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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매마을-특성-어로활동과 어구-닻배와 조기잡이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005T07031
한자 鳥島面 觀梅마을-特性-漁撈活動과 漁具-닻배와 조기잡이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관매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경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섬마을|어촌
면적 266.8

[닻배와 조기잡이]

⑴ 닻배의 구조

닻배는 배에 수많은 닻을 싣고 다닌 데서 유래된 명칭이다. 다른 이름으로는 정선(碇船)이라고 한다. 정선망은 물 속에 병풍처럼 길게 그물을 펼쳐 고기를 잡는 자망의 일종으로, 그물의 아랫부분에 무게를 주고 그물을 일자로 펼치기 위해 소형 닻들이 많이 필요하다. 그 닻들을 배에 싣고 어로활동을 한다고 하여 닻배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

관매도 닻배제작은 주로 관매도 현지에서 이루어졌다. 마을의 배목수가 보조 몇 사람을 데리고 배를 만들었다. 닻배는 전통 한선의 일반적인 특징처럼 배 밑바닥이 평평한 평저형이다. 배의 모양은 비우배 형식이다. 지붕이 없어서 선원들은 ‘두덕옷’을 입고 어장일을 보았다. 배의 갑판에 너장을 깔아서 방침을 한다.

그러나 배 밑은 구분되어 있고, 안에는 자리를 깔아놓았다. 배를 옆면으로 보면 그물 싣는 칸, 사람이 자는 칸, 술과 음식을 쟁이고 조리하는 칸이 있다. 그물 싣는 곳 위에 널을 깔아서 사람들이 걸어다닐 수 있게 했다. 그리고 배 위 양쪽에 활아지라는 것을 높이 만들어놓아 그물을 당길 때 편리하다. 닻배는 못을 전혀 쓰지 않고 만드는데, 못을 쓰면 빨리 썩기 때문이다.

돛대는 앞뒤로 1개씩 2개를 설치한다. 이물돛대는 이물멍에 뒤에 설치한다. 그리고 중간돛대는 배의 중앙에 자리한 대멍에 뒤에 설치한다. 중간돛배의 길이는 선체의 길이에 비례하며, 앞돛대의 경우는 중간돛배보다 10% 가량 짧게 만든다.

⑵ 조기잡이

①선원의 구성과 역할

닻배에 타는 인원은 보통 15명 정도로, 선주와 사공(선장), 영자(부선장) 두 명, 화장, 웃굽(선원) 다섯 명, 아랫굽(선원) 다섯 명으로 구성된다. 선주는 배를 총괄, 관리한다. 선장은 치를 잡고 배를 조정하며, 물때에 맞춰 그물 놓을 위치를 결정하고 선원들을 지휘한다. 웃굽 1명은 닻을 던지고 나머지는 그물 놓고 올리기, 조기따기, 조기 옮겨 싣기 등을 한다. 아랫굽 1명은 몽구돌을 던지고 나머지는 그물 놓고 올리기, 조기 따기, 조기 옮겨 싣기 등을 한다.

영자는 선원 중 가장 고령자로서 오색기를 띄워 상고선과 연락하는 일이나 잡일 등을 한다. 화장은 선원들의 식사를 담당하고 작업을 보조한다.

②어로시기와 어장

닻배는 한식 무렵에 출어해서 소만(小滿)살을 보고 들어온다. 약 50일 정도 출어했다가 돌아오는 것이다. 출어 하루 전날 음식을 장만해 출어고사를 지낸다. 곡우살에 칠산바다에 들어가고 입하살에 고군산 연도로 들어가고, 소만살에 내려온다.

첫그물은 임자도, 재원도, 비치도 바깥에서 내렸다. 첫그물을 내릴 때 낙망고사를 지내고, 첫조기를 잡아 조상들께 신산고사를 드렸다. 조기잡이 어로는 음력 3~4월에 집중되는데, 적게는 45일, 길게는 70일 정도 작업이 이루어진다.

