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대동 두레놀이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500358
한자 大同-
영어음역 Daedong Durenori
영어의미역 Farmers' Festival
이칭/별칭 화중밭 매는 소리,진도 들소리,의신면 들노래,진도 동부 들노래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놀이/놀이
지역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돈지리
집필자 이윤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일노래|일놀이|전통놀이
유래지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돈지리

[정의]

집단으로 일손을 꾸려 일을 하면서 노래하는 논일소리와 밭일소리의 총칭.

[개설]

전라남도 진도에서 대동두레놀이라고 하면 대개 진도군 의신면 돈지리를 중심으로 전승되고 있는 일노래를 지칭하는 것이다. 진도군 지산면 인지리를 중심으로 구성된 남도들노래(국가지정 무형문화재 제51호)가 논일소리인 것에 반하여, 대동두레놀이는 의신면을 중심으로 한 논일소리와 밭일소리를 총칭하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의신면을 중심으로 마을사람들이 한때 진도의 주력산업이었던 목화밭을 공동으로 매면서 부르던 밭일소리도 대동두레놀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대동두레놀이를 지산면 들노래와 비교하기 위하여 의신들노래 혹은 진도동부 들노래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노래는 많은 제보자들의 증언을 근거로 돈지리의 허옥인이 1980년 초에 새롭게 구성한 것이다.

한편 논일소리를 중심으로 한 대동두레놀이를 ‘감지평 들노래’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따라서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대동두레놀이는 화중밭 매는 소리, 혹은 화종밭 매는 소리라 하고, 의신면 논일소리는 진도 들소리, 의신면 들노래, 진도 동부 들노래 등으로 부르는 것이 용어의 혼란을 방지할 수 있다고 본다.

[명칭유래]

화종밭을 매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대동차린다’라고 말한다. 또 마을 사람들 일부만 모이는 것을 ‘두레 차린다’라고 말한다. 대동을 차리게 되면 통솔하는 사람을 ‘존위(尊位)’라고 불렀으며 모임의 신호를 나팔로 하였다고 한다. 김매기 작업은 남자가 주도하되, 남녀공동으로 작업했다. 지산면을 중심으로 한 남도들노래가 여성 중심의 작업환경이라는 점과는 비교된다. 공동작업량의 비중은 ‘마냉기’라는 제도를 운영했다. 마냉기란 토지가 많은 집에서 토지가 적은 집으로 작업비를 환산해주는 제도를 말한다.

[연원]

허옥인에 의해 재현된 대동두레놀이의 연혁은 다음과 같다.

1979년에 진도각시맞이의 의례와 노래를 발굴·재현하였다. 1983년에는 의신면 전통민속제를 개최하였고, 1983년 진도군민의 날에 진도각시맞이를 시연하였다. 1983년 제13회 남도문화제에서 ‘의신대동놀이’로 장려상을 수상하였다. 1984년과 1985년에 각각 제2회 및 3회 의신면 전통민속제를 개최하여 시연하였으며, 1985년에는 국립극장 공연을 하였다.

1986년 허옥인에 의해 『진도속요와 보존』이라는 책자가 발간되면서 대동두레놀이가 체계적으로 정리되었다. 1986년 제15회 남도문화제에는 ‘진도민요판’이라는 이름으로 출전하여 우수상을 차지하였고, 이때 허옥인이 지도상을 수상하였다. 당시에 받은 수상금으로 돈지리에 놀이마당을 조성하였다. 1988년에는 허옥인(국악협회장)에 의해 제1회 진도국악제를 개최·시연하였다. 이어서 2001년 10월 30일에 향토문화유산 제3호로 지정되었다.

[놀이도구]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의 대동두레놀이에서 남자들의 의상은 ‘중우바지’에 ‘베등지게’를 입는 것이 보통이다. 신발은 ‘털맹이’라는 짚신을 신고, 혼인하지 않은 사람들은 ‘태맹기’라는 베수건으로 머리를 두른다. 모자는 ‘농립’이라 하여 짚으로 왼새끼를 꼬아 패랭이테를 만들어 쓴다.

[놀이방법]

대동두레놀이의 순서는 「모찌는 소리」, 「모심는 소리」, 「긴절로소리」, 「중절로소리」, 「자즌절로소리」, 「길꼬랭이」로 이어진다. 밭들노래로는 「길사거리」, 「개타령」, 「중타령」, 「난초타령」, 「흥드레들노래」 등으로 이어진다. 대동두레놀이를 하면서 불렀던 놀이가사를 기술하면 다음과 같다.

[가사]

〈의신대동두레놀이의 경우〉

① 들나감장(길사거리)

거사: 하늘을 취어다 봐라. 구름이 사방에서 뒤둥군다.

사당: 나는 간다~ 나는 간다

거사: 헤~ 시부렁 섭죽하니 새별 나왔는가

-하략-

② 진양조 이음

합창: 아~아~아/ 아리여로~오/ 이리되로 고나~하/ 나헤 어디로 가자/ 너 ~ 흠~/ 자나 나아도 산안이요/ 어~어너~어~

사당: 우리 부모는 날 여울라면/ 피는 꼬체 날 여워주제/ 피였다가 지는 ~꽃에다/ 날 여웠던가

거사: 자나 나아도 산안이요/ 어~어너~어~

-하략-

③ 발림장(중중모리)

사당: 쌍울려 발림하세

거사: 좋다 좋다 노래, 한둠혀 불러서러~허

-하략-

④ 호미시김(「개골이 타령」)

합창: 개골개골 개골개골 개골/ 개골을 찾을라 면양서 먹고 됫돈받고/ 양폴을 긁어 걷고 미나리방죽만 더듬어라/

-하략-

⑤ 마당놀이 「진방아타령」(김매기 작업이 끝나고 밤에 모여서 노는 사당거사놀이)

사당: 이히야 헤~헤 헤이야/ 허리 허허 허로 구나아/ 아무래야 어히허라아/ 니가 네로 구나/

거사: 사당 마누라 미소를 떨고/ 마누라 댕기 만 드려부러라/ 허라디야 어리시구나 절이시구나/ 방애로다

-하략-

⑥ 「사랑타령」(자즌모리)

합창: 사랑 사랑 아이고 모두네 사랑아/ 애랑 애랑 애야 애히여러

거사: 어허 설마 좋다~/ 옥천앵두는 붉었는데 요내 낭군 소식은/ 아이고 두절이로구나 애량애랑애야/ 애히여리/

-하략-

[의의와 평가]

오늘날 공연용으로 쓰이는 대동두레놀이는 이 지역에 잔존해온 생활문화와 노동요, 민속 등을 각색한 것으로 간척 때 행하던 「가래 소리」나 「다굼질소리」, 논일할 때의 농요, 밭일할 때의 농요, 농사일을 끝낸 뒤의 뒷놀이라 할 수 있는 길꼬낙과 사거리, 「진도아리랑」 등을 안배해 기존의 전통이 최소한 보존되도록 꾸며져 있다. 그 동안 민속학자나 문화재전문가들의 채록과 채보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이 지역 민요는 같은 진도이면서도 목장지대였던 지산면 인지리의 남도들노래와 다른 선율을 유지하고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