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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동마을 동제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501694
한자 香洞-洞祭
영어음역 Hyangdong Maeul Dongje
영어의미역 Hyangdong Village Tutelary Festival
이칭/별칭 향동마을 망제,향동마을 당산제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향동리 향동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옥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간신앙|마을신앙
시작시기/연도 약 300년 전
의례시기/일시 음력 1월 14일 밤 9시
의례장소 향동마을 안 당산나무 앞
신당/신체 당산나무|당산할아버지
제관 마을사람

[정의]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향동리 향동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올리는 마을제사.

[개설]

향동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14일 밤 9시에 마을 앞에 있는 당산나무에서 마을 공동으로 제사를 지내는데, 이를 당산제 혹은 망제(望祭)라고 한다. 언제부터 당산제가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주민들은 마을이 형성되면서부터 지내기 시작했을 것이라고 믿고 있으며, 지금까지 중단된 적은 없다고 한다.

[명칭유래]

당산제라는 명칭은 마을제사를 당산나무 앞에서 지내기 때문이며, 망제라는 명칭은 정월 보름에 지내는 제사를 의미한다. 당산나무의 수종은 팽나무로, 수령은 약 300년 정도 되었다. 1982년에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처음 이 마을에 입향한 창녕조씨 할아버지가 지게 작대기를 꽂아둔 것에서 싹이 나서 현재의 당산나무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신당/신체의 형태]

당산제는 당산할아버지를 모시는 제사로, 축문에는 ‘이신(里神)’이라고 쓰여 있다.

[제관의 선정 및 역할]

정월 초에 이장과 개발위원들의 회의를 통해 제관을 선정한다. 제관은 그해 생기복덕을 가려서 가장 깨끗하고 유고가 없는 사람으로 선정한다. 제관으로 선정된 사람이 당산제를 지내기 전에 유고가 생기면 다시 날을 받거나 제관을 다시 선정하겠지만 애초에 유고가 있을 만한 사람을 피하기 때문에 현재 어른들이 알기로는 그런 일은 없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제관 한 명과 식모, 집사까지 세 명을 선정하였으나, 지금은 제사를 주관할 제관 한 명만 선정하고, 이장이 집사 역할을 하며 음식준비까지 한다.

[절차]

향동마을에서 실제로 제사를 모시는 시간은 밤 11시 30분에서 12시 30분경이다. 그러나 마을사람들은 밤 9시부터 제사가 시작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이는 2005년 진도군청 문화관광과에 제출된 마을별 세시풍속 현황표에 제시된 시간이기도 하고, 조사자가 마을이장에게 전화를 걸어 제사시간을 물어봤을 때도 밤 9시부터 모신다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조사자가 마을에 도착했을 때, 약 30명 정도의 마을주민이 당산나무 근처에 있는 농기구보관소 안에 모여 있었다. 일부는 윷놀이를 하고 있었고, 일부는 돼지고기를 구워 먹고 있었는데, 그렇게 놀면서 기다리는 것도 제의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농기구보관소 안에서 놀기 시작한 것은 몇 년 되지 않았다고 한다. 전에는 당산나무 옆에 불을 피워놓고 밤을 새며 놀았는데, 날씨가 추워서 건물 안에 들어와서 놀게 된 것이라고 한다.

11시 30분쯤 이장 집에서 음식을 가져오자, 먼저 마을주민들에게 제가 시작되었다는 신호로 징을 한번 치고 나서 제물진설을 시작하였다.

진설이 끝나자 제관의 주도하에 분향, 강신, 헌작, 독축, 구축, 소지 순으로 제가 진행되었다. 각 절차마다 제관은 재배를 하였다.

독축이 끝난 후에는 농사가 잘 되고, 값을 잘 받으며, 교통사고가 없으며, 농촌총각들이 혼인하며 만사태평하게 해주시라는 구축도 하였다.

제관이 물러나자 마을 청년들이 술을 올리고 재배를 하며, 돈을 돼지머리에 꽂았다. 서너 사람씩 몇 차례 진행되었다. 마지막으로 부녀회 대표가 술을 올리고 재배를 하였는데, 당산제에 여자가 참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였다.

모든 절차가 끝나자 헌식을 했다. 제물을 조금씩 떼어내 종이에 싸서 땅에 묻었는데, 헌식을 하는 곳 바로 옆에는 거리귀신들을 위해 큰 대야에 각종 음식을 담아 놓아두었다.

