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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501755
한자 文化
영어의미역 culture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남도 진도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전경수

[정의]

진도 지역과 사회의 전반적인 삶의 모습.

[개설]

개들이 서로에 대해서 이름을 짓는지, 여왕벌이 다른 벌들에 대해서 이름을 짓는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사람이라는 종은 동종 내에서도 이름을 짓고, 이종에 대해서도 이름을 짓는다. 이름을 짓는 행위는 인간의 문화에 속한 영역이며, 인간의 독특성을 발현하는 문화의 문제라고 인식할 수 있다. 침팬지의 행태를 연구하는 영장류학자들이 관찰 대상인 침팬지들에 대해서 개별적으로 이름을 짓는 경우를 본다. 집에서 기르는 개에게 이름을 부여하고, 반복적으로 개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개로 하여금 자신의 이름을 인식하도록 시도한다. 개를 통솔하려는 시도를 할 경우에는 항상 개의 이름을 부르는 행위로부터 시작하게 된다. “이름들(names)이란 항상 사물 그 자체(things themselves)를 말하는 것이지, 단순히 사물에 대한 우리의 아이디어(our ideas of things)를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름은 대상의 정체성(identity)과 직결된 문제이다. 즉 개체지시로서의 이름은 지시된 대상의 정체성을 표상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름을 짓는 것은 문화적인 현상이며, 인류사회의 가장 보편적인 현상들 중 하나이다. 인류학자들은 이름과 작명의 관행에 대해서 적지 않은 연구결과를 남기고 있다. 본고에서는 진도 사람들의 이름과 그에 관련된 관행에 대해서 시험적인 연구를 시도하고자 한다. 이름이라는 문화적 범주에 있어서도 구성요소들이 상당히 다양하기 때문에, 본고에서는 진도의 토속명에 나타나는 ‘-바’와 ‘-다니’에 대해서 집중적인 논의를 하기로 한다.

[진도의 문화와 언어]

진도에서 들은 이름들 중에서 아주 매력 있는 것으로, ‘기인바’와 ‘기인다니’가 있다. “기인지다.”라는 말은 ‘남의 눈에 잘 보이고, 근사하며, 참하고, 매력 있는’ 사람에게 붙이는 품사 형용사의 진도말이다(정성숙 씨 진술). 전자는 남자아이들에 적용되는 이름이고, 후자는 여자아이들의 이름이다.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바’는 남아용 접미사이고, ‘-다니’는 여아용 접미사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 두 가지의 용례에 대해서는 인칭접미사라는 용어로 연구된 바 있다.

‘-바’는 삼국시대의 인명에까지 추적이 가능한 ‘-보’와 동원(同源)의 다른 형태[異形態]라고 하였다. 다만 ‘-보’가 현대 국어의 호칭에서는 남녀 구별 없이 사용되고 있음에 반하여, 진도의 ‘-바’는 남성 인칭접미사로만 사용된다. 이에 대해서 ‘-다니’는 여성의 경우에만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인칭접미사의 관행과 용례는 진도에 국한되어서 나타나는 진도 특유의 문화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진도 문화의 특수성을 논의함에 있어서 두 가지 접미사를 거론하는 것은 타당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접미사의 의미에 대한 고찰은 진도 사람들의 정체성을 추적하는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바’: 남아의 의미]

필자는 1975년부터 1976년 사이 약 1년 반 동안 임회면의 해안가에 위치한 하사미(下沙渼)[가명]라고 불리는 한 마을에서 거주하면서, 진도 문화를 익히기 위한 당지연구(當地硏究, field research)를 수행한 적이 있다. 당시 읍내에서 하사미를 왕복하던 버스의 운전수를 나는 ‘육바’라고 불렀다. 진도군 의신면 죽청의 한 가정에서 여섯째 아들로 태어난 그를 사람들은 모두 ‘육바’라고 불렀던 것이다. 처음에 사람들이 그를 ‘육바’라고 불렀을 때, 나는 그의 이름이 단순히 ‘육바’인 줄 알았다. 동시에 한자로 어떤 글자를 사용할까라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런데 석교의 십일시장이 열리던 날, 나는 장에서 ‘육바’라고 불리는, 생선장사를 하는 또 다른 남자를 보았다. 그 생선장수에게 ‘육바’를 한자로 어떻게 쓰느냐고 물었으며, 그때 ‘-바’가 남아를 위한 접미사라는 사실과 숫자는 태생 순서를 말하는 것이라는 점을 배웠다.

