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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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에서 행해지는 강강술래의 여흥놀이 중 하나. 강강술래는 주로 진도를 비롯해 해남·완도·무안 등 전라남도 해안 일대에서 성행하던 민속놀이로서, 노래와 무용과 놀이가 혼합된 부녀자들만의 집단가무였다. 개고리타령은 강강술래에 포함되어 연행되는 여흥놀이에 해당한다. 다만, 문화재로 지정될 당시에는 개고리타령이 강강술래의 여흥놀이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개고리타령은 사당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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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둔전리 둔전마을에서 전해지는 명풍수에 관한 이야기. ‘이승’이란 인물이 명풍수가 된 배경을 이야기한 설화로, 경기도 김포지방에서 전하는 「조헌과 괴호」란 설화와 비슷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 1979년 8월 1일 진도군 군내면 둔전리 둔전마을에 사는 박길종(남, 58세)이 구연하였다. 이승은 서모자식으로 태어났으나 그 어머니의 지극한 정성으로 어릴 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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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강술래의 여흥놀이 중 하나인 ‘문열어라’ 놀이에서 부르는 노래. 강강술래는 주로 진도를 비롯해 해남·완도·무안 등 전라남도 해안 일대에서 성행하던 민속놀이로서, 노래와 무용과 놀이가 혼합된 부녀자들만의 집단가무였다. 추석이나 정월 대보름, 백중 같은 명절날 밤에 마을의 넓은 마당에서 여자들이 서로 손을 잡고 둥글게 돌며 춤을 추는 원무가 기본 형태이다. 여기에 중간 중간 여러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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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돈지리에서 전하는 호랑이 보은담. 우리나라에 널리 퍼져 있는 보은설화의 한 유형으로, 시묘살이를 하는 상주를 지켜주던 호랑이가 죽을 고비에서 상주의 도움으로 살아남았다는 이야기이다. 1979년 7월 30일 진도군 의신면 청룡리에 사는 이덕순(李德順)[남, 81세]이 구연하였다. 옛날에 효성이 지극하기로 온 동네에 소문이 자자했던 사람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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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악 관련 자료집. 1964년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옥연리에 사는 김수영이 농악대 설쇠인 박정규의 구술을 기록한 책이다. 진도군 향토사료 영인본 2집에도 들어 있는 내용으로, 다른 마을로 걸립을 갈 때 알아야 할 사항들을 적은 것이다. 진도읍에 사는 박복남이 소장하고 있다. 1984년 해남문화원이 복원한 해남의 ‘서산대사 진법군고’는 구전을 중심으로 재현했다가 1991년 『서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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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세종실록』에 실려 있는 전국 지리지의 해남·진도 항목. 세종은 1424년(세종 6) 지지(地誌) 및 주·부·군·현의 연혁을 편찬할 것을 명하였고, 8년 뒤인 1432년(세종 14)에 『신찬팔도지리지』가 완성되었다. 다시 22년이 지난 1454년(단종 2)에 『신찬팔도지리지』가 『세종장헌대왕실록(世宗莊憲大王實錄)』제148권에서 제155권에 실리게 되었다. 전라도 해진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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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지형이 가새(가위)형국이라 가사도라 불렀다는 설과, 주변 섬들을 불의불형(佛衣佛形)의 모습으로 보아, 스님이 장삼 위에 걸치는 법복인 가사(袈裟)에 해당하는 형국이라 가사도라 했다는 설이 있다. 『고려사지리지』, 『동국여지승람』, 『동국여지도』에는 ‘伽西’로,『대동여지도』에는 ‘加沙’로, 『진도읍지』에는 ‘伽士’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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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에서 부녀자들에 의해서 전승되고 있는 민속놀이의 하나. 1966년 2월 15일 국가 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된 강강술래는 주로 진도를 비롯해 해남·완도·무안 등 전라남도 해안일대에서 성행되어 왔다. 노래와 무용과 놀이가 혼합된 부녀자들만의 놀이로, 주로 추석날밤에 행하여지며 정월 대보름날 밤과 칠월 백중에도 놀았다. 명칭은 ‘강강수월래’ 또는 한자로 ‘强羌水越來(강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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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수확철이 되면 해남, 완도, 강진, 장흥 등의 김 가공업자들은 김을 사기 위해 회동마을을 찾는다. 수협을 통해서 위탁 판매한 김은 중매인을 통해서 가공업자에게 넘겨진다. 김 양식이 활발했던 1980년대 무렵만 해도 8개의 수협이 있었으나 지금은 1개가 운영되고 있다. 진도에서 김이 생산되는 곳은 동남쪽 바다로 갯벌이 발달한 원품리, 회동리, 수품리 등 세 지역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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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고성리 64번지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성곽. 고군면 고성리 고군성지 주변의 지형을 보면, 남쪽은 첨찰산, 죽찰산 등 진도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북쪽으로는 진도 용장성이 있다. 동쪽과 서쪽에는 좁다란 농경지가 형성되어 있다. 특히 동쪽에는 해남 쪽으로 돌출한 원포리를 중심으로 내만된 해안이 형성되어 있는데, 현재 원포리와 내산리 사이에는 방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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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에 속한 법정리.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에 속한 법정리로서 상고야, 하고야, 새터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고야의 위쪽에 위치한 마을을 상고야, 아래쪽에 위치한 마을을 하고야라고 부른다. 새터는 상고야 동쪽에 있는 마을로 새로 형성되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지형이 고양이처럼 생겼다고 하여 ‘괴돌’ 또는 ‘고야’라 하였다. 본래 진도군 지산면 지역이었으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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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인 지도 제작 측면에서 볼 때 현대지도와 구별되는 지도.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사기(三國史記)』나 『삼국유사(三國遺事)』 등의 고문헌과 벽화 등을 통하여 고대 지도의 윤곽을 엿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지도가 제작되기 시작된 것은 조선시대부터였다. 현존하는 지도로서 가장 오래된 것은 1402년(태종 2)에 김사형·이무·이회 등이 제작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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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지방이나 다른 나라의 풍속(風俗)·풍광(風光)·사적(史蹟) 등을 유람하는 것. 