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5013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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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曺秉洙 |
영어음역 | Jo Byeongsu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성씨·인물/성씨·세거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전라남도 진도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정호,조장호,이옥희 |
성격 | 기업인|정치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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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호구동길 66[용호리 918]![]() |
성별 | 남 |
출생 | 1893년 3월 25일![]() |
몰년 | 1971년 12월 8일![]() |
본관 | 창녕(昌寧) |
호 | 묵암(墨菴) |
초명 | 인규(印圭) |
대표경력 | 전라남도 도의원||초대 조선일보 진도지국장 |
[정의]
전라남도 진도군 출신의 기업인이자 정치인.
[개설]
조병수(曺秉洙)[1893~1971]의 자는 인규, 호는 묵암(墨菴)이다. 기업가, 언론인, 자선가,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활동사항]
조병수는 1893년(고종 30) 3월 25일에 진도군 임회면 용호리에서 태어났다. 성장기에 서울, 일본, 중국 등지에서 견문을 넓혔으며, 금광 사업으로 부를 축적했다. 1920년 창간된 『조선일보』의 초대 진도지국장을 지냈으며, 30여 년간 언론 활동을 활발하게 하였다.
대지주(大地主)로서 상만저수지와 용산저수지 축조에 기여했다, 1923년경 진도군에 처음으로 택시를 들여 왔고, 1925년경 목포-제주 간 기선(騎船)을 운항했다. 1935년경 진도자동차부를 설립하였다. 1938년경 임회면 십일시에 산업정미소를 설립하고 경영하는 등 진도의 근대화에 큰 족적을 남겼다.
조병수는 진도 최초로 유치원을 설립했으며, 진도중학교 설립을 위한 기성회 발기위원장을 역임했다. 1931년 진도 향현사 중건 시에는 2만 2148㎡[6,700여 평]의 토지와 건축 자재를 희사하고, 쌍계사 보수 공사에도 기부금을 희사했다. 1933년부터 1941년까지 전라남도 도의원 재직 당시 진도의 주요 신작로 공사를 추진하였다. 1946년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진도군지부 위원장에 추대되었고, 1948년에는 민주국민당 발기인에 추대되었다.
[상훈과 추모]
조병수의 묘소는 진도군 임회면 폐동 후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