남자의 경우, ‘시바, 니바, 오바, 육바’ 등의 용례가 일상적인 이름으로 사용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바’라는 접미사를 기초로 하여, 그 앞에 태생의 순서에 따른 숫자를 붙였다고 이해된다. 그러나 ‘일바’와 ‘이바’라는 용례는 수집할 수 없었으며, 그에 해당되는 지칭은 ‘큰놈’과 ‘작은놈’이다. 셋째가 생기면서 ‘작은놈’은 ‘간뎃놈’으로 변한다. 접미사로서 ‘-바’는 “‘-놈’에 해당된 어사”로서 남자를 지칭하는 용어로 이해할 수 있으며, 동시에 아들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늘어난 수량을 구분하기 위해서 적용되고 있음도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서수사를 사용함에 있어서 적용된 원칙은 발음의 편의를 위한 ‘한 글자 선택’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 일/이/삼/사/오/육의 용례와 하나/둘/셋/넷/다섯/여섯의 용례를 섞어서 사용하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즉 전자의 용례에서는 ‘오/육’을, 후자의 용례로부터 선택된 ‘셋/넷’에 대해서는 일상적인 발음을 적용하여 각각 ‘시’와 ‘니’로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돈주의 보고에는 “장남; 큰놈, 차남; 둘째놈(간뎃놈), 3남; 시바, 4남; 니바, 5남; 오바, 6남; 육바, 7남; 칠바, 출산 때 식복을 많이 받도록 기원하는 습속으로 솥뚜껑에다 아이를 받는 경우가 있는데, 그 아이의 이름은 ‘소드랑바’라고 부르며, 장사하는 남자는 ‘장씨바’, 귀머거리 남자는 ‘먹바’”라는 사례들이 제시되었다. 또 다른 특수한 용례로는 ‘갈매기바’라는 것이다(곽의진 선생의 설명). 6·25전쟁 동안에 진도 내에서 벌어졌던 좌우간 살육의 투쟁 동안 무인도인 갈매기섬에서 자행된 집단학살의 과정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남자에게 구자도 사람들이 ‘갈매기바’라는 지칭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미혼으로 떠돌아다니는 남자를 ‘전바’라고 한다. ‘-바’가 남자에게 적용되는 배타적인 특수성을 갖고 있다는 점은 ‘건달바’라는 용어의 사용에서도 지적할 수 있다. 일 없이 놀고 있는 남자를 일컬어서 ‘건달바’라고 한다. 다른 지방에서는 이 경우에 ‘건달’이라는 단어의 사용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전달되고 있지만, 진도에서는 ‘건달’이라는 단어의 뒤에 남자를 지칭하는 접미사인 ‘-바’가 사용되고 있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바’가 적용된 또 다른 사례들로는 지명과 연결된 것들이다. 예를 들면, ‘금갑바’, ‘오산바’ 등의 경우로서, 금갑 또는 오산이라는 지명의 뒤에 붙어서 사용되는 경우다. 금갑과 오산 출신의 사내에 대해서 적용하는 지칭으로서, 주로 친구들 사이와 손윗사람이 아랫사람에 대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에 사용된 ‘-바’는 종지명제(從地名制, geononymy)의 일종인 택호(宅號)에 적용된 인칭접미사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사용되는 이름을 구성하는 ‘-바’라는 접미사가 상황과 맥락에 따라서 확장, 응용되는 경우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응용의 경우에는 개체의 특성을 포착하여 작명되는 경향을 볼 때, 진도의 토속명 체계 내에서 개체지시의 원리는 지속적으로 확대 적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진도군 지산면 소포리 김병철(41세, 남)의 증언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용례들이 있다. 아명이 개똥이인 사람이 성장하면서 항상 욕을 잘 하는 노인이 되었는데, 그에게 개좃바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또 장에 나갔다가 아이를 낳은 경우에는 아이를 물건 담는 짚으로 만든 메꼬리에 담아서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런 아이에게 붙은 이름은 메꼬리바이다. 노름판에서 돈만 엄청나게 밝히는 남자는 돈바, 술 많이 먹는 경우는 술바라고도 한다.

