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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501748
한자 忻都
영어음역 Heundo / Xindu
이칭/별칭 홀돈(忽敦),흔독(欣篤)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전라남도 진도군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김병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원나라의 무장(武將)
출신지 원나라
성별

[정의]

중국 원나라의 무장(武將)

[개설]

흔도(忻都)는 홀돈(忽敦)이라고도 한다. 1276년(충렬왕 2) 흔도의 아들과 안평공(安平公)의 딸이 결혼하였다. 1277년(충렬왕 3) 흔도의 아들 기(琪)가 수사공으로 임명되었다. 기는 안평공(安平公)의 딸과 결혼하였으므로 왕실의 예에 준하여 이 관직을 주었으며 또 성을 쓰지 않고 이름만 썼다. 고려 후기 삼별초 토벌과 일본 정벌을 위해 고려에 왔다.

[활동사항]

1271년(원종 12) 아해(阿海)를 대신하여 파견된 몽고군의 지휘관으로, 김방경·홍다구와 함께 진도에 있던 삼별초를 격파하고 왕으로 추대된 승화후(承化侯) 왕온(王溫)을 살해하였다. 이 해 원종흔도에게 역적 이외의 진도 인민들은 풀어주라고 요청하였지만 흔도는 허락하지 않았다. 탈타아가 황제의 명령이라고 말하면서 힐책하자 일부 백성을 골라서 풀어주었다.

1273년(원종 14) 흔도김방경·홍다구와 더불어 병선 160척과 육해군 1만여 명을 이끌고 탐라에 이르러 삼별초군을 섬멸하였고 1,300명을 포로로 잡았다.

1274년(원종 15) 고려와 원나라가 연합하여 일본을 정벌할 때, 도원수(都元帥)로 대군을 거느리고 합포(合浦)[지금의 마산]를 출발, 쓰시마섬[對馬島]·이키섬[壹岐島] 등을 점령하고 하카타만[博多灣]에 이르렀으나 심한 풍랑으로 철수하였다.

1277년(충렬왕 3) 12월부터 1278년(충렬왕 4)까지 김방경의 무고 사건을 합동 심사하고 문초하는데 참여하였다. 1281년(충렬왕 7) 정동행성사(征東行省事)로 고려에 들어와 동로군(東路軍)을 이끌고 2차 일본 정벌에 나섰지만 또다시 태풍을 만나 많은 병력을 잃고 귀국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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