헌식이 끝나자 풍물팀(징, 꽹과리, 장구, 북)이 당산에 올라가 당산굿을 쳤다. 5분 정도 당산굿을 친 다음 마을로 들어가 풍물을 치면서 공동샘으로 이동하여 10분 정도 우물굿을 친 후 다시 아래로 내려와 공동빨래터에서 다시 한 번 굿을 쳤다. 그리고 다시 당산으로 돌아와 굿을 친 후 모든 의례를 마쳤다.

[제물/용품/제구]

제물로 쓸 재료들은 읍장에 가서 사온다. 특별한 금기는 없고, 질 좋은 것으로 장만한다. 제기는 제물을 마련하는 집의 그릇을 사용한다.

예전에는 당산제 하루 전에 당산나무 옆에 천막을 치고 제물에 쓸 음식을 만들었으나, 6년 전에 출향한 제일교포가 기금을 희사하여 그 자리에 팔각정을 지어주어 그곳에서 당산제 음식을 장만하고 있다.

제상에는 술 세 잔과 돼지머리, 생선구이 3마리, 삼채, 삼과, 조, 율, 포를 놓는다. 수저도 세 벌을 놓았다. 천신, 지신, 이신에게 올리는 것이므로 술도 세 잔 놓는다.

[부대행사]

당산제를 지내기 3일 전에 마을공동샘을 깨끗이 청소한다. 금줄은 당일 날 당산나무에만 두른다. 이장은 좋은 대나무를 베어 맨꼭대기에 빗자루와 창호지를 단 뒤 당산나무에 세우고 금줄을 친다.

빗자루와 창호지는 당산 주변을 깨끗이 청소하여 정화하는 의미라고 한다. 금줄은 왼새끼로 꼬는데, 금줄을 치는 이유는 부정한 사람의 접근을 막기 위해서이다.

예전에는 샘 주위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놓아 일반인들의 접근을 막았으며, 빗자루를 매단 대나무 외에도, 팽돌이라고 하여 바람개비를 달아 조류의 침입을 막았다. 또한 노적봉을 의미하는 가마니를 달고, 농사장원이 쓰여진 기를 세웠다. 당산나무에 친 금줄은 며칠이 지나면 걷어서 태운다. 예전에는 보름부터 정월 한 달 동안 지신밟기를 했으나 현재에는 풍물을 칠 사람이 부족하여 하지 않고 있다.

[금기]

제관은 제관으로 선정된 이후부터 당산제를 모시기 전까지 초상집을 가지 않고 개고기를 먹지 않으며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한다. 제관 이외의 다른 사람들은 마음을 경건하게 하고 행동거지를 조심한다.

[축문]

축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維 歲次

敢昭告于

里事之神 伏以於昭 靈祗鎭玆

德厚載物 澤晋資生 康我宅土

實賴咸亨 田里阜安 ○棧庶息

場圃盈止 영 角其집 凡諸揶揄

亦皆呵塢 旣獲神休 至誠報세

玆燭淸○ 聿神虔祈 利祛害以嗣歲

尙 饗”

[제비]

제비는 찬조금으로 충당한다. 당산제를 지낼 때 젊은 사람들이 적극 참여하여 소지를 올리며 소원을 빌면서 일정 금액을 찬조하는 형식이다. 이외에도 마을의 유지나 외지에 나간 향우들이 찬조하기도 한다. 2년 전까지만 해도 호구전으로 제비를 마련했다.

[현황]

향동마을은 비교적 큰 마을이고 반촌으로서 당산제에 대한 주민들의 자부심이 높고 신념도 강한 편이다. 제의 절차와 내용, 금기 등은 예전에 비하면 크게 간소화되고 축소, 약화되었으나 이는 현 시점에 맞는 변화라고 보여진다.

본격적인 제의는 밤 12시경에 시작되지만 저녁을 먹은 이후부터 주민들이 함께 모여 음식을 나누고 민속놀이를 즐기고 있어, 마을잔치로 자리 잡은 듯했다. 제의가 끝난 후 풍물팀이 굿을 치며 마을을 돌 때 이에 호응하며 함께 춤을 추는 모습에서도 당산제에 대한 마을사람들의 자부심과 전승에 대한 의욕을 느낄 수 있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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