사내아이를 지칭하는 ‘-바’의 용례로서 가장 오래된 사례는 “향가 중 서동요에 나오는 ‘서동방을(薯童房乙) 야의(夜矣) 묘을(卯乙) 포유거여(抱遺去如)’(맛둥방을 밤의 몰 안고가다)에서 ‘방(房)‘은 기원적으로는……‘마둥바’에 소급될 것”이라는 해석에 의존할 수 있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양주동의 연구를 세밀하게 인용할 필요가 있다. “〈방〉의 어원은 인칭명하(人稱名下)에 흔히 붙는 〈사복(蛇卜)/궁파(弓巴)〉 등 〈보/바〉의 주격형 〈보이/바이〉가 음편상(音便上) 개입된 비음〈0〉에 의하여 〈-방이〉로 전함이겠다. ……〈보/보이/바이〉등어(等語)를 고유어로 보고 〈방(房)〉을 음차자(音借字)로 보고저 한다”. 또한 “〈거렁방〉의 칭(稱)이 오래인 것은 『계림유사』의 〈개왈걸박(丐曰乞剝)〉으로 알 수 있다. 곧 이 말은 〈걸바/걸바이/걸방〉의 전(轉)이다”. 즉 ‘-바’ 용례가 향가나 고려어와 연결된다는 점을 수용한다면, 진도의 인명에 사용된 인칭접미사의 토속성과 역사적 깊이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고려 숙종[1095~1105년 재위] 때 송나라 손목(孫穆)이 고려를 방문한 후 저술한 『계림유사』에 나타난 ‘걸바’의 용례가 오늘날 진도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다니’: 여아의 의미]

여아의 경우, 일상생활 속에서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이름들은 ‘시다니’와 ‘니다니’였다. 셋째딸과 넷째딸의 이름이다. 이때 ‘-다니’는 남아의 경우에 적용했던 ‘-바’의 기능과 동일함을 알 수 있다. ‘단’이나 ‘다니’는 동일한 어원이고, 뒤에 붙는 토씨나 접미사에 따라서 ‘단’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다니’로 사용되기도 한다는 점은 쉽사리 이해가 되었다.

필자가 주민의 거주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면사무소에서 주민등록부와 호적을 열람한 적이 있었다. 하사미의 주민들 중, 여자들의 이름 끝자에 ‘단(丹)’이라는 한자가 적힌 경우를 적지 않게 발견하였다. “『춘향전』의 향단(香丹)이라든가 『옥단춘(玉丹春)』의 옥단(玉丹)이는 물론 물단(勿丹, 믈단)이도 어쩌면 동원(同源)의 ‘단’일 것”이며, 그것은 “고구려 지명어에서 ……기원한 이형(異形)들(로서) ‘단’은 골짜기의 뜻에서 은유에 의하여 의미가 전의된 것”이라는 추측이 제기되었다. ‘-다니’ 또는 ‘단’은 고구려 지명어인 곡(谷)에서 기원한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인데, 그 의견에 근거하여 진도 인칭접미사인 ‘단’과 ‘-다니’를 고구려어로 유추함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유추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지명어로서의 고구려어와 진도 인칭접미사와의 관련성과 연결에 필요한 논리적 설명이 필요하다. 그 설명이 제공되지 않는 주장은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어떤 아주머니의 이름은 이웃들 사이에서 ‘골단네’라고 불리고, 어떤 다른 아주머니의 이름은 ‘금갑다니’로 불렸다. 전자의 경우는 기혼여자에 적용하는 택호의 일종이고, 후자는 미혼여자에게 적용하는 경우다. 미혼의 경우에 적용되었던 ‘금갑다니’가 혼인 후에도 택호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 경우는 주로 친구들 사이에서 적용된다.

여자의 경우, ‘일다니’나 ‘이다니’(또는 ‘두다니’)의 용례를 접할 수가 없었다. 그 경우는 ‘큰가’와 ‘장가’라는 용어 또는 ‘큰년’과 ‘작은년(간뎃년)’이 적용되었다. 셋째딸이 생기는 동시에 ‘작은년’은 ‘간뎃년’이 된다. ‘큰가’는 ‘큰 가이나’(‘가이나’는 계집을 가리킴)의 준말이고, ‘장가’는 ‘작은 가이나’의 준말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가’와 ‘-다니’는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딸아이들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출생순서에 따른 구분의 필요성으로 인하여 ‘시다니’와 ‘니다니’라는 이름이 적용된 것 같다. 환언하면, 딸아이의 숫자가 적을 경우에는 그러한 구분의 필요성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다. 서수사의 적용에 있어서, 고유어와 한자어의 병용은 남아의 경우에 사용되었던 ‘한글자 선택’의 원칙이 여아의 경우에도 전혀 동일하게 사용되었다.

