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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500289
한자 南道-
영어음역 Namdo Deul Norae
영어의미역 Namdo Farmers' Song
이칭/별칭 진도 들노래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민요와 무가
지역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인지리
집필자 나승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73년 11월 5일연표보기 - 남도들노래 국가무형문화재 제51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남도들노래 국가무형문화재 재지정
성격 노동요|논일노래
토리 육자배기토리|남도경토리
가창자/시연자 조공례|박동매|김영자|박동매
박자구조 굿거리|중모리|삼장개비
가창시기 모내기|논매기
문화재 지정 번호 국가무형문화재

[정의]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인지리를 중심으로 불리는 일노래.

[개설]

남도들노래진도군 지산면 인지리를 중심으로 전승되는 논일노래이다. 따라서 벼농사와 관련한 노래가 중심을 이룬다. 전라남도 지역의 대표적인 일노래로서, 1973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진도군에는 남도들노래뿐만 아니라, 의신면을 중심으로 한 의신대동두레놀이가 있다. 의신대동두레놀이는 목화밭작업을 공동으로 하면서 부르던「화중밭 노래」와 벼농사를 하면서 부르던「들소리」를 총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이처럼 진도군에서는 소포만을 중심으로 동편과 서편으로 특징적인 일노래가 전승되고 있고, 논일노래와 밭일노래로 또 구분되어 전승·보존되어 오고 있는 셈이다. 의신면 들노래와 지산면 들노래는 그 기량이나 음악적 구성면에서도 약간의 차이를 보여주는데, 학자들은 이를 들어 소포만을 경계로 한 서부문화와 동부문화로 나누어 해석하기도 한다.

논일노래를 중심으로 짜여진남도들노래를 거론하기 전에 상대적인 일노래로 인식되는 밭일노래를 보면, 의신면의 「화중밭 매는 소리」외에도 다양한 노래들이 있다. 밭일노래는 모내기나 김매기처럼 공동작업을 하는 경우가 적어서 흔히 독창이나 음영요로 불리게 된다. 예를 들어「흥그레 타령」을 보리밭을 매면서 부르면 보리밭 노래가 되는 셈이다. 따라서 진도에서 보존되고 전승되는 일인 가창요는 사실상 밭일노래라고 할 수 있으며, 논일노래를 포함하여 농요 속에 포함된다고 하겠다. 특히 의신면에서는「보리밭 노래」, 「화종밭(미영밭) 매는 소리」, 「콩밭 매는 노래」 등으로 이름하여 부르는 노래들이 있고, 이외에도「장꼬방 노래」, 「이 노래」, 「언문 노래」, 「흥근애 노래」(「흥그레 타령」),「법구 노래」 등이 전승되어 왔다.

논일소리를 중심으로 하는 들노래는 일하는 절차에 따라 노래들이 분화되어 있다. 모내기는 흔히 ‘모를 찐다’고 해서「모찌는 소리」라고 한다.「모찌는 소리」는「긴 모뜨는 소리」·「자진 모뜨는 소리」로 구분되고,「모심는 소리」는「긴 못 소리」·「자진 못 소리」로 구분된다. 또 「김매기 소리」는 「긴 절로 소리」·「중 절로 소리」·「자진 절로 소리」 등으로 구분된다.

세벌매기를 끝내고 상머슴을 소에 태우고 놀이하는 「길꼬냉이」는 다른 지역에서 흔히 「장원질 소리」라고 하는데, 진도군만의 특유한 가락과 노래 구성을 보여준다.

[가사]

남도들노래는 남도경토리를 사용하고 있다. 또 장단을 보면 「논매는 소리」에서 진양조장단이 사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대개 남도민요는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등의 장단이 가장 많이 사용되지만 농요에서는 일하는 장단에 맞추기 위해 중모리, 중중모리 가락이 많이 사용된다.

특히「길꼬냉이」(「질꼬냉이」)에서 삼박자 중심의 ‘삼장개비’장단이 사용되는 것도 특징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 장단은 「진도 아리랑」 등에서 사용되는 삼박자 계열의 장단이되, 매우 느리게 진행된다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진도 씻김굿에서 사용되는 ‘삼장개비’ 장단이 아니라 ‘길꼬냉이형 삼장개비’ 장단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느린 장단이라고 할 수 있다. 순서와 간략한 사설을 보면 아래와 같다.

「모찌는 소리」(「모뜬 소리」, 「모뜨는 소리」)

받음소리: 어기야 허허 여허헤라/ 머허 ~ 난 뒤요

메김소리: 이고루 걸고 저고루 걸어/ 열두 고루를 다 걸고야

-하략-

「자진 모뜨는 소리」(「자진 모찌는 소리」)

받음소리: 에헤야 어기어라 머난디가 산아지라

메김소리: 앞에 산은 가까오고 뒤에산은 멀어진다

-하략-

「상사 소리」(「못 소리」, 「모심기 소리」)

받음소리: 어기야 허허 여허라/ 상~사로세

메김소리: 이 상사가 누상산가/ 김서방네 상사로세

-하략-

「자진 못 소리」(「자진 모심기 소리」)

받음소리: 어라뒤야 저라뒤야 상사로세

메김소리: 이농사를 어서지어 나라봉양을 허여보세

-하략-

「긴 절로 소리」(「긴 논매는 소리」)

받음소리: 이해야~아하에헤/ 아절~로~로야

메김소리: 비가 졌네 비가 졌네/ 남산 허리에 비가 졌네

-하략-

「중 절로 소리」(「중 논 매는 소리」)

받음소리: 이히야 하하 아하하하 하 절-로/ 이히야 하하 아하하하 하 절-로

메김소리: 갈 때 보고/ 올 때 보니/ 두 번 보면/ 정 붙는다.