관광이라는 말의 어원은 주나라 때의 『역경(易經)』에 나오는 “관국지광이용빈우왕(觀國之光利用賓于王)”이라는 구절에서 비롯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한 나라의 사절이 다른 나라를 방문하여 왕을 알현하고 자기 나라의 훌륭한 문물을 소개하는 동시에, 그 나라의 우수한 문물을 관찰함이 왕의 빈객으로 대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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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관마리 관마마을에 있는 조선시대의 관청터. 관마청은 진도군 지산면 관마마을에서 독치마을로 가는 소로를 따라 가다보면 관마마을 동쪽 끝에 위치한다. 이곳은 큰부엉산에서 동남쪽으로 뻗어 내리는 지맥의 말단부로, 유적 앞으로는 소하천이 흐르고 있다. 관마청은 조선시대 목장업무를 담당하던 종6품급 관직이었던 감목관이 배치되었던 곳이다. 6방 관속, 관노, 통인,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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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나 짐을 한 장소에서 다른 지점으로 옮기는 일. 교통은 일반적으로 사람이나 재화(財貨) 등 유체물(有體物)은 물론 의사(意思)·정보 등 무체물(無體物)의 장소적 이동을 총칭하는 개념이다. 좁은 의미에서의 교통은 그 중 유체물의 장소적 이동을 뜻한다. 인간의 사회생활은 항상 일정한 지역적인 확대를 가진다. 이 지역적인 확대, 즉 공간적 거리를 극복하는 행위가 교통이다. 교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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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에 있는 농산물의 품질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국가기관. 해남·진도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의 품질관리 및 검사·유통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전남지원 해남·진도출장소 진도분소는 1949년 1월에 농산물검사법이 제정되어 국립농산물검사소가 발족되면서 전라남도 광주지소 관하 22개 출장소가 개소할 때 설립되었다. 1962년 12월에 국립농산물검사소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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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의 행정면. 군내면은 진도군에 속한 7개 면 중의 하나로 10개의 법정리와 28개의 행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2005년을 기준으로 면적 2,244.9㏊에 1,668세대가 거주하고 있으며, 인구는 3,896명(남1,871명, 여 2,025명)이다. 군내면에 속한 무인도는 3개이다. 940년(태조 23년)에는 가흥현으로 불리었다. 1895년(고종 32년)에 지방 관제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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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전라남도 진도군의 역사. 일제강점기와 현대의 진도의 역사는 민족사의 고난과 함께 하는 것이었다. 진도는 일본 제국주의의 경제적 침략이 일찍부터 시작된 지역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진도가 목포·해남에 인접한 다도해의 요충지로서 풍부한 농·수산물의 생산지인 때문이다. 이런 일제의 경제적 침략에 대해 진도민의 저항 또한 거세었다. 또한 3·1운동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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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에 속하는 법정리. 금계리는 진도군 고군면에 있는 법정리로서, 행정리로는 가계리, 회동리, 용호리, 금호리를 포함하고 있다. 금호리는 섬이며, 다른 마을들도 해안과 인접하고 있다. ‘신비의 바닷길’이 열리는 장소가 바로 이곳이다. 금호리와 가계리의 마을 이름에서 각각 한 자(字)씩을 따서 금계리라 하였다. 본래 진도군 고일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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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말선초에 왜구의 침략을 피해 전라남도 진도지역 주민이 해남 금산(金山)으로 이주한 사건. 여말선초 왜구가 창궐했을 때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진도 또한 끊임없는 왜구의 침입을 받았다. 이에 진도군민의 생존대책의 자구책을 찾고 후일을 도모한다는 차원에서 1350년경 진도군민 전체가 해남 금산으로 이사하면서 군치소도 함께 옮겼다가, 1437년 진도로 다시 돌아온 사건이다. 고려 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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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후찬(厚贊). 진도군 진도읍 매향동에서 2남 중 큰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평택군수를 지낸 김인경(金仁慶)이고 어머니는 은진송씨이다. 김수생은 전주이씨와의 사이에 아들 김름(金澟)을 두었다. 김름은 음직으로 삼화부사(三和府使)를 지냈다. 그 후손들은 해남으로 옮겼기 때문에 진도에는 후손들이 없다. 김수생은 종6품인 훈련원 주부를 지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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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의 세거성씨 중 하나. 김해김씨(金海金氏)의 시조는 수로왕(首露王)이며, 수로왕의 제12대손 김유신(金庾信)을 중시조(中始祖)로 하여 대소 98파로 나뉜다. 그 가운데 김유신의 직계종파(直系宗派)는 고려의 김목경(金牧卿)을 중시조로 하는 경파(京派)와 김익경(金益卿)을 중시조로 하는 사군파(四君派), 김관(金管)을 중시조로 하는 삼현파(三賢派)이다. 1530년에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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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나 냇가 또는 좁은 바닷목에서 배가 건너다니는 곳. 어원은 밝히기 어려우나, 백제의 두 번째 도읍이었던 웅진(熊津)[지금의 공주]을 곰나루라고 한 것이 가장 이른 시기의 나루에 관한 용례이다. 나루는 나라와 어원이 비슷하여 고대 원시적 형태의 국가가 강가 등지에 위치하여 인근 부족의 교역을 중개하고, 한편으로 무력으로 상업적 질서를 유지한 데서 기인하였던 것과 관련이 있을 것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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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남동리에 설치한 조선 전기의 수군진. 전라수영(全羅水營)은 영산강 하류에 설치되었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왜구를 방어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이에 따라 조정에서는 1423년(세종 14) 전라수영을 목포(木浦)로 옮겼다. 그리고 목포의 병선은 황원(黃原)의 남면 주량(周梁)[해남군 문내면 우수영]으로, 수영의 병선 3,4척을 매달 윤번으로 진도의 서쪽 소가포(所可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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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에서 행해지는 강강술래의 여흥놀이 중 하나. 강강술래는 주로 진도를 비롯해 해남·완도·무안 등 전라남도 해안 일대에서 성행하던 민속놀이로서, 노래와 무용과 놀이가 혼합된 부녀자들만의 집단가무였다. 남생아 놀아라는 강강술래의 여흥놀이면서 그 놀이에서 불리는 노래제목이기도 하다. 남생아 놀아라는 놀이꾼들이 춤을 추고 사람을 웃기는 동작을 하면서 노래도 부르는 놀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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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종화에 대비되는 동양화 양대 분파의 하나. 남종화는 남종화가로 분류되는 여러 화가들이 구사했던 수묵산수화의 복합적 양식을 일컫는다. 