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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병마을-인구와 조직-인구구성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005T04007
한자 郡內面 德柄마을-人口와 組織-人口構成
이칭/별칭 덕저리,떡저리,덕병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덕병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준

[인구구성]

2006년 6월 현재 덕병리는 102가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인구는 남자 108명, 여자 117명이다. 덕병리는 행정리로, 덕병마을은 물론 용인과 한의마을을 포함하고 있다. 이들 마을들은 백조도래지인 나리방조제를 둘러싸고 있다. 이곳 나리방조제를 막기 전까지 용인마을은 염전을, 한의마을은 김 양식을 많이 했던 어촌마을이었고, 덕병마을도 바지락과 낙지 잡이 등이 많이 이루어졌던 지역이다. 덕병리는 진도군 군일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덕저리, 떡저리 또는 덕병리라 하였으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으로 용인리, 한의리를 병합하여 군내면에 편입하였다.

덕병리 일대는 조선시대의 목장지역으로 『세종실록』 권110, 27년 10월, 경술조에는 아래와 같이 기록하고 있다.

「충청, 전라, 경상도 도순찰사(都巡察使) 김종서(金宗瑞)가 복명하여 아뢰기를, “……진도군은 풍토가 제주(濟州)와 비슷하여 목장을 만들기에 적당합니다. 백성의 전택을 제외하고 건시미포(件示未浦)로부터 미사포(彌士浦)까지 4,000필은 놓을 수 있고, 부지산(富之山) 정상으로부터 창포(倉浦)까지 300필은 놓을 수 있으며, 해원(海原) 동쪽으로부터 덕병평(德柄平)까지 200필은 놓을 수 있으니, 세 곳의 백성 70호만 읍성 가까운 땅에 옮기고 목장을 쌓으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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