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531033 |
---|---|
한자 | 朴秉千 |
영어공식명칭 | Park Byoungcheo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전라남도 진도군 |
시대 | 현대 |
집필자 | 박주언 |
출생 시기/일시 | 1933년 10월 10일![]() |
---|---|
활동 시기/일시 | 1980년![]() |
몰년 시기/일시 | 2007년 11월 20일![]() |
출생지 | 박병천 출생지 -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인지리 |
거주|이주지 | 박병천 거주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신동 |
학교|수학지 | 박병천 수학지 - 전라남도 목포시 |
활동지 | 박병천 활동지 -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 |
묘소 | 박병천 묘소 -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인지리 |
성격 | 예능인 |
성별 | 남 |
본관 | 밀양 |
대표 경력 | 진도씻김굿 예능보유자|대불대학교 전통연희학과장 |
[정의]
전라남도 진도 출신의 진도씻김굿 기예능 보유자.
[개설]
박병천(朴秉千)[1933~2007]은 세습무 박씨 집안의 선천적 예술 재능을 타고나 전통 예능 세계를 성공적으로 달성한 시대적 인물이자, 박덕인(朴德仁)·박종기(朴鐘基)와 3대를 이루는 한국의 굿음악 악성(樂聖)이라 할 수 있다.
[가계]
박병천의 집안은, 박병천의 9대조로부터 손자까지 12대에 이르는 예술 집안이다. 얼마나 많은 굿판 예능인을 배출하였는지는 알기 어려우나 박덕인 밑으로만 해도 최소한 50여 명은 된다고 보아진다. 박덕균(朴德均), 박덕인, 박덕춘(朴德春) 3형제의 자녀 종(鍾) 자 항렬과 그 밑으로 준(浚) 자 항렬, 병(秉) 자 항렬, 섭(燮) 자 항렬 자녀들과 박병천의 손자 대까지 6대에 걸쳐 많은 예능인을 배출하였다.
진도의 『밀양박씨청재공파보권지2(密陽朴氏淸齋公派譜券之二)』에 따르면, 1세 청재공 박심문(朴審問)[1408~1456]으로부터 12세 박취도(朴就道)까지는 경기도 양주에서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13세이자 박병천의 9대조 박세표(朴世杓) 부인의 묘가 분토동[군내면]에 있어 족보상으로는 처음으로 진도와 관계를 맺었음을 알 수 있다. 8대조 박망(朴望)으로부터 부부의 묘가 진도에 있어 비로소 진도 사람이 된 것으로 보여진다. 박망의 묘는 지산면 창단리, 부인 원주이씨의 묘는 의신면 칠전리에 있는 것으로 나온다.
진도의 무계 예능인으로 대금산조 창시자 박종기 이전의 인물로는 박병천의 7대조[박세우(朴世佑)]부터 4대조[박헌영(朴憲永)]까지는 알려진 이름이 없다가 1896년부터 12년간 진도에 적거했던 무정(茂亭) 정만조(鄭萬朝)에 의해 박덕인의 이름이 알려졌다. 정만조의 『은파유필(恩波儒筆)』에 나오는 박덕인은 20여 년을 쉬다가 유배인을 위한 굿판에 특별히 나섰다. 굿을 본 정만조는 너무나 감탄하며 시를 지어 주었다. 「증가자박덕인(贈歌者朴德寅)」은 70여 세 노인의 가곡이 아속청탁(雅俗淸濁)과 완촉애유(緩促哀愉)에 능할 뿐 아니라 춤도 능숙하고 특히 가야금 퉁소에 뛰어났다는 내용이다.
박덕인의 아들이 박종현(朴鐘現)과 박종기였다. 박종현의 큰딸이 진도 최고의 단골이었던 박선내(朴先乃)이고 손자가 박병천이었다. 박종기의 외손녀는 씻김굿 보유자로 유명한 김대례(金大禮)이다.
박병천의 장남 박환영(朴桓永)은 부산대학교 교수로 대금 명수로 알려졌고, 박환영의 아들도 대금 연주자로 활동 중이다. 차남 박성훈은 아버지의 출생지 지산면 인지리에 살면서 아내와 함께, 또는 몇이서 굿을 하고 있다.
[활동 사항]
박병천은 7세 때부터 마을 농악판에서 무동으로 활동하였다. 18세부터 판소리 명인 박동준에게 가야금을 배웠고, 1952년 목포상선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30세 때에는 호남춤의 명무 이매방에게 전통무를 배웠다. 1960년대 초 진도실업고등학교에서 농악 강사로 출강한 이후 한국국악협회 진도지부장, 진도국악원장, 민속놀이진흥회 이사장, 서울의집[코리아하우스] 악사장, 한국예술종합학교 객원교수, 대불대학교 전통연희학과 학과장[석좌교수] 등을 지냈다.
1980년 진도씻김굿이 국가무형문화재 제72호[현 국가무형유산]로 지정되면서 박병천은 김대례, 채계만(蔡桂萬)과 함께 예능보유자가 되었다. 지금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신동에 있던 ‘박병천문화재전수소’는 전통무용의 주요한 학습장이었다. 농악판 진도북놀이 가락과 춤사위를 무대 형식으로 다듬어 승화시킨 박병천류 진도북춤이 유명하다.
박병천은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수없이 많은 공연을 하였다. 1981년 국제민속예술제 초청 유럽 6개국 순회공연을 시작으로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개막 축제 공연, 1985년 베를린 국제민속음악제 국가대표 유럽 7개국 순회공연 등을 펼쳤다. 1990년에는 로스앤젤레스 아·태 지역 토속신앙 페스티벌 공연, 1994년 아시아 소사이어티 초청 진도씻김굿 미국 순회 공연, 1999년 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 유형문화 전시·무형문화재 공연, 독일 세계문화의 집 초청 공연, DMZ-2000 백남준 비디오 씻김 공연을 지도 및 출연하였다. 또한 2005년 러시아 나라음악 큰잔치 공연, 2006년 몽골제국 건국 800주년 기념공연, 2007 한·베트남 수교 15주년 기념공연 등에도 참여하였다.
한편, 박병천은 지춘상[전남대학교 교수 역임]의 진도 민속조사와 경연 출품 및 무형문화재 지정 등에 협력하면서 진도씻김굿을 비롯한 남도들노래, 강강술래, 진도다시래기, 진도만가, 진도북놀이, 조도닻배노래 등의 작품을 함께 정리하였다. 이들은 훗날 국가 지정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또는 전라남도 지정 무형문화재[현 전라남도 무형유산]가 되었다.
[저술 및 작품]
박병천이 남긴 음반으로는 『박병천의 구음다스름』, 『한국의 슬픈 소리』, 『진도 씻김』, 『강강술래』 등이 있다.
[묘소]
박병천의 묘소는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인지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