③어로방식

어장에 도착하면 우선 닻을 내려 배를 고정시키고, 그물을 배에서부터 물고기의 이동 길목에 길게 펼친 다음 부표를 띄워 놓는다. 4시간쯤 지나면 그물을 당겨 그물코에 낀 물고기를 떼어낸다. 주로 조기가 잡히고 장대, 홍어, 기타 잡어 등이 잡힌다. 한 물때에 많을 때는 20동(1동에 1천 마리)씩 잡기도 했다.

잡은 고기는 법성포나 목포 등지에서 온 상고선 상인들에게 판매하였다. 전국에서 몰려든 조기잡이배와 상고선들이 엉킨 어장 주변의 섬에는 파시가 크게 들어섰다. 전라북도 위도나 영광의 법성포 등지에 파시가 크게 섰다.

작업 도중 날씨가 나빠지면 제원도나 안마도 등지로 피항했다. 바람이 불어 작업을 못하게 되는 것을 “석을 먹는다.”고 한다. 이 경우 인근 섬에 가서 정박을 하면서 날씨 조건에 맞춰 작업을 한다.

④수익분배

닻배의 어로수입은 일정한 규칙에 따라 분배된다. 배가 출어하기 전에 선주가 선원들에게 얼마씩의 선금을 주는데, 이를 선용이라 했다. 1960년대 당시 시세로 보면 보리 세 가마니 값인 천 원 정도였다. 이 돈을 쓰고 나중에 뱃일로 갚는데, 만일 고기가 많이 잡히지 않으면 그 돈을 선주에게 반환해야 한다.

독한 선주들은 전답을 차압해버리거나 이를 미끼로 종속적 관계를 지속하기도 한다. 분배할 때 들어간 비용을 빼고 남은 금액에서 선주가 6짓을 갖고 나머지 4짓으로 선장과 선원들이 나눈다.

⑤오색기

오색기는 고사를 지낼 때나 고기가 많이 잡혔을 때, 또는 급한 일이 생겼을 때 단다. 보통때는 선주방에 보관해둔다. 오색기는 다는 위치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배 뒤쪽에 달면 고기를 많이 잡았다는 뜻으로 상고선을 부르는 신호다. 하지만 만족할 만큼 많이 잡았다는 뜻은 아니다. 배 앞 이물에 오색기 하나를 달면 사고가 났다는 신호다. 배 곳곳에 오색기를 달면 더이상 고기를 실을 데가 없을 만큼 가득 잡았다는 뜻으로 상고선을 부르는 신호이기도 하다. 이때의 상태를 “오만선했다‘고 한다. 뱃고사를 지낼 때도 사방에 깃발을 단다.

⑥금기와 관행

가족 중에 산모가 있으면 그 선원은 어장에 나갈 수 없다. 또한 부인이 애를 낳을 시기가 되면 그 선원은 집을 나와 있다가 출어한다. 첫 출어시 돼지를 잡아 뱃고사를 지내고 방애섬을 지날 때면 선원들이 바닷물에 세수를 하고 절을 하며 무사와 풍어를 빌었다.

배에서는 행위나 언어사용에 대한 금기사항이 많았다. 출어할 때에는 손톱이나 머리를 깎지 않고, 배 위에서는 동물들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았다. 소는 노랭이, 개는 마당너구리, 뱀은 작대기, 돼지는 먹퉁이, 닭은 마당쇠라고 불렀다. 그리고 과거에는 여자가 배에 오르는 것도 금기시되었다.

⑦닻배 어로의 쇠퇴

닻배는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쇠퇴하기 시작하여 해방 이후 척수가 많이 줄어들었고 50년대 말, 60년대 초에 어로의 역사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관매도를 비롯한 조도의 어선어업 전통은 지속되고 있다. 목포에서 활동하는 상당수의 선주와 선장들이 닻배 선주나 닻배를 탔던 선원들이다. 성공한 닻배 선주들은 모두 목포로 진출하여 중선배를 운영하는 해운사업의 주체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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