호적과 주민등록부와 같은 공식 기록에서도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이름들이 반영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순단(順丹)’, ‘복단(福丹)’ 등의 이름이 진도의 여자들에게서 적지 않게 발견되며, 이 이름자들은 법적인 기록부에 등록된 경우도 많다. 즉 인칭접미사로서의 ‘-다니’가 고유명의 일부인 ‘단(丹)’으로 전환된 모습을 볼 수 있다.

거제에 거주하는 아이의 이름이 소개다니와 소개바이고, 그 아이들 어머니는 소개네라고 불린다. 어머니가 소포리 출신이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서울 출신이고, 아버지가 진도인 경우, 아이의 이름을 ‘경진(京珍)’이라고 붙인 경우도 있다. 여수 출신의 여자가 진도로 시집을 온 경우, 둘째딸을 ‘여진(麗珍)’이라고 지은 경우도 있다(이병진 진도예총회장의 진술). 이러한 경우들이 모두 모향명제(母鄕名制)의 전통에 해당되는 변형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골다니(또는 ‘골단’)’라고 불려지는 사람의 호적상 이름은 ‘읍단(邑丹)’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즉 고을 읍(邑)자를 적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금갑다니’의 경우, ‘금갑’은 의신면 금갑을 이르는 지명이다. ‘골다니’의 경우, ‘골다니’의 어머니의 친정이 읍내이기 때문에, 딸의 이름을 ‘골다니’로 붙인 것이라고 한다. ‘금갑다니’의 경우, ‘금갑다니’의 어머니 친정이 금갑이기 때문에 딸의 이름을 ‘금갑다니’라고 지었다고 한다. 즉 딸의 이름을 지을 경우, 어머니의 친정 고향의 이름인 지명을 작명의 기조로 삼고, 접미사로 ‘-다니’를 붙인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내가 하사미의 마을에서 묵었던 집에는 ‘민자’라고 불리는 큰딸이 있었다. 그 이름이 한자로 ‘민자(民子)’라고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는 흔히 여자의 이름에 붙는 일본식의 ‘자(子)’가 적용된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 작명의 설명은 달랐다. ‘민자’의 어머니는 지산면 인지리 민작굴이 친정이기 때문에, 모향명(母鄕名)인 ‘민작굴’의 글자를 기조로 하여 큰딸의 이름을 ‘민자’라고 지은 것이라고 했다. 모향명제(母鄕名制)는 큰딸에게 적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진도의 외곽에 위치한 관매도의 고유명칭으로 보고된 경우가 아주 흥미롭다. “볼메에서 시집온 여자가 첫아들을 낳으면 그 아이를 볼메수라 하고 그 어머니를 볼메수넘씨, 그 아버지를 볼메수납씨라고 부른다. 한편 첫딸을 낳으면 그 아이를 볼메단이라고 부르고 그 부모를 볼메다념씨와 볼메다납씨라 부른다”. 조영남 선생은 볼메다념씨는 볼메단+엄씨일 것이고, 볼메나납씨는 볼메단+압씨에서 이어진 이름일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이러한 용례를 볼 때, 관매도의 경우에는 여아와 함께 남아에게도 모향명제를 적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모향명제를 근거로 한 종자명제(從子名制, teknonymy)의 관행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모향명제는 진도 토속명의 또 다른 특수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름에 각인된 모변성(母邊性, matrilaterality)의 유제로서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며, 여자들의 이름에 모변성의 정신이 유전되고 있다는 점은 진도 사람들의 생활문화의 저변에 흐르는 역사성과의 관련성 속에서 해석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가족과 친척관계의 역사 속에서 한국의 일반적인 현상이 부계혈통(patrilineal descent)을 중심으로 하여 부변성(父邊性, patrilaterality) 속으로 모변성이 침잠해온 경향을 조망한다면, 진도의 이름에 유전하고 있는 모변성의 문제는 한국 가족의 역사성이라는 차원에서 재조명될 수 있는 부분이다. 현재 부변성에 대해서 종속적인 모변성이 진도 사람들의 이름 속에서는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모습으로 유전되고 있음이 문제의식의 핵심이 될 수 있다.