남종화라는 용어는 중국 명나라 만력연간에 막시룡(莫是龍)[1537~1587], 진계유(陳繼儒)[1588~1639], 동기창(董其昌)[1555~1636] 등 문인 서화가에 의해 주창된 남북종론에서 나온 것이다. 남·북종화파의 분류는 여러 학자들 사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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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분토리에 속하는 행정리. 마을 입향조는 창녕조씨 조중문(曺仲文), 밀양박씨 박대린(朴大麟)으로 임진왜란 전후시기라고 한다. 서쪽에 철마산(鐵馬山)[304m], 망적산[266m]이 남북으로 걸쳐 있고, 북쪽에는 고두산(高頭山)[252m]이 있다. 마을의 주변은 대체로 낮은 지형으로 되어 있고, 군내천의 지류가 있어서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면의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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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진흥법에 의해 1988년에 지정·개발된 지정관광지. 녹진관광지는 해남에서 진도대교를 통해 진도 땅으로 들어오는 진입부에 위치하여 진도관광의 관문이라 할 수 있다. 현재 녹진관광지는 당초 15만 6천 200㎡의 면적으로 지정되었으나, 제2진도대교의 건설과 주5일제 실시 등 관광여건이 크게 개선됨에 따라 지정 면적을 21만 4천㎡로의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해남에서 진도대교를 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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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섬의 모양이 커다란 말의 머리 모양으로 되어 있어 대마도라 하였다. 1600년대 초기에 경기도 광주에서 양주허씨 일가의 후손이 입도하였고, 강릉함씨의 관매도 입도조 함재춘의 후손이 이곳으로 이동해서 살면서 마을을 형성되었다. 또한, 제주~육지간 말이 쉬었다가 전달되는 목장이 있었다고 한다. 본래 진도군 조도면의 지역으로서 지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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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에서 행해지는 강강술래의 여흥놀이 중 하나. 강강술래는 주로 진도를 비롯해 해남·완도·무안 등 전라남도 해안 일대에서 성행하던 민속놀이로서, 노래와 무용과 놀이가 혼합된 부녀자들만의 집단가무였다. 덕석몰이는 강강술래 놀이의 여흥놀이인 ‘덕석몰이’에서 불리는 놀이 및 민요 이름이다. 선소리꾼이 “몰자몰자 덕석몰자”를 중중모리 가락으로 선창하면 여타의 놀이꾼들은 이를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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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지형이 독거시(도깨비)처럼 생겼다 하여 독거섬 또는 독거도, 독거리라 하였는데, 1720년 식수원이 좋고 농토가 좋은 지금의 터로 옮겨왔다고 한다. 1897년(정조 13)에 진상품으로 독거도 미역과 김을 가져오기 위해 왔었으나 이곳의 거센 파도 때문에 오도 가도 못하였다고 하여 독거(獨巨)라 한다. 다른 문헌에서는 외로운 섬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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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동거차도리에 속한 행정리. 동막리 마을이 있는 동거차도는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거차군도 가운데 동쪽에 있다하여 동거차도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 다른 설로는 우리나라의 해상교통의 요지로 이 곳 해상을 지나는 선박들이 거쳐 가는 곳 또는 ‘거친 바다’라 하여 ‘거차’로 표기했다고 한다. 과거 일본 승려 엔닌의 일기에 ‘구초도(丘草島)’란 기록이 나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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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동거차도리에 속한 행정리. 마을이 있는 동거차도는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거차군도 가운데 동쪽에 있다하여 동거차도로 부르게 되었다. 또 다른 설로는 우리나라의 해상교통의 요지로 이 곳 해상을 지나는 선박들이 거쳐가는 곳, 또는 ‘거친 바다’라 하여 거차로 표기했다고 한다. 과거 일본 승려 엔닌의 일기에 ‘구초도(丘草島)’란 기록이 나온다.『동국여지승람』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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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선조 30) 9월 정유재란 때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명량해협(울돌목)에서 일본 수군을 대파한 해전. 1597년 일본은 다시 조선을 침략하여 정유재란이 일어났다. 그해 1월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은 모함을 받아 하옥되었고, 원균(元均)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왜의 수군과 싸웠으나 다대포(多大浦)와 칠천량(漆川梁)에서 대패하였다. 사태가 긴급해지자 조정은 그해 7월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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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과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사이에 있는 좁은 해협. 명량해협은 울돌목이라고도 한다. 명량해협은 이충무공의 3대 해전 중의 하나인 명량대첩지로 잘 알려진 서해의 길목이다. 전라남도 해남과 진도 간의 좁은 해협인데, 바다의 폭은 한강 너비 정도의 294m 내외이다. 물길은 동양 최대 시속인 11노트에 이르며 젊은 사나이가 소리를 지르는 것처럼 물소리가 크고, 거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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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축을 방목하기 위해 만들어진 목초지, 건물, 목책 등을 설치해 놓은 지역. 조선시대의 목마는 교통·군사·농경, 외교상의 교역품, 식용, 그리고 말가죽·말꼬리·말갈기 등의 일용품 등으로 이용되었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마정(馬政)은 국가의 중요한 정책 가운데 하나였다.『예기(禮記)』에서 ‘나라의 부를 물으면 목마의 수효로 대답한다.’라고 할 만큼, 전통시대 목마는 국가의 부강을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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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연적인 관계를 통해 형성된 세습무 집안의 세습관계. 전라남도 진도를 비롯한 남도지역에서는 집안 내림에 의해 무업을 승계하는 세습무계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무계는 사제권의 세습을 지속시켜온 사회적 기반이었다. 무계를 통해 무당의 재생산이 이루어지고, 무업의 세대적 승계가 이루어졌다. 무계의 재생산과 승계는 통혼을 통해 조직되었는데, 세습무계의 통혼은 일정한 권역 안에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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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군 고군면 금계리에 있는 조선후기 문신 정민익을 배향한 사우. 묵제 정민익(丁民翼)[1781~1861]은 금호도에 머물면서 평생 벼슬을 탐하지 않고 후학을 양성하는 것에 뜻을 두었다. 금호도는 섬의 크기는 작지만 경관이 아름다운 곳이다. 정민익은 이곳에 관해정(觀海亭)이라는 정각을 짓고 제자들을 가르쳤는데, 해남과 진도에서 22명의 제자가 모였다고 전한다. 추사 김정희도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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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미술, 서예, 음악, 무용 등 각기 독특한 표현양식에 의하여 아름다움을 창작하여 표현하는 활동 또는 그 작품. 