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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마을-특성-이색화풍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005T05043
한자 義新面 斜上마을-特性-異色畵風
이칭/별칭 비끼내,빗내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원복

[새로운 감각의 미감[이색화풍]-근대에 대한 긍정성 모색과 전개]

기존에 확인되거나 알려져 있던 화단에서의 명성과는 별개로 조선 말기 화단에 있어 새롭게 조명된 매우 긍정적이며 값진 연구 성과와 업적의 예로 김수철홍세섭의 발굴을 들 수 있다. 이들에 대해선 일찍이 해방 후 한국미술사 연구의 일세대로 한국미술사 특히 회화사에 있어 전통적인 감식안(鑑識眼)을 바탕으로 초석을 세운 최순우(崔淳雨)[1916~1984], 이동주(李東洲)[1917~1987] 두 선생에 의해 알려졌고, 이어 다음 세대들에 의한 본격적인 논고가 발표되었다.

새로운 감각의 화풍이나 이색화풍(異色畵風), 또는 신감각파로 불리기도 하는 이들 화풍은 동시대에 있어 우리의 전통회화가 나아가야 할 진로에 대한 남다른 새로운 시도를 보인 점에서 주목된다. 하지만 사뭇 아쉬운 점은 그들을 이은 다음 세대, 즉 구체적으로 언급하면 금세기 초에 이들을 계승한 이렇다 할 화가들을 찾기 어렵다는 아쉬움이 남아 있다.

화원화가 김수철 계열의 연원은 신윤복(申潤福)[1758?~1813 이후], 윤제홍(尹濟弘)[1784~1840 이후]에서 찾을 수 있다. 홍세섭의 경우는 멀리 조속 등, 조선 중기 사대부 화가 등 수묵 위주의 영모화에서 그 시원을 상정할 수 있으나, 간격이 너무 멀고 그 자신의 전래된 그림이 몹시 드문 데다가, 그를 따른 후배의 그림 또한 찾아보기 어려워 양기훈 등에서 화풍상의 유사점이 일부 감지되나 단절이라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물론 이 점은 새로운 자료의 발굴이나 동시대 및 19세기 전체 화단에 대한 보다 체계적인 조사연구와 자료발굴을 통해 극복될 수 있을지 여부는 현재로서는 불분명한 실정이다.

과감한 생략과 맑고 밝은 채색, 그리고 조촐한 구성은 김수철의 경우 산수만이 아닌, 특별전을 통해 잘 알려진 이화여대나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 화조병풍(花鳥屛風) 등 다른 화목(畵目)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화조화에 있어 동시에 청의 화풍과 다소 조심스러운 사항으로 세심한 검토를 전제할 사항으로 단언은 힘든 사항이나 어느 정도 일본화(日本畵)의 영향마저 느끼게 한다. 특히 신명연(申命衍)[1809~1892]의 일련의 꽃 그림들은 장식적이며 감각적이기도 하여 동시대 화사하고 호사스러운 취향의 일면을 잘 드러내 보여준다. 짙은 채색의 선호는 화원뿐만 아니라 ‘남 나비’로 불리는 남계우(南啓宇)[1811~1900] 및 이를 따른 선비화가들에서도 엿볼 수 있으니 괴석의 일인자로 꼽히는 정학교 또한 수묵만으로 그린 괴석도 외에서 농채(濃彩)를 사용한 것들도 적지 않아 예외가 아니다. 나비 그림은 청나라 경우 성(姓)에 나비를 붙인 예가 20명을 넘는다.

새로운 감각의 측면에서 조선 말기를 살필 때는 조선 후기 화단까지 소급된다. 이른바 명암에 의한 입체감의 부여 등은 일반 감상화 범주에 있어서도 이미 김홍도의 잘 알려진 보물 527호인 『풍속화첩』에 속한 점심에 있어 회색 옹기로 된 술병 및 인물의 안면 처리에서, 그리고 국보 135호인 신윤복의 『혜원전신첩(蕙園傳神帖)』 내 달밤을 배경으로 한 정변야화(井邊夜話)에 등장된 우물가의 물독이나 주사거배(酒肆擧盃)의 뒤주 위에 놓인 백자표현 등에서 빛을 의식함을 선명히 읽을 수 있다. 아울러 하늘이나 물색을 담청으로 가채한 것, 나아가 19세기로 접어들어 신광현(申光絢)[1813~?]의 초구도(招拘圖)에 보이는 기둥과 나무의 입체감 부여, 나아가 그림자의 표현 등에서 보다 노골적이 된다. 또한 책가도(冊架圖)로 명성을 얻은 이형록(李亨祿)[1808~1863 이후] 또한 새로운 시각이란 측면에서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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