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5012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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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義鉉 |
영어음역 | Jeong Uihyeon |
이칭/별칭 | 송일(松一)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서외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윤선,김덕진 |
성격 | 예술가|국악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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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서외리 |
성별 | 남 |
생년 | 1921년![]() |
몰년 | 1999년![]() |
호 | 송일(松一) |
대표경력 | 진도국악원 설립 |
[정의]
전라남도 진도군 출신의 민속예술인.
[개설]
정의현(鄭義鉉)[1921~1999]은 진도국악원을 설립한 사람으로, 사재를 털어 진도 국악의 발전과 중흥을 꾀한 민속음악 경영자였다.
정의현은 1921년에 진도군 진도읍 서외리에서 진도의 부호이자 감리교 신학의 대가로 알려진 정경옥 박사의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친 정경옥은 미국에서 신학을 전공한 독립운동가로 알려져 있다.
국악 진흥을 위해 가산을 털었던 정의현은 노년을 진도군 의신면 사하리 논수골에서 외롭게 보내다가 1999년에 생을 마감하였다.
[활동사항]
정의현은 유년 시절과 학창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1956년 진도 최초의 국악원을 설립하게 된다. 그런 다음 일제 강점기에 배재학당에서 서양음악을 공부한 경험을 살려서 진도 민속음악 정리에 힘을 쏟아 150여 쪽에 달하는 국악 교본을 저술하였다.
진도국악원에서는 고흥의 김활량, 전주의 최일원, 군내면의 이병기 등을 강사로 초빙하여 소리 강습을 하였다. 고수 부문에서는 진도읍 서외리 김득수[1978년 2월 2일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됐던 판소리의 고법 기·예능보유자], 시조 부문에서는 이정식[진도우체국장 역임], 가야금에서는 정의현, 무용에서는 양태옥[1987년 8월 25일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된 진도북놀이 예능보유자] 등이 활약하였다.
[의의와 평가]
정의현은 진도 최초의 국악원을 설립한 사람이다. 또 사재를 털어서 진도 국악의 발전과 중흥을 꾀한 민속음악 경영자이기도 했다. 당시에 이병기가 정의현의 후원으로 창작 활동과 전수 활동에 전념할 수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이임례나 이태백 혹은 진도 내에 있는 다수의 국악 동호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