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박중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501815
한자 朴仲辰
영어음역 Park Jungjin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남도 진도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정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동학지도자
출신지 진도군 조도면 산행
성별
생년 1848년연표보기
몰년 1894년연표보기
본관 밀양
문화(文化)

[정의]

전라남도 진도군의 동학교도·농민군 지도자.

[개설]

박중진(朴仲辰)은 1894년 7월에 일어난 전라남도 진도군 동학농민군의 지도자이다.

[가계]

본관은 밀양. 호는 문화(文化)이다. 밀양박씨 규정공(糾正公)[박현]파 26세손이다. 6대조 박덕환(朴德煥)[1710~1783] 때 진도군 조도면에 들어왔다. 손자가 진도군 조도면 창리에 살고 있다. 박중진의 딸은 진도읍내 동외리에 사는 김흥찬(金興贊)과 결혼하여 세 아들을 낳았다.

[생애]

1848년 진도군 조도면 산행에서 태어나 동학농민군을 이끌던 중 수성군에 잡혀 1894년 향년 47세로 타계하였다.

[활동사항]

1894년 7월에 영광, 무장 등지에서 모인 동학농민군은 배를 타고 진도에 들어와 읍정(邑政)을 차지하기 위한 공격을 개시하였다. 이때 박중진은 동학농민군을 이끌어 진도읍내 쉬미항으로 들어오도록 했다.

동학농민군이 봉기하자 당시 진도군수였던 이희승(李熙昇)은 관아를 버리고 도망가 버렸다. 1894년 8월에 신임 군수가 왔을 때에 관아 창고는 텅 비었고 군인 10여 명 밖에 없었다고 한다. 관내 유력자들은 수성군을 조직하여 박중진 등 50여 명을 체포하여 감금하였다. 이후 수성군은 동학농민군 37명을 타살하여(임순재 구술) 진도읍내의 서쪽, 속칭 솔개재에 버렸다 한다.

박중진은 다른 동학농민군 지도자들과 달리 관군에 처형된 것이 아니라 수성군에 타살된 것으로 보인다. 사망 후 그의 집은 관군에 의해 불타버렸고 친족들은 족보를 없앴다.

[묘소]

초혼 묘가 진도군 조도면 산행에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