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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김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501444
한자 珍島金氏
영어음역 Jindo Kimssi
영어의미역 Jindo Kim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전라남도 진도군
시대 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김정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시기/연도 고려 초기
성씨시조 김국빈(金國儐)
입향시조 김경호(金敬浩)

[정의]

전라남도 진도군에 본관을 둔 성씨.

[연원]

진도김씨의 시조 김국빈은 중국 후한(後漢) 사람으로 위·촉·오의 세 나라로 갈려 싸우던 건안(建安)의 난리를 피해 고국을 떠나 배를 타고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죽포(竹浦)에 도착했다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신라 미추왕(味鄒王)[262~284]의 부름을 받아 경주에서 군국정사(軍國政事)라는 벼슬을 살았다.

[입향 경위]

실제로 진도를 본관으로 득성(得姓)한 사람은 왕건이 나주를 공격하기에 앞서 진도를 공략할 때 협력한 23세손 김경호(金敬浩)이다. 김경호는 940년,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후 건국 유공자들을 포상할 때 옥주후(沃州候)가 되었다(옥주는 진도의 옛 이름이다). 이후 그 가족들은 개경으로 옮겨 살았다.

개경으로 옮겨간 후 진도김씨의 가세는 번창하였다. 김경호의 큰아들 김구석(金九碩)은 고려 정종 때 중랑장(中郞將)을 지냈고, 15세손 김형숙(金亨淑)의 부인은 진도의 임회박씨였다. 그의 조카 김경조(金慶祚)는 고려 말기 이방원에 의한 정몽주 숙청 때에 정몽주와 함께 죽어, 지금도 선죽교에 세워진 비에 진도사람 김경조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 48세손 김춘림(金春霖)[1589~?]대에 이르러 고려 말 우의정을 지낸 홍주이씨 이서(李舒)[1332~1410]의 9대 손녀를 부인으로 맞는 등 명문을 이루었다.

[세거 현황]

진도김씨는 개경으로 옮겨간 후 경기도에 2파, 황해도에 3파, 영남에 4파가 있었으나, 오늘날은 개성파만 남게 되었다. 진도김씨 개성파는 주로 개성·칠원·개풍 등지에서 살다가 한국전쟁 때 그 일부가 남하하여 서울과 부산에 주로 살고 있다.

[묘역]

