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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500457
한자 莽哈
영어음역 Manghap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전라남도 진도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정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귀화인|유배인
성별
주요활동/연도 1515년 3월 8일 진도에 유배됨연표보기

[정의]

진도에 유배되었던 여진족 추장.

[개설]

조선 전기 사군육진 개척 후에도 북방의 여진족들의 동태는 불안정했다. 여진족은 조선에 귀화하거나 아니면 변방을 침입하여 생활 물자를 약탈해갔다. 이 시기에 조선에 귀화한 여진족 추장 망합은 여진족 토벌에 공을 많이 세웠지만 동시에 여진족과 내통하고 있다는 혐의도 받고 있었다.

결국 망합은 진도로 유배되게 되는데 진도에서 7여 년 남짓한 유배생활을 하게 된다.

[활동사항]

망합연산군 대에 조선에 귀화하였고, 조선 정부에서는 그에게 가선대부(嘉善大夫) 준직(准職)을 제수하였다. 북방 야인과 내통하였다는 혐의와 여진 통사를 구타하였다는 죄목으로 계속 탄핵을 받던 망합은 1515년(중종 10) 3월 그의 아들 아질두(阿叱豆)와 함께 진도로 유배되었다.

이듬해인 1516년 망합은 진도에 있으면서 본토로 돌려 보내주면 여진에 잡혀있는 조선인 10여 명을 데려오겠다고 제의했으나 거절당했다. 1518년(중종 13)에는 망합이 유배된 시기의 진도군수였던 신효창(申孝昌)이 망합과 어울려 활쏘기를 하였다하여 사헌부로부터 탄핵을 받았다.

망합의 진도 유배생활이 7년째 접어들던 1521년(중종 16)에 망합이 왜구들과 결탁할지 모르므로 본토로 쇄환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다. 여진족의 말타기 기술과 활쏘기 기술이 왜구에게 전해질까 우려해서였다. 따라서 이 시기에 즈음하여 진도 유배에서 풀려 본토로 쇄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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