전라남도 진도군의 문화예술은 진도군민들 각각의 삶의 가치를 높이고, 바쁜 현대생활의 속에서도 정서적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총체적 개념을 모두 포함하는 활동을 의미한다. 진도의 문화예술의 중심은 시·서·화·창이다. 시(詩)는 유배인들을 중심으로 많이 창작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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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양식의 서민용 주거. 전통주거는 과거에는 마을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관습에 따라 건립되었다. 즉 전통민가는 지역의 삶에 맞게 여러 가지 검증을 통해 완성된 정주공간이다. 우리나라 일반 서민이 살던 소농가의 집은 지역에 따라 평면구성 등에서 차이를 보인다. 지역의 문화적 특성을 포괄적으로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 역사와 환경이 지역에 맞는 정주공간을 형성시켰으며, 그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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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지역에서 쓰이는 토박이 언어를 통칭하는 말. 진도 방언은 적어도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다. 전라남도 전역에서 두루 쓰이는 방언, 전라남도의 하위 방언인 서남부 방언(무안, 목포, 영암, 신안, 완도, 진도, 해남, 강진, 장흥 등의 방언)에 속하는 요소, 그리고 진도 지역에서만 쓰이는 고유한 표현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세 요소는 진도 방언에서 ‘전라남도 전역 〉서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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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벽파리에 위치한 나루. 벽파나루는 1984년 진도대교가 개통되기 전까지 진도에서 가장 번창했던 나루로 진도군 고군면 벽파리와 해남군 황산면 옥동 삼지원(三持院) 사이 2.8㎞를 연결하고 있다.『옥주지(沃州志)』에 의하면 벽파나루에서 해남군 화산(花山), 영암군 송지(松枝), 제주도 등을 갈 수 있었다고 한다. 1272년 삼별초가 여몽연합군과 항전할 때 벽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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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에 있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벽파정(碧波亭)이 있었으므로 벽파정 또는 벽정(碧亭), 벽동(碧洞)이라 하였다. 벽파적이 벽파장으로 와전되었으며, 뱀파장, 별파장 등도 모두 벽파정의 와전이다. 벽파는 해변의 벽도를 미화해서 붙인 이름이고, 벽파항이라고도 한다. 1500년경 형성되어 마을의 입향조는 이천서씨이다. 본래 진도군 고일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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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군 고군면 벽파리 벽파마을에서 매년 설날, 정월 대보름, 추석에 당집의 당할아버지께 올리는 마을제사. 벽파리는 본래 전라남도 진도군 고일면 지역으로서, 벽파정이 있어서 벽파정, 또는 벽정이라 불렸다. 그러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연동리, 벽동리와 군일면의 용장리를 병합하여 벽파리가 되면서 고군면에 편입되었다. 마을의 입향조는 이천서씨이고, 1500년경 마을이 형성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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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보전리와 거제리 사이에 있는 간척 제방. 보전제방은 지산면 보전리 서쪽 지선과 거제 북쪽 지선을 연결하는 제방이다. 980m의 방조제 축조로 인해 298.5㏊의 매립면적이 생겨났다. 매립지에 담수호를 수원공시설로 양·배수장을 설치하여 전천후 농경지화로 농어민의 소득증대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낙도의 균형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1991년 12월 27일 착공하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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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한 사고발생의 위험에 대처하여 공동재산을 비축하였다가 사고가 발생하면 공동재산에서 일정액을 급여하는 제도. 보험은 공공부문의 보험과 민간부문의 보험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공공부문의 보험은 사회보험으로 건강보험, 국민연금, 산재보험, 고용보험으로 나누어볼 수 있으며, 민간부문의 보험은 생명보험, 화재보험, 손해보험 등이 있다. 전라남도 진도지역에 있는 공공부문의 보험으로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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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산정에 봉화대를 설치하고 밤에는 횃불, 낮에는 연기로 변경의 정세를 중앙에 급히 전달하는 군사·통신시설. 진도에는 6개소의 봉수 유적이 남아 있다. 우선 첨찰산 봉수는 진도에서 가장 높은 해발 460m의 첨찰산 봉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여귀산 봉수는 진도 남부에서 가장 높은 해발 457m의 여귀산 봉우리에 위치한다. 상당곶 봉수는 여귀산 남쪽 해발 204m의 오봉산 봉우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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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생활을 영위하는 인간의 조직화된 집단. 진도는 섬이면서 섬이 아닌 독특한 곳이다. 하지만 진도 문화의 형성 기저는 ‘바다’이다. 진도에 독특한 노래와 춤, 그리고 민속 문화가 형성되고 전승된 것은 섬이기에 가능했고, 지금 현재화되는 것도 섬때문에 가능하다. 전자의 섬이 육지로 가고 싶었던 섬이라면, 후자의 섬은 육지 사람들이 찾는 섬이라는 차이가 있다. 진도가 섬스럽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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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에 위치한 진도군 유일의 상설시장. 진도읍은 진도군의 행정·경제·교통·생활의 중심지로 진도군 전체 인구의 약 30%가 집중된 곳이다. 상업 중심지는 진도군청에서 여객버스터미널 방향으로 이어지는 도로변인데, 군청 앞 첫 블록은 근린상업지역이고, 803호 지방도로 이어지는 두 번째 블록부터 읍사무소가 위치한 도로변은 마트, 정육점, 식당가, 병원 등 상설 상점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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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심동리에 속하는 행정리.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의 법정리인 심동리에 속한 행정리이다. 마을이 깊은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다 하여 ‘지푼골’ 또는 ‘심동’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수양리, 마사리와 함께 병합하여 심동리라고 하였다. 해남에서 진도대교를 건너 18번 국도를 타고 진도읍을 지나 801번 지방도를 가다 803번 지방도와 만나는 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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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부터 민간에서 구비전승되어 오는 이야기. 서사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는 설화는 신화와 전설, 민담으로 세분할 수 있다. 