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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501581
한자 七田書堂
영어음역 Chiljeon Village School
이칭/별칭 노암재(露岩齋)
분야 문화·교육/교육,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칠전길 28-52[칠전리 753]지도보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정호박주언

[정의]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칠전리밀양박씨 문중이 세운 서당.

[개설]

칠전서당밀양박씨가 자작일촌을 이룬 문중 위주로 일찍부터 운영되었다.

[건립경위]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칠전리 박후령(朴厚齡)은 향인들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막았고, 권율의 남원수성전에서 참가하였다가 그해에 순절하였다. 박후령의 큰아들 박인복(朴隣福)은 무과에 합격하여 선전관으로 재직 중 임진왜란 초기에 아버지의 전사 통지를 받고 복수를 위해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 휘하에서 종군하던 중 1593년 전사하였다. 이후 박인복은 선무원종공신에 녹훈되었다. 이러한 상황으로 볼 때 박윤순(朴允淳)의 아들 6명이 서당을 시작했다는 이전부터 칠전리에는 서당이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칠전리 사람들은 1684년(숙종 10) 마을 앞동산에 서당 건물인 노암재(露岩齋)를 세우고 자녀들의 향학 진흥을 도모했다.

[변천]

칠전리 학계(學契)는 30년에 걸쳐 마련한 학전(學田) 25필지 1.7결(結)의 재산을 길이 보전하고자 1714년(숙종 40) 학계철비에 그 내력을 새겼다. 높이 1.4m, 너비 47.5㎝, 두께 6.5㎝의 학계철비는 유후각(裕後閣)에 안치하고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역대 훈장과 입향조의 제사를 모신다. 칠전서당은 1933년까지 계속되었다고 한다.

[현황]

칠전서당이 운영되던 노암재의 면적은 15필지 52.947㎡이다. 후손들이 학계철비를 세운 11분의 제사를 모시고 있다. 2004년 1억 원을 들여 보수하였으나 마을에서 떨어져 있어 관리 대책이 요구된다.

진도칠전리학계철비는 2002년 전라남도 기념물 제202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문화재명 표기 방식 변경 고시」에 따라 문화재 지정번호가 삭제되었다. 이후 2025년 2월 6일 자로 진도칠전리학계철비를 서당 건물 노암재와 묶어서 ‘진도 칠전리 학계철비와 노암재’로 전라남도 기념물의 명칭을 변경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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