[비교문화론의 필요성]

사람들이 개나 침팬지에 대해서 이름을 짓는 것을 보면서, 작명과 그 행위에 대해서 쉽게 인식할 수 있는 일차적인 작명이유는 개체지시(個體指示)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경우는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바’와 ‘-다니’는 일차적으로 성별에 따른 집단귀속(集團歸屬)의 기능을 갖고 적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바’는 남자라는 집단에, ‘-다니’는 여자라는 집단에 귀속됨을 지칭하는 접미사이다. 그 집단은 다름 아닌 생식가족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이러한 명명법은 생식가족의 범위를 넘어서 보다 넓은 사회적 관계 속으로 확산되어 사용되기도 함을 알 수 있다. 다음, 그 집단 내에서 개체의 지위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출생서열을 나타내는 숫자를 적용하고 있다. 즉 진도 사람들에게 있어서 ‘-바’와 ‘-다니’가 적용된 이름들 예를 들면, ‘시바’와 ‘니바’, 그리고 ‘시다니’와 ‘다니’는 집단귀속과 개체지시의 기능이 복합된 모습으로 나타나는 고유한 토속명으로서 남녀성별과 출생순위만을 포함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름이라는 하나의 체계를 고려한다면, 복잡한 요인들이 삽입되어 있는 않은 지극히 원시적인(primitive) 형태라고 상정할 수 있다. 향가 「서동요」의 ‘서동방(마둥바)’이 진도에서 유전하고 있는 ‘-바’의 연원일 가능성에 동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아의 경우에 사용된 인칭접미사인 ‘-바’가 한자식 이름에 적용된 경우는 발견할 수가 없었지만, 여아의 경우인 ‘-다니’는 한자식으로 전환되어서 호적부나 주민등록부에 ‘단(丹)’으로 기록되고 일상적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즉 남성 인칭접미사와 여성 인칭접미사 사이에 차별적인 대우가 적용된 점을 지적할 수 있고, 그 과정에는 한자식 이름과 한자식 이름의 문서화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원인은 남자에 적용된 항렬자의 압력, 즉 유식명(儒式名)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남자의 경우는 그 압력을 받음에 대해서, 여자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그 압력을 받지 않기 때문에, 토속명이 고유명의 한자화 과정에서 잔존할 수 있는 여지를 확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여아에 적용되는 인칭접미사인 ‘-다니’가 음차(音借)의 방식을 택한 결과 고유명의 일부인 ‘단(丹)’으로 전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신유교의 근간을 이루어온 종법(宗法)을 기초로 한 한자식 이름이 나중에 도입된 뒤에도 진도에서는 토속명이 일상적인 상황에서 지속적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한반도 내의 다른 지역들과 비교하여 볼 때, 진도의 토속명이 갖는 일상적 용법은 유식화(儒式化)에 대한 대항문화의 끈질긴 저류에서 비롯된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환언하면, 진도문화의 토속성은 진도사람들의 이름에서 보여주는 정체성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다음 단계로, 지시의 행위를 이름이라는 현상으로 받은 대상은 그 이름을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갖게 된다. 즉 ‘옹헤’라고 이름이 지어진 개는 그 이름이 자신을 부르는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그 이름을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따라서 작명의 다음 이유는 개체로 하여금 정체성 획득의 과정을 거치게 함에 있다. 따라서 진도 사람들의 이름에는 진도 사람들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단서가 배어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모변성에 대한 비중을 지적할 수 있는 모향명제와 여성 인칭접미사의 고유명화라는 독특하고 배타적인 현상들에서 보듯이, 진도에서는 남성보다도 여성 속에서 더 많은 토속성을 읽을 수 있다는 가설이 진도 사람들의 이름으로부터 제기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가설은 다른 지역에서도 적용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이름에 나타난 토속성을 논의하면서, 나는 민속이라는 용어를 기피하였다. 토속과 민속은 서로 다른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된다. 한자명을 적용하여 이름을 지은 경우는 토속이라는 범주에는 속하지 않을 것이다. 토속과 민속의 의미 차이에 대해서 별도의 논의를 요하는 점이 있다는 문제제기만을 하고자 한다.

나는 여기서 비교문화적인 시각을 원용하여, 진도 사람들의 이름에 적용된 원리들과 아주 유사한 경우를 보이는 일본식의 이름에 대해서 주의를 환기시키고자 한다. 일본의 경우, 남자에게는 ‘랑(朗)’, 여자에게는 ‘자(子)’를 적용하는 용례는 아주 흔하다. 성별구분을 기초로 한 작명의 형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남자들의 이름에는 ‘이랑(二朗)’, ‘칠랑(七朗)’ 등의 이름이 있음을 듣고 있다. 여자의 경우에도 흔치 않게 순서가 적용된 경우들이 있다. 이부분에 대해서는 일본 쪽의 연구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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