대하고 자신은 운영대장격인 향관(餉官)에 임명되었다.

1906년 4월 중순과 하순에 정산·홍산·서천·남포 등지에서 의병대를 편성하고 총포와 탄약 등을 입수하였다. 대포병 200명, 총수(銃手) 200명, 비인(庇仁)의 사병 100명, 남포의 사병 100명 등의 병력으로 홍주성을 공격하여 적 10여 명을 사살하고 4명을 사로잡는 전과를 올리고 홍주성을 함락하였다. 그러나 5월 7일 일본군의 불의의 습격으로 홍주성을 빼앗겼고, 재탈환을 모색하던 중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다.

평리원재판소에서 종신 유형을 선고받고 9개월간 옥고를 치른 뒤 진도로 유배되었다. 1907년 7월 일본 관리가 고위 관직을 제시하면서 회유하고자 하였으나 거부하고 옥중에서도 항일사상 고취에 주력하였다. 1907년 11월 28일 석방되기까지 3여 년 동안 진도에서 유배생활을 하였다.

1910년 일제가 한국을 강점하자 그 부당함을 공언(公言)하다가 연행되어 고문을 당하였다. 그날 밤 탈옥하여 죽을 때까지 은신하였다.

[저술]

은거 중 의병투쟁에 관한 기록을 정리한 『의거실기(義擧實記)』를 남겼다.

[상훈과 추모]

1968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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