설화는 오래전부터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어 오기 때문에 전승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그 속에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전라남도 진도군에서 구비전승되어 오는 설화 역시 진도사람들의 경험과 의식이 투영되어 있을 것이다. 신화와 전설, 민담으로 나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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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습격에 대비하여 흙·돌로 구축한 방어시설의 총칭. 성(城)과 성곽(城郭)은 엄밀하게는 다르다. 성(城)은 내성(內城)만을 의미하고 성곽(城郭)은 내·외성을 통칭한다. 성곽은 거주 주체에 의해 도성(都城)과 읍성(邑城)으로 나누어진다. 지형에 의해서는 평지성(平地城), 평산성(平山城), 산성(山城)으로 나누어진다. 지리적 위치에 따라서는 국경성(國境城), 해안성(海岸城), 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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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에 속한 법정리이자 행정리. 가는 등성이가 되므로 가는골재에서 마을 이름이 나왔다. 세등리 마을은 참봉공의 증손 곽호례(郭好禮)[1541~1591]가 1560년대에 밀양박씨 박령의 사위가 되어 해남에서 건너와 살면서 형성되었다고 전한다. 본래 진도군 군일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고이면의 유교리 일부를 병합하여 세등리라 하여 군내면에 편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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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군 군내면 세등리 세등마을에서 정월 대보름에 마을을 위해 올리는 제사. 본래 진도군 군일면 지역에 속했으며, 가는 등성이라는 뜻으로 세등(細登)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고이면의 유교리 일부를 병합하여 세등리라는 이름으로 군내면에 편입되었다. 현재 주요 성씨는 현풍곽씨로 곽씨 집안이 마을주민 전체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진도의 곽씨는 목사공파와 참봉공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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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송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돌무덤. 진도-해남간 국도변, 속칭 ‘세등고개’ 왼쪽 구릉에 8기의 고인돌이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다. 송산리 고인돌군은 원래 15기였으나 그 수를 헤아릴 수 있는 것은 8기뿐이다. 1968년 서울대학교 동아문화연구소에서 남해안 도서 지역의 고고학적 조사 때 13기가 발굴되어 처음 학계에 알려졌다. 그 후 1987년 목포대학교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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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에서 행해지는 강강술래의 여흥놀이 중 하나. 강강술래는 주로 진도를 비롯해 해남·완도·무안 등 전라남도 해안 일대에서 성행하던 민속놀이로서, 노래와 무용과 놀이가 혼합된 부녀자들만의 집단가무였다. 추석이나 정월 대보름, 백중 같은 명절날 밤에 마을의 넓은 마당에서 서로 손을 잡고 둥글게 돌며 춤을 추는 원무가 기본 형태이다. 여기에 중간 중간 여러 가지 여흥놀이가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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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에서 행해지는 강강술래의 여흥놀이 중 하나. 강강술래는 주로 진도를 비롯해 해남·완도·무안 등 전라남도 해안 일대에서 성행하던 민속놀이로서, 노래와 무용과 놀이가 혼합된 부녀자들만의 집단가무였다. 추석이나 정월 대보름, 백중 같은 명절날 밤에 마을의 넓은 마당에서 서로 손을 잡고 둥글게 돌며 춤을 추는 원무가 기본 형태이다. 술래놀이는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좌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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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제주. 자는 여숙(麗淑), 호(號)는 사양재(思養齋). 할아버지는 집현전 대제학 양동재(梁棟材)[혹은 碩材]이고, 아버지는 경상 병마절도사 양한서(梁漢瑞)이다. 부인은 대제학 박강생(朴剛生)의 딸이다. 아들 양정명(梁井明)이 있다. 양성지가 그의 후손이다. 1394년(태조 3) 2월 9일에 태어났다. 구례현감, 해진군사, 진도군수 등을 역임하고 145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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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의 세거성씨 중 하나. 양천허씨의 연원은 가락국(駕洛國) 김수로왕(金首露王)[김해김씨의 시조]의 비(妃) 허황옥(許黃玉)에게 둔다. 허황후(許皇后)는 본래 인도의 아유타국(阿踰陀國)의 공주로서 김수로왕의 비가 되어 아들 10명을 낳았다. 이 중 맏아들 등(登)은 김씨(金氏)로 정통을 잇게 하였고, 두 아들은 황후의 뜻을 살려 허씨를 사성(賜姓)하였다. 허씨의 각 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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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출신의 민속예술인. 「육자배기」와 「진강강술래」에 특히 빼어난 솜씨를 보였다는 양홍도는 성량이 풍부하고 목청이 좋아서, 한자리에 앉아 백절이 넘는 강강술래를 거뜬히 부를 정도로 천부적인 소리꾼이었다. 1965년 최초로 강강술래가 국가지정 무형문화재로 등록될 때,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강강술래 보유종목은 창(唱)이다. 자손이 없어 말년을 고독하게 지냈고, 질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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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남동리에 있는 진도읍 최대 규모의 어류 판매 정기시장. 일제강점기 때는 현재의 진도 군청 앞 넓은 광장(철마광장)이 시장터였으나, 시가지의 확장과 함께 현재의 진도읍 남동리 위치로 이전했다. 어시장은 선어·활어·냉동어·건어로 판매장이 구분된다. 주민 뿐 아니라 관광객들도 많아 값비싼 고급 생선이 거래된다. 해남에서 18번 국도를 타고 진도대교를 건너 약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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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류를 잡거나 기르는 데 사용하는 도구. 현재 전라남도 진도군의 주요 산업은 농업이지만 과거에는 조도군도뿐 아니라 체도(體島) 전체가 반농반어업을 생업으로 삼던 곳이었다. 일반적으로 진도가 농업 중심으로 비춰지는 것은 수많은 간척이 있고 난 이후이다. 옛날에는 복잡하게 얽힌 리아스식 해안과 천혜의 자원이었던 갯벌 때문에 소만 어업과 갯벌 어업이 생업의 중심이었다. 즉, 간척이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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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죽림리의 여귀산에 있는 봉수대의 터. 봉수(烽燧)는 횃불과 연기로 변방의 정세를 중앙에 알리던 제도였다. 조선시대 봉수는 전라도에 43개가 있었는데 진도에만 여귀산, 굴포, 삼당산, 첨찰산 등 다섯 곳이 있었다. 이를 통해 정부에서 진도의 경계에 얼마나 신경을 썼던지 알 수 있다. 삼당산봉수와 굴포봉수는 여귀산의 보조봉수로서 여귀산봉수에 연락했고, 여귀산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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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전라남도 진도군의 역사. 진도는 반도의 서남쪽 모서리에 위치하여 작게는 서남해 섬 지역과 섬 지역, 그리고 크게는 서해와 남해를 연결하는 중간다리 역할을 한다. 