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531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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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屈- |
영어공식명칭 | Guljae |
이칭/별칭 | 굴치(屈峙) |
분야 | 지리/자연 지리 |
유형 | 지명/자연 지명 |
지역 |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삼막리|진도군 의신면 칠전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철웅 |
전구간 | 굴재 - 전라남도 진도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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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지역 소재지 | 굴재 -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삼막리|진도군 의신면 칠전리![]() |
성격 | 고개 |
높이 | 126m |
길이 | 약 1.9㎞ |
[정의]
전라남도 진도군의 임회면 삼막리와 의신면 칠전리 재넘어골을 연결하는 고개.
[개설]
간재는 북서-남동 방향의 대곡산[236m]과 삼막봉[257m]의 산줄기 사이 안부를 남북으로 넘는 산길 고개이다. 이곳은 예전에 진도군의 남도진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간재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옛날 진도군 지산면 관마리의 목장에 설 감목관이 있었는데, 그의 딸 설이향이 원님의 아들 소영과 사랑하는 사이였다. 읍과 관마리는 50여 리 떨어진 거리였지만, 그들은 늘 중간 지점인 임회면 서낭리의 마을 뒷산 간재에서 만나곤 했다. 그러던 중 어느 약속한 날에 소영 공자가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고, 그 후로는 그를 만날 수가 없었다. 해가 바뀌어 이른 봄에 소영 공자가 육지의 다른 처녀와 결혼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설이향이 듣게 되었다. 이에 설 낭자는 죽을 결심으로 비수를 품고 신행 길목을 지켰지만, 끝내 행차를 가로막지 못하고 결국은 그 비수로 자기의 머리를 잘라 중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이들 두 남녀가 간재에서 만나는 것을 보고 지나던 초군들이 “아애랑 설이랑 아라리가 났네” 하고 노래하던 것이 진도아리랑이 되었다 한다.
[명칭 유래]
간재는 조선시대 주요 지도에 표기되어 있다. 『대동지지(大東地志)』[진도]에는 영로(嶺路)로 굴치(屈峙)가 표기되어 있다. 『호남지도(湖南地圖)』[진도], 『광여도(廣與圖)』, 『해동지도(海東地圖)』[진도], 『1872년 지방지도』[진도]에는 모두 굴치로 기재되어 있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도 굴치와 한글 지명인 간재가 병기되어 있다.
[자연환경]
중생대 백악기 경상계 불국사층군 산성반암이 서서북-동동남으로 관입되어 정상부에 대상으로 암상을 이루고 있다. 반면 산록의 기저부는 중생대 백악기 경상계 신라층군 진도 유문암질로 넓게 베이스를 이루고 있다. 산정부는 풍화에 강한 산성반암으로 풍화층이 얇게 피복되어 있고 주로 소나무 등이 심어져 있다.
[현황]
간재는 진도군의 남부에 있는 고개로 간재와 함께 중요한 교통로였다. 높이는 126m이며, 약 1.9㎞의 길이로 일부는 시멘트로 포장되고 일부는 비포장도로이나 현재는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