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531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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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Haejingu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전라남도 진도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덕진 |
[정의]
1409년부터 1437년까지 전라남도의 진도군과 해남군을 통합하고 설치한 지방 행정구역.
[제정 경위 및 목적]
고려 후기 왜구의 침략이 심해지자 조선 정부는 해안가와 섬 지역을 비우고 주민들을 육지로 이주시키는 공도정책(空島政策)을 추진하였는데, 이때 진도의 주민들을 육지로 이주시켜 해남과 합치고 해진군(海珍郡)을 설치하였다.
[관련 기록]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37권, 전라도 진도군]에 “본래 백제의 인진도군(因珍島郡)이었는데, 신라 때에 지금의 이름으로 고치고 무안군(務安郡)에 속한 현이 되었다. 고려 때는 나주(羅州)에 속했고, 후에 현령(縣令)을 두었다. 충정왕 2년에 왜구로 말미암아 육지(內地)로 옮겼으며, 본조 태종 9년에 해남현과 합쳐 해진군(海珍郡)으로 되었다가 세종 19년에 다시 나누어 각각 옛 이름으로 돌아갔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로써 당시 진도와 해남의 통합, 분리 과정을 짐작할 수 있다.
[내용]
조선 정부에서 공도정책을 추진함에 따라 진도현은 1350년(충정왕 2) 치소를 육지로 옮겨 나주, 영암, 해남 등지를 전전하였다. 이후 1409년(태종 9) 진도현은 해남현과 합쳐 해진군이 되었는데, 치소는 옥산[현 해남군 삼산면 상가리 계동마을]에 두었다. 중간에 환원 조치가 내려졌지만 시기상조라고 취소되었다가, 마침내 1437년(세종 19) 해진군은 진도군과 해남현으로 분리되었다.
[변천]
1409년 진도현과 해남현이 합쳐져 해진군이 되었다가 섬 지역의 중요성, 군현 상황, 주민들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하여 1437년 진도와 해남을 다시 분리하였다. 진도군의 행정구역이 회복되면서 진도 주민들도 원고향 진도로 돌아오게 되어 80년 이상의 유랑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런데 이후에도 진도 사람들이 80년 동안 살았던 곳은 진도 땅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19세기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는 해남 서남쪽 사포면과 영암 북쪽 명산면이 진도 땅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이렇게 타 행정구역에 속한 지역을 월경지(越境地)라고 하였다. 이후 1906년 칙령 제49호 「지방 구역 정리건」에 따라 사포면과 명산면은 각각 해남군과 영암군의 관할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