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500032
한자 干拓
영어음역 gancheok
영어의미역 reclamation
이칭/별칭 매립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남도 진도군
집필자 문병채

[정의]

호수나 바닷가에 제방을 만들어 그 안에 있는 물을 빼내 육지화하여 농토나 기타 산업부지로 만드는 일.

[개설]

간척은 농경지 또는 염전 등의 목적으로 사용할 계획으로 방조제 공사를 시행하여 일정 수역을 설정하고 방조제 내부의 물을 배제시켜 토지로 조성하여 사용하는 행위 등을 말한다. 결국, 간척이란 근해(近海)의 간석지 또는 호수에 제방의 축조 등 제반 공사를 한 다음 간만의 차를 이용해서 내부의 물을 배제한 후 토지를 새롭게 조성하여 필요한 용도로 사용되도록 토지를 개간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변천]

고대부터 조선 중기까지 진도는 넓은 갯벌이 곳곳에 펼쳐져 있어 해산물이 풍족한 지역일 뿐 농사를 주업으로 하던 지역은 아니었다. 1530년에 편찬된『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진도 군민들은 고기와 소금에 의존하고 농사는 그다지 힘쓰지 않았다고 기록되고 있다. 18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도 농사에 힘쓰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1761년에 나온『옥주지(沃州誌)』에 “옛날에 우리 고장을 옥토(沃土)라고 이른 것은 석류가 비로소 버려질 때 시들어 떨어진 초목(草木)의 잎이 차곡차곡 쌓여 땅에서 썩은 기간이 몇백 년이 지나갔으므로 파종하는 면적이 넓지는 않지만 그의 수확은 10배나 되었다.”라고 한 것은 진도가 오랜 동안 농사를 짓지 않았던 땅이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그러나 19세기 후반인 1871년에 편찬된『진도부읍지(珍島府邑誌)』「풍속조」에는 “산이 밭이 되고 바다가 논이 되어 농업으로 생업을 삼는다.”는 기록이 나타난다. 이는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개간과 간척을 통해 토지를 넓혀갈 만큼, 진도의 주산업이 농업이 되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하지만 간척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된 것은 일제강점기에 이르러서였다. 일제강점기 때 지금의 진도읍 앞 평야 일대가 모두 간척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현대에 이르러 간척사업은 1950년대 말부터 시작되었다. 1950년대 말부터 2006년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간척사업이 진행되고 있으나, 1950년대 말에서 1980년대 말까지는 소규모 간척사업이 진행되었고, 이후부터 현재까지는 대규모 간척사업이 진행되는 변화가 있었다. 1959년부터 1985년까지의 진도 간척사업 현황을 살펴보면 (표 1)과 같다.

 

웹사이트 플러그인 제거 작업으로 인하여 플래시 플러그인 기반의 도표, 도면 등의
멀티미디어 콘텐츠 서비스를 잠정 중단합니다.
표준형식으로 변환 및 서비스가 가능한 멀티미디어 데이터는 순차적으로 변환 및 제공 예정입니다.

[표 1]1959년부터 1985년까지의 진도 간척사업 현황

[현황]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대규모의 간척사업이 시작되었다. 1990년에 시작한 군내지구 간척지 개발사업, 그리고 1991년에 시작한 보전지구 간척지 개발사업은 역대 진도에서 행해진 간척사업 중에서 가장 대규모였다. 군내지구는 진도군 진도읍 전두리~군내면 나리에 이르는 지역으로, 1991년 11월 이후부터 2006년 12월까지 계속사업으로 진행 중에 있다. 총사업비는 101,075백만 원(농지관리기금)으로, 개발면적 1,104㏊(내부개답 464㏊, 배후지 640㏊)에 이르는 광대한 사업이다. 보전지구는 진도군 지산면 보전리 서쪽 지선과 거제 북쪽 지선을 연결하는 방조제(980m)를 축조하여 298.5㏊를 매립하고 그 안에 담수호를 만들어 몽리 면적 204.55㏊(간척지 173.12㏊, 배후지 31.43㏊)를 확보하였다. 이로써 광대한 지역이 농경지가 되어 농어민의 소득 증대에 기여하고 있다. 구체적인 내용은 (표 2)와 같다.

 

웹사이트 플러그인 제거 작업으로 인하여 플래시 플러그인 기반의 도표, 도면 등의
멀티미디어 콘텐츠 서비스를 잠정 중단합니다.
표준형식으로 변환 및 서비스가 가능한 멀티미디어 데이터는 순차적으로 변환 및 제공 예정입니다.

[표 2]군내·보전지구 간척사업

군내지구와 보전지구의 간척지 개발사업은 진도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농어촌의 다양한 소득원 개발, 농업의 현대화 촉진, 방조제 설치로 인한 육운 개선, 관광지 조성 등으로 지역 발전이 크게 기대된다.

그간 진행된 간척으로 진도의 자연경관은 크게 변하였다. 진도군의 면적이 28%가 증가하였는데, 그 중에서 특히 진도 본도의 면적이 32% 증가하였다. 해안선도 많이 변화하여 64.27% 가 감소하였다. 특히 진도 본도의 경우는 68% 정도가 감소하여 진도 본도를 중심으로 가장 많은 간척사업이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진도 간척사업의 진행과 결과는 진도 도서의 지역별 문화 성쇠를 설명해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18세기까지는 조도가 진도 인근 지역의 중심지적 기능을 수행하였다. 조도 해역은 상대적으로 수심이 깊어 옛날부터 간척이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에 그 규모가 지금과 동일했을 것이다. 반면, 진도 본도는 수많은 간척사업이 행해졌던 것으로 보아 예전에는 지금보다 지역세가 약했을 것이다. 따라서 간척사업이 본격적으로 벌어지는 20세기 이전에는 서남 해역의 중심지적 기능은 조도가 담당했을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간척사업이 진도의 생활공간에 질적인 변화를 가져왔다는 사실이다. 특히 생업 활동에 큰 변화가 있었다. 끊임없는 간척사업은 갯벌의 감소를 초래하여 해양 생태계의 변화를 초래할 수밖에 없었고, 이로 인해 어장 및 갯것, 해조류의 상실이 있었던 반면 넓은 경작지가 새로 생겨났다. 진도는 어업보다는 상대적으로 안정된 농업으로 생업 방식이 변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간척에 의한 해안 개척으로 생활공간이 확대됨으로써 도서 문화의 통합이 가능해졌다는 것에서도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용자 의견
하** 방조제 건설전과 후의 변화된 모습이 추정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2019.02.17
하** 고려시대때 진도 모습은 어땠는지.. 그리고 일제시대.. 1970년대 이후의 모습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원래 3개의 섬으로 구성돼있었다는 말은 들은 것 같은데 사실인가요? ㅎㅎ)

삼별초군이 용장산성을 세운 때, 진도남성으로 피난했을 때 진도의 모습이 궁금하더군요..

제 생각에는 방조제 건립시기와 그 배후 간척지의 해수면을 추정해 보면 방조제 건설전
2019.02.17
하** 진도의 간척사업에 대한 내용을 흥미있게 봤습니다.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간척사업의 변화를 지도로 표현해 주면 더 좋을 듯 싶습니다.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추정으로라도 표1과 표2의 간척아업 내용이 반영된 지도를 연도에 따라 표기를 해주시면 변화된 모습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19.02.17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