지도를 펴놓고 고대 한·중·일 삼국을 연결했던 바닷길이 지나는 중요한 길목들을 살펴보면, 서해로는 흑산도가 먼저 상기되고 영산강과 연결하여서는 목포와 영산포가 돋보인다. 그리고는 해남의 화원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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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고성리에 있는 정기시장. 오일시장은 열흘에 한 번 끝자리가 5일인 날에 장이 선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1938년 당시, 진도군에는 세 군데서만 장이 섰는데, 진도읍장, 십일시장, 오일시장 등이었다. 그 중 오일시장이 규모가 제일 작았으나 매출액은 연간 32,425원으로 섬치고는 제법 큰 규모였다. 그 후 경제 성장과 함께 장날이 추가되어 5일장이 되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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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의 법정리인 분토리에 속한 행정리. 본래 진도군 군일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한사리, 동산리, 일부와 군이면의 월가리 일부를 병합하여 분토리라 하여 군내면에 편입되었다. 서쪽에 철마산(鐵馬山)[304m], 망적산[266m]이 남북으로 걸쳐 있으며, 북쪽에는 고두산(高頭山)[252m]이 있다. 마을 주변은 대체로 낮은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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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삼당리에 속한 행정리. 마을이 삼당산 밑에 자리하고 있어 삼당 또는 삼댕이라 하였다. 외삼당리는 1784년 이씨가 입향하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내삼당, 외삼당, 마상동을 병합하여 삼당리라고 하였다. 해남에서 진도대교를 건너 18번 국도를 타고 진도읍을 지나 801번 지방도를 가다 지산면 소재지에 도달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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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 진도 입향조. 본관은 전주. 정종의 아홉째 아들 석보군(石保君) 이복생(李福生)의 증손이다. 아버지는 이계옹(李繼翁)으로 거령부령(居寧剖令)을 역임하였다. 부인은 김해김씨 김세옹(金世翁)의 딸이다. 아들이 넷 있다. 연산군 때의 무오사화로 아버지가 해남에 유배되었고 이거(李琚)는 진도로 들어와 정착하였다. 진도군 군내면 분토리에 있다. 진도군 임회면 송정리 정혜사(靖惠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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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무신. 본관은 전주. 무과에 합격하여 1874년(고종 11)에 해남 이진만호(梨津萬戶)를 역임했고, 1882년(고종 19)에는 제주도 대정군수(大靜郡守)로 부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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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1907년 오적(五賊)과 일진회 타도를 위한 비밀결사대인 동우회(同友會)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활동의 일환으로 윤이병(尹履炳) 등과 정미7조약의 체결에 항거하여 총리대신 이완용(李完用)의 집을 소각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유형(流刑) 10년을 받아 진도에 유배되었다. 1908년 말 유배지를 탈출하여 해남(海南)에 머무르며 의병활동을 독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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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의 세거성씨 중 하나. 인동장씨의 시조는 고려 초에 삼중대광 신호위상장군의 벼슬을 지내고 인동현의 옥산땅에 처음 복거한 장금용이다. 장금용의 6세손으로 장세림(張世林)과 장백림(張百林) 형제가 있었는데, 동생 장백림은 진도에 귀양 왔다가 3년 만에 풀려나 함평에 정착해 함평파의 파조가 되었다. 진도에 들어온 것은 장백림의 7세손인 장을중(張乙仲)으로, 우수영절도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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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십일시마을에 형성된 장시는 10일에 한 번씩 열렸으나 장시가 번성하면서 4일에도 장이 열린다. 장이 번성한 이유는 임회면과 지산면, 조도면 사람들이 주로 이 시장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이곳 주변 사람들에게 진도읍시장은 거리가 멀뿐더러 교통도 불편했다. 따라서 외부에서 상인들이 많이 들어왔고, 우시장도 크게 번성하여 시장의 발전을 촉진했다. 그러나 농업의 기계화로 우시장이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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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표의 자연현상을 지역적인 관점에서 규명하려는 지리학의 한 분야. 자연환경은 암석권, 대기권, 수권, 생물권으로 구성된다. 암석권은 지질환경, 대기권은 기후 환경, 수권은 담수와 해수의 영역으로 구성되고, 생물권은 크게 식물과 동물 영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암석권, 대기권, 수권이 상호 접촉하는 부위에 지형과 토양이 형성되고 변화하며 이곳에 생물의 생활권이 형성된다. 따라서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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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지역에서 역사적으로 전개된 각 정당들의 정치활동. 정당(party)의 어원은 pars(일부분)인데, 전체 속의 한 부분이 다른 부분과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의미다. 정당의 목적에 대해 에드먼드 버크(Edmond Burke)는 국민의 이익 증진이라고 보았고, 저명한 정치학자 엘머 샷슈나이더(Elmer E. Schattschneider)는 국민의 이익을 증진시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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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 압해(押海). 호는 묵제(墨霽). 해남에서 진도 금호도로 건너온 정태영(丁太塋)[1713~?]의 손자이다. 금호도에 관해정(觀海亭)을 짓고 서당을 열어 해남, 진도 등지에서 22명의 수학자가 몰려들었다. 제자들이 학계를 구성해 묵제사(黙霽祠)를 짓고 제사하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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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권력을 획득·유지하고 국민들의 풍요로운 삶을 보장하고 이해갈등을 조정하는 모든 활동. 진도지방에서는 신석기 때의 유적이 발견된 적은 없지만 인근의 서남해 도서지방인 신안군의 대흑산도, 소흑산도, 우이도, 하태도, 완도군의 고금도, 여천군의 돌산도 등과 내륙에 가까운 지역인 해남군 현산면 백포리 두모마을 등에서 발견된 조개더미(패총)로 보아 진도지방에서도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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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에 속하는 면. 조도면은 진도군 7개 면 중의 한 면이다. 남쪽과 서쪽의 섬 154개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중 유인도는 35개, 무인도는 119개가 있다. 국내 읍·면 중에서 섬이 가장 많은 곳이기도 하다. 면적은 약 57㎢이다. 새떼처럼 섬이 많다 하여 조도(鳥島)라 하였다. 본래 진도군의 지역으로서 여러 섬으로 이루어져 제도면(諸島面)이라 하였다. 