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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동리-자연과 지리-자연지리적 환경
메타데이터
항목 ID 005T02003
한자 古郡面 回洞里-自然과 地理-自然地理的 環境
이칭/별칭 회동마을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회동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철웅

[자연 지리적 환경]

회동마을이 속한 고군면은 진도군의 북동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회동마을고군면의 남쪽 끝에 자리하고 있다. 첨찰산(尖察山)[485.2m]의 맥이 남남서 방향으로 내려가 두무골재를 지나 덕신산(德神山)[389m]을 이룬다. 점차 고도를 낮추면서 삼재를 만들고 곧장 바다로 내려가 회동재를 건너 동기미봉을 바다에 밀어 놓았다. 이 산줄기가 회동마을의 북서사면을 이룬다.

덕신산 밑에 있는 399m 봉우리 아래에서 한 줄기가 갈라져 남남동쪽으로 달리면서 가인봉(佳仁峰)[291.5m]을 이루다 곧장 남쪽으로 달려 용두머리가 되어 바다와 만난다. 이렇게 첨찰산-덕신산 줄기가 나무젓가락처럼 두 갈래로 갈라지면서 그 사이로 회동천(回洞川)이라는 작은 하천이 흘러내려 고도 약 50m 지점에 회동지(回洞池)라는 저수지가 축조되었다.

회동저수지 제방의 길이는 232m, 높이는 약 25m 정도이다. 아래 좁은 들녘은 회동마을의 유일한 논과 밭이다. 그래서 회동마을은 일찍 김 양식을 시작하였고 지금도 김발과 김 채취선 및 가공공장이 들어서 있다.

회동마을, 모세미, 가계마을 지역을 중심으로 최근 전복 치패 양식도 함께 이루어지면서 전복은 전국 생산량의 약 60% 정도를 생산하고 있다. 총 129가구 중 어업가구는 105가구, 농업가구는 21가구로 대부분이 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진도는 대부분 농가인데 비해 회동마을은 일찍부터 어업이 발달하였기 때문에 풍신을 기원하는 영등제가 남아 있게 되었다.

회동마을의 입향조는 손동지(孫同知)로 제주도로 유배를 가다 풍랑을 만나 정착했다고 한다. 원래 마을 위치가 현 위치보다 회동천을 따라 내륙으로 들어간 곳에 자리했으나 호랑이의 피해 때문에 바닷가로 옮겨 왔다고 알려져 있다.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36호 정도의 작은 농촌이었지만, 바지락과 김 양식을 중심으로 거주지가 내륙에서 해안 쪽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그 후 회동선착장이 축조되면서 해안가 중심으로 가구수가 증가하였다.

원래 회동마을가계리(佳界里), 용호리, 금호도(金湖島)와 함께 법정리인 금계리(金界里)에 속한다. 동기미의 회동재를 넘으면 바로 의신면 초사리와 맞닿아 있다.

회동마을은 진도대교에서 약 26㎞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진도대교에서 내려오면 군내면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좌측의 18번 국도를 타고 내려가면 회동마을에 닿는다. 이 도로의 일부인 고군선은 일제강점기인 1936년 개설되었다.

회동마을회관을 기점으로 절대적 위치는 북위 34도 25분 23초와 동경 126도 20분 54초에 속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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