옥주후의 작위를 받았다는 김경호의 묘소는 ‘옥주부 동쪽 20리 사현(沙峴)에 있다’고 했고, 그의 아버지 묘는 낭산(郎山)에 있다는 기록이 있다. 사현은 모래재, 몰고개의 한문표기로, 지금의 진도 향동재 정도로 비정된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김** 徐福 (河南省 禹州 사람: 기원전BC 210년~255년 )紀元前 3世紀 秦始皇으로 부터 5000명의 각 분야의 기술자, 3000명의 童男童女와 60척의 배와 3년치 食糧및 物資를 받아 不老不死 靈藥을 찾아 진황도를 출항하였으나 중국에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西海 남단인 珍島 近海에 이른다. 전남 진도 군내면의 서시터 2019.05.16
김** 金日磾의 5대손 및 金日磾의 同生인 金倫의 5대손)가 西쪽으로 逃亡 가지 않고, 東쪽으로 逃亡하였다, 王莽(金氏)의 亂으로 뿔뿌리 흩어졌던 金氏家門은 姓도 감추고 살았다. 山東省 金日磾의 曾孫 金當은 遼東으로 避身(後孫들이 政治的으로 亡命하여 移住)하였다.
現在 中國의 金氏는 380만명
2019.05.16
김** 京兆金氏 金日磾--金賞---金尙--金國(絶孫)-金當<金星>-金原得-金忠儀-金公亮-金倫(胤)-金安上-金常--金欽-金湯-金旋-金禕(戰死)- 金倫(胤)-金安上-金芩-(中始祖)金欽-金季三-金昌緒-金文剛-金履祥-金飛山-金幼孜-金聖歎-金農-金之俊-金侃-金榜-金和-金門詔-金岳霖-金霖-金樹仁-金樹榮- 2019.05.16
김** 京兆金氏 金伸沆,金大齡-金諴-金錫符-金殿邦(金諴墓誌銘)
高麗仁宗때 活躍했던 本貫 京兆金諴(1076~1147:出身地,本貫:道康:全羅南道 道康郡:現 康津郡)
京兆金氏. 京兆李氏, 京兆鄭氏, 京兆王氏.
2019.05.16
김** 新羅所는 新羅坊內 唐의 行政機關, 新羅人을 管理.山東省 煙台市 蓬萊(方丈,瀛洲 三仙山) 登州 山東半島와 揚子江 下流 新羅所,新羅坊(新羅村) : 新羅人集團 居住地, 文登縣赤山村 赤山院(新羅人寺刹) 新羅館, 新羅坊,新羅所, 新羅院, 906년 唐의 策命使로서 歸國한 金文蔚847년윤3월 登州 乳山浦에서 新羅건너 온
副使 金簡中 871년 ‘ 大舍 金公立’
2019.05.16
김** 珍島金氏始祖 後漢人金國檳
바다로 배를 타고 우리나라 珍島로 건너왔는데 (味鄒王을 始作으로 金氏王朝 最初로 王位에 올랐다). 어떻게 신라미추왕이 진도에 건너온 것을 알고서 경주에서 불러 올렸을까 이제 김일제 계보를 밝혀야 할 信號,導火線이 바로 珍島金氏始祖(敬順王의 慶州金氏 以前의 金氏) 이다,
2019.05.15
김** 後漢을 세운 光武帝는 漢나라를 滅亡 시키는데 큰 貢獻을 한 金日磾(B.C 134~B.C 86년)의 後孫들을 徹底하게 除去하기 始作했다.그러자 金日磾의 後孫들 大部分은 自身의 原來 本據地인 休屠國으로 逃走하여 姓을 王氏로 바꾸고 살았다. 2019.05.15
김** 珍島金氏는 新羅 大輔公 金閼智의 後裔로 傳하고 있으나 上系를 考證할 文獻이 없어 確實한 先系를 祥考할수 없다.
珍島金氏世譜....珍島金氏 始祖 諱 鈆은
新羅 敬順王의 8代孫으로 高麗朝 文科에 及第 一品級인 銀靑光祿大夫門下侍中에 오르고 珍島君에 封하였다.
珍島金氏始祖 金鍊(鈆)-戶部侍郞,副使 金奕與-金悅-金鎰-金萬句-金寶-
2019.05.15
김** 珍島金氏 始祖 金鈆 一作 金鍊 태어난 년도는 알수 없고 1278(충렬왕 4년)고려의 문신, (化平出身:光山). 1270년(원종11년) 추밀원부사로 있을 때 강화에서 삼별초의 반란을 만났으나 탈출, 이듬해 몽고에 가서 왕세자의 혼인을 청하였다, 1273년 지문하성사, 뒤에 참지정사, 은청광록대부 문하시중l -고려사-... 2019.05.14
김** 金鍊은 高麗(元宗~忠烈王) 때의 문신. 본관은 화평(化平). 찬성사(贊成事) 金周鼎 初名.字 金之淑의 아들로,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지냄. 행동이 법도에 어긋나지 않아 장자(長者)로 칭송받음 2019.05.14
김** 김지숙(金之淑) 면장고려사 열전 ‘김지숙전’기록 (金周鼎 初名.字 金之淑)
“김지숙은 전남 光州人으로 장군 이였는데 1270년 강화도에서 삼별초군의 난이 일어나자 적중에 빠져 탈출할 꽤가 없으므로 바다에 투신하여 물결 따라 떠다니는데 적(삼별초)들이 잡아서 진도까지 잡혀 왔었는데 지숙을 삼별초군이 죽이려 하자 승화후 왕온이 이를 구하여 풀어주고
2019.05.14
김** 진도의 한 면 을 지키게 하였다.
김지숙이 면장으로 있으면서 몰래 적의 동태를 두 번이나 관군에게 첩보를 하였는데 마침내 삼별초가 패함에 임금은 그 충의를 가상히 여겨 높은 관직 포상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 시절에는 진도가 지금과 같은 면이 아니고 동면, 서면, 남면, 북면으로 불리였으므로 김지숙이 어느 면을 다스렸는지는 모르나 진도 한 면의 책임자
2019.05.14
김** 였음은 사실로 살펴볼 때 아마 이 분을 진도 최초의 면장이라고 하여도 무리가 없을 것으로 살펴진다.
김지숙은 후에 중찬(문화시중, 정승)이란 벼슬까지 지냈던 사람이다.
2019.05.14
김** 金國檳을 시조로하는 珍島金氏
金 鈆(鍊)을 시조로하는 珍島金氏