관매리, 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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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말기 무신. 1866년(고종 3) 서양 세력들이 조선을 침범하기 시작하자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은 진도군이 남해의 요해지라 하여 군(郡)을 도호부(都護府)로 승격시키고 정삼품 당상관의 부사(府使)를 배치하였다. 진도부사는 유사시에 영광·함평·영암·해남 등 4개 군현의 군수, 임자·지도·다경·목포·어란·미진·마량 등의 수군만호, 진도 안에 있던 금갑·남도 등 9개 수군만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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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기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시조 조계룡의 28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조정통(曺精通), 할아버지는 조한용(曺漢龍), 아버지는 조경숙(曺景淑)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와는 사촌 동서 간이다. 부인은 강윤충(康允忠)의 딸이며, 아들 조근(曺謹)과 조심(曺諶)을 두었다. 조희직은 1366년(공민왕 15) 정언(正言, 종6품) 재임 중 정추(鄭樞)·이존오(李存吾)와 함께 신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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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의 법정리인 녹진리에 속한 행정리. 1400년 말 능성구씨가 입향하였다고 전해지나 사실적 근거는 찾기 어렵다. 해남에서 처음 진도로 건너온 원주이씨, 남평문씨 등의 첫 정착지이다. 본래 진도군 군일면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죽전리, 대사리, 신동리 일부를 병합하여 녹진리라 해서 군내면에 편입되었다. 마을의 서쪽에는 건배산[118m]이 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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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에서 행해지는 강강술래의 여흥놀이 중 하나. 강강술래는 주로 진도를 비롯해 해남·완도·무안 등 전라남도 해안 일대에서 성행하던 민속놀이로서, 노래와 무용과 놀이가 혼합된 부녀자들만의 집단가무였다. 추석이나 정월 대보름, 백중 같은 명절날 밤에 마을의 넓은 마당에서 서로 손을 잡고 둥글게 돌며 춤을 추는 원무가 기본 형태이다. 여기에 중간 중간 여러 가지 여흥놀이가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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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의 회동리, 수품리, 접도리 등 동남쪽 어촌마을에서 생산되는 김. 진도에서 김이 생산되는 곳은 동남쪽 바다로 갯벌이 발달한 원품, 회동, 수품 등 세 지역이다. 이곳에서 수협 위탁판매가 이루어진다. 진도에서 김 양식이 시작된 것은 40년 전인 1960년 무렵이었다. 양식기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대발과 지주식으로 10~20여 척에 불과했지만, 기술이 발달해 깊은 바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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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교동리에 있는 청룡사 소장의 불교전적. 청룡사 소장 불교전적은 2002년에 주지로 부임한 도훈(정한종) 스님이 1960년대에 대흥사로 출가하여 경전 공부를 할 때 은사 스님(청우 양경운)과 강사 스님(김종환)으로부터 전해 받은 것들과 은사 스님 밑에서 함께 수학했던 사람들로부터 보존을 위해 전래받았거나 해남 진학사 창건주의 유품들로 전하는 것들이다. 청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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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행정구역이자 기초 지방자치단체인 진도군의 행정을 맡아오는 최고 행정 책임자. 전라남도 진도의 초대 군수는 조선 세종 때 부임한 양경(梁瓊)이다. 하지만 그 이전 기록으로 『고려사』에 “1282년(충렬왕 8) 진도현령 조득주를 파면하다.”라는 기록이 있어, 조득주를 최초의 군수로 보기도 하고, 이 무렵에 부임한 윤승해(尹承解)를 최초의 군수로 보기도 한다.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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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대교 준공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탑. 1984년 10월 18일 진도대교가 준공됨에 따라 섬이던 진도가 육지와 연결된 것을 기념하여 현대건설이 건립한 기념탑이다. 진도대교 준공탑은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 녹진관광지 내에 세워져 있다. 진도대교 준공탑은 기념 조형물 형태로 지어진 탑이다. 상단에는 화강암으로 된 환조물이 있고, 하단에는 대리석 위에 부조가 새겨져 있다.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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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진도에 설치된 도호부. 조선은 1413년(태종 13)에 지방제도를 정비하면서 종래 각 도의 단부관(單府官)을 도호부로 고치고 종3품의 도호부사를 두었다. 1415년에는 군 가운데 1,000호 이상인 것은 도호부로 승격시켰다. 본래 중국에서는 군사적인 성격이 강하여 주로 변경에 설치되었으나 고려·조선시대에는 전국에 분포되어 있었다. 도호부의 수는 후기에 갈수록 증가해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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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진도군이 진도부로 승격되면서 설치된 진관(鎭管). 조선시대 군제는 무관 지휘의 육군인 병마절도사와 수군인 수군절도사가 있고 그 휘하에 첨절제사진, 만호진 등 조직이 있었다. 그러나 일단 전쟁이 일어나면 각 고을의 문관 수령도 주(州)의 목사나 부(府)의 부사가 그보다 직급이 낮은 고을의 군수를 거느리고 전쟁에 임하는 편제로 운영되었다. 조선 중기까지도 진도군은 장흥부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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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읍은 진도군의 중심지이고 성내리는 진도읍의 핵심지이다. 본래 진도읍은 1437년(세종 19)에 부내면이 되었다가 1873년(고종 11)에 진도면으로 개칭되었고, 1979년에 읍으로 승격되었다. 이렇게 여러 차례 행정개편이 있었지만 성내리는 읍성의 안쪽에 있다 하여 처음부터 성안 또는 성내로 불렸다. 법정동은 성내리이지만 행정동은 진도초등학교가 있는 성동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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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읍성은 1987년 1월 15일에 전라남도 지정 문화재 자료 143호로 지정되었다. 이 성은 1440년(세종 22)에 축조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본래의 진도읍성은 성내리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고군면 고성리에 있었다. 고성리에 있던 진도읍성은 백제시대에 처음 축조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새로운 읍성이 조성되기 전까지 오랫동안 이곳은 진도의 치소(治所)로서 기능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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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관광을 위한 계절별, 주제별, 권역별 경로. 