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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마을-역사와 언어-이야기와 유적,유물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005T05006
한자 義新面 斜上마을-歷史와 言語-이야기와 遺蹟,遺物
이칭/별칭 비끼내,빗내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황금연

[이야기와 유적, 유물]

① 당산제에 얽힌 이야기

빗기내 당산제를 모시던 당산목은 수백 년 된 팽나무로 100여 년 전에 고목 밑부분이 썩어 바람에 쓰러져 고사되었다. 썩어 있던 팽나무에서 버섯이 나와서 최석 씨의 할아버지인 최광윤(당시 30세) 씨가 그 버섯을 따먹고 정신이 이상해져 ‘버섯 버섯’하고 다니다가 세상을 떴다고 한다. 그 자리에 다시 팽나무가 자라나 그 당산목에 해마다 제를 모신다. 그후 1981년 9월 5일 이곳에 관란정을 지어 당산제를 모시고 있는데, 관란정을 보수하면서 여기에서 나온 판자며 나무를 가지고 간 사람들은 피해를 보았다고 한다.

② 향동 할머니의 묘

구한말 한학자인 무정 정만조가 진도에 유배오자 미산 허형 선생이 사상마을의 서당인 관란제에서 훈장으로 있게 했다고 한다. 이때 무정선생은 경주이씨와 만나 서로 사랑을 하게 되었고 작은 아들 정인용(鄭寅庸)을 낳았다고 한다. 무정선생이 사면을 받아 상경하게 되었으나 경주이씨는 운림산방 앞 초막(지금의 푸른동산 자리)에서 홀로 살면서 서울로 간 무정을 그리다 세상을 떠났다. 이 경주이씨의 묘는 현재 진도이랑비에서 첨찰산으로 오는 길목에 있는데, ‘향동할머니의 묘’라 불린다. 사상마을 이희춘(사상마을 새마을지도자) 씨가 관리하며 제를 모시고 있다.

쌍계사

쌍계사는 진도군에 현존하고 있는 유일한 고찰로, 신라 문성왕대에 도선국사에 의해 세워진 사찰이다. 1977년 이후 대웅전, 명부전을 보수하였으며, 해탈문, 진설당, 쌍계루, 관음전을 복원하였고, 큰 범종을 주조하였고 종각을 건립하였다.

쌍계사 대웅전

쌍계사 대웅전은 1985년 전라남도 지정 유형문화재 제121호로 지정되었다. 건립연대는 대웅전 보수시 발견된 상량문의 기록에 의하면 1679년으로 확인된다. 약 1m 가량 자연석으로 쌓아올린 기단에 덤벙 주춧돌을 배치하고 그 위에 원형기둥을 세웠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인 맞배지붕의 다포양식이다.

쌍계사 목조 삼존불좌상

쌍계사 대웅전에 있는 목조 삼존불상이다. 나무로 만들어진 이 불상은 가운데 본존불을 중심으로 양쪽에 협시불을 모시고 있는 형태이다. 1999년 8월 5일 전라남도 지정 문화재 제221호로 선정되었다.

쌍계사 시왕전 목조 지장보살상

조성기에 의하면 쌍계사 시왕전에 있는 지장보살상은 1666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1999년 8월 5일 전라남도 지정 문화재 제222호가 되었다.

운림산방

전라남도 문화재 제51호로, 사천리 64번지 일대에 위치해 있다. 1981년 소치 허유의 손자인 남농이 이를 복원하여 진도군에 헌납한 남도 제일의 문화공간이다. 소치가 1856년(당시 49세)에 낙향하여 지은 집으로, 뜰 앞에 큰 연못이 있고 연못 한 가운데에는 자연석으로 축조한 작은 섬이 있고 섬 가운데에는 소치가 심었다는 백일홍의 자태가 주위 풍경과 잘 어울려져 있다. 소치는 이곳에서 86세까지 37년 동안 작품에 전념하다가 작고하고, 그후 넷째 아들 미산 허형에게 화업을 물려주었다. 미산은 다시 큰아들 윤대에게 내려 주었으나 가세가 기울어 차병림 씨에 팔아버렸다고 한다. 1942년 남농이 운림산방을 다시 사서 조카인 원만(허윤대의 장남)에게 관리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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