珍島金氏始祖 金 鈆-戶部侍郞 副使 金奕與 -金悅-金鎰-金萬句-金寶......
光山金鍊(化平) 1269년(원종10) 樞密院副使, 1271년 樞密院使 國婚請願하는 表文으로 元나라 使臣, 知門下省事, 1274년(충렬왕 즉위년)에 參知政事.
2019.05.14
김** 기름진 이 땅과 저 푸른 바다와
사시사철 변화하는 산과 들.
우리 모두 힘을 모아 이 나라를 지키자.
 
이 땅에 동이 튼다, 새 날이 온다.
오랑캐를 물리치고 새 고려를 세우자.
낫 들고 일어나세, 호미 들고 일어나세
우리 백성 힘을 모아 새 나라를 만드세
아~ 진도는 또 하나 고려였네.
2019.05.14
김** 진도에서 삼별초군의 항전
아~ 진도는 또 하나 고려였네.
이 땅을 지켜온 이름 모를 사람들
아직도 들리는 저들의 함성.
 
동백꽃 피고 해당화 피는
살기 좋은 오토강산.
자자손손 번창하여 천년만년 살고지고
자자손손 번창하여 천년만년 살고지고.
 
용맹한 군사들이여 늠름한 군사들이여
아름다운 금수강산 우리가 지키고 우리가 살리세.
2019.05.14
김** 始祖 金國檳은 中國 後漢 사람으로 魏·蜀·吳의 세 나라로 갈려 싸우던 建安(196~220)의 亂을 피해 故國을 떠나 배를 타고 全羅南道 珍島郡 義新面 竹浦에 到着했다 한다.
이 消息을 들은 新羅 味鄒王[262~284]의 부름을 받아 慶州에서 軍國政事라는 벼슬을 살았다.金敬浩의 큰아들 金九碩은 高麗定宗 때 中郞將을 지냈고,
2019.05.12
김** 15세손 金亨淑의 부인은 진도의 임회박씨였다. 그의 조카 金慶祚는 高麗末期 李芳遠에 의한 鄭夢周 肅淸때에 鄭夢周와 함께 죽어, 지금도 善竹橋에 세워진 비에 珍島사람 金慶祚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48세손 金春)[1589~?]始祖金國檳은 벼슬이 高麗때 軍政司에 이르렀으며 그의 後孫들이 珍島에 代代로 살면서 本貫을 珍島로 하였다. 2019.05.12
김** ○珍島金氏
始祖金國儐(軍國政事)
-金榮(戶長)-金一敬(大元帥)-金道天(上將軍)-金成奎-金斯夫(中郞將)-金文郁-金之召(大護衛)-金靑崧-金有良-金春香-金時璧.金時成-金益煥-金官秀-金孟祚-金平輔-金三鳳-金洛順-金大元-金文晏-金延壽-金康水-23世金敬浩(沃州候),金履浩-金九碩,金道碩-金孝信-金是元,金之元,金仁元-金慶信-金鼎-金山嶂-金鶴-金泰昌-金良天-金興光-
2019.05.12
김** 金士英-金肅亨,金文衍-金五宣,金志宣-金鳳麟-金九周-金慶祚,金是祚-金商-金聲達,金聲律-金始坤-金錫祖,金永祚-金善河,金址河-金自敬-金潤-金金-金世雄-金愛男,金愛立-金時忠-金得男-金唜山-金起英-金重泰 2019.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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