진도는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섬으로 조도면 일대 해역의 서남해 해상국립공원, 울돌목, 진도 용장성, 백조 도래지, 진도 첨찰산의 상록수림 등과 많은 민속무형문화재, 국립남도국악원, 향토문화회관, 기념관, 미술관 등과 아울러 진도개, 구기자, 대파, 검정 쌀, 진도 미역, ‘신비의 바닷길’ 까지 다양한 자연 관광자원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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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있는 진도 해역의 항로 표지를 관리하는 사무소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남동리 635-5번지 서망항 경내에 7층 빌딩의 진도항로표지사무소가 들어서 있다. 진도, 완도, 강진, 해남(화원면 제외) 등의 관내 항로 표지를 관리하고 항해 중인 선박에 항행(航行) 정보를 제공할 목적으로 30억 원을 투입하여 2004년에 건립하였다. 관리하는 항로시설은 181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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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에서 행해지는 강강술래의 여흥놀이 중 하나. 강강술래는 주로 진도를 비롯해 해남·완도·무안 등 전라남도 서남해안 일대에서 성행하던 민속놀이로서, 노래와 무용과 놀이가 혼합된 부녀자들만의 집단가무였다. 차첨지놀이는 강강술래의 여흥놀이 중 하나로서 외따먹기놀이라고도 하였다. 차첨지놀이는 조선 말기 진도에서 유배생활을 했던 무정 정만조(鄭萬朝)의 저술인 『은파유필(恩波濡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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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최제우가 창도한 동학을 3세 교주인 손병희가 1905년에 개칭한 종교. 동학(東學)은 1860년 최제우(崔濟愚)[1824~1864]에 의해 창도된 신흥종교로 서학(西學)에 대칭하는 이름이다. 당시의 정세는 어린 헌종이 즉위하여 정권다툼이 극에 달했고 유교와 불교는 부패하여 백성을 구제할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일본을 비롯한 외세의 간섭으로 국운이 위기에 처해 있는 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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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과 고군면에 있는 첨찰산에 세워진 조선시대의 봉수. 첨찰산 봉수는 해남 관두산 봉수(현 해남군 화산면 관동리 성좌동 관두산)로부터 여귀산 봉수(현 임회면 죽림리 여귀산)로 전달된 봉홧불을 해남 황원 봉수(현 해남군 화원면 장춘리·문내면 고당리의 접경 日星山)에 중계하는 연변봉수(沿邊烽燧)의 하나로 건립되었다. 대략 조선 초기 진도군의 행정체계가 재정비되는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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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과 고군면 경계에 있는 석성. 첨찰산성은 진도군 의신면과 고군면의 경계지인 진도군에서 가장 높은 산인 첨찰산[해발 485m]에 위치해 있다. 첨찰산 정상 봉수대가 위치한 산정을 중심으로 동남쪽의 해발 460m 고지와 남쪽 420m 고지를 연결한 포곡식(包谷式) 산성이다. 1500년도 더 된 백제 때 왜 이렇게 높은 곳에 산성을 쌓았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되어 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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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의 세거성씨 중 하나. 한씨는 본래 기자(箕子)의 후손이란 설을 갖고 있으나 청주(淸州) 본관을 갖게 된 것은 고려 개국 당시 청주 토호로 왕건에 협력한 한란(韓蘭)[?~?]이란 인물 때문이다. 한란은 고려 태조(太祖)가 후백제의 견훤(甄萱)을 정벌하기 위해 청주를 지날 때 군량미를 도와 삼한 통합에 공이 있으므로 개국벽상공신으로 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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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지역에서 특별히 생산되는 물품. 진도지역에서 유명한 특산물로는 미역, 김, 구기자, 대파, 울금, 흑미, 홍주 등을 들 수 있다. 1. 미역 진도미역은 조선시대부터 대표적인 진상품 가운데 하나였다. 또한 1530년(중종 25)에 발간된『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는 진도의 토산품 중 하나로 미역을 꼽고 있다. 인근 완도에서 일찍부터 김발이 시작되었지만 갯벌이 발달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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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오행설을 바탕삼아 땅에 관한 이치를 설명하는 이론. 진도는 울돌목이라고 불리는 명량해협을 사이에 두고 육지부와 떨어진 섬이다. 이런 섬의 원격성이 진도의 고유한 문화적 속성을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한때 진도는 10만이 넘는 인구를 부양할 정도로 농업 생산성이 높았으며, 섬이면서도 유난히 농경문화의 요소가 강하게 지배하고 있었다. 풍수지리 역시 농경문화의 한 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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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 진도 입촌조. 본관은 진주하씨. 15세손 하숭리(河崇理)[?~1543]의 3남 중 큰아들이다. 그의 아들 하린(河燐)이 해남군에서 옮겨와 진도군 임회면 삼막리에 정착하였다. 그의 부인은 창녕조씨 조중문(曺仲文)의 딸이다. 그의 동생 집안이 진도군 고군면 향동리를 중심으로 세거하였다. 하숭리의 묘는 해남 계곡에 있었고, 하극창의 묘는 진도읍 동외리 정거름재에 있다. 진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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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에 있는 바닷길. 바다에는 해류와 조류가 있다. 해류는 바다 속에 있는 강을 따라 따뜻한 곳에서 찬 곳을 향해 흐르는 흑조라는 물줄기이다. 조류는 바람과 달의 인력과 다른 천체들의 끌어당기는 인력에 의해 움직이는 물줄기이다. 조류는 육지에 가까울수록 연안수인 강물의 영향을 받아 심해 무조점이라 이르는 극점을 향해 하루 두 차례 물이 쏠렸다가 원위치 가까이 돌아가는 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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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문관이며 서화가.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마힐(摩詰), 호는 소치(小痴). 관지(款識)에는 수치(叟痴), 노치(老癡), 칠십노치(七十老癡), 팔질노치(八耋老癡), 석치(石癡), 연옹(蓮翁) 등을 사용했다. 중국 당나라 남종화와 수묵산수화(水墨山水畵)의 효시인 왕유(王維)의 이름을 따라서 ‘허유(許維)’로 개명(改名)하였다. 마힐은 왕유의 자를 따른 것이다. 허균(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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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에서 태어난 남종화의 대가. 본관은 양천(陽川)이며 호는 의재(毅齋)로 허련(許鍊)의 방계(傍系)로 태어났다. 8세 때 한학을 배웠으며 허련의 넷째 아들 허형(許瀅)에게서 묵화의 기본화법을 익혔다. 서울 출신인 무정(茂亭) 정만조는 허백련에게 한학(漢學)을 가르친 스승이며 그에게 의재란 호를 지어 주었다. 무정은 39세 때인 1896년 무고(誣告)로 진도에 유배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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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경을 시조로 하고 곽자정을 입향시조로 하는 진도 세거성씨의 하나. 현풍(玄風)이란 경상북도 달성군(達城郡)에 있던 옛 고을 이름이다. 고려 때는 포산(苞山)이라 했고 중국에서 처음 한국에 들어온 곽경(郭鏡)[1117~1179]이 1133년 정착하였기 때문에 포산곽씨라 하기도 한다. 현풍곽씨는 국내 순위가 36위로 국내에 4만여 명(1985년 현재) 사는 귀한 성이지만, 진도에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