-하략-

「자진 절로 소리」(「자진 논 매는 소리」)

받음소리: 아하하 아하하 아하하하/ 에헤헤 에헤야 절-로

메김소리: 간다 간다 내도난 간다/ 임을 따라서 내도나 가

-하략-

「길꼬냉이」(「질꼬냉이」, 「길꼬내기」, 「길고낙」)

받음소리: 에헤야에헤야 어기야허얼사/ 지와자자자아하어리시구나/ 지오자자자 헐사좋네

메김소리: 내돌아간다/ 내돌아간다/ 정든 님 따라서 내가돌아간다

-하략-

[편성]

남도들노래의 구성은 노래하는 사람 외에 여러 가지 풍물악기를 수반하게 된다. 대체로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이후의 편대 구성을 보면 농기 1인, 꽹과리 1인, 징 1인, 장고 1인, 북 1인, 법고 6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

남도들노래의 특징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모찌는 소리」는 「모뜬 소리」라고도 한다. 논에다가 모를 심기 위해서 모판에서 모를 찌면서 부르는 노래이다. 이때는 중모리가락의 「모찌는 소리」를 부르게 된다.「상사 소리」는 일명「못 소리」라고도 한다. 이 노래는 본답에 모를 심으면서 하는 「모내기 소리」로 이앙가의 일종이다. 중모리가락으로 부르다가 일을 재촉할 재량이면 중중모리가락으로 빨라진다. 「절로 소리」는 논에서 김을 맬 때 부르는 노래이다. 흔히 ‘지심맨다’거나 ‘논맨다’고 한다. 이때는 늦은 가락인 진양조의「긴 절로 소리」를 부르다가 작업에 흥이 붙으면 중모리가락의 「중 절로 소리」로 이어간다. 또 논매기를 마칠 때나 일을 재촉할 때는 자진모리 가락의「자진 절로 소리」로 넘어간다. 세벌매기가 끝나면 일명「풍장 소리」라고 하는 「길꼬냉이」 노래를 부르게 된다.

이런 노래의 구성이 시간적 제약이나 불변의 틀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 노래가 취사선택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내기에서부터 「길꼬냉이」에 이르기까지 논일작업에서 들노래가 필수적인 것이었음을 여러 제보자들이 증언해주고 있다. 그만큼 노래와 일이 함께 어우러진 작업환경이 농요를 풍성하게 전승하고 보존하게 한 자양분이었음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남도들노래에서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길꼬냉이’이다. 벼농사에서 수확작업을 빼놓으면 논매기가 마지막 작업에 속하는데, 그 중에서도 세벌매기가 마지막 작업이 된다. 이를 진도에서는 ‘만물’ 혹은 ‘맘물’이라고 한다. 내륙지역에서 ‘만드리’라고 하는 것과 동일하다. 이 만물이 끝나는 날에는 그 해 농사가 가장 잘된 집과 그 집에서 가장 일을 열심히 한 머슴을 ‘상머슴’으로 골라서 황소를 내리고 축하하는 놀이가 ‘길꼬냉이’이다. 내륙지역에서는 흔히 ‘장원질’, ‘장원축’, ‘만드리’ 등으로 부른다. 진도군에서는 이날 큰 황소의 코뚜레에다가 흰 백목을 묶어 양편으로 늘어뜨리고 이 백목을 일꾼들이 잡고 행진을 한다. 소의 몸을 백목으로 친친 감고 칡넝쿨, 혹은 담쟁이넝쿨 등을 소 몸통에 감는다. 소를 탄 상머슴의 얼굴에는 솥검드렁(아궁이에서 긁어낸 까만 재를 ‘검드렁’이라고 함)을 칠하고, 긴 풀잎으로 만든 안경을 씌운다. 등에는 진흙으로 손바닥 도장을 찍고 삽을 어깨에 메게 한다. ‘길꼬냉이’ 노래를 부르며 행렬이 들과 동네를 지나면 주인집에서는 이들을 맞이하고 술과 닭죽 등의 음식을 내놓는다.

[옷차림]

악대의 복식은 주로 감물을 들인 ‘중우 바지’에 흰색 저고리가 보편적이다.

[현황]

남도들노래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기까지 일상적인 들노래 연행이 아닌, 보존회 설립이나 들노래의 구성·안무 등에 관여한 사람들이 있다. 대표적인 학자로는 지춘상과 안무가로 박병천을 들 수 있다. 간략하게 흐름을 짚어보면, 이들이 주도하여 1971년 진도들노래를 발굴하게 되고, 1971년 10월 제12회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이것이 1973년 11월 5일「진도 들노래」가 남도들노래라는 이름으로 국가무형문화재 제51호로 지정된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보유자는 설재천(薛在千)·조공례(曺功禮)였으며, 두 분의 타계 이후로는 김영자·박동매가 전통을 계승해 가고 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가무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남도들노래의 고유한 정체성은 물론 진도사람들의 역량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이를 새롭게 안무하고 연출한 사